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8 나도 여자랍니다 =========================================================================
신나게 춤을 추며 놀았다. 리나는 광년이 마냥 무반주에 속옷 차림으로 통춤을 춰서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정신 사납게 휘날렸다. 우리들은 어린애 마냥 침대를 방방 뛰기도 했고, 베개 싸움도 하며 놀았다. 치마 옆이 트여 있어 움직이기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놀았더니 잊었던 배고픔이 되돌아왔다.
“배고파.”
“나도.”
리나가 침대에 누워 자신들의 모습으로 폰으로 담았다. 귀 옆에서 헉헉거리는 그녀의 숨소리와 마주잡은 손의 뜨거움이 무엇인지 모를 것에 대한 불안감을 안심하게 만들어줬다. 자신이 배고프다고 또 다시 중얼거리는 말에 아이돌처럼 다이어트와 함께하는 발레리나도 고개를 또 다시 끄덕였다. 그녀가 자신의 납작한 배를 쓰다듬다가 통통 튀겨 빈 소리를 만들어 냈다.
“모스크바로 발레 공부를 하러 갈 때였어. 선생들이 어디다 먹을 걸 숨겼나 우리들 가방이랑 몸, 숙소 검사를 했지. 우리는 배나 허리, 침대 밑에 먹을 걸 숨겼지만 선생들한테 다 들켜 한국에서 준비해간 간식을 모조리 빼앗겼어. 그런데 화장실 변기에 숨긴 딱 한명만 걸리지 않았어. 후룻 바이더 풋이었어. 비닐 포장된 거라 물에서도 괜찮았거든. 딱 그거 한 개였지. 그리고 그건 500원짜리였지만 경매가 붙어 십만 원에 낙찰 됐어. 천원! 오천 원! 여기 팔천 원! 십만 원! 십만 원 더 없습니까? 십만 원 낙찰!”
리나는 그 현장의 긴박감을 표현하기 위해 손을 들며 외쳤다. 그래서 자신이 대신 폰을 들고 영상을 찍어주겠다고 하니, 폰은 프라이버시라며 거절당해버렸다. 하여간 못 말린다.
“아무튼 살금살금 젤리를 혀로 녹아가며 선생들 몰래 먹었어. 젠장, 빌어먹게 맛있었어. 그깟 싸구려를 위해 내 진주귀걸이를 갖다 바쳤다고. 이성적으로는 무지 어리석은 짓인데 그 순간 너무 행복했어. 내 혓바닥이 붉은 색소에 물든 것도 즐겁고, 그거 먹으면 살쪄서 수석 자리를 빼앗길지 모르지만, 그래도 좋았다고.”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봤다. 옆으로 누운 리나가 자신을 끌어안고 물었다.
“로이, 너에게도 그런 즐거움을 알게 해주고 싶어. 김수혁이 너에게 그 젤리 마냥 해악한 존재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네가 행복해졌으면 해.”
로이는 ‘차라리 김수혁이랑 계속 사귀느니 진짜 젤리는 먹는 게 나한테는 더 이로운데?’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그래서 젤리보다 김수혁을 만나는 게 더 행복하잖아.’라고 대답했다.
“원래 해로운 게 달콤하고 매력적인 법이거든.”
“……뭐 그렇기는 해.”
“키키키. 그래서 다시 사귈 거야?”
“……헤어진 적 없어. 자기 제멋대로 스캔들 뿌리고 다니는 거라고.”
“우쭈쭈. 우리 로이~, 그렇게 수혁이가 좋았어요?”
“네에~, 수혁이 좋아요~.”
리나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자신도 그렇게 말하자, 수화기에서 ‘저도 그렇습니다.’라고 들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리나의 손을 끌어 폰을 확인하니 동영상 촬영이 아니라 화상통화였다. 자신들의 미친 짓을 그가 다 보고 있었던 거다. 이걸 어쩔 거냐며 리나의 등짝을 때리며 화풀이 했다. 그가 작게 웃으며 리나씨 고마워, 라는데 너무 화났다. 이게 뭐란 말인가. 둘이 작당하고!
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리나의 손을 잡고 침대 밖으로 끌어냈다. 그래도 속옷차림이라 외투를 얼른 어깨에 걸쳐주고 현관문을 열었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추위와 더불어 쪽팔림(물론 리나가 그걸 느낄 정상적인 아이는 아니지만)을 느껴서는 안 되니 말이다.
그런데 그가 서있었다. 김수혁.
자신이 멈칫하고 이유도 모른 채 리나의 뒤에 숨어버리니깐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수혁의 손에 장미 꽃다발이 들려서 있어서 그 화려함에 눈이 고정되어버렸다. 그가 그걸 자신에게 내밀었다.
“보고 싶었습니다. ……예뻐요 로이.”
받으라고 주는 것 같아 일단 받고 꽃다발로 김수혁을 팼다. 쪽팔렸다. 꽃잎이 이리저리 휘날리며 그가 붉은 꽃잎과 함께 자신을 끌어안았다. 그와 자신 사이에 갇혀 뭉그러지는 부드러운 꽃잎의 진한 향기 때문에 눈물이 핑 돌았다. 결코 김수혁이 반갑거나 그래서 우는 게 아니었다. 바람둥이 따위 정말 싫어서 밀어내려고 했지만, 팔에 힘이 안 들어갔다. 그런데 밀어낼 힘은 없었으면서 끌어안을 힘은 왜 넘쳐나는지 모르겠다. 그의 어깨에 머리를 박고 ‘일본 여자랑 어디까지 갔어?’ 라고 조용히 물어봤다. 수혁이 그냥 소꿉친구라고 했다.
“그럼 스캔들 난 C양과 H양과 O양은?”
“알다시피 소속사 식구입니다. 같이 한강에서 매니저와 운동했습니다.”
“내가 왜 다시 형을 받아들여야하는지 설득해봐.”
“전 리나씨가 먹은 젤리와 달리 공짜고, 로이를 더 행복하게 해줄 테니깐요. 거기다 먹으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서 아무리 물고 빨고 해도 입안에서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절 낙찰 받으시려면 키스해주세요. 로이.”
그가…, 자신의 매력적인 배우가 일생일대의 중요한 캐스팅을 앞두고 잔뜩 긴장한 채 멋있는 척 했다. 그의 연기는 완벽했다. 자신의 등에 얹힌 손의 위치, 떨리지 않는 부드러운 목소리, 여유로운 눈빛, 모든 게 로맨틱한 영화의 완벽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그의 혈관의 거친 펌프질 소리 때문에, 그의 불안함이 자신에게까지 전해져왔다. 로이는 그의 턱에 입을 맞췄다.
수혁이 의아해하며 왜 입술이 아니냐며 교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야 그 입술에 또 누가 입을 맞췄는지 알고?”
“정말 아무 일 없었습니다. 믿어주세요. 로이. 그저 백민호씨의 충고대로 약간의 질투 작전을 사용한 것뿐입니다.”
“오호라? 백민호까지 날 물 먹이는 거에 동참했다고?”
“……그래도 그쪽에는 화풀이 하지는 마십시오. 예로부터 김태형과 관련된 건 상종을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뭐 그런 것 같기는 해. 아무튼 넌 이제 내 밥이야.”
로이는 평범한 회장님이라고 하기에는 무서운 김태형을 떠올리고 그 대신으로, 곧바로 수혁의 배를 주먹으로 때렸다. 그가 맞으면서도 좋아했다. 그래서 배때기에 멍이 들 때까지 때려주겠노라, 와이셔츠를 올리고 때렸는데 그러다 몸이 뒤엉키며 그가 자신의 밑에 깔리게 되었고, 수혁은 리나에게 이만 가달라고, 분위기 좋으니 어서 가라며, 슬그머니 눈치를 줬다.
“헛소리 마! 형이랑 나랑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너 여기 있어. 나가면 절교야.”
리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쪼그리고 앉아서 코트에서 콘돔을 꺼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계집애가 코트에 콘돔을 넣고 다니냔 말이다. 너 좀 맞고 정신 차리라는 뜻에서 리나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리니깐, 리나가 오묘하게 자신을 쳐다봤다.
“안 돼. 로이야. 나…너 힘겹게 포기했단 말이야. 하지만 정 그렇다면…, 네가 정 원한다면 우리 셋이 할까? 난 언제나 3P를 원했어. 이 꿈만 같은 일이라니. 거기다 나 김수혁 졸라 팬이잖아. 그런 수혁이랑 섹….”
로이는 그대로 리나의 주둥이를 손으로 틀어막고 집밖으로 밀어버렸다. 감기 걸리기 전에 딸딸이가 데려가겠지…. 뒤돌아보니 그가 와이셔츠를 벗고 바닥에 비스듬히 누워 자신을 쳐다봤다. 새빨갛게 손바닥 자국이 난 뱃가죽으로 누워있어 봤자 하나도 안 섹시하지 말이다. 젤리 수혁에게 좋은 말 할 때 자세 똑바로 하라고 했다. 그가 벨트를 푸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키에서 밀리니 위압감이 느껴졌다. 움찔하고 물러서 설마 저걸로 복수랍시고 때리는 건 아니겠지 싶어 바들바들 떨자, 그가 자기 목에 벨트를 묶고 줄 끝을 건넸다. 마치 개 목걸이 마냥 말이다.
그런데도 그의 무릎 꿇은 모습이 전혀 굴욕적으로 보이지 않는 건 김수혁의 미친 비주얼과 그에 못 지 않는 ‘디스 이즈 스파르타~’라고 외칠 듯한 섹시한 복근 덕분이었다. 졸지에 잘못했다고 비는 수혁의 행동이 야동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으로 비춰졌다. 개가 된 수혁의 목줄을 잡고 어떨떨해하는데 그가 평생 자신에게 굴복하겠다고 했다.
“아무리 로이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였지만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합니다. 버림받았다고 느끼게 해서 미안해요.”
수혁이 벨트를 조여 자기 목을 조르든, 채찍으로 사용하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무슨 말을 이리 무시무시하게 하나 싶다. 자신이 그런 걸 할 수 있을리 없지 않는가. 조폭 밑에서 자라서 사고방식이 이렇게 독특한 건가 싶었다.
“절 용서해주시는 겁니까?”
“…어.”
도저히 용서하지 않겠다고 버틸 상황이 아니지 않는가. 로이는 수혁의 목에서 벨트를 풀어줬다. 그가 그럼 이제 다시 연인이 된 거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 그렇다고 하니 순식간에 그의 얼굴이 덮쳐왔다. 수혁의 혀가 입안을 휘저었다. 정말 혀 놀리는 걸 좋아했다. 누가 변태 아니랄까봐….
로이는 입을 벌려 그를 받아들여줬다. 수혁의 손이 트인 치마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밀어내자, 반대 손이 원피스의 등 지퍼를 내렸다. 하여간 틈을 보이면 안됐다. 항상 지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왠지 모르게 자신이 그에게 끌려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이러면 안 된다고 딱 부러지게 거절했다. 수혁이 자신에게서 입술을 떼어냈다. 그리고 자신과 멀어지던 침이 중간이 툭 끊기자, 그가 촉촉해진 입술로 다시 키스를 해왔다. 손이 떨려서 이번에는 팬티 안에 들어오는 손을 막지 못했다.
정말 이러면 안 되는 데 이 남자……. 손가락 너무 길다.
로이는 자신의 숨이란 숨을 다 탐욕스럽게 집어삼키며 몰아붙이는 수혁의 품에 안겨 헐떡이다가 다리가 너무 후들거려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너무 기분 좋게 웃던 수혁이 피 칠갑된 자기 손을 보고 하얗게 질렸다.
“지금……, 제가 로이의 처녀막을 다치게 한 겁니까?”
그가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며 부엌으로 달려가 그거 말리느라 애 좀 먹었다. 생리 중이라고 알려주니 바닥에 버려져 있던 와이셔츠에 피를 닦은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그걸 꼭 그러쥐더니, ‘하하하. 그렇군요.’이라는 말과 함께 웃통을 벗은 그대로 집밖으로 사라졌다. 뭔가 싶어 허망하게 문을 보는데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조폭 하나가 철분제를 건네고 사라졌다. 창피해야하는 건 자신인데 왜 자기가 더 난리란 말인가!
문을 벌컥 열고 김수혁에게 따지려고 하는데 딸딸이와 떠난 줄 알았던 리나가 현관문 앞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로이는 리나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아 바닥에 던지고, 여자가 담배 피우면 나중에 기형아 태어난다고 혼내줬다. 자신이 들어도 목소리가 참 우렁차고 박력 있었다. 그러다 옆집에 사는 자신의 소녀팬이 꺄악 거리며 난리를 피워 그제야 자신이 여장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젠장, 좆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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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 꽃놀이를 해서 아이돌 연재가 조금 늦었답니다.^^ 물론 아이돌 전에 아저씨를 연재했습니다. 혹시 두편 모두 읽는 분들은 아저씨 보러 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