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2 질투해주겠어! =========================================================================
수혁은 버둥거리는 그녀를 끝까지 사수하며 욕조에 눕혔다. 그리곤 샤워기로 따뜻한 물을 뿌리며 로이의 몸을 정성스럽게 닦아줬다. 로이는 부끄러워 가슴을 손으로 가렸다가 치워버렸다. 어차피 가릴 것도 없었다. 주니어 브래지어를 버거워할 만큼 빈약한 가슴이다. 게다가 이미 볼만큼 충분히 봤을 테고, 새삼 창피할 필요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로이의 알몸을 세상에 다시없을 아름다운 여인 보듯 붉은 눈으로 지켜봤다. 노골적으로 오르내리는 눈의 초점에 로이마저 긴장되어 숨을 가파르게 쉬고 내뱉어냈다. 수혁이 정액을 빼내주겠다며 다리를 벌려보라고 했다. 그녀가 하겠다고 극구 만류했으나 그의 손은 처음 그녀의 처녀지를 찢었을 때처럼 거침없이 파고들어왔다. 따뜻한 물에 피와 정액이 녹아내려 하수구로 흘러내렸다. 로이는 호러 영화를 보듯 그 물줄기를 보며 컬쳐 쇼크네, 했다. 그녀의 질을 정성스럽게 닦아주는 변태 남자친구에게 아무리 우리가 섹스를 한 사이여도 이건 비정상적인 것 같다고 알려줬다.
“그런가요? 제가 본 영상에서는 자주 이래서, 이러면 안 된다는 걸 몰랐습니다. 다음부터는 안 그러도록 할 게요. 로이.”
수혁이 물을 잠갔다. 큰 비치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싼 후 방으로 데려가 드라이어로 머리카락을 말려줬다. 그는 진정으로 행복해보였다. 뭐 수혁이 좋다면 가끔은 그에게 목욕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곳 닦는 걸 맡기는 건 절대 무리이지만 말이다.
“저기. 형. 나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연습 째야겠는데 너무 싫어. 나 자신에게 창피해지고 싶지 않아. 무슨 뜻인지 알지? 하루 연습 안했다고 큰일 나는 건 아니지만, 나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싶지는 않다고. 이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고 말해도 나만은 완벽해지고 싶으니깐. 근데 형이 내 컨디션을 엉망으로 만들었어. 그러니깐 책임져!”
수혁에게 지워야 할 짐이 큰 만큼 변명도 길었다. 절대 로이는 착한 여자친구가 아니다. 기브 앤 테이크라고, 어떻게 하면 이 남자를 활용할까를 생각해내기 바빴다. 로이가 잃은 순결의 무게만큼 수혁이 대가를 치러야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녀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으니 그런 생각을 한다고, 수혁이 알게 되면 그리 말하지 모르겠다. 하지만 로이는 수혁이 좋았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사랑해도 상대를 이용하고 등골까지 쪽쪽 빨아먹을 수 있는 여자라 무서우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런 걸로 도망갈 정도면 도망가라고 할 참이었다.
“예. 책임질게요. 제발 책임지게 해주세요.”
수혁이 무릎을 꿇고 허리를 감아왔다. 또 엉큼한 짓을 하려고 이러나 긴장했다가 그가 아무런 의도가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왜 우는지 물어봤다. 이제 널 내 걸로 만들었으니 죽도록 부려먹겠다는데 노예근성이 뼈에 사무치도록 베인 나머지, 로이 전용 노예가 된 게 기쁜가 보다.
“기뻐서요.”
“바보. 그게 뭐가 기뻐.”
“그러게요. 그런데 이 세상에서 제가 들은 말들 중 가장 기쁜 말이었어요.”
“그래? 그렇게 무보수로 내 뮤직비디오에 나오고 싶었단 말이지?”
“…………그런 뜻이었습니까.”
“그럼 다른 뜻이 있는 줄 알았어? 왜? 뭐라고 생각했는데.”
“아닙니다. 로이의 뮤직비디오라면 언제든지 나가겠습니다. 로이가 좋아하는 무.보.수로 말이죠.”
수혁이 토라져서 딱딱하게 대답했다. 로이의 머리카락을 드라이어로 말리는데 집중해버렸다. 로이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다 못 해 터트렸다. 그가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겠다며 방을 나갔다.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는 호영이 로이에게 입어달라고 떼를 썼던 치마만큼 유치찬란한 분홍색 치마가 들려있었다. 아침잠을 깨우려고 뜨거운 커피라도 마시고 있었다가는 수혁의 얼굴에 화상을 입힐 뻔했다. 어째 잘난 남자들의 취향이 하나같이 범인(凡人)은 이해할 수 없게 이토록 심오한가 싶었다. 리본이 덕지덕지 붙어서 인간이 아닌 바비 인형에게 입혀주면 딱 좋은 치마였다. 상의는 프릴이 잔뜩 달렸다. 로이는 죽어도 못 입을 여자 옷이었다.
“설마 형, 그거 입게?”
“제가 아닌 로이가 입을 옷입니다.”
“미친.”
도저히 좋은 말이 나갈 수 없었다. 꺼지라고 하니, 그가 호영이 줄 때는 입고 자기가 줄 때는 안 입는 거냐고 했다. 그건 입이 두 개여도 할 말이 없는 로이의 실수였다. 그녀의 의도가 비록 호영이 로이를 포기하게 만들기 위함이었어도 그 행동으로 수혁을 상처 입히게 되었다면 잘못은 잘못이었다. 혹시 다른 선택 사항은 없냐고 물으니 수혁이 그럼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으라며 여자 옷 무더기를 가져왔다. 전화 통화가 끝나고 한참이나 지나서 밤늦게 온 이유가 여기 있었다. 김주안 내쫓으려면 십 원짜리 환전도 해야 하고, 로이한테 여자 옷 입히려면 쇼핑도 해야 했겠지.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는 옷은 노란 후드티와 청바지였다. 그런데 사이즈가 너무 작아보였다. 로이 입으라고 가져온 건 아니라는 뜻이다.
“이거 누구 옷이야? 설마 나 몰래 바람피워? 형, 아동성애자였어?”
“설마요! 오해 마세요. 삼촌 사무실에서 환전하면서 딸려왔나 봅니다. 민호씨 꺼예요.”
민호 형의 옷이라면 유아 체형의 옷이 말이 되었다. 이런 옷을 입을 성인이 대한민국에 그리 흔하지는 않았다. 도대체 사무실에서 뭘 하기에 민호 형이 옷을 벗어뒀나 싶었다. 병원에서 본 태형의 인상은 조폭이었고, 실제 직업도 조폭인지라 수혁이 아무리 ‘사무실’이라고 말해도 로이의 귀에는 ‘사창가’로 들렸다.
설마 그 삼촌의 사창가, 아니 사무실에서 뭘 가져오느라 밤늦게 거길 갔냐고 물으니 수혁이 새빨개진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글쎄요. 말하기 곤란합니다.”
“말하기 곤란할 정도면 모른 척 해줄 테니깐 얼른 버리고 와. 나 눈 가릴게.”
로이는 눈을 가리며 수혁에게 쓰레기통의 위치를 알려줬다. 수혁의 삼촌에 대한 좋은 인상이 없었다. 분명 변태 같은 성인용품이나 담아왔으리라 봤다. 그가 잠깐만 기다리라며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보셔도 됩니다.”
손을 내리니 수혁이 중세의 기사가 레이디에게 청혼할 때처럼 한쪽 다리를 굽히고 무언가를 내밀었다. 작은 보석함을 여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 반지가 보였다. 로이는 그 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끼어봤다. 묵직했다. 이렇게 크니 분명 가짜이리라. 이 찬란함과 영롱함이 진짜라면 그녀의 손은 그만큼 값어치를 얻게 되는 거였다. 수혁에게 그녀가 그만큼 중요한 여자라는 뜻이었다.
“이거 진짜야? 다이아?”
“네.”
가짜라고 매도하기에는 어쩐지 너무 예쁘던 반지였다. 반지에게 미안해졌다. 비싼 것 같아 얼른 빼서 돌려줬다. 사실 진짜 문제는 청혼반지가 해골이라는 점이었다. 센스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이거 받을 수 없어.”
“어째서죠?…분명 로이도 저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응. 분명 형이랑 같은 마음일 거야. 그런데 이 해골은 뭐야! 전혀 로맨틱하지 못하잖아!”
“민호씨는 로이가 해골을 좋아한다고, 분명 좋아할 거라던데요?”
“내 이 미니미니를 그냥! 확, 아무리 내가 해골을 좋아해도 그렇지. 커플링까지 해골로 맞출까. 다시 사와. 우리 사이를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밝히지 못한다는 거 형 알고 있잖아. 최대한 눈에 안 띄는 반지를 가져와야지 이게 뭐야. 이건 환불하고 와. 커플링은 무지 무지 심플한 걸로 다시 사와 줘. 아무 무늬도 없는 실반지. 그럼 그건 끼어줄게.”
수혁이 일어나 해골 반지를 보석함에 넣었다. 맞춤이라 환불할 수 없단다. 그냥 끼라고 했다. 자존심이 있지 구차하게 그깟 몇 푼 때문에 창피를 당하고 싶지 않단다. 얼마냐고 물으니 그가 절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슬쩍 운을 띄우며 화내지 않을 테니 귀띔해달라고 눈웃음을 살살 쳐봤다. 수혁이 안심하고 자기 작품 하나 들어갈 때 받는 몸값 정도라고 알려줬다.
“미쳤어! 이딴 해골에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썼어! 당장 환불해! 안 해주겠다고 해도 진상 부리며 환불 받으라고! 네가 개같이 만들어서 여자친구가 화냈다고 깽판 치라고!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차라리 그 돈, 나줘! 아주 돈이 썩어나!”
비싼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설마 억억거려도 모자랄 반지였을 줄이야. 그는 절대 환불받지 않을 거라며 보석함을 놔두고 나가버렸다. 가끔 화를 내기는 했지만 그건 누군가를 질투할 때나, 로이가 수혁의 사랑을 의심할 때나 부리는 거였다. 겨우 쓸모없는 해골반지 때문에 남자친구랑 싸우게 되다니. 그것도 둘이 처음 섹스를 하고 맞이한 아침부터 말이다.
로이는 끌어 오르는 분노를 꾹 꾹 눌러 담으며 수혁이 놔두고 간 여자 옷을 챙겨 입었다. 너무 여성스럽다 못해 광년이가 콘셉트인 듯한 치마와 블라우스였지만 입히고 싶어 했던 거니 입어주겠다 이거다. 그녀는 꽃분홍 처녀가 되어 거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수혁의 손에서 담배를 뺐었다. 아무 말 안하고 노려보기만 하면 누가 야쿠자 아들 아니랄까봐 겁나게 무서웠다. 그러나 로이는 화사하게 웃으며 화가 난 수혁의 팔에 매달려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그 돈을 환불받을 수만 있다면 이런 미친 짓 따위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게 다 미래의 로이의 돈이 될 돈들이었다. 남편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내 돈이라는 건 로이가 돈을 밝혀서 그러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아내들이 만들어놓은 전통이었다.
“오빠빠~. 화났쪄용? 로이는 오빠야가 그 돈 환불해서 맛나 거 사줬으면 좋겠어서 그랬는데. 오빠야가 오해했나봐염. 로이, 오빠가 화내서 너무 무서웠어요.”
“……쿨럭. 쿨럭.”
수혁이 사례가 걸려 허리를 기역자로 꺽은 채 미친 듯이 기침을 해댔다. 로이는 그녀가 생각해도 너무 심했다 싶었다. 그녀의 애교를 보기 괴롭겠지.
“못 들었습니다. 다시…말해주시겠습니까.”
이미 다 들어놓고선 로이를 놀리려는 의도가 틀림없었다. 그래도 모른 척 ‘오빠양~, 아직도 화났쪄욤. 로이 무서워요.’하고 우는 척했다. 수혁이 고개를 들었다. 소파에 로이를 넘어트렸다. 다급하게 그녀의 몸을 더듬으며 키스를 했다. 담배냄새가 싫었으나 그녀에 대한 갈증을 채우려는 다급한 수혁의 키스는 좋았다. 그가 그녀의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숨을 헐떡거리며 키스를 나누다가, 그녀의 손가락에서 담배가 바닥으로 스르륵 떨어졌다. 수혁이 키스를 끝마치고 떨어진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길게 담배 연기를 내뱉는 그는 베드씬을 끝낸 배우처럼 무척이나 나른하고 퇴폐적으로 보였다. 넋을 놓고 그 모습을 구경하게 됐다.
“그럼 오빠는 로이 맛난 거 사주러 환불하러 갔다 오겠습니다.”
역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었다. 수혁이 집을 비운 사이, 로이는 아내가 된 기념으로 그의 핸드폰에서 주소록을 뒤져 아이코와 여배우 손수영과 김세영과 기타 등등을 수신 차단해놓았다. 일단 여자 이름 같으면 다 차단 목록에 들어갔다. 로이는 뿌듯함으로 알싸한 아랫배의 고통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진통제와 해열제를 입에 털어 넣고 주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혁을 로이 테일러의 남자로 만들면서 김수혁 무료 캐스팅권을 무한대로 얻어냈으나 그건 그거고, 연습은 연습이었다. 늦잠을 자 연습실에 조금 늦게 도착할 거라는 사실을 알린 후 얼른 짐을 챙겼다. 반지를 환불하고 로이를 찾아봤자 헛수고다. 펜을 발라버리려면 좀 더 완벽해야 했다. 수혁은 로이에게 처음이 될 수 없었다. 제 아무리 로이의 일에 대해 질투해봤자 소용없다. 그건 그가 아무리 화를 내도 양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녀가 존재하는 자아에 관련된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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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샛별님ㅋㅋㅋ일치 월장하는 수혁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라라크로프트windy님 그래서 둘이 점점 연재 회수를 거듭할 때마다 야해질 예정이랍니다ㅎㅎㅎ^^처음은 역시 소프트...그렇지만 우리 수혁이는 무려 야동 수혁이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