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97화 (97/104)

00097  발라버리겠어  =========================================================================

로이는 도망치는 펜을 급하게 따라갔다. 그가 그녀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먼저 뛰어가 벽에 한쪽 발을 올려 앞을 막았다.

“이야~. 이 파릇파릇한 새싹보세. 싹수 노란 후배님. 하늘같은 선배가 1등을 했는데 인사 안하고 토끼는 건 당신네 인간말종 사장이 가르쳤나봐.”

복도에서 방송 관계자들이 그녀와 그를 흥미롭다는 식으로 구경했다. 다들 로이가 후배 군기 잡는다고 속닥거렸지만 신경 껐다. 로이 테일러 정도 급이 인사 안하는 후배에게 이 정도로 대하는 건 양반이었다. 게다가 다들 로이와 펜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둘이 앙숙이라고 해도 다름없으니, 로이가 펜을 폭행하지 않는 모습만으로도 그녀에게 성자라며 박수를 쳐줘도 모자랐다.

펜이 얼굴을 굳힌 채 허리를 굽혔다.

“1위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그래. 그래. 후배님. 우리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면 이렇게 인사 정도는 하자? 너 나만 보면 쌩까잖아.”

로이는 펜의 뒷목을 꾹 눌러 그가 머리를 더 깊이 숙이게 했다. 그리곤 그의 턱을 잡아 얼굴을 들어올렸다. 표정이 안 보인다고 생각해 방심해있었는지 펜의 얼굴은 치욕으로 새빨개져 있었다.

“리언 형한테 사모님들 잔에 술 따르는 것만 배우지 말고, 응? 알았지?”

그녀는 살살 펜의 뺨을 쓰다듬으며 달콤하게 웃었다. 그는 가만히 그녀의 놀림을 견뎌냈다. 로이는 재미없어졌다. 뒤를 돌았다. 펜이 ‘폭탄주.’라고 중얼거렸다. 뭔가 싶어 그를 보니 펜이 그런다.

“잔에 술 따르는 것뿐만 아니라 폭탄주 만드는 법도 배웠죠. 그게 왜. 뭐 어때서. 내가 더러워? 근데 지금 여기! 씨발! 날 쳐다보는 년놈들 중에서! 몸 안 팔고 술 안 따르고 한 년놈들 있어? 있으면 나와! 내가 너희 야동 다 풀어버릴 테니깐.”

펜이 광분을 하며 로이의 멱살을 잡았다. 젖은 옷이라 질겨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찢어져서 로이가 여자라는 사실을 들킬 뻔 했다.

“넌 뭐가 그리 깨끗해. 너만 뭐가 그리 고고하냐고. 네가 안 해서 그 짓을 김주안이 하잖아. 그럼 그게 더 나쁜 거 아닌가? 너 좋다는 몸 파는 놈 끼고, 넌 드라마 따내고 CF해서 이름 날리고 유명해지지만 난 달라. 그게 더 창피하고 역겨운 짓이야.”

미친놈. 펜의 말은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다. 주안이 게이이고 방탕하게 사는 게 왜 로이의 잘못이란 말인가. 주안 형은 그저 본인의 자유로운 섹스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면서 가끔은 자기 유리하게 사업에 그 짓을 이용해먹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소속 연예인이 사장에게 성상납 하라고 말한다고 그게 이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웃겼다. 김주안이 회장님들과 잠자리를 한다고 로이의 일자리가 생기는 게 아니었다. 태생부터가 그런 김주안이다. 태생부터가 스타인 로이이고 말이다.

소문 안 좋은 게이 사장과 함께 회사를 꾸려나가는 로이야 말로 손해가 막심했다. 그래서 주안은 항상 로이에게 네 덕분에 REVE가 컸다고 고마워했고, 오직 너만이 회사를 먹여 살린다고 ‘우리 간판스타님’하며 매니저 노릇을 해댔다. 로이는 어이가 없었지만 친절히 펜의 오해를 풀어주기로 했다.

일단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너야 말로 그 김주안 밑에서 일하며 괜한 오해 얻어 보라고.

“뭔가 오해하는 모양인데. 김주안은 원래 게이고 형의 파란만장한 연애는 나랑 전혀 없는 거다. 내가 드라마 캐스팅 되는 건 내 연기력 덕분이고, 오늘 1위한 것도 내가 노래 잘하고 춤 잘 춰서 그런 거라고. 알아들어, 이 멍청한 새끼야! 네가 실패했다고 남의 성공은 부덕하게 얻어냈다고 깎아내리지 마. 네가 실력 없었음을 반성하고 더욱 노력해, 날 뛰어넘겠다고 결심하라고.”

펜이 로이의 멱살을 놓았다. 그는 작게 알고 있다고 답하더니 울었다. 불쌍한 녀석. 그녀는 펜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그를 안아줬다. 펜이 불안감에 가득 차 데뷔날짜만 기다리던 연습생 때처럼 엉엉 울었다.

“나 사모님들이랑 2차 안 뛰어. 리언 형, 소문처럼 더럽게 나쁜 놈 아니라고. 조폭이랑도 친하고, 성질 나쁜 개새끼는 맞는데…흑. 아내가 딸 낳더니 그나마 인간 됐어.”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근데 술 따르는 건 맞아. 같이 술 마시긴 해. 그래도 섹스는 안 했어.”

“장하다. 내 새끼!”

로이는 펜의 등을 토닥여주며 리언의 회사 PANDOM과 계약 끝내고 다시 REVE에 돌아오라고 했다. 위약금 문제라면 그녀가 해결해주겠다고 했는데 펜이 그녀를 밀어냈다.

“싫어.”

“왜? 너 미쳤어? 주안 형이 너 보면 아주 뼈째 갈아버리겠다고 벼르고 있어서 그런 거라면 걱정 마. 그 형, 생긴 거랑 달리 무지 착해. 완전 바보 순둥이라고. 네가 잘못했다고 납작 엎드려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용서해달라고 하면 받아주고도 남을 형이야. 다른 소속사에 있는 멤버들도 데려오자. 그래, 다시 다섯 까마귀가 뭉치는 거야. 나 요즘 주식 폭등해서 돈 짱 많아. 나 같은 형 둔 걸 다행으로 여겨.”

로이는 펜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고 화사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가 그녀의 손을 쳐냈다.

“싫어.”

“왜.”

배은망덕한 녀석이었다. 호의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원수 놈을 다시 받아주겠다는데 이 미친놈이 뭔 지랄인가 싶었다. 존심도 상대를 봐가면서 부려야 했다.

“REVE에 있으면 난 계속 네 아래일 거 아니야. 넌 우리 봐주느라고 활동도 미루고, 우릴 프로듀스해주겠지.”

당연한 소리다.

“그래서 안 돼.”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네 곁에 없으면 오늘처럼 난 네 옆에 서있을 수 있으니깐.”

펜이 매정한 눈으로 로이를 바라봤다. 아무 말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기습적으로 로이의 입에 입을 맞췄다. 키스라고 부르기에는 상당히 민망한 입맞춤이었으나 복도에 있던 사람들은 1위를 다투던 남자 아이돌끼리 키스를 했다고 떠들어댔다.

“난 꼭 널 뛰어넘을 거야.”

펜이 싱긋 웃었다. 넋이 나간 로이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에게 찍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도리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다정한 척 포즈를 취해댔다. 로이는 펜을 떨어트리기 위해 그를 때렸다.

“나 로이 테일러랑 키스했다고 인터넷에 올려!”

“야! 정동팔! 너 미쳤어? 뭐하는 짓이야.”

“응. 잘 아네. 그거야. 미친 짓. 너 1위 한 거 기사, 밑에 깔아버리게. 그리고 내 본명 부르지 마. 나 개명했다고. 이름 부를 거면 정동현이라고 불러.”

그가 다시 한 번 로이와 입을 맞추기 위해 그녀의 양 볼을 움켜잡고 머리를 잡아당겼다. 로이는 주먹으로 펜의 배를 때렸으나 소용없었다.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입맞춤이 없었다.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펜이 바닥에 넘어진 채 두꺼운 패딩을 입은 여자에게 맞고 있었다. 야구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는 그녀는 스텝이라고 해도 눈에 띄지 않는 인상이었으나 그런 차림에 구두를 신고 있다는 점이 그녀가 입은 차림새에서 유일하게 거슬렸다. 만일 수혁이 변장을 하면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죽어! 죽어! 감히 내 로이를 건드리다니!”

로이의 남팬이었나 보다. 통통한 체구이지만 아담한 키와 어깨의 선을 보고 여자라고 착각했는데 목소리가 남자였다. 그를 말리기 위해 다들 나섰다. 경호원이 뛰어와 그를 끌고 가버렸다. 로이는 대기실로 돌아오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호영과 영준이 방방 뛰며 춤 춰서 배고프다고, 밥 사달라고 해서 백댄서들과 회식하라고 했다. 당연히 회식 장소는 회사 식당이었다. 그녀는 거울 앞에 놓인 장미 다발을 들고 방송국을 나섰다. 1등 했다고 누군가 가져다 놓은 거다.

밴에 올라타 장미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그러다 풍성한 꽃잎 사이에 감춰져있던 카드를 발견했다.

I understand only because I love you. (난 너를 이해해. 그 이유는 널 사랑해서야.) Kindly think about the matter from my point of view. (조금은 내 마음의 문제를 상냥하게 생각해줘.) I love you.(나는 널 사랑해) love sick is about my stories. (상사병은 나의 이야기야.) lonely people need to feel loved. (외로운 사람은 사랑받을 필요가 있어.) unique beauty, my Icarus. (유일한 아름다움, 나의 이카루스.)

뭔 헛소리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팬이 보낸 거라 이해하려 노력해봤다. 그러니깐 이건 무진장 로이가 좋다는 뜻이었다. 카드를 빼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매니저를 기다렸다. 차 문이 열리고 운전석에 패딩을 입고 야구 모자를 쓴 남자가 올라탔다. 로이는 설마 방송국 복도에서 난리를 친 펜의 폭행범이 이번에는 로이를 납치하려는 줄 알고 급히 차 문을 열었다. 야구 모자를 벗은 수혁이 뒤를 돌아보며 손을 뻗었다.

“그 장미 내놔요.”

“…어?”

“어서!”

갑자기 화를 낸다. 로이는 장미다발을 그에게 건넸다. 그가 그걸 듣고 차에서 내려 쓰레기통에 버리더니 다시 돌아와 운전대를 잡았다. 황당했다. 이 뜬금없는 등장은 뭐란 말인가.

============================ 작품 후기 ============================

너는샛별님 멘탈 성숙은 아니되옵니다. 제 동안의 비법은 멘탈 유아화이거든요.>< 홍홍홍. 저 예쁜 스무살 같죵?..는 너무 한 것 같고...양심상 스물 다섯까지만 내릴게요. 우리 영원히 그 나이로 가요.ㅜㅠ

라라크로프트windy님 로이가 참 개념 아이돌이죠?ㅎㅎ펜이랑은 아쉽게도 이번편으로 작별하게 되었습니다. 다음편은 너무너무 야한 스토리로 돌아올 테니 기다려주세요. 12시 넘겨서 돌아올게요. 제가 내일 조아라 못 와서..이런 수법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12시 넘으면 일단 다음날 연재이니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