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74화 (74/104)

00074  나도 여자랍니다  =========================================================================

찰랑이는 긴 생머리에 백옥 같은 피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 밑에 그늘이 생기는 긴 속눈썹. 투명한 검은 눈동자, 달콤한 과일향이 나는 입술, 그리고 자신이 가까이 다가서면 움찍거리는 사랑스러운 몸짓까지. 로이는 천상 여자가 되었다. 수혁은 그녀의 뒤에 서서 백허그를 하고 요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계란 깨기를 도왔다. 그릇 안에 계란만 깨 넣으면 되는데 자꾸 NG가 나서 너무 좋았다. 입꼬리가 자꾸 올라갔다.

수혁은 그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해봤다. 감독이 길길이 날뛰며 고작 계란도 못 깨냐며 화를 냈지만,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뒤에서 끌어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소음은 자신들의 사랑을 위한 BGM에 불과했다. 그런데 로이가 잔뜩 풀이 죽어서 울려고 했다. 자신이 나서기로 했다.

“감독님, 우리 하영이가 오드리 햅번급이라 그런 겁니다. 이런 월드 스타를 쓰면 계란을 못 깨도 그러려니 하시죠. 적어도 우리 하영이가 오드리 햅번 보다는 NG를 덜 낼 거니깐요. 그리고 자꾸 우리 신혼여행에 잡음 넣지 마시죠? 요리 처음 하는 여자가 그 정도는 못할 수 있지, 뭘 그리 땍땍거립니까.”

세계적인 아이콘 오드리 햅번은 영화 ‘사브리나’에서 계란 깨기를 하기 위해 하루 종일 촬영을 했는데, 감독은 대역을 쓰거나 그 장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녀는 계란 깨기에 서툰 여자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 로이는 순조롭다. 적어도 그릇 안에 껍질을 떨어트리지는 않는다. 물론 그게 자신이 손을 잡아줘서 그런 거지만 말이다.

울먹이던 로이가 결국 울어버렸다. 그게 또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넋 놓고 보느라 달래주지 못했다. 그녀는 두 팔을 벌려 그 빌어먹은 사장을 찾았다. 도대체 둘이 무슨 사이라고 다리 깁스를 한 주안이 단숨에 달려와 로이를 안은 채 ‘네가 최고야. 우리 예쁜 로이.’라고 속삭여대는지 모르겠다. 너무 열 받아서 옆에 놓여 있던 쇠젖가락을 우그러트렸다. 언젠가 저 새끼를 바다에 던져버릴 거다.

“아니야. 아니라고. 난 하나도 안 예뻐. 그러니깐 혼난 거야. 나보고 하영이래. 난 로인데. 날 더 이상 안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

아무리 봐도 자신감 넘치던 그녀의 평소 모습과는 달라보였다. 불안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자꾸 몸을 어딘가에 숨기려고 들었다. 하필 그 장소가 김주안의 품이라는 게 마음에 안 들지만, 세계 최고의 맹수 조련사 백민호에게 배운 연애 기술을 구사하고 있는지라 관심 없는 척했다. 주안이 ‘그렇지 않아.’라며 로이를 데리고 잠깐 뒤로 빠졌다. 도대체 뭔 짓을 벌이기 위해 저러나 싶어 싱크대 밑으로 손을 넣어 매니저에게 명령을 내렸다. 매니저가 둘의 모습을 보고 오더니 ‘로이한테 약 먹였어요.’이라는 문장을 보내왔다.

약?……혹시 그 조울증 약인가?

수혁은 김주안이 무슨 소리를 찌껄이는지 매니저에게 알아보라고 했다.

‘앞으로는 약 꼬박꼬박 챙겨먹기야. 이상한 거 아니야. 누구나 다 그래. 형도 먹고 있어. 자꾸 먹다 안 먹으니깐 더 심해지잖아.’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그의 대사를 보니 마음이 찹찹해졌다.

“잠깐 쉬겠습니다.”

조연출이 잠깐 쉬겠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화장을 고치고, 계란 껍질 깨는 법을 조연출에게 배우고 온 로이는 30분 전과 달리 완전 밝아 보였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입술이 ‘준호씨, 하영이가 계란말이 해줄게.’라고 제법 애교스러운 소리를 냈다.

그녀는 자신에게 안긴 채 짧은 치마를 입었으면서 엉덩이를 뒤로 문질러댔다. 의도적인 게 틀림없었다. 자신의 발기에 로이가 키득거리며 재미있어 했다. 그렇지만 수혁은 더 이상 로이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그녀의 몸짓에 말아 올라가 보이는 팬티 위로 자신의 것을 문대줬다. 그녀는 웃음을 거두고 고개를 숙인 채 엉덩이를 앞으로 뺐다.

맙소사! 정말 통했다. 로이가 드디어 자신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후배’에서 ‘의식되는 남자’로 여기는 거다. 여기서 더 하반신을 밀고 들어가면 변태 밖에 안 되니 아쉽기는 하지만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긴 두 다리를 만져보고 싶어서 아주 죽을 지경이었다. 이 다리로 자신의 허리를 감게 하거나, 어깨 위로 올리게 해 로이랑 섹스하고 싶었다. 마침 주방이니 그녀를 그대로 싱크대 위로 올려 요리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스텝들만 없어도 말이다.

수혁은 로이의 손을 잡고 계란껍질 깨는 걸 성공해냈다. 그녀가 ‘드디어 해냈어!’라며 기뻐했다. 어쩜 이렇게 귀여운지 모르겠다. 감독이 ‘컷!’ 하며 초를 쳤다. 잘만 하면 뽀뽀까지 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하영으로 분장한 로이와의 에피소드를 찍느라고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수혁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뭐랄까. 그 약을 먹으니 엄청 고분고분해지고 착해지고, 너무 좋았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차분해지자 여성미가 철철 넘쳤다. 로이가 남자라고 알고 있는 스텝들도 다 그녀를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단 이 기쁜 소식을 연애 선생 민호에게 알려줘야 할 것 같아 촬영이 끝나고 마스크와 선글라스, 모자를 쓰고 김태형 회사를 찾아갔다. 연예인인 자신이 사채업 건물에 자꾸 드나들면 또 무슨 소문이 돌지 조금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신혼 분위기 방해하지 말라며 집에 들이지 않는 김태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민호가 없었다. 형제들이랑 노느라 안 왔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이만 돌아가려 하는데, 김태형 부하들이 자신을 붙잡았다.

“도련님, 울 보스가 계속 상담실에서 안 옵니다. 고객님들이 지금 4층 청부업자 놈들한테 삼당을 받아 대출 빈도수가 엄청 줄었습니다. 그냥 천만 원 빌려서 5천만 원 갚느니 3천만 원 쓰고 사람 죽이겠다는 심상이라, 저희 실적이 바닥입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수혁은 조폭들에게 그것들은 다 너희 소관이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울 보스가 여자 하나는 기가 막히게 다룹니다. 도련님도 보스께 배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맞는 말이지만, 저번이 이상한 소리를 해대서 별로 그에게 배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여자 경험이 많다고, 자신이 김태형에게 꿀릴 건 없지 않는가.

……그래도 동정 보다는 여자 마음을 잘 알겠지.

수혁은 노크 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잠그지도 않는 문이 무서워 들어가 보지 못한 조폭들이 한심했다. 김태형이 무서우면 얼마나 무섭다고. 그저 개쌍놈일 뿐인데 말이다. 안에 들어가자 쩌렁쩌렁하게 남자의 교성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아아~, 싫어~. 응. 응. 응. 아저씨, 그만. 그만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다 싶었는데 로이의 스타일리스트 백민호였다. 언제 야동 배우로 데뷔했나 싶다. 태형이 바지를 내리고 자위하고 있었다. 옆의 휴지통이 티슈로 가득 찬 것을 굳이 보지 않더라고 시큼한 냄새 때문에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역겨웠다. 수혁은 더러운 게이 삼촌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 얼른 문을 닫고 나왔다. 조폭들이 자신의 뒤에 서서 손짓으로 다시 들어가라고 흔들어댔다. 그 빠르기가 잠깐 본 김태형 좆 흔들기만큼 빨라 수혁은 그들의 절심함에 그만 헬 게이트로 다시 발을 디디고 말았다.

“삼촌, 그만 좀 하시죠. 밖에서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십니까?”

태형은 자기가 자위하는 걸 누가 봤음에도 전혀 부끄러워하는 태도가 없었다. 원래 이런 놈이라 자신도 당혹감 보다는, 게이물에 푹 빠진 그를 보며 환멸감이 느낄 뿐이었다. 생각해봤는데 이 세상에서 게이들은 다 사라져야 했다. 게이 치고 제대로 된 인간이 없었다. 특히 그 대표적인 인물로 김태형과 김주안이 있으니 우선 그들만 사라져도 지구는 평화로운 곳이 될 것이다. 백민호는 특별사면이었다. 우리 로이가 귀엽게 여기는 형이니 말이다.

“하아~, 걱정? 이 김태형을 감히 누가? 내가 걱정 받을만한 존재던가.”

어찌나 오만한지 자신의 말에 태형이 코웃음 쳤다.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다.

“부탁받은 말을 전달했으니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놈, 그것도 특히 삼촌 놈 정액 냄새를 맡고 싶지 않아서 빠르게 나가려고 하는데 김태형이 웬일인지 자신을 붙잡았다.

“앉아.”

한 마디였지만 자신을 불러 세우기에는 충분했다. 명령불복종은 쇠파이프로 두드려 맞는다. 8살짜리가 처음 만난 5살짜리 조카에게 ‘おじ (삼촌)’이 아닌 ‘あに (형)’라고 불렸다고, 어린 게 버릇이 없다고, 온갖 고문을 감행했다. 어머니는 자기 아들보다 동생이 더 소중해 자신이 그에게 맞고 있으면 ‘그러게 삼촌 말 좀 잘 듣지.’라며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김태형 편을 들었다. 자신이 그를 싫어하는 데에는 다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 양년이랑은 잘 되고 있냐?”

또 로이를 ‘양년’이라고 부르는 것도 자신이 그를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다.

“네. 백민호씨의 충고대로 하니 그런 데로 잘 되고 있습니다.”

“그래? 잘 됐네.”

태형이 서랍을 열어 콘돔 박스를 자신에게 던졌다.

“써라. 양년을 안심하게 만들고, 임신시켜버려. 구멍 뚫린 거다.”

아니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아기에게 ‘넌 이제 소림 무술을 하는 거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이 황당무계한 전개는 뭐란 말인가. 그래도 수혁은 그 콘돔을 잘 챙겨뒀다. 김태형에 대한 호감이 0.0001점 올라가는 것 같았다. 다행히 아직 게이 삼촌에 대한 호감도가 –999999+∞라 괜찮다.

“그래 잘됐다니, 드디어 고 앙칼진 주둥이에 좆 좀 물려봤나 보지?”

남녀 사이에서 잘됐다는 말이 펠라 정도는 해야 꺼낼 수 있는 말이었나 보다. 과연 자신이 로이랑 결혼한다 하더라도 그녀가 자신의 페니스를 빨아줄까 싶은데 말이다. 이러다 로이랑 영원히 잘되지 못하게 생겼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를 통해 알아본 바, 여자들은 펠라를 싫어했다. 그러니 자신은 절대 그녀에게 그 짓을 시키지 않을 거다. 물론 오늘 꿈속에서는 무진장 시킬 거다.

“병신 같은 놈. 어디 가서 내 조카라고 말하지 마.”

그건 자신이 하고 싶을 소리였다. 어디 가서 제발 김수혁 삼촌이라고 말 안했으면 싶다.

“그냥 술 먹이고 따먹는 게 제일 빨라. 그 계집애, 딱 봐도 처녀야. 그런 타입은 처음 할 때 질질 짜고, 아프다고 생난리 치는데 그때 책임지겠다고 하면 돼. 예식장 잡아 놨다. 일주일 안에 따먹고, 임신시켜서 한 달 안에 식장으로 끌고 와.”

“私に 威張り 散らさないでくれ。(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십쇼.)”

로이를 함부로 말하는 것도 싫고, 그녀와의 첫 경험을 그렇게 로맨틱하지 않게 보내는 것도 싫었다. 그건 자신 쪽에서 반대였다. 거기다 그런 건 꿈속에서 가능한 거였다. 자신이 로이를 현실에서도 그렇게 거칠게 다룰 수 있으리 없지 않는가. 바라만 봐도 너무 아까운데 어떻게 그런단 말인가. 김태형은 사랑도 모르는 짐승이라 그게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뭐야. 너 자신 없어? 도대체 좆은 왜 달고 있냐? 좆 병신 새끼. 가문의 수치다! 그 나이가 되도록 한 번도 안 써먹다니. 섹스 하는 법은 아냐? 널 성교육 시킨 내가 다 창피하네. 그냥 따먹어버려!”

삼촌의 버럭질에 조카는 기가 죽어 웅얼거렸다.

“…………それは お安い ご用です。(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갑갑하긴. 걘 건강하잖아. 그럼 열라 박아대도 괜찮을 거 아니야. 아, 씨발. 울 강아지는 졸라 아파서 내가 수절을 해야 한다고! 이 천하의 김태형이 너 같이 좆 병신도 아닌데!”

자꾸 집안 식구들이 자신을 고자로 오인하지만 자신은 아침 발기도 되고, 저녁 발기는 더 활발하게 이뤄지는 사내였다. 김태형이 강아지 보지 먹고 싶다며 컴퓨터 속 민호에게 정액을 뿌렸다. 화면이 뿌옇게 되고, 수혁은 구토감에 입을 틀어막고 뛰쳐나왔다. 눈 버렸다.

그래도 오늘 로이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밤참이 충분했다. 어서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김태형의 토악질 나는 행위를 잊어버리고, 그녀와 잔뜩 사랑을 나눠야겠다. 물론 꿈에서.

……그런데 콘돔. 유통기한은 없겠지? 써봤어야 알지.

수혁은 가방에 든 콘돔박스의 존재감에 어깨를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차에 올라탔다. 빨리 가서 로이 사진 보며 자신도 자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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