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83화 (83/104)

00083  그 남자의 사정  =========================================================================

“스토커…말입니까?”

“그래. 스토커. 너 몰랐냐? 어쩜 그렇게 사랑하는 여자한테 무심하냐. 너 진짜 그년 사랑하는 거 맞아? 나는 울 강아지, 24시간 도청하고 몰카 한다고. 진짜 사랑하는 상대라면 그래야지.”

삼촌의 말은 99% 헛소리라 흘려들었다. 다만, 로이가 스토커 때문에 고생한다는 사실은 몰랐기에 빨리 계약서에 사인하며 윽박지른 태형을 그만 닥치게 하고자, 종이에 서명을 휘갈기고 회의실을 나왔다. 밖은 눈이 녹아있었다. 길은 흙탕물로 더러웠다. 택시를 타고 로이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소속사 사장 김주안이 그 사실을 인정했다.

HEAVEN이 난리가 났는데 경쟁 회사인 REVE에 수혁이 나타났으니, 인터넷 기사로 수혁의 이적설이 나돌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남의 회사 사장실로 곧장 쳐들어가 주안의 멱살을 잡았다.

“너 뭐야. 너 사장이라며. 근데 고작 네 소속사 연예인 하나 보호 못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딱 그 짝이었다. 앞 뒤 옆. 수혁이라는 대형 스타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큰 사건을 일으킬지 그에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로이만이 머릿속에 가득해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소속사가 하루아침에 망해서 사리질 판이고, 의지하던 정 사장님이 잡혀 들어가도 수혁에게는 그녀만이 중요했다.

“진정하시죠. 김수혁씨. 저희도 최선을 다해 로이 보호 중입니다. 경호원은 두 배로 늘렸고, 우편물 전부 압수해서 확인했고요. 소속사로 오는 선물과 편지는 전부 패기 했습니다. 방송은 전부 사전 녹화만 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저도 할 만큼 한 거 아닙니까.”

소속사 사장인데 자기 아이돌 돌보겠다고 매니저로 활동해서 이상함을 느꼈었다. 혹시 그녀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더니, 진짜 로이를 좋아하고 있었고 그런 주제에 백민호씨와 사귀더니, 둘이 헤어지고 나서는…멀쩡히 사장실에 앉아있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상처받은 사람이 아닌 채 그렇게…. 로이의 스토커 사실을 알고서도 이성을 잃지 않았다.

도대체 이 남자는 왜 거짓말로 그들을 사랑한다고 했던 것일까. 어쨌든 그가 진정으로 로이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안심이 되었다. 김주안에게 로이를 맡겨도 괜찮을 듯싶었다.

“우리 로이…무사한 거죠? 그렇죠?”

수혁은 잘 우는 편이 아니었다. 눈물 연기는 안구건조증이라 힘들다고 티어스틱을 눈 밑에 바르고 촬영하는 배우일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하지 못했다. 하지만 로이, 라는 이름만 나오면 눈물은 자동으로 주륵 주륵 나왔다. 이토록 쉽게 울 줄 알았으면 그 비법을 가지고 로맨스 영화 찍을 때 써먹었어야 했다고 생각이 문득 떠오르는 걸 보아, 그는 어느덧 진짜 배우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거. 위험하게 왜 울고 그래요. 나 완전 설렌다고요. 수혁씨, 진정하고 앉아요. 로이, 진짜 멀쩡합니다. 스토커 팬은 이미 경찰이 잡아서 조사 끝마친 상태이고 로이는 자기 팬 처벌하는 거 싫다고 용서해주기로 한 채 끝난 사건이라고요. 이미 끝난 일인데 우리 릴렉스~. 씁씁 후후. 씁씁 후후~.”

주안이 내뱉은 호흡에 맞춰 숨을 몰아쉬고 내쉬어봤다.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근데 설마 그 일 때문에 혼자 달려온 거예요? 아, 혹시 온 김에 우리 회사가 얼마나 멋지고 판타구리구리한지 구경하고 가시겠어요? 저희 REVE로 말할 것 같으면 휴게실에 최첨단 시스템을 장착한 소속사로서 언제 어느 때든 텔레비전 시청이 가능하고, 식당에서는 24시간 컵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으며, 연습실에서는 항시 로이가 대기 중이랍니다.”

“그…. 그럼 우리 로이, 아니 연습실부터 구경 갈까요? 항상 뛰어난 실력을 지닌 REVE의 가수들을 보며 어떻게 연습하는지 참 궁금했던 참입니다.”

수혁은 얼른 눈물을 닦고 혹시 거울 있냐고 물었다. 주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하여간 생긴 것들이 더 하다며 거울을 넘겼다.

“눈이 부은 것 같네요. 너무 못생겨 보입니다.”

“눼에~ 눼에~. 거 어디 가서 그런 말 했다가 욕먹지 마시고요. 앞으로 저희 소속…아니, 어쩌면 로이 가족이 될지도 모르니 긍정 이미지 챙기자고요. 망말은 NO~ 알았죠? 수혁씨?”

“로이…가족?”

수혁은 얼른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살핀 후 주안밖에 없다는 사실에 살짝 그에게 다가가 귀띔을 했다.

“설마 벌써 여기까지 소문이 난 겁니까.”

“허걱! 진짜, 레알. 저희, 아니 로이 가족이 되어주시게요? 아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수혁씨. 앞으로는 진짜 무릎 꿇고 신님으로 모실게요. 제가 진짜 잘하겠습니다. 매니저는 5명 붙이고…….”

주안이 수혁의 두 손을 꼭 잡고 앞으로의 활기찬 연예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달려들어서 얼른 도망쳤다. 그나저나 연습실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복도를 걸어 다니려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동물 구경하듯 수혁을 구경했다. 연습생에게 로이 어디 있는 줄 아냐고 물었다. 꺄꺄 비명을 지르다가 도망가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뒤늦게 주안이 헐레벌떡 달려 나와 ‘자,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 가족이 될 수혁님께 좋은 이미지를 남겨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로 회사 직원들과 연예인, 연습생을 더욱 시끄럽게 만들어놓았다.

“악! 어떻게! 나 오늘 풀메(풀 메이크업) 아닌데!”

“흑흑. 역시 구린 REVE에 로이 믿고 들어오길 잘했어. 이제 우리도 업계 1위야.”

“사장님! 수혁씨 오셨는데 우리 회식가요! 고기! 고기!”

수혁은 그에게 소음으로 공해를 입히다 못해 혼을 쏙 빼놓은 사람들에 의해 그들 사이에서 작게 ‘로이’의 이름만 중얼거리다가 REVE 직원들이 회식하는 고기 집에 억지로 끌려가, 어느덧 술을 마시게 되고, 그들과 웃고 떠들며 놀게 되었다. 제 정신으로 돌아온 건 소주 5병을 마시고 2차로 노래방을 가고 3차로 주안과 포장마차에서 오뎅과 골뱅이를 먹고 비틀거리며 나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고 있을 때쯤이었다.

주안은 오줌 마렵다며 골목길로 들어가 버렸다. 한참 안 나오는 걸 봐 그대로 잠들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으로 철구에게 김주안을 챙겨서 집에 보내라고 말한 뒤, 인기척 없는 길에서 발을 동동 굴리고 있던 참이었다.

누군가 그의 등을 툭 쳤다고 느꼈다. 뒤를 돌아보니 야구 모자를 눌러쓴 여자가 그에게 김수혁이냐 물었다.

“네. 그런데요.”

술 때문에 발음이 제대로 안됐다. 무거운 눈꺼풀이 자꾸만 감겨 이대로는 택시 오는 거 기다리다가 도로변에서 잠들겠다 싶었다. 뺨을 손으로 착 착 때리고 몸을 곧추세웠다. 완전 제정신이었다. 비록 뺨이 얼어 아무리 때려도 하나도 안 아프고, 실실 웃음이 나왔다지만 그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 수혁은 그를 알아본 팬을 위해 “사인해드릴까요?’ 하며 물었다.

둥근 체형의 여자는 무섭도록 그를 노려봤다.

“웃기지마. 이 가짜야!”

배가 따끔하고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는 어지러웠다. 흔들리는 시야로 간신히 배를 내려다봤을 때에는 그의 카라멜색 코트가 너무 붉다는 걸 알아차리고 말았다. 조금 놀라야겠지만 항상 보던 상황이라, 그녀의 손을 잡아 칼을 빼앗았다. 칼을 멀리 던지고 여자의 몸에 올라타 제압했다. 경찰에게 얼른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달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가 말하는 사실을 믿어주지 않았다.

수혁은 꾸역꾸역 피가 밀려 나오는 옆구리의 긴급한 상태를 무시하고, 그가 배우 김수혁이며 지금 칼을 맞은 사실을 입증하고자 그의 말을 믿지 않는 경찰들에게 드라마에 나오는 배역과 똑같은 대사를 말하고 연기를 해보였다. 참으로 엿 같은 상황이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 오늘, 어제? 아, 원래 예뻤지. 그런데 도대체 뭘 믿고 오늘은 더 예쁜 거야! 나 좋아해서 그래? 나 같은 남자한테 고백 받으니 기뻐? 좀 더 좋아해도 좋아. 내가 널 사랑하는 거니깐.”

“어, 맞네. 맞아. 김수혁. 지금 출동할 테니깐. 조금만 더 범인 붙잡고 계세요.”

그러나 수혁은 더 이상 범인을 잡고 있을 힘이 없었다. 손에서 핸드폰을 놓치고 그대로 눈 바닥에 엎어졌다. 로이가 좋아하던 코트인데 더러워지고 말았다. 형에게는 카라멜색이 잘 어울린다고 했는데 이제는 빨간 코트가 되어버렸다. 감각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손으로 배를 눌러도 이미 소용없었다. 피가 너무 많이 나왔다. 얼어붙은 입술로는 간신히 한 마디 내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깐, 로이 더 많이 기뻐해주세요.”

그건 로맨스 코메디를 찍을 때면 언제나 대사의 마지막에 덧붙여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 작품 후기 ============================

다시 정주행이시라는 라라크로프트windy님ㅎㅎㅎ 사실 제가 아이돌 완결 내러 돌아온 거 라라님 덕분이에요. 너얼세에서 해주신 코멘트에 감동 먹고...김보성 아저씨 버전으로 외칩니다. 의리! 뽀뽀 쪽><

olvian님 수혁이의 이럇 이럇는 완결 전에 나올 겁니다. 무조건...안 그러면 완결이 안나서><ㅎㅎ

너는샛별님 그렇지요? 저도 귀여운 찌질이가 좋음...이런 캐릭터는 현실에서 민폐이겠지만....수혁이는 귀여우니깐...^^

연재 늦게 올려서 죄송해요...저 어제 출근했는데 다음날 집에 들어왔습니다.ㅎㅎ

(12시 넘으면 다음날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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