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7 질투해주겠어! =========================================================================
로이는 수혁을 둘러싸고 그를 찬양하는 지조 없는 무리들을 피해 연습실로 다시 돌아왔다. 오직 로이만을 신으로 모시겠다는 신도들이건만 김수혁 왔다고 그녀를 버렸다. 칫. 이래서 사랑은 철새라는 거였다. 팬들도 철새, REVE 직원들도 철새, 로이를 동경하던 연습생들도 철새! 아주 새들이 판을 쳐댔다.
그들이 치사하다고 치치 거려봤자 로이의 침만 아까울 뿐이다. 가이드를 뜬 노래를 재생시켰다. 이번에 컴백할 곡 ‘이카로스’였다.
“야수의 초상화는 초록빛. 마티즈는 너무 단순해. 하지만 이보다 강렬할 순 없지. 나는야 하늘을 나는 이카로스. 나의 심장은 빨개. 하늘은 파래. 날개는 노래. 나의 깃털은 별이 되었고, 나의 노래는 달이 되었지. 이보다 더 자유로울 순 없어. 내 모든 건 돈 명예 인기? 아니 꿈이야.”
“춤을 추는 나는 하늘의 이카로스. 이보다 더 자유로울 순 없어.”
로이는 후렴구를 반복하고 공중재비를 돌았다. 노래만큼 중요한 것이 퍼포먼스다. 백억을 투자해서 나오는 노래였다. 절대 망할 리 없다. 할리우드에서 뮤직비디오 감독을 데려와 세트 짓고 촬영하고 특수효과 냈지, 거기다 그래픽 작업 들어가지 뭐하지 하면서 어마어마한 돈이 깨졌다. 유명한 안무가를 부르고, 작곡가한테 돈 주고, 홍보하는 돈도 많이 들었고, 결국 소속사는 로이를 컴백시킬 때마다 경제가 휘청했다. 집으로 따지면 자식을 유학 보내는 격이었다.
그러니 자식은, 아니 소속 가수라면 최대한 열심히 연습하고 완벽한 무대를 선보여 대중에게 사랑받아야 한다. 힘들다고 연습 안 하면 제일 먼저 그 무대를 본 팬들이 알아차린다. 그럼 아무리 비싼 안무와 가사와 뮤직비디오를 가지고 있어도 소용없다. 더군다나 이번 컴백이 더욱 절실한 건 로이가 반드시 복수해야 하는 녀석 또한 컴백하기 때문이었다.
REVE의 초창기 시절, 돈 없고 빽 없어서 김주안이 말 그대로 맨발로 뛰었을 때 남자 아이돌 그룹 하나를 키웠었다. 그것도 참 잘 키웠다.
로이 테일러 회사라는 타이틀로 그 다섯 명의 아이돌은 데뷔와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고, 2년 뒤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으며, 5년차 때는 REVE를 작살내버렸다. RAVEN의 다섯 검은 까마귀들은 철저히 계약으로 맺어진 놈들이었다. 서로 안면도 없던 놈들을 오로지 캐릭터 설정을 하고 묶어놓은 거였다.
여자처럼 예쁜 호연, 럭비선수 출신 재미교포 재준, 노래 잘하는 펜, 대구에서 전설이 된 춤꾼 사나, 마지막으로 독보적 귀여움으로 예능 대세가 된 화니까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찾아낸 아이들이었다. 낙방한 그들을 로이가 직접 찾아가 캐스팅했다. 그들의 콘센트를 잡고 직접 무대 의상까지 챙겨줄 정도로 로이는 까마귀들을 아꼈다.
그 아이들이 앨범을 날 때는 로이가 자진해서 활동을 미룰 정도였다. 그야 로이 같은 대형스타가 나오면 갓 태어난 신인은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으니깐. 그들을 키우기 위해 소속사는 물론 로이도 전력을 다했다. 그런데 5년 만에 정상의 자리에 앉은 까마귀들은 회사가 그들에게 주는 돈이 너무 적다고, 불공평한 계약 조건이고 이건 노예 계약이라며 REVE와 진흙탕 싸움을 하다가 떠나버렸다. 자기들은 1년에 120억을 벌었는데 왜 고작 10억을 주냐고 그게 말이 되냐고 말이다.
정말 말이 안 되는 건 그 아이들이었다. 자기들이 먹고 쓰고 했던 돈을 다 잊었다. 월드 투어 갈 때 드는 비용은 누가 댔는데. 비행기는 퍼스트 클래스만 타고, 한번 팀 회식하면 300만원은 훌쩍 넘게 범인카드 긁어놓고, 자기네들 매니저며 코디며 월급 주는 게 다 누구인데 그건 생각 안 하고 배신을 한단 말인가. 배은망덕한 놈들.
100억이 말이 100억이지 실 순이익을 따지면 형편없었다. 거기서 멤버 다섯 명한테 10억 정산해주면 회사는 고작 1년에 2~3억 번 거였다. 걔네한테 투자하기 위해 대출받은 거 빚 갚고 뭐하고 하면 별로 남는 장사는 아니였다는 소리다.
그러기에 로이는 RAVEN 전 멤버가 컴백하는 시기에 딱 맞춰서 그녀의 컴백도 준비했다. 이미 다섯 까마귀들은 다 뿔뿔이 찢어져 저 먹고 살려고 서로 다른 소속사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얼굴만 예쁘던 호연은 연기를 도전했으나 워낙 발연기라 망했고, 대형 기획사를 끼고 재준과 화니는 이인조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대로 잘 나가는 축이라 말할 수 있지만 예전만한 인기는 아니었다. 사나는 아이돌 때려 치고 안무가로 돌아섰고, 펜은 그야말로 죽일 놈이었다.
그 새끼가 다른 아이들 꼬셔서 RAVEN을 작살냈던 장본인이다. 현재, 무려 잘나가는 가수님이셨다. 펜을 업고 간 소속사 사장과 김주안이 철전지원수라는 건 업계에서 암묵적인 사실이었다.
로이는 욱신거리는 발목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열 받는다. 배신자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내 식구들 밥 먹여 살리자고 그녀는 방방 뛰며 연습하는데, 김수혁이 더 좋다고 우르르 몰려가 소속사 식구들이 그에게 재롱이나 피우고 있었다.
“젠장! 젠장 짜증나! 으아악!”
바닥에 드러누워 비명을 질렀다. 왜 다들 로이는 괜찮다고 여기는 걸까. 항상 팬들은 로이가 컴백할 때마다 더 멋진 모습으로 나타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돈로이가 연습 안했다고 악플을 달아댔다. 아님 소속사가 구려서 그래, 라며 REVE를 얕잡아봤다. 그러니 로이가 조금이라도 나태해질 수 없는 거다. 로이의 인기가 바로 REVE의 지위였다. 혼자서 모든 걸 끌고 간다고 잘 되는 건 아니지만, 회사 설립 멤버로서 책임감이 막중했다.
연습실 문이 열렸다. 김수혁 구경이 끝났나 했더니 NATURAL의 영준과 호영이였다. HEAVEN이 공중분해 되고 곧장 REVE에 계약하겠다고 온 놈들이었다. 천국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꿈동산을 버리고 떠난 까마귀 놈들이랑 다를 바 없었다. 연예계에서 박쥐들이 어디 그들 하나뿐이겠는가.
자식들 잘 키워봤자 소용없다. 계약기간 끝나면 다른 소속사로 도망갈 미래의 배신자다. 로이도 그렇고 주안도 까마귀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그런 생각에 몸 사리며 후발주자들에게 그 전처럼 사랑을 줄 수 없었다. 회사에서 까마귀 다음으로 뱀들을 키워, 스네이크만 개고생하고 진짜 노예 계약이 뭔지 당하게 된 거니 미안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믿었던 이에게 당한 배신의 상처는 너무 컸다. 주안과 로이 모두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사람을 잘 안 믿게 되었다.
그러나 한번 배신한 놈은 두 번, 세 번 배신한다고 뇌출혈을 안 받아주려던 주안을 설득한 건 로이였다. 천국에서 받던 호사는 꿈동산에서 받을 수 없다고 모질게 말했음에도 오직 로이만 보고 그녀의 소속사를 택하겠다는 바보 같은 아이들이어서 그런 결정을 한 건 아니다. 그들은 펜처럼 어느 소속사를 가도 빛날 스타였고, 그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가 곧 어린 소년소녀들의 이상형(Idea)이었다.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아이돌이라 로이는 NATURAL을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선배, 괜찮으세요?”
“로이야, 그만 연습해. 응? 너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영준은 여전히 로이를 선배 취급해줬지만, 호영은 로이에게 말까고 맘먹으려고 들었다. 이미 로이가 여자라는 사실을 아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호영은 로이를 자기 여자처럼 보호하려고 들었다. 길을 걸을 때면 차가 지나다니는 쪽으로 호영이 걷고 로이를 안쪽으로 밀었다. 회사에 출근할 때면 여자들이나 사용할 향수와 립글로즈, 심지어는 치마까지 사와서 로이에게 입어보라고 내밀어 김주안에게 머리통을 신나게 맞곤 했다.
매번 호영은 괜한 매를 벌었다. 주안의 손은 호영만 보면 자동반사로 나갔다.
나 남자야. 곧 군대 갈 거라고.
치마를 내미는 호영에게 그렇게 말해봤자, 그는 자기는 치마 입은 남자 좋아한다고 말할 뿐이고 미친놈은 그녀의 말을 들어 처먹지 않았다. 오늘은 또 무슨 치마를 들고 왔을까 호영의 손을 확인해봤다. 촌스럽게도 분홍빛 꽃무늬 스커트였다. 진짜 여자에게 저런 선물을 줬어도 그는 몇 대 맞았을 센스를 지니고 있었다.
“너 그거 지겹지도 않아? 나 변태 아니야. 치마 좀 그만 사와.”
“로이야, 딱 한번만 입어봐. 내가 너 입고 네 말대로 변태처럼 보이면 너 포기할 게. 다시는 너한테 결혼하자고 안 덤비고 여자친구 만들도록 노력할 테니깐, 이거 한번만 입어줘라.”
지겨운 놈.
로이는 쩔뚝거리는 걸음으로 호영에게 다가갔다. 그냥 바지 위에 치마를 입어줬다. 개그 프로에 나오는 남장여자 같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자, 이제 포기해. 난 남자야. 여자가 좋아. 나 여자친구 있다고.”
“싫어! 싫다고! 네가 좋아. 너 보고 나 가수한 거란 말이야! 네가 아무리 남자라는 거 알아도 네가 제일 예뻐. 너만 여자로 보여! 송리나 보다 내가 못할 게 뭐있어. 나 걔네 집보다 부자야. 내가 송리나 보다 더 예쁘다고.”
호영이 로이를 끌어안았다. 영준이 ‘죄송합니다, 선배님.’ 로이에게 인사하고 호영의 뒷목을 잡고 질질 끌고 갔다. 쟤가 저렇게 로이에게 대쉬를 시작한 게 아마 로이가 여자라는 스캔들을 무마시키기 위해 상체 탈의를 한 화보를 내보냈던 때부터인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로이의 섹시 바디에 욕정을 참지 못해 짐승이 되어버린 게 틀림없었다.
로이는 혀를 쯧쯧 차고 거울을 살펴봤다. 과격한 춤을 연습하느라 그동안 살이 많이 빠져있었다. 뼈밖에 없었다. 이러니 춤추다가 가슴골을 노출해도 다들 남자로 여길 수밖에.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고 그녀와 스킨십을 하는데, 백댄서 형들이 단 한 번도 로이를 여자라고 알아차리지 못한 걸 보면 로이의 성별은 정녕 남자인지 몰랐다. 한 달에 한번, 가끔은 세 달에 한 번씩 하는 생리는 과도한 스트레스와 다이어트로 인한 부작용으로 배고픈 남자에게 일어난 하혈 정도로 여겨도 될 판이었다. 스키니 진을 유행시켰던 장본인으로서 많은 소녀 팬들에게 상실감을 안겨줄 몰골이었다. 땀에 젖은 금발이 이마에 달라붙어 손으로 살살 빗어 떨어트렸다. 살 빠져도 역시 예쁘고 섹시하기만 하다.
“예쁘네요.”
로이는 소름 돋는 싸늘한 목소리에 뒤돌았다. 수혁이었다. 언제 그의 추종자들을 떨쳐내고 왔는지 알 수 없다. 그가 문틀에 기대서서 긴 다리의 우월함을 뽐내며 로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키 백 팔십이 결코 작은 키가 아닌데 저 남자 앞에만 서면 로이가 귀엽게 비쳐지곤 했다. 그래서 수혁과 같은 카메라에 잡히고 사람들의 눈에 띄는 걸 최대한 피해야 했다. 그래야 로이가 계속 남자 아이돌일 수 있다.
그가 있으면 로이는 그냥 키가 큰 여자처럼 보였다. 모델이어서 키가 크고 보이시한 그런 정도로 비쳐지는 거다. 어쩌면 그건 둘의 키 차이 때문이 아니라 수혁이 로이를 보는 눈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 저렇게 화가 났나 이해할 수 없었다. 진짜 화가 나야 할 사람은 로이였다. 모두의 관심을 손쉽게 빼앗은 수혁에 대한 보복으로 고열량 초코바를 잔뜩 사다가 먹여 그의 완벽한 복근을 지방에 파묻히게 해도 아무런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화내야 할 사람은 바로 로이다.
그런데 수혁이 로이의 치마를 잡고 쭉 찢어버렸다.
“だめ(안 돼.) 로이. 다른 남자가 주는 치마 따위 입어선 안 된다고요.”
그가 로이를 연습실의 거울 벽까지 밀었다. 손바닥으로 차가운 유리가 만져졌다. 등골이 서늘했다.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상냥한 목소리로 경고를 한 수혁이 로이의 입술을 물어뜯었다. 뜯어진 치마 사이로 손을 넣어 그가 로이의 바지를 내리고 있었다. 왜 화내. 이해할 수 없었다. 수혁이 그녀의 아랫입술을 아프게 물고 눈을 흘겼다. 새삼스러울 일 없이 섹시한 남자다.
“다른 여자가 저한테 넥타이를 선물해서 제가 그거 맸어요. 그럼 로이는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게 뭐 어때서.”
로이의 그런 대답이 수혁의 화를 더욱 돋은 모양이다. 과격한 성격은 아니라고 봤는데 그가 그녀를 바닥으로 넘어트리고 위에 올라탔다. 위험했다.
============================ 작품 후기 ============================
라라크로프트windy님ㅎㅎㅎ피자랑 탕수육은 금지 음식 맞습니당~ 자, 로맨스 소설을 빙자한 다이어트 소설 읽고 저랑 같이 닭찌찌 먹도록 해용? (물귀신 작전. 다이어트 중...배고파용..ㅜㅠ)
너는샛별님ㅎㅎㅎ그렇지요? ‘아이돌’은 로이 수혁는 물론 주변 인물들도 확고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듯...사실 제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다 정상은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