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94화 (94/104)

00094  발라버리겠어  =========================================================================

로이는 시도 때도 없이 수혁과의 연애를 들먹이며 삐지는 호영을 어르고, 달래고, 그러다 안 먹히면 야단을 치며 ‘이카루스’ 안무를 완성해냈다. 혼자 컴백을 준비했던 지난날에 비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어째 몸 쓰는 건 덜한데 마음이 고달프지 싶던 한 달이었다. 시끄러운 비글 한 마리 때문에 정말 시간이 후딱 가버려서 정신없는 준비 기간이었다.

그래도 잘생긴 남자 두 명이 뒤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어주니 그림은 좋았다. 무대에서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볼 듯싶었다. 과연 이래서 다들 그룹 활동을 하는 게지 싶을 정도였다.

매일 그녀가 춤 연습을 하는 걸 구경해주던 수혁은 정작 로이가 컴백하는 날에는 무대를 못 보게 되었다. 드라마 촬영이 있어서 소속 매니저에게 끌려가버린 것이다. 직원들 사이에서 퍼졌던 김수혁의 REVE 영입설이 단숨에 사그라지던 그 순간을 영상으로 남겨놨어야 했는데. 참으로 아쉬웠다.

아이고, 날아가 버린 흥행수표님.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나라~ 떠나는 수혁을 향해 울어대던 그들이 한순간에 로이만이 우리 회사의 구세주라며 어찌나 알랑방귀를 뀌어대던지. 그 달달한 방구냄새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그래도 REVE의 하나뿐인 간판스타로서 직원들 월급 주려면 열심히 돈 벌어야지 어쩌겠는가.

“로이야~, 로이야. 로이! 로이!”

“오빠, 여기에요. 오빠.”

무대 밑에서 리허설을 기다리는 팬들이 로이를 불러댔다. 그녀는 스텝에게 카메라 위치와 무대 이동에 대한 설명을 받으면서 간간히 손을 흔들어줬다. 이렇게 떨리는 무대는 아이돌 데뷔 이례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그야 로이 혼자만의 무대가 아니었다. 소속사를 옮긴 뇌출혈이 배신자로 낙인찍힐지, 아닌지는 오늘 무대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었다.

연예계는 인기만 있으면 뭐든 용서가 되는 세계였다. 거기다 NATURAL, 이 바보 같은 녀석들이 대형 자본을 가진 BD엔터테이먼트로 넘어가진 않은 걸 절대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줘야 했다. 동경하던 아이돌 따라 REVE에 와서 죽도록 후회하고 있노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컴백만을 위해 양상추와 방울토마토, 닭 가슴살만을 한 달 동안 먹어왔기에 리허설에서 만난 소녀팬들이 ‘오빠, 살 빠졌어~. 살쪄요!’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싫다고 츤데레삘로 대답하고 대기실로 향했다. 로이 같은 레벨이 되면 리허설 시간은 그녀가 원하는 때에 지정받아 스케줄 조절이 편했다. 호영과 영준을 끌고 다시 회사 연습실로 향했다. 처음부터 안무를 꼼꼼히 맞춰봤다. 이제와 이게 무슨 소용일까 싶을 정도로 전력을 다해 반복했다.

연습을 지켜보던 주안이 이만 하면 됐다며, 로이더러 진짜 무대에 오르기도 전에 지쳐서 쓰러질 거냐며 쉬라고 했다. 그녀는 바닥에 누워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땀의 흐름에 희열을 느꼈다. 죽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불안이 사그라졌다. 다들 로이에게 거는 기대가 커서 부담도 컸다. 이미 승부는 다 큰 난 상태였다. 유투브를 통해 뮤직비디오를 뿌려 본 결과,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좋다 못해 넘쳤다. 해외 반응도 좋았다. 일주일간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이카루스’가 1위로 있었다. 컴백 무대를 갖기로 한 음악방송 PD는 벌써부터 1위 후보가 되었으니 수상을 준비하라고 말할 정도로 이카루스는 빠른 궤도로 로이를 하늘 높이 올려줬다.

음원 점수 50%, 음반 점수 10%, 소셜 미디어 점수 10%, 선호도 점수 10%. 방송 점수 10%, 문자 투표 10%.

음원은 당연히 1등이고, 음반은 오랜 아이돌 생활로 고정 팬들이 사줘서 예전부터 평타 이상이었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계층의 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CD가 없어서 못 팔고 있을 정도인, 이것도 당연히 1등이다. 뮤직비디오에 나왔던 로이의 ‘이카루스’의 모습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팬들이 많았다. 브로마이드와 포토를 미끼로 음반 판매를 하는 게 특기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그 방법이 제대로 통했다.

소셜 미디어 점수야 유투브 조회수가 4500만을 찍었으니 걱정 없고, 선호도는 언제나 경쟁 자들 사이에서 압도적이었으니 패스~. 다만 걸리는 점이라면 이번 활동에서 예능 활동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프로그램들이 끝나면 무조건 로이의 뮤직비디오 ‘이카루스’가 방송되도록 소속사에서 돈 좀 썼다. 아예 점수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방송 점수만 살짝 약한 걸 빼면, 우리 승냥이들이 핸드폰 버튼을 미친 듯이 눌러줄 테니 로이의 1등은 이미 확정된 거라 다름없었다. 그녀가 상을 받지 않으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카루스’ 뮤직비디오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길 잘했다. 대놓고 1등하려니 다른 가수들에게 미안해서 사과라도 하고 싶다 하면, 열심히 노력한 그들을 엿 먹이는 거 같아 참자 싶었다.

‘이카루스’는 여자인 로이를 남자로 만들기 위해 혜영 누나의 특수 분장이 들어간, 나름 블랙버스터 뮤직비디오였다. 영상미를 위해 CG도 어마어마하게 떡칠되었는데, 거기다 할리우드에서 초빙한 감독이 카메라 필름과 조명의 탁월한 선택으로 로이를 전설 속 미소년으로 만들어주니, 그 뮤비를 보고 로이에게 안 반하면 눈 병신 소리를 들어도 쌌다. 하지만 다들 그 사실을 몰라서 로이가 보인 ‘이카루스’의 환상이 진짜라고 믿었다.

열어둔 창문에서 바람이 불어 얇은 커튼이 나부낀다. 창가에 걸터앉은 금발의 미소년은 한쪽 다리를 세운 채 눈의 초점이 몽롱하다. 그는 발레복을 입고 춤을 추는 소녀들을 보고 있다. 중요 부위를 가리기 위한 포즈이지만 어딘가 발을 디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금방이라도 발레리나가 있는 무대로 뛰어들고 싶은 기색이다.

그러나 소년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다. 햇빛 아래 그대로 노출된 팔과 다리는 가녀리고 아름답다. 커튼이 바람이 흔들렸다가 가라앉을 때마다 아름다운 이카루스의 나신이 나타나곤 한다. 그리고 그는 무언가를 입은 소녀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소년은 거세게 부는 바람에 몸을 일으킨다. 당연히 이카루스의 알몸을 가리기 위해 커튼이 높게 펄럭 일어난다. 그는 무용수들이 춤을 추고 나간 연습실로 드디어 발을 디딘다. 어쩌면 창문 뒤로 가려진 그의 등 뒤에는 날개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 날개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카루스의 등에는 날개가 없다. 다만, 그 흔적으로 새하얀 깃털 몇 개가 연습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하얀 천을 몸을 두른 소년은 수백 개의 빛 조각을 밟으며 하늘을 날았을 때보다 더 자유롭게, 생동적이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뮤직비디오의 내용은 간단하지만 화면은 야했고, 로이는 아름다웠다. 그런 ‘이카루스’의 등장에 여자 아이돌이 아님에도 아저씨들에게까지 인기가 있는 유니섹스돌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의도한 바가 아니지만, 남팬들이 히말라야의 공기처럼 희박하던 로이에게 우렁찬 음성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저씨부대가 생겨나게 되었다. 고수입 팬층을 확보하게 되니, 자연히 회사에 보내오는 공물들이 지나칠 정도로 비싸고 많았다. 계속 돌려보내봤자 소용없었다. 그들은 로이가 좋다고 REVE의 주식을 사면서 회사 주가를 폭등시켜놓았다. 갑자기 최대주주인 로이만 앉아서 돈을 벌게 된 꼴이었다.

아직 컴백 무대도 안 섰는데 다들 너무 난리가 나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뭐 기업 회장님이 한번만 같이 식사 하자고 계속 연락이 온다며 주안이 우는 소리를 해댈 정도로 로이에 대한 나이 지긋한 어른들의 관심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그런 압박 따위는 로이의 뒤에 수혁의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바로 쥐 죽은 듯이 사라졌지만, 인터넷에 올라오는 로이에 대한 성희롱 발언들은 어쩔 수 없었다. 그야 뮤직비디오 속 로이는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많이 헐벗었다. 그러면서 관심 주지 말라는 것도 모순이고, 억지였다.

인터넷에선 로이에 대한 온갖 성희롱이 오갔다. 뮤직비디오 속 로이의 노출 장면을 캡쳐해놓고는 블로그에 입에도 담지 못할 음담패설을 써놓았다. 그럴 걸로 울 정도였으면 이런 콘셉트를 결코 선택하지 않았다. 그녀는 즐기기로 했다. 사람들이 로이에게 욕정을 품든, 뭘 하든 그게 로이가 너무 너무 좋다고 달려드는 거라 쉴드 쳐주는 팬들 뒤에서 가만히 있기만 하면 로이를 성희롱하던 무리들은 알아서 척결대상이 되어 있었다.

펜에 대한 복수심으로 전력을 다해 덤벼든 12번째 앨범 ‘이카루스’가 로이를 집어삼킬 듯 덤벼들었다. 무서웠다. 그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잠자다 말고 호흡 장애로 수혁에게 인공호흡을 받을 정도로.

하늘을 높이 오를수록 태양은 뜨거워진다. 촛농을 녹여 깃털을 붙인 이카루스의 날개는 이제 추락하는 일만 남았다. 로이 또한 이 앨범의 기점으로 무너져 내릴 일만 남았다.

“아, 배고파. 너무 방방 뛰었나봐.”

“그래. 너 뭐라도 먹고 해. 이러다가 거식증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아무리 다이어트가 좋아도 내가 도시락은 꼭 챙겨먹으라고 했지. 또 나 없다고 냉장고에 처넣고 안 먹었겠지. 도대체 수혁씨는 뭐하는 거야. 네 식사 하나 제대로 못 챙기고, 아주 얘를 피골이 상접하게 만들었어!”

주안이 전복죽을 먹으란다. 어디선가 가져온 보온통을 주섬주섬 꺼냈다. 로이는 그런 주안에게 사실 그녀가 수혁과의 밤일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체력 관리를 위해 어젯밤 무려 컴백을 앞두고선 초코바를 먹게 되었다는 사실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저 오지랖 형이 분명 수혁을 죽이고 자기도 죽겠다고 달려들 것이다. 아님 로이의 등짝을 짝 짝 때리면서 정신 나간 년이라고, 널 내가 그렇게 키웠냐며 임신하고 들어온 딸 대하듯 울어댈지도.

로이는 벌떡 일어나 전복죽을 먹었다. 팬들이 살찌라고 해서 조금 찌기로 했다. 옷이 얇아서 최대한 체지방을 없애느라 역대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그나마 있던 가슴마저 실종되어 수혁은 잔뜩 울상이었지만, 로이의 바람은 이뤄졌다. 어차피 그런다고 로이의 침대에 안 들어올 수혁도 아니고, 근육질 가슴인 그가 가슴이 더 크니 형 가슴 만지면서 만족하라고 해서 상관없었다.

식사 후엔 간단히 샤워를 하고 메이크업을 받았다. 헤어와 의상을 맞추고, 하늘거리는 옷차림으로 방송국 대기실로 이동했다. 복도를 지날 때마다 후배들이 달려와 로이에게 구십도 인사를 해댔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오빠, 안녕하세요.”

“흐악. 어떻게. 진짜 이카루스야.”

“미친. 지랄. 진짜 돌은 거 아니야? 사람 맞지? 어떻게 저런 비주얼이 인류에 나온 거지?”

“아악! 형, 나 이카루스 보고 미치는 줄 알았다꿍~.”

“형! 형 컴백한다고 2주 먼저 컴백했는데 나 완전 차트에서 깔렸어. 흑. 책임져.”

“오빠, 싸인 앨범 왜 나는 선물 안 해준 거야! 너무행~ 히잉~. #로느님 #이카루스 # 섹스지존. 이 해시태그 누가 먼저 시작한 줄 알아? 바로 나 민소정이라고!”

대기실 문을 열고 나온 아이돌들 때문에 방송국 복도는 정신없었다. 신인들은 전설과도 같은 로이 테일러의 등장으로 실신직전이고, 친한 녀석들은 어서 품귀 현상에 놓인 앨범 내놓으라고 달려들었다. 로이는 그런 후배들에게 너희가 웃돈 주고 사서 어서 나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라고 한 마디 해줬다. 다들 흐규 흐규 우는 척하며 돈로이란다.

“역시 형은 돈로이야.”

“오빠, 정녕 5년지기를 상대로 앨범 팔고 싶어!”

“어. 프리미엄 얹어서 꼭 사줘.”

“오키~. 키. 키. 그럼 또 사주겠어~.”

이미 로이의 이카루스 CD를 사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소정이 한 장 사고 두 장이요, 두 장 사고 세 장이요, 세 장 사고 다섯 장이요, 하며 노래를 부르더니 자기가 앨범 다섯 장 사줬다고 자랑했다. 로이의 포토 5장을 다 모으려고 그렇게 사댔단다. 그런데 같은 사진이 4장이나 나와서 더 사야 된다고, 상술이라며 짜증을 냈다.

“고맙지? 고마우면 밥 사!”

“오냐, 피자 배달시켜주마.”

로이는 얼른 핸드폰으로 피자 가게에 전화를 걸었다. 진정한 철벽녀란 이런 거란 걸 민소정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로이는 남자 아이돌이라 아무리 여자 둘이 식사하러 가도 그건 데이트 현장밖에 안되었다. 정작 남자친구인 수혁과 같이 동거하고 외출하고 영화 보러 가면, 절친이라며 기사 나는데 말이다.

“M방송국 레드폭스 대기실에 포테이토랑 불고기랑 쉬림프 피자 배달해주세요.”

소정이 오빠, 미워~하며 달려가는 척하다가 피자 소리에 고맙다며 인사하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로이는 돈도 안 받아간 주제에 잘 먹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귀여운 행동에 피식 웃었다. 결국 로이도 와서 먹으라는 소리였다. 호영에게 피자 배달되면 같이 가서 먹자고 말하니, 녀석이 잔뜩 삐져서 들은 척도 안 했다.

============================ 작품 후기 ============================

제가 연차도 떨어지고..비축분도 떨어지고...그래서 앞으로 퐁당 퐁당 연재로 갈 것 같아요. 너얼세는 이미 다 써서 매일 연재가 가능하지만 아이돌은 사실 연재 돌입할 예정이 아니었는데...크흑...라라님의 코멘트에 감동먹은 나머지 돌아왔음..ㅜㅠ

너는샛별님 주안이 러브 스토리는 나중에 제가 따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 둘의 스토리가 너무 길어서..^^

라라크로프트windy님 그렇습니다. 이제 펜 덕분에 로수 커플이 더욱 불타오르겠지요. 침대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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