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84화 (84/104)

00084  그 남자의 사정  =========================================================================

빠아아앙~.

불렀던 택시가 이제야 왔다. 그것도 쓰러져있던 수혁을 친 후 경적을 울리면서. 하지만 수혁은 그가 죽을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작 여자가 쥔 짧은 나이프로 상처를 입고서 비틀거리다가, 차에 치여 죽을리 없다. 그가 욕구불만으로 해왔던 수많은 각종 격투기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차가 수혁을 치는 순간 재빨리 머리를 감싸고 낙법으로 아스팔트를 굴렀다.

액션 영화를 찍어왔던 배우로서의 삶이 수혁의 목숨을 구할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장면은 그가 찍었던 영화에 한번쯤은 나왔을 법한 빤한 액션 신이었다. 어쨌든 그는 강인한 육체를 가졌고 운동신경도 좋으며, 영화 촬영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재난 상황에서도 대처할 만큼 풍부한 지식이 갖추고 있었다.

“으윽.”

죽지는 않겠지만 타박상은 좀 입은 듯 했다. 수혁의 몸을 어떻게 해서든 벗기고 싶어 했던 드라마 작가들이 보면 그의 완벽한 몸에 흠이 남겼다고 욕을 했을 상황이었다. 어쩌면 얼굴 잘난 맛에 높았던 수혁의 몸값이 똥값으로 치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역시 죽고 싶지는 않았다. 로이와 못해본 것들이 너무 많았다. 배우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공황상태에 빠진 택시 기사를 불러댔다.

“기사님! 정신 차리시고, 119에 연락해주세요.”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넋을 잃었던 택시 기사가 부랴부랴 자동차 밖으로 나와 수혁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는 수혁을 자기가 차로 치어서 피가 난 줄 알고 횡설수설해댔다.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할 수 없이 수혁이 혼자 기어 땅에 떨어진 핸드폰으로 구조 요청을 했다. 상해사건 때문에 미리 전화했던 경찰이 택시 기사를 체포했고, 좀 더 지난 뒤에 도착한 구급요원들은 수혁을 응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이송했다.

술을 과도하게 마셨던 후유증인지, 아님 극심한 외상으로 인한 반사작용인지 모르지만 수혁은 응급실에 도착해 침대에서 토를 하고 말았다. 의사들은 기도를 확보하기 위해 그의 목에 관을 삽입했다. 정신이 없어서 괜찮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상처가 벌어진 부위를 소독하기 위해 가위로 옷을 잘라낸 의사가 환부에 소독약을 들이부었다. 거즈로 상처를 누르고 빠른 속도로 봉합을 했다.

팔에는 링거가 꽂혀있고, 심전도 체크를 위해 가슴에서부터 긴 줄들이 기계까지 이어져 드라마에서 임종을 맞이한 회장님처럼 수혁을 보이게 했다. 드라마에선 그 그래프가 항상 죽음을 나타냈다.

“수혁아~. 이게 무슨 일이야. 멀쩡하던 놈이 왜 하루아침에 곤죽이 되었어!”

병원에서 보호자에게 연락을 했는지 어머니가 와서 펑펑 울음을 쏟아냈다. 그가 생각해도 의학 드라마에 나오는 교통사고 환자만큼이나 수혁의 상태가 안 좋게 보이겠구나 싶었다. 베드는 피 칠갑이요, 환자는 거의 혼절 상태이다.

숙취 때문에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울어서 양심이 찔렸다. 괜찮다고 눈을 뜨기에는 상황이 좋지 못했다. 그는 늦게까지 술 처먹고 돌아다닌 아들이니 말이다. 기자들이 수혁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는지 병원이 어수선했다.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경비는 물론 간호사들까지 싸워대는 소리가 들렸다.

로이가 그를 만나러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느지막한 낮이었다. 소변검사, 혈액감사, 엑스레이, CT, MRI를 다 돌은 수혁은 병실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그녀의 존재를 느끼며 깨어났다. 그녀는 성큼 성큼 침대로 다가와 수혁을 빤히 구경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로이의 체취를 맡고 이미 정신을 차린 지 오래였지만 수혁은 그의 얼굴을 보는 그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었다.

면도를 하지 못해 걱정이었다. 가뜩이나 나이차가 많은데 아저씨처럼 보일까봐 신경 쓰였다. 또 술 냄새가 나면 어쩌나, 피가 묻어서 더러워 보일 텐데 그건 어쩌나, 온갖 생각을 다 하다가 간호사가 놔준 주사에 다시 잠들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혁은 그 모든 게 그가 바라던 환상이었구나 싶어, 아픈 자식을 위해 오지 않은 어미를 원망하고 그가 사랑하는 만큼 그를 사랑해주지 않는 로이를 원망했다.

병실 창밖은 온통 검었다. 내일 스케줄을 위해 로이가 수혁을 보러 왔더라도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알지만, 그는 서운했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때, 병실에 딸린 화장실 문이 열렸다. 로이였다. 그녀가 퉁퉁 부운 눈으로 깨어난 수혁을 보더니, 척하니 선글라스를 껴버렸다. 좀 더 그녀의 푸른 눈을 보고 싶은데 아쉬웠다.

“병신. 형 바보야? 왜 형이 김주안이랑 술 마셔!”

“……로…이.”

목소리가 잘 안 나왔다.

“됐어. 호흡기 뗀지 얼마 안 돼서 말하기 힘들 거야. 말하지 마.”

젖은 거즈를 그녀가 수혁의 입술에 올려놨다. 그때서야 그는 자신의 입술이 메말라있음을 알아차렸다. 얼마나 잠들었던 것일까. 분명 하루쯤 잔 것 같은데 그의 몸에서는 썩은 내가 풍기고 있었다.

“일주일이나 잠들어 있었어. 다시는 못 깨어나는 줄 알았단 말이야! 이 바보야! 엉엉엉. 너 죽으면 나 어떡하라고. 다 늦은 시간에 술 마시고 왜 혼자 돌아다녀! 너 연예인이라는 자각도 없어? 형 죽을래? 극성팬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아냐고! 김수혁 머리털이라고 하면 경매에서 몇  천만 원 주고도 살 미친년들이 이 세상에 한 다스는 있다고.”

로이가 침대에 머리를 박고 울었다. 미안한 마음에 뭐라 말할 수 없었다.

“휴~, 진정. 진정하자. 로이 테일러. 너 지금 마인드 컨트롤이 안 되고 있어.”

그녀가 혼잣말을 하고 수혁을 노려봤다.

“나도 혼자 다니는 거 좋아하지만 형만큼은 아니거든. 씻고 면도하고, 나 만날 준비 다 되면 데이트 신청하러 와. 그럼 난 간단. 빠빠이~.”

시크하고 도도하게 걸어 제 할 말만 다하고 그대로 가버렸다. 분명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데이트 신청을 해달라는 거였다. 수혁은 비실비실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호출버튼을 눌러 간호사에게 씻어도 되냐고 물었다. 상처도 잘 아물었고 녹는 실이라 샤워하다 보며 사라질 거라는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화장실 거울을 보니 그의 머리는 오랜 세월 노숙을 한 자의 머리카락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엉망이었다. 아저씨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자라난 수염이 10년은 더 늦어보이게 했다. 언제나 단정했던 예전의 얼굴을 떠올릴 수 없는 몰골이었다. 샴푸로 두 번이나 머리를 헹구고, 양치를 하고 면도를 했다. 바디위시의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샤워를 끝내고 나오니, 어머니가 수혁을 보고 놀라워했다.

“이야, 역시 내 아들이야. 일어나자마자 씻다니.”

수혁이 씻는 동안 베드의 침구가 새로 갈려있었다. 그는 마음 놓고 그 위에 앉았다.

“로이는 봤어? 너 없는 동안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어.”

수혁 때문에 고생했다는 소리였다.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번 일로 네 할아버지도 로이를 완전히 손주 며느리로 인정했지 뭐야. 혼혈이라 마땅치 않아 하던 게 엊그제인데 완전 잘됐지 뭐.”

“…아버지는요? 저 잠들었을 때, 오긴 했습니까?”

“그럼. 당연하지.”

어머니는 아버지가 네 걱정을 많이 했다고 위안의 거짓말을 했다. 그렇다고 믿을 수혁이 아니었다. 대수롭지 않게 알겠노라 답하고 식사를 부탁했다. 어머니가 죽을 사오겠다며 나갔다. 수혁은 텔레비전을 켜서 뉴스를 확인했다. 일본 엔화 하락과 경제가 위험해졌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그의 모국은 한국이지만 그래도 반 정도는 일본인의 피가 흘러 걱정이 되긴 했다. 도대체 아버지는 뭘 하고 다녀서 나라 경제를 저렇게까지 만들었단 말인가. 부동산 경기가 다 죽었다고 했다.

“켄! おきましたか。(일어났냐.)”

일본에 있어야 하는 아버지이다. 검은 돈을 유통하는 그가 없으면 일본 경제가 폭락할 거라는 건 일본 정치가와 기업가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어둠의 대통령이라는 유치한 별명이 붙은 야쿠자 야마구치가 한국에서 유가타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가 좀 더 누워있으라고 했다.

“여긴 어쩐 일입니까.”

“그야 파파가 아들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니?”

죽을 사서 돌아온 엄마가 아버지의 말을 가로챘다. 수혁은 여기서 아니라고 했다가는 어머니가 우는 척한다는 걸 알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는 결코 착한 아들이 아니었다. 진짜 착한 아들이라면 어머니의 말을 믿고 비록 사이가 나쁜 아버지여도 고마움, 그 비슷한 감정의 티끌이라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나쁜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버지 또한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는 수혁을 보고 비릿한 비웃음을 지어보였다.

“escobar. (위선자.)”

“에스코버? 그게 무슨 뜻이야. 야마찡~.”

“당연히 우리 우사기짱의 아들이 깨어나서 다행이라는 뜻이지.”

아버지는 어머니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목덜미 키스를 시도했다가 한 대 맞았다.

“내가 병신이냐! 프랑스어도 못하게! 씨발~. 그리고 수혁이가 왜 내 아들만 돼! 네 아들도 된다고! 넌 내가 바람피워서 낳은 줄 알아? 아님 내가 마리아냐? 혼자 잉태하게!”

“그게 아니라……. 김수혁이 당연히 내 아들이건 맞는데…. 우사삐~. 화내면 야마삐 무서워. 응? 화내지마~. 응? 응? 우사기짱의 예쁜 얼굴이 망가지잖아~.”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화내지 말라고 애교를 부렸다. 수혁은 이불을 걷어서 얼른 병실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가 맨발이었음을 깨달은 건 간호사가 ‘수혁씨~’하며 걱정스럽게 말을 걸어오고 나서였다. 친절한 간호사가 슬리퍼를 줬다. 수혁은 답답한 마음에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향했다. 거기라면 누군가 담배 한 대라도 빌려주겠지 싶었다.

============================ 작품 후기 ============================

너는샛별님 그렇죠? 저 반갑죠? 비축분 있으니 자주 오겠습니다.^^

3월에는 연차도 많이 썼고, 공모전도 준비 안 해도 되고...(조아라 공모전은 이미 써놓아서 프리함) 다음에 나가는 공모전은 5월부터 준비하면 되어서 제가 4월까지 조아라에서 활동할 거랍니다. 그 안에 무조건 완결내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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