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96화 (96/104)

00096  발라버리겠어  =========================================================================

텅 빈 창가에 금발의 로이가 나타났다. 팬들이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댔다. 저러다 혈압으로 쓰러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목의 핏줄을 세워가며 그녀의 이름을 불러줬다. 소녀들의 여린 하이톤 목소리 사이에서도 남팬들이 그에 뒤지지 않게 로이를 불러대고 있었다. 무대 위에선 백댄서 누나들이 발레복을 입고 백조의 호수를 추고 있었다.

로이는 한쪽 커튼을 밀어 얼굴을 내보였다.

“으아악! 로이! 로이!”

저 아저씨는 저러다가 목 나가서 다음날 출근 어떻게 할까 걱정됐다. 슬쩍 치마처럼 퍼진 바지의 옆면을 걷어 허벅지를 보여줬다. 흐느적거리는 소재와 순백의 이미지가 주는 것만큼 고결한 의상이 아니다. 치파오처럼 옆이 터져서 노골적으로 상대를 유혹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이카루스’의 군복이다. 야한 옷을 입었으니 이제 전투 준비 완료. 적군은 팬과 펜. 로이의 매력으로 다들 사살해버려야 했다. 어려운 미션이 아니니 자신만만함으로 무장해서 덤비면 됐다.

여자 백댄서들이 물러났다. 로이는 폴짝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조명으로 만들어진 별빛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스크린에서는 천사의 날개 깃털이 휘날렸다. 무대 가운데로 도달한 그녀는 눈을 감았다. 한 쌍의 날개가 크게 펼쳐졌다가 펑 터져 휘날리는 장면을 끝으로 불이 꺼졌다.

호영이 그녀의 오른쪽에 섰다. 영준은 외쪽이다. 그들은 각자 한쪽 팔을 들어 겨드랑이 사이에 가오리처럼 장식된 가짜 날개를 펼쳐보였다. 호영과 영준이 다른 쪽 손으로는 그녀를 안고 대기했다. 불이 켜지자 그들이 공중을 한 바퀴 돌며 떨어져나갔고, 백댄서 형들이 몰려왔다. 다들 로이와 같이 하얀 옷을 입고 현란한 한국무용을 춰냈다. 섹시한 비트는 맨발로 춤추는 무대 위의 사내들을 더욱 강인하고 위험하게 만들어줬다.

“야수의 초상화는 초록빛.”

역삼각형으로 구도를 잡은 20명의 남자가 쿵 쿵 발을 울리며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곤 일렬로 줄을 서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팔을 뻗어 꽃 모양을 만들었다. 그들은 위 아래로 움직이는 손동작을 보여준 다음, 한 명씩 앞 사람이 엎드리면 그 사람의 다리 사이로 빠져나왔다. 서서히 대열을 열십자로 바꾼 그들은 일제히 가운데에 있는 로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티즈는 너무 단순해. 하지만 이보다 강렬할 순 없지. 나는야 하늘을 나는 이카로스.”

그들의 손은 가슴, 눈, 어깨, 입술을 가렸고 마지막으로 주먹을 들어보였다. 천천히 펼쳐지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끝나니 스크린에서  빨강 파랑 노랑 초록빛 꽃가루를 뿌렸다. 마치 그들이 요술을 보인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에 따라 이카루스의 가사가 흘러갔다.

“나의 심장은 빨개. 하늘은 파래. 날개는 노래. 나의 깃털은 별이 되었고, 나의 노래는 달이 되었지. 이보다 더 자유로울 순 없어. 내 모든 건 돈 명예 인기? 아니 꿈이야.”

로이가 두 팔을 벌렸다. 영준과 호영이 그녀의 손을 잡아왔다. 그들은 뒤에서 한쪽씩 이카루스의 날개가 되어 그가 날 수 있도록 준비를 끝마쳤다. 로이는 그들의 손을 잡고 가운데에서 한 바퀴 돌았다.

“춤을 추는 나는 하늘의 이카로스. 이보다 더 자유로울 순 없어.”

“어른들은 말하지. 꿈은 꾸는 건 뜬구름 잡는 일이래. 쓸 모 없는 헛짓. 시간 낭비. 하지만 난 춤 노래.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없어. 그건 내가 숨을 쉬는 삶의 이유, 목적.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야.”

로이는 양 다리를 벌린 채 쪼그리고 앉았다. 바지 옆선이 더욱 터져서 속살을 그대로 노출했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새초롬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노려봤다. 2번 카메라에 붉은 불빛을 한참 응시하다가 그녀의 허리를 안고 일으켜 세운 호영의 뺨을 쓰다듬었다. 허벅지 안으로 쓸려 들어오는 손을 잡아 떨쳐내고, 영준의 손을 잡아끌어 그를 희롱하듯 주위를 뱅뱅 돌았다.

“돈이 좋아. 명예가 좋아. 둘 다 좋아. 그렇다면 넌 그걸 위해 춤을 추고 노래해.”

로이는 호영과 영준을 둘 다 떨쳐냈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들은 백댄서와 함께 인간 피라미드를 쌓아올렸다. 호영이 맨 위에서 무언가를 잡듯 손을 뻗었다. 스크린에서는 태양이 그의 손끝에 달을락 말락 한 정도의 위치에서 나타났다.

“난 태양을 보며 날아오를 테니.”

“춤을 추는 나는 하늘의 이카로스. 이보다 더 자유로울 순 없어. 샤갈은 너무 복잡해. 그보다 화려한 순 없지. 너는야 추락하는 이카로스. 너의 심장은 검어. 땅은 자줏빛. 그 누구도 널 보며 감동할 수 없어. 넌 거짓말쟁이니깐.”

“돈이 좋아. 명예가 좋아. 둘 다 좋아. 그렇다면 넌 그걸 위해 춤을 추고 노래해.”

“나는야 비상하는 이카로스. 마티즈는 단순해. 하지만 이 보다 강렬할 순 없지. 샤갈은 너무 복잡해. 너는야 추락하는 이카로스. 그보다 화려한 순 없지. 그렇다면 넌 그걸 위해 춤을 추고 노래해”

“난 태양을 보며 날아오를 테니.”

로이는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춤을 추던 백댄서와 호영, 영준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이어서 몸으로 그림을 그려냈다. 날개 모양의 가운데에서 그녀는 가슴, 눈, 어깨, 입술을 가렸고 마지막으로 주먹을 들어보였다. 천천히 펼쳐지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끝나고 스크린에서 검은색 회색 보라색 꽃가루를 뿌렸다. 로이는 뒤돌아 걸어갔다. 테이프로 표시해둔 위치에 서자, 물이 쏟아졌다. 특수 가공한 하얀 천이 검게 물들어갔다. 추웠다. 몸이 오들 오들 떨리고 있다는 걸 티내지 않고 뒤돌았다.

추락한 이카루스다.

“꺄아아아~.”

“섹시해! 오빠! 오빠!”

“나랑 결혼하자 로이야!”

“이카루스! 이카루스! 이카루스! 이카루스!”

물벼락 쑈를 좋아해주니 또 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역시 이건 컴백 무대에서만 하는 걸로 마무리 지었다. 로이는 무대 위에서 대기하던 스텝에게 비치 타월을 건네받고 몸에 둘렀다. 무대 정리를 하는 동안 MC들이 수다를 떨었다. 레드 폭스 소정과 할로윈 재원이 호들갑을 떨며 로이의 이카루스에 대해 멘트를 치고 있었다.

“어쩜 좋죠? 저 로이 선배에게 또 다시 반한 걸 것 같아요.”

“그럼 소정씨가 선배님께 안 반한 적이 있었나요? 연예계 대표 승냥이면서.”

“하하하. 재원씨 너무해요! 선배님 파이팅! 로이 테일러 파이팅! 이카루스 파이팅!”

“워. 워. 진정하라고요.”

“뿌~, 자꾸 소정 몰이 하시면 저 삐질 거예요.”

“그게 아니라 이카루스에서 멋진 춤을 보여주신 NATURAL분들께도 말해주세요. 우리 뇌빠들, 소정씨한테 화날지 몰라요!”

“아! 죄송해요. 전 승냥이라 우리 로느님만 보였어요. 헤헤. NATURAL 파이팅! 호영, 영준씨 멋진 춤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아이돌 곡예단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은 공연이었습니다.”

스텝들이 로이와 다른 가수들 보고 무대에 올라오라고 했다. 로이는 타월을 옆에 있던 누군가에게 급히 건네고 위로 올라갔다.

“네. 그럼 2월 마지막 주 MUZE, 과연 누가 1위 트로피의 주인공이 될지. 결과 보여주세요.

“네. 오늘의 최종 결과. 먼저 음원판매 점수입니다.”

이카루스 로이 5000 VS 낫투씽 펜 3705

“음반 판매 점수입니다.”

이카루스 로이 92 VS 낫투씽 펜 30

“연령별 선호도 점수입니다.”

이카루스 로이 2000 VS 낫투씽 펜 1450

“방송 점수입니다.”

이카루스 로이 570 VS 낫투씽 펜 890

“글로벌 음악팬 투표 점수입니다.”

이카루스 로이 720 VS 낫투씽 펜 313

“네. 마지막으로 생방송 문자 투표를 합산한 오늘의 영광의 1위는?”

이미 이겼다는 걸 직감했다. 로이는 옆에서 누군가 옆구리를 콕콕 찔러 돌아봤다. 펜이 비치타월을 그녀의 어깨에 덮어주고 꼼꼼히 묶어줬다. 그가 그녀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너 가슴 보여.”

로이는 ‘로이 테일러, 축하합니다.’하는 MC들의 목소리와 동시에 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예전에 봤던 그대로 그녀를 향해 환히 웃고 있었다. 꽃가루가 떨어졌다. 수상 소감을 말해달라고 소정이 마이크를 내밀었다. 로이는 얼이 빠진 채 소감 발표를 했다.

“저의 REVE 김주안 사장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소정이 눈으로 ‘그리고?’라는 듯 쳐다봤다. 그러나 아무 생각이 안 났다. 펜이 그녀를 대신해 마이크를 받더니 ‘로이 형이 많이 놀랐나 봐요.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라며 하하 웃었다.

“그래. 너 많이 놀랍다.”

“형도 마찬가지야.”

펜이 씽긋 웃으며 ‘너무 야해서 여자인 줄 알았어.’라고 로이를 도발했다. MC들이 놀라서 로이에게 앵콜 무대를 부탁한다며 그 둘의 대화를 차단시켰다. 로이는 펜의 멱살을 잡는 대신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럼 저희는 아쉽지만 여기서 이만 인사드릴게요. 월드 뮤직 차트쇼, MUZE. 다음 주에  다시 만나요. 안녕~.”

이카루스의 반주가 흘러나왔다. 로이는 마이크를 들고 ‘감사합니다.’를 무한 반복했다. 팬들이 ‘오빠 왜 그래?’하다가 ‘펜 나쁜 놈!’하고 펜을 향해 물병을 던졌다. 펜이 그 물병을 맞았다. 로이는 너무 놀라 펜에게 달려가 그의 앞머리를 까뒤집고 이마를 살폈다.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야!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한테 물병을 건지면 안 되지. 너 무대에 올라와!”

10대 소녀는 화가 난 로이에게 오빠를 위해서 한 거라며, 마구 화를 냈다. 로이는 그녀가 올라오지 않아 직접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나 때문에 너의 인격을 잃지 마. 난 네가 훌륭한 어른이 되었으면 해. 그게 내가 너희의 아이돌로 존재하는 이유야. 무대 위에서 야한 척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봉사활동을 다니며 너희에게 본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건 기억해줘. 그게 내 바람이니깐.”

로이는 많이 놀란 소녀를 안아주고 우는 그녀에게 화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라고 다시 따끔하게 혼을 내주니 알겠다며 로이에게 사과했다. 로이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무대에 올라와 펜에게 허리 굽혀 사과를 했다.

“우리 승냥이 대신해서 사과하마. 미안하다. 펜.”

그가 대답 대신 쌩하니 가버렸다. 팬들이 ‘오빠, 나 때문에 사과하지 마요. 우리가 잘못했어요.’하며 엉엉 울었다. 1위가 되었는데 완전 초상집 분위기였다. 로이는 팬들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이카루스의 반주에 하정무 작곡가가 그녀를 위해 만들어줬던 ‘사랑하는 아이야.’를 불렀다. MR을 덧입히지 않아서 가능한 짓이었다.

“사랑하는 아이야, 울지 마렴. 네가 울면 하늘은 비가 오는 구나.”

“사랑하는 아이야, 넘어지지 마렴.  네가 울면 내가 더 이상 달려올 수 없으니.”

“나비를 보며 뛰어놀던 네가 드디어 어른이 되었구나.”

“구름을 보면 솜사탕을 먹던 네가 드디어 어른이 되었어.”

“겨울에 태어나 사랑받는 아가. 날 그리워할 널 위해 노래를 부르마.”

로이는 이카루스의 반주가 끝났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팬들이 슬퍼하지 않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넌 사랑받아 마땅한 아이야, 하고 노래를 불러줬다. 대략 1시간을 그랬던 것 같다. 승냥이들 한 명 이탈 없었다. 그녀는 탈진해서 무대에서 내려왔다. 무대 뒤에 서 있던 펜이 로이를 보자 몸을 틀고 도망치려 했다.

============================ 작품 후기 ============================

너는샛별님ㅎㅎㅎ수혁이가 비록 레드폭스와 뇌출혈 사이에는 못 꼈지만, 팬들 사이에는 낄 수 있다는...^^(네타)

라라크로프트windy님 걱정마세요. 둘이 이제 한판 붙을 예정입니다.

오늘 오후 근무라 운동하고 출근하려고 했는데 헬스장 대신 연재를 택했습니다ㅎㅎㅎ

어서 뽀뽀해주세용>< (이번편 노잼으로 쓴 주제에 바라는 거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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