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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돌이다-86화 (86/104)

00086  질투해주겠어!  =========================================================================

로이는 교통사고 및 광팬에게 배가 뚫려 하마터면 죽을 뻔한 배우 김수혁이 그의 소속사가 아닌 REVE의 연습실에서 죽치고 있음이 매우 못마땅했다. 환자이면 아픈 티를 내야지 왜 침대가 아닌 의자에 앉아 있냐 말이다. 사경을 헤매며 피로 칠갑하고 있었던 모습이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연기하기라도 했다는 식으로, 퇴원이 곧 감독의 오케이 컷 신호라며 정상인인 척 그는 코스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뭐, 괜찮다니 그럼 다행이다. 물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게 마음씨 착한 여친의 바람직한 태도이지만 그녀는 REVE를 모여라 꿈동산으로 만든 수혁이 짜증났다. 그는 뺀질뺀질 윤기 나는 잘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조용하게 춤 연습하고 싶은 그녀를 방해하도록 ‘모여라 꿈동산 무리들’을 불러오는 피리 부는 사나이였다. 연예인이고, 회사 간부이고 다들 김수혁 얼굴 보자고 로이의 연습실에 들이닥쳐 방해를 하고 있었다.

마치 사장이 연습생을 데뷔시켜도 되나 테스트하듯 그녀를 볼 거는 또 뭐란 말인가. 춤추면서 거울에 비친 그녀의 포지션을 체크하는 게 아니라 의자에 앉아 그녀를 보는 김수혁만 확인하게 되었다. 하도 뚫어지게 봐서 팔 다리가 따로 움직였다. 그의 노골적인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천하의 춤꾼이라 불리는 무려 로이 테일러님이건만 목각 인형 마냥 딱딱하게 움직이게 만들 정도이니,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배우가 아니라 제페토 할아버지를 하라고 제안해야겠다 싶을 정도이다. 어디 눈에 그녀를 조정하는 실이라도 달고 있나 살펴봐야겠다.

로이는 목에 걸고 있던 수건을 바닥에 던지고 쾅 쾅 수혁에게 걸어갔다.

“목마르시죠? 쉬엄쉬엄하세요. 벌써 1시간이나 연습했어요.”

“고작 1시간이겠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내 컴백 망치라고 형네 실장이 보냈어?”

“설마요. 농담도 재미있게 하시네요. 로이.”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로이에게 생수병을 건넸다. 짜증나게도 목이 말랐던 참이었다. 어떻게 알고 물 수발을 드나 모르겠다. 벌컥 벌컥 물을 마시다가 춤 연습하는 동안, 텀블링을 수십 번 반복하게 된 몸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물을 뿜어버렸다. 수혁이 손등으로 로이가 뿜은 물을 탈탈 털어 닦았다.

“미안. 고의는 아니었어.”

“당연히 그러시겠죠.”

어찌나 예쁘게 웃는지 로이는 순간 헤~ 입을 벌리고 따라 웃었다. 분명 바보 같은 얼굴이었으리라. 그런데 어째 고운 말과는 달리 무언가 상당히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물벼락을 맞았으니 기분 좋으리 없지만 수혁이 반짝반짝 오로라를 뿜어댈 때는 상당히 그의 기분이 저조함을 뜻한다는 걸, 착한 여자친구는 아니어도 오랜 세월 연예계에서 굴러먹은 선배여서 잘 알았다. 저런 타입이 제일 위험했다. 앞에서는 친절한 척하고 뒤에서는 인사 안한 후배를 골로 보내버리는 것이 바로 딱 저런 부류의 사람인데, 지금 할리우드에 가 있는 카리스마 형아 리언이 바로 대표적인 예었다.

리언 형이 없어 한국 연예계에도 빛이 도래하나 싶었건만 그의 뒤를 김수혁이 따르고 있었다. 설마 저 형도 리언 형처럼 자기가 술 따라주는 거 안 먹는다고 연예계에서 매장시키고, 조폭 끼고 여자 연예인들 성매매 시키고, 뭐 그런 짓은 안 하겠지?

워낙 아름다운 얼굴 뒤에 사악한 악마를 숨기고 있는 자들이 많아 남친인 수혁이라고 로이의 의심을 피해갈 순 없었다. 그가 있던 HEAVEN만 하더라도 주요 정재계 인사들에게 연예인들을 팔아 언론 권력을 움켜잡았던 집단이었다. 그곳의 간판스타인 수혁만이 연예인 성매매 사건에서 제외되어 동정표를 받고 있었다. 상당히 구린 냄새가 난다 이거다.

“그래서 형은 왜 여기 있는 거야?”

“그야 로이 보러 왔죠. 저 지금 완전 한가해요. 물론 평소에도 한가했지만 지금은 특히나 더.”

소속사 날아갔는데 좋다고 떠들고 있었다. 로이는 바보인가, 아님 지능범인가 수혁의 얼굴을 뚫어지게 봤다. 그가 물기를 머금어 촉촉한 머리카락 사이로 가늘게 눈을 떠 섹시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낮은 목소리는 역시 로이가 좋아하는 적당한 울림을 갖추고 있다.

“자꾸 그렇게 보지 마요. 저 설레잖아요.”

사람들 많은데서 노골적으로 로이를 유혹해왔다. 이미 이 형은 로이가 여자라는 스캔들을 덮기 위해 대머리와 모텔에 들어가는 사진을 뿌릴 정도로 마성의 게이로 전평이 난 자라, 아직 남자 아이돌로 활동하는 로이로서는 상당히 기피하고 싶은 남자후배 1위가 아닐 수 없는데 전혀 그녀를 배려하지 않은 행동이다. 여자 직원들이 꺄 꺄 거리며 로수 어쩌고 떠들어대서 로이는 재빨리 뒤를 돌아 가운데 손가락을 펼쳐보였다.

“시끄러. 닥쳐! 나 수 아니거든. 공이야!”

이양이면 주도권을 잡은 이가 로이여야 했다. 그런데 그게 더 여자들을 깽판 치게 만들었다. 어디서 썩은 뇌를 가진 주제에 성실한 기독교인인양 군단 말인가. ‘할렐루야’하고 좋아라 했다. 로수의 뜻이 ‘로이수혁’의 준말이었음을 드라마 템페스트를 찍은 지 하도 오래되어 뒤늦게 상기하고, 로이가 아니라고 윽박을 질렀지만 이미 그들 사이에서 로이는 190cm 장신의 수혁을 깔아 잡아먹는 늑대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들의 오해가 아니라고 거들기는커녕 수혁은 턱을 괴고 웃음을 지어댔다. 로이는 새빨개진 얼굴로 ‘아우, 썅~.’ 하고 크게 욕을 지르고 연습실을 뛰쳐나갔다. 저 김수혁만 없어도 컴백이 제대로 성공할 것 같았다. 변태도 그냥 변태가 아닌 상변태였다. 왜 남 연습하는데 와서 섹시 화보를 찍냐 말이다. 씩씩거리며 사장실로 달려가 당장 김수혁 내쫓으라고 주안에게 도움을 청했다.

“김수혁 당장 내보내. 왜 관계자도 아닌 사람이 연습실에 들어와. 내 컴백 준비 어쩌라고. 쟤가 HEAVEN 살리겠다고 내 콘셉트 다 불고 춤 베껴서 자기 소속사 아이돌 키우면, 형이 책임질 거야?”

“어휴, 로이야. 무슨 말은 해도 그렇게 살벌하게 하냐. 수혁씨가 그냥 남인가. 네 남자친구잖아. 네 남친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웃기지마. 사귄다고 배신 안 해? 안 헤어져? 난 사랑 절대 안 믿어. 그거 달면 주워 먹고 쓰면 뱉어버리는 거 아니었나? 영원한 사랑? 웃기지마. 그럼 이혼은 왜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혼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울 엄마 아빠도 하고, 주안 형네 엄마 아빠도 했잖아. 그런데 그런 사랑을 믿어? 귀여워 죽겠다고 백민호 볼 쪽쪽 빨 때는 언제고 헌신처럼 버리고선 형이 아무렇지 않은 것도 그 사랑이 영원해서이겠지.”

“……끄응. 진정해라. 도대체 뭐가 또 야마 돌게 했어. 들어줄 테니깐 자리에 앉아.”

로이는 주안과 마주 본 의자에 털썩 앉았다. 팔짱을 단단히 낀 그녀의 팔을 주안이 풀어주고 그녀의 입에 사탕을 넣었다. 혀로 굴려 오른쪽 볼로 사탕을 옮긴 그녀는 말을 이었다.

“죽었다 살아오더니 종족 번식에 대한 시급함을 느꼈나봐. 잘못했다가 저런 유전자가 인류에서 사라지면 큰 재앙이긴 해. 하지만 나도 일하는 입장이고, 김수혁도 아무리 소속사가 잘못되었다고 해도 배우로서 생명이 끝난 건 아니잖아. 다들 김수혁 모셔갈라고 집 앞에 죽치고 명암 내미는 것쯤은 나도 안다고. 그럼 감사히 여기고 적당한 소속사 잡아서 계약하고 작품 들어가면 되잖아.”

“…그래서 말이야. 로이야, 우리가 수혁씨….”

로이는 손을 들어 사장의 말을 막았다. 김수혁이 REVE에 들어왔다가는 소속사의 원탑 자리에서 두 번째로 밀려나버릴 수밖에 없다. 아이돌이 돈은 많이 벌어도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아 수익성이 배우에 비해서는 높지 못했다. 그러니 말도 못 꺼내게 해야 했다.

“죽는 거. 물론 무서웠겠지. 배는 구멍 나고, 피는 줄줄 흐르고, 차는 한번 치고 가고. 인생이 뭐있나 싶었을 거야. 세상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나 억울했겠지. 뭔가 남기고자, 내가 살아있었노라, 그런 큰 사고를 당했으니 발자취 정도 남겨야겠다는 교훈이 생겨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돼! 하지만!”

“그러니깐 우리가 수혁씨….”

“그렇다고 막 몸 들이대며 섹스하자고 덤비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주안이 벌떡 일어났다. 언제 김수혁 영입설을 제시했냐는 듯 분노하며 ‘내 여동생을 건드리는 자, 반드시 징벌하리라.’ 무서운 오빠 버전으로 변신해보였다.

“그 새끼, 진짜 몹쓸 놈이네. 그래, 그 인간말종이 뭐라고 했는데. 막, 막, 모…모…모텔 가제? 숙박 어플 뒤지고 있어? 내 이놈의 새끼를 그냥!”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마치 그가 수혁을 때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구는 주안을 보고 로이는 그녀의 뜻에 동조해주는 것 같아 기뻤다. 재빨리 이야기를 덧붙여 김수혁 타파설에 힘을 실었다.

“그러니깐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뭐? 샤워하고 널 덮친 거야?”

“아니, 아니. 내가 사래 걸려서 물을 뿜었거든. 그래서 왕왕 섹시한 눈으로 샤론 스톤처럼 섹시하게 의자에 앉아서….”

“설마 바지 탈의하고 널 덮친 거야?”

“아니이이이~. 사람들 많은데 어떻게 바지를 벗어. 그냥 요염하게 앉아 있었다고.”

주안은 로이의 말을 들을 때마다 흥분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그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 다음 말을 경청했다.

“그래서?”

“자꾸 그렇게 보지 마요. 저 설레잖아요. 이딴 말을 하는 거야. 하, 참나. 기가 막히지 않아? 완전 야했다고. 너~~~무 야해서 사람들이 김수혁이랑 나랑 사귄다고, 내가 수라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난 외쳤지. 우리의 주도권은 내가 잡고 있다고. 나야 말로 진정한 공이라고. 근데 그 김수혁이 공이랑 수가 뭔지 알고 있는 눈치더라고. 하여간 보통내기가 아니야. 19금 팬픽을 보는 게 틀림없어.”

주안은 로이의 마지막 말에 ‘그건 너겠지. 로이야.’라는 말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비위 맞추기의 달인으로서 손바닥을 딱 치며 몹시 안 되었다는 식으로 굴어줬다. 소속사 사장이나 되어서 연예인 비위 맞추기를 못해서야 어디 쓰겠는가.

“그거 참! 맙소사! 엄청 야한 성희롱을 당하고 왔구나.”

영혼 없는 감탄사를 내뱉은 주안은 사장실 문을 열고 문밖에 있던 직원들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REVE 엔터테이먼트에 대형스타가 굴러온 데에 대한 기쁨으로 그가 벌린 팔의 너비만큼이나 지갑을 열 의양이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자아~, 제군들. 오늘은 김수혁님이 REVE에 오신 위대한 날! 다 같이 탕수육을 먹읍시다.”

“꺄하아아~. 어쩜 좋아. 드디어 수느님이 우리 회사랑 계약했나봐.”

“내가 그랬잖아. 전에 김수혁이랑 회식했다고. 구라 아니라고 했지!”

“헝헝. 나 몰라. 몰라. 완전 좋아. 꿈 아니지? 이거 진짜지? 레알 혼또 현실이지?”

평소라면 직원들이 배달음식을 시키면 ‘자장면 먹어, 자장면. 튀긴 음식이 얼마나 몸에 안 좋은 줄 알아.’ 했을 짠돌이 사장님이 탕수육을 사준다면 그건 말 다 한 거였다. 김수혁이 REVE와 계약해 그가 돈방석에 앉았다는 뜻이었다.

============================ 작품 후기 ============================

라라크로프트windy님...맞습니다. 로이의 정체를 아는 자들이 지금 너무 많아졌음...복선복선^^ 어라? 수혁이 배 뚫은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나?

너는샛별님 그렇죠?ㅎㅎ 수혁이 불쌍함..엄마는 음...나쁜 듯 착한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해질 예정이랍니다.

제가 오늘 9시에 집에 왔는데 잠깐 자고 눈을 뜨니 지금이네요^^

역시 얼굴은 화장으로 속일 수 있어도 체력은 그 무엇으로도 못 속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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