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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돌이다-102화 (102/104)

00102  I LOVE YOU  =========================================================================

그런 말을 하는 수혁이 무서웠다. 배를 차서 유산시키거나, 억지로 강간을 해서 유산시킬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건 로이가 그를 잘 안다고 여기면서도 잘 몰라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거다.

“로이, 로이….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정말 잘못했으니깐 제발 버리지 말아주세요.”

수혁이 무릎 꿇고 울었다. 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며 부끄럽지도 않은지. 다 큰 아저씨가 갓 어른이 된 로이를 상대로 버리지 말라고 울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큰 죄를 지었다는 식으로 잘못했다고 빌었다. 로이는 안쓰러운 마음에 수혁을 안아 등을 쓸어줬다.

“알았어. 안 버릴게. 아이 낳고, 다시 활동하면 되지 뭐. 그땐 경찰도 최민을 잡았겠지.”

“……그래서 말입니다. 전부터 생각해온 계획이 있습니다.”

그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로이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품에서 가녀리게 떠는 모습은 수혁이 190의 장신이며 근육질 몸의 수컷임을 잊게 만들 만큼 그를 약한 짐승처럼 보이게 했다. 병아리 같다고 여겼다. 손위에 올린 병아리처럼 그녀가 손을 쥐면 부서져버릴 것 같다. 그가 긴 속눈썹을 한번 내리깔고 눈에 맺혔던 눈물을 떨어트려냈다.

“이제 로이도 영장이 나올 나이이니, 미국으로 건너가는 겁니다. 아버님께 말해서 로지의 사망신고를 안 했습니다. 이제 로이는 로지로서 살면 되요. 저희 어머니는 언제든지 로이가 할리우드에 진출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하셨고요. 진출 비용은 걱정 마세요. 이제 여자로서 당당하게 아이돌로 활동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너무나 달콤한 말이다. 여동생인 로지가 죽었는데 그녀는 드디어 제자리를 찾아 돌아갈 수 있게 된 거다. 모든 사건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 로이만을 돕기 위해 진행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문을 열고 소속사 사장과 상의하기로 했다. 주안은 수혁이 전한 소식에 토끼눈이 되어 그럴 수만 있다면 좋다고, 당장 그러자고 나섰다.

이제 당당히 사람들 앞에서 여자로 살 수 있게 된 거다. 그러나 무언가 찜찜했다. 수혁을 돌아보니 그가 언제 울었냐는 듯 로이 테일러의 흔적을 지울 계획까지 완벽하게 준비해놓았음을 알려줬다. 교통사고로 위장해 로이 테일러는 사라지고, 미국에서 로지로서 데뷔하기로 다 각본까지 짜놓은 상태였다. 집 근처가 언덕이라 사고내기 딱 좋아요, 라고 말한 수혁의 웃음이 이상하게도 싱그럽게 보였다.

“형………. 그런데 정말 최민이 날 죽이려고 한 거 맞아?”

수혁의 손을 잡고 물어봤다. 주안이 수혁 대신 답했다. 당연하지. 너 협박 편지 받고도 그 여자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나무랐다.

“아무리 수혁씨네서 조폭 풀어서 집 지키고 있다지만, 총 가지고 나타나면 어떻게. 존 레논도 광팬에게 살해당했다고. 조심해야 해.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어. 난 너 죽을 까봐 밤마다 잠이 안와. 나 요즘 뱃살 생긴 거 보이지. 그게 다 네 걱정 때문에 소주를 병나발로 부어서 그런 거야. 아이고, 내 새끼!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너 좋아서 죽으려고 드는 여자들이 대한민국에 천지지만 어쩌겠냐. 넌 여자인데. 이제 그 소녀들도 제정신 차리게 해주고 남친 생기게 해줘야지. 걔네 인생을 네가 다 책임질 것도 아니고, 최민처럼 너 좋다고 호르몬 주사 맞고 남자 되면 어쩌려고.”

“그러니깐. 난 최민한테 협박 편지 받은 적 없거든. 형, 너무 쫀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소속사로 혈서가 날아오고, 네 사진이랑 발가벗은 여자들 합성 사진 보내고, 이거…. 이거 보라고. 나 진짜 이 편지 너한테 왔다는 거 보고 소름 돋았다. 으으으. 끔찍해.”

주안이 몸을 부르르 떨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여줬다. 로이가 이카루스 컴백을 하고 받은 꽃다발에 있던 편지였다.

I understand only because I love you. (난 너를 이해해. 그 이유는 널 사랑해서야.) Kindly think about the matter from my point of view. (조금은 내 마음의 문제를 상냥하게 생각해줘.) I love you.(나는 널 사랑해) love sick is about my stories. (상사병은 나의 이야기야.) lonely people need to feel loved. (외로운 사람은 사랑받을 필요가 있어.) unique beauty, my Icarus. (유일한 아름다움, 나의 이카루스.)

“이게 뭐. 뭐가 문젠데. 나 존나 사랑한데잖아.”

“그게 아니잖아. 이 짱구야. 여기 문장의 첫 알파벳만 쓰면. I KILL U. 널 죽인 데잖아. 이거 대기실에 놓여있었다며. 내가 이 편지 너 받았다는 말에 활동 중지까지 생각하게 된 거잖아.”

“……이 편지. 형은 사진 어떻게 얻은 거야?”

“당근 수혁씨가 보내줬지. 그래도 수혁씨가 있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내가 너 못 지키고…….”

로이는 주안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수혁의 뺨을 때렸다. 주안이 너무 놀라 로이의 손목을 잡았다.

“놔! 저 나쁜 새끼 죽여버리게! 씨발, 김수혁! 너 부셔버릴 거야! 아악!”

주안에게 안겨 발버둥치는 로이를 수혁이 미끄럼이 봤다. 그가 우는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흥분하지 마세요. 우리 아기한테 해로우니깐.”

“흑…. 흑. 내가 널 믿고 사랑했다는 사실을 증오해. 도대체 나한테 진실을 말하긴 한 거야? 어디가 진실이고, 너의 진심이야.”

그 편지는 수혁이 사진 찍을 수 없었다. 그야 그에게 장미다발을 빼앗기기 전에 로이가 가방에 넣어버렸지 않는가. 결국 로이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던 범인은 김수혁이었다. 그럼 그녀에게 계속 전화하고, 사랑한다고 협박했던 스토커가 최민이 아니라면 그가 고용한 사람이었던 걸까?

“그 여자는 누구야. 나한테 계속 연락하고, 자기가 김수혁이라며 헛소리한 년. 네가 다 꾸며낸 거지?”

“그건 정말 제 짓이 아닙니다. 전 그저 상황을 절묘하게 이용했을 뿐. 그 추악하게 생긴 여자가 최민입니다. 그가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는 것도 맞고요. 그 편지를 제가 보내지 않았더라도 분명 최민이 보냈을 겁니다. 그는 로이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분명 무대 위에서 빛나는 로이를 파괴하고 짓밟아버렸을 겁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걸 갖은 로이를 사랑하니깐. 전 그저 로이를 그로부터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가능한 로이가 여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택한 것뿐이고요.”

“사랑. 사랑! 개소리 집어치워. 그럼 내가 직접 최민 만나볼게. 너 나 죽이려고 했냐고. 최민은 결코 날 죽일 수 없어. 그 여자가 못 이룬 꿈을 내가 대신 이뤄졌으니깐,  난 최민의 또 다른 모습이고, 그래서  내가 펜에게 키스당했을 때 녀석을 죽일 듯이 때렸던 거라고! 최민은 나 못 죽여. 형이 나를 죽이는 거야. 흑…. 로지…, 네가 죽인 거지? 형이 죽인 거지?”

“아니요.”

그래도 희망이 보였다. 여동생을 죽인 게 수혁이 아니니깐. 그가 다시 한 번 로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답했다. 편지를 보내 스토커였던 최민이 로이를 살해하려고 꾸민 것뿐이라면, 그런 것쯤은 용서해도 되지 않을까?

로이는 수혁을 보고 그럼 누가 죽인 거야, 물었다. 그가 자기 어머니라고 답했다.

“아아…. 아아…. 그래. 어머니. 네 엄마는 아들을 위해 살인도 하는 구나.”

“괜찮으십니까. 많이 아파보입니다. 얼굴이 창백해요.”

로이는 그녀의 이마에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아주는 수혁의 손을 때렸다.

“네 눈에는 지금 내가 아픈 건만 보여?”

“네. 전 오로지 로이만을 생각합니다.”

너무 단호한 대답이다. 수혁은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 그녀를 어서 병원에 데려가야 하지 않겠냐고 주안에게 물었다. 주안이 로이를 안았다. 로이는 울면서 그에게 이제 어떻게 하냐고 조언을 구했다. 언제나 친형처럼 로이를 보살펴주던 주안이다. 그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다.

“수혁씨 말대로 하자. 모두 너한테 좋아. 로지가 죽은 건 슬프겠지만 그게 가장 널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니깐.”

왜 다들 이런 이기적인 말만 하나 화가 났다. 로이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 희생되는 게 옳다면, 그건 그녀가 아이돌로서 빛나고자 했던 이유와 부합하지 못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녀의 노래에 열광하고 춤을 보고 따라하는 팬들이 좋았고,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분명 그들이 사랑하던 로이 테일러가 이런 무섭고 끔찍한 여자라는 걸 다들 알게 되면 떠나갈 것이다.

주안이 현관문을 열었다. 수혁이 차 키를 그에게 던졌다.

“역시 주안씨라면 말이 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겠지. 누구보다도 로이 테일러를 생각하는 남자니깐. 나라도 너처럼 그랬을 거야.”

주안이 운전석에 로이를 태웠다. 그가 조수석에서 기어를 D로 바꾸고 운전대를 잡았다.

“네 장례식은 크고 화려하게 해줄게. 그 누구도 전설이 되어버린 로이 테일러를 잊지 못하게. 한국이 모두 비탄에 잠기도록. 넌 영원히 빛나게 될 거야.”

“개소리!”

로이는 울었다. 그가 엑셀을 밟으라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오른쪽에 있는 거라고 했다.

“교통사고 일부로 냈다가 진짜 죽으면.”

“걱정 마. 김수혁이 괜히 비싼 차 타는 거 아니니깐. 이거 에어백 3개야.”

로이는 눈을 질끈 감고 오른쪽에 있다는 엑셀을 꾹 밟았다. 차가 움직였다. 주안이 핸들을 잡고 너무 겁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차가 언덕을 타고 내려갔다. 전봇대가 보였다. 급하게 핸들은 꺾었다. 주안이 앉아 있는 쪽으로 전봇대가 들이박혔다. 운전석은 에어백이 3개나 터졌으나 조수석은 고작 1개였다. 유리창에 머리를 박은 그의 이마에서 피가 너무 많이 났다. 무서웠다.

“형, 형 죽지 마. 제발 죽지 마.”

“로이야, 사랑해.”

“씨발. 나 이제 사랑 절대 안 해. 그 누구도 사랑 안 할 거야. 김수혁한테도 복수하고, 형한테도 복수할 거야. 그러니깐 죽지 마. 형 죽으면 나 누구한테 복수해.”

주안이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뜨고는 바보처럼 웃었다.

“너 이제 보니깐 그 사람 안 닮았다. 나도 너 사랑 안하는 거 같아. 김수혁이랑 아들 딸 낳고 잘 살아라. 난 너 여자였어도 분명 스타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 네 엄마의 생각은 틀렸어. 넌 남자 아이돌을 하기엔 너무 예뻐.”

주안이 눈을 감았다. 로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도움을 요청했다. 다른 차를 타고 쫓아오던 수혁이 내려서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가 운전석에 있는 그녀를 먼저 구하고, 주안을 차안에서 꺼냈다. 그들을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 로이는 주안의 손을 꼭 잡았다.

============================ 작품 후기 ============================

너는샛별님...네...이제 제가 그만 완결을 내야 하거든요^^

라라크로프트windy님...드이어 이 소설이 최고 절정에 도달했습니다. 짜짜잔! 진정한 막장 로맨스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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