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2 외전-제발 닭털 좀 그만 날리고, 나 좀 도와달라고! =========================================================================
수혁은 국내 최대의 사채업 BD금융 건물 앞에서 깊게 숨을 들이셨다. 다름 아니라 자신이 이토록 긴장하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서도, 이곳의 주인인 자신의 삼촌이 꼴 보기 싫어서도 아닌 사랑하는 로이와의 재결합을 위한 중대한 방문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삼촌 김태형만큼 주변에서 여자가 떨어지는 날이 없었던 자도 없었다. 그러니 그 화려한 여성편력만큼 연애 분야에 탁월한 지식이 있으리라 싶었다.
선글라스에 마스크, 목도리로 중무장을 한 김 배우는 사채업 건물에 들어갔다. 만약 이 사실을 들켰다가는 뭔 루머가 떠돌지, 이미지 좋은 톱배우에게는 무척이나 위험 부담이 큰 목적지였지만 수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까지 올라갔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조폭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수혁은 어찌 이토록 변장을 하고 왔건만 자신을 알아보나 싶었다. 침대에 드러누워 드라마를 보고 있던 민호가 자신을 보더니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수혁씨, 안녕하세요.”
얼마 전 암수술을 한 그는 무척이나 수척했지만 표정이 밝아보였다. 수혁은 선글라스를 벗고 민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예. 민호씨, 잘 지냈습니까?”
그가 로이의 스타일리스트였다는 사실만으로 민호를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벅차고 흐뭇했다. 자신의 사랑스러운 그녀에게 옷을 골라주던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태형이 눈을 부라렸다.
“이게 어디서 끼 부려. 왜? 나한테 돈 빌리러 찾아왔냐? 오냐! 넌 무조건 100억 땡겨주마. 그거 못 갚고 어디 내 가게에서 열심히 사내 좆이나 빨며 앙앙대봐. 감히 우리 민호한테 눈웃음을 쳐!”
“아저어씨잉. 미노 그런 말 시쪄 시쪄. 조카한테 못된 말하는 삼촌은 시쪄.”
“…하지만 저 놈이 우리 강아지, 야시시한 눈으로 유혹해댔잖아. 울 강아지, 저 요망한 새끼한테 홀려서 도망가면 어쩌려고 자꾸 쳐다봐. 저 놈은 아직 여자 맛을 몰라서 병신 쪼다 같지만, 사람 홀리는 게 완전 요괴수준이라고. 위험하니깐, 쳐다보지 마. 이걸 확! 눈알을 꼽아버릴까 보다. 김수혁, 눈알 깔아라.”
“아이 참. 미노는 아저씨 건데. 무슨 걱정이람. 부끄부끄.”
누굴 게이로 모는지 모르겠다. 남자 둘이 앵겨붙은 모습을 보려니 속이 메슥거렸다. 그대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미노한테는 아저씨밖에 없다고요.”
민호가 태형에게 안겨서 앙증맞은 주먹으로 토닥토닥이고, 태형은 그걸 또 좋다고 끌어안고 뽀뽀를 퍼부어대는데 아무리 봐도 토밖에 안 나왔다. 그렇게 안 봤는데, 민호씨……비위가 좋은 거 같다. 김태형을 상대로 저런 애교가 가능하다니, 이건 기적이다.
수혁은 입을 틀어막고 우욱, 헛구역질을 했다. 조폭들이 이해한다는 듯 연민의 눈으로 쳐다봤다. 태형이 어디서 좆물 마시고 왔냐고 개소리를 했다. 이런 사람에게 조언을 얻어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고 안타깝다.
“삼촌, 상담할 것이 있어 왔습니다.”
“뭔데.”
“연애상담입니다.”
“우리 아기, 아저씨가 그렇게 무거운 거 들지 말라고 했지. 자, 이리 줘. 아저씨가 먹여줄게.”
사무실에 멀뚱히 서 있는 자신은 나몰라라 하고 태형은 민호가 뭐 대단한 걸 들기라도 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수저가 무겁다고 저런다. 지금 자신이 미친 게 아니라면 ‘그 김태형’이 ‘맘마 먹자. 아~.’하며 죽을 호호 불어 민호에게 먹어주는 모습은 환상일 것이다. 그건 결코 현실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아.”
“옳지, 우리 민호 잘 먹네. 우쭈쭈. 잘했어.”
“……삼촌, 저 지금 무지 심각합니다.”
“닥쳐! 지금 우리 강아지 밥 먹는 거 안 보여. 완전 중요한 순간이라고.”
수혁은 답답함에 목도리를 푸르고 주변에 앉은 데 없나 두리번거렸다. 돈을 빌리러 온 자들이 복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잠깐 머리 좀 식힐 겸 사무실에서 나와 자리에 앉자, 그들이 돈 빌리러 왔냐고 물었다.
“거 조그만 기다려요. 그럼 우리 복고양님이 이자율을 팍팍 깍아줄 겁니다.”
“그렇지. 저번에 난 3달 이자면제로 빌렸다니깐.”
도대체 복고양이는 뭐고, 이자면제는 뭐라는지.
수혁은 아니라고 대답하기도 무안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저씨 중 하나가 ‘어라?’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혹시……준식이?”
“아닙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지금 찍고 있는 드라마 템페스트에서 맡은 준호의 아버지 이름이었다. 수혁은 잽싸게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삼촌을 불렀다. 지금 죽을 더 먹네, 마네 하는 문제로 그들은 무슨 미국과 한국이 FTA 사항을 의논하듯 협상하고 있었다. 한쪽이 완전 우위에 섰다는 뜻이다.
“미노 배불러용. 한입만 먹고 끝낼래용.”
“더 먹어. 너 고작 3숟갈 먹었잖아. 지금 뼈밖에 안 남은 거 몰라?”
태형이 민호의 손목을 잡고 달달 흔들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민호는 심각하게 말라 거의 미라 수준이었다. 어디 에티오피아에 사는 아기 같아 유니세프에 후원해주고 싶은 몰골이었다.
우리 로이는 위암에 걸리면 안 되는데……, 나중에 커플 건강검진을 해야겠다.
“흑. 싫어. 먹기 싫다는데 왜 자꾸 먹으래.”
민호가 팽하니 울자 태형이 ‘걱정 되서 그러지.’라며 제 몸집에 비하면 너무도 자그마한 아기 그릇을 들고 쩔쩔맸다. 김태형 꼴을 보자니 참으로 통쾌했다. 언젠가 저 인간이 벌 받을 날이 올 거라고 믿었다. 완전 보모로 몰락한 게 쌤통이었다. 수혁은 이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오늘의 방문은 성공이었지 싶어 만족하고 이만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템페스트가 나와 민호가 자신을 불렀다.
“수혁씨! 싸인해주세요. 요즘 준식이 짱짱 멋있어요.”
“……그래, 수혁아. 싸인해주고 가.”
태형이 빙그레 웃으며 자신을 쳐다봤다. 존재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을 지닌 한국 흑룡회의 우두머리는 침대에 있어 구김이 간 수트를 입고서도 우아한 자태였다. 여기서 싸인을 했다가는 그대로 빌리지도 않은 돈을 연체하고 팔려나가게 생겼다. 자신만 보면 재수 없다며 파라다이스에서 남창으로 사용하겠다 들던 삼촌이었다. 그러니 희대의 악마가 자신의 싸인을 보고 그냥 넘어갈리 없었다. 분명 위조 계약서를 만들 인간이다.
수혁은 민호에게 개인적으로 나중에 만나면 해주겠다고 답했다. 태형이 수저를 우그러트렸다. 민호는 눈치도 없는지 ‘와! 수혁씨랑 데이트한다.’라며 들떴다. 누굴 골로 보내려고 저러나 싶다. 조금만 입 좀 다물어줬으면 좋겠다.
“야, 너 왜 왔냐?”
“…예. 그게 삼촌께 연애 상담을 받으러 왔는데요. 아시다시피 전 로이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로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어라? 수혁씨 우리 로이랑 결혼하게요? 우와! 완전 최강 커플이다. 아기도 짱짱 예쁘겠다.”
민호의 추임새에 태형이 ‘아기?’라며 반색을 했다.
“그래, 네가 있었지. 여기! 흑룡회의 미래를 짊어질 든든한 기둥이 있었어! 움화화화.”
태형이 자신의 어깨를 꾹 꾹 눌러 잡으며 무조건 로이랑 결혼하라고 했다.
“이 삼촌이 도우마. 너흰 무조건 결혼해야만 해. 난 민호한테 절대 시집살이 안 시킬 거다. 네가 애만 낳으면 누나도 나아지겠지.”
안타까운 조카의 사랑을 돕고자 나선 게 아니라 자기 애인이 시누이에게 괴롭힘 당하는 것 때문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주겠다는 거였다. 그거 참 불순한 이유이지만 수혁은 민호와 태형을 지원군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은 도와줄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얻을 때였다. 조카는 진지하게 ‘애는 남자 여자 고르지 말고 되는대로 순풍 순풍 낳아라. 삼촌이 성인용품 협찬해주마.’라고 말하는 태형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다.
“힘닿는 대까지 낳을 겁니다.”
“그래, 장하다. 내 조카. 자, 이리와 앉아. 삼촌이 모든 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마.”
“아저씨, 물심양면이 뭔가요?”
“어, 물질적이건 정신적이건 전력으로 도와주겠다는 뜻이야.”
“그거 한국말 아니죠? 미노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걸요.”
“………그러네. 우리 민호 모르는 말이면, 이거 한국말 아니지.”
수혁은 민호의 머리를 끌어안고 ‘너의 머리, 너무 작아 사랑스럽구나.’라는 표정으로 태형이 ‘그 양년이라고 다를 줄 알아? 아역 활동하느라 걔도 깡통이야.’라고 해서 아니라고 대꾸했다.
“우리 로이는 적어도 전교에서 20등은 합니다.”
“민호야, 말해봐. 너 초등학교에서 몇 등 했었어?”
“미노는 5등 했어요.”
작은 손이 꼼지락거리며 펼쳐졌다. 태형이 흐뭇하게 바라봤다. 같은 학년이 5명밖에 없었다고 민호가 천진하게 웃었다. 수혁은 터져 나오는 코웃음을 꾹 참고 태형을 바라봤다. 삼촌이 조금이라도 웃음소리가 들리면 네 후장을 개통시켜 버리겠다고 했다.
“전 삼촌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어머니는 아직도 삼촌께 거는 기대가 큰데…, 저 이만 가볼까요?”
“……여자는 말이야. 외제차에 미쳐. 심심할 때 람보르기니 끌고 여대 앞에 가봐. 그럼 얼굴 반반한 것들이 타서 카섹스하자고 덤벼들 거다. 어린 영계들이라 보지 맛이 꽤나 삼삼해. 그 양년, 아니 우리 조카며느리도 람보르기니 끌고 가면 타자마자 팬티 벗고 가랑이 벌릴 거다.”
“아저씨, 혹시 그거 경험에서 우러난 충고는 아니죠?”
“……어. 아저씨는 그런 남자 아니야. 울 강아지, 아저씨 믿지?”
“삼촌, 로이는 외제차에 안 미칩니다. 다른 방법은 뭐 없습니까.”
자신의 질문에 태형이 여자는 술 먹이고 모텔로 끌고 가면 된다고 했다.
“넌 얼굴이 깔삼해서 계집애들이 좆물 마시겠다고 달려들 거다. 그때 보지에다가 좆 넣고 이렇게, 이렇게 팍 팍 박아대라고. 젖탱이를 잡아 비틀면 아프다고 앙탈부리는데, 그때 뒤에서 네가 미친 듯이 박아줘야 보지물 흘리며 제대로 좆 조이는 거야. 여자는 별거 없어. 그냥 넣고 박아서 흔들면 돼. 안에다 싸지르고 손 넣고 긁어줘. 그럼 아주 자지러지며 밑구멍으로 좆물 싸댄다니깐. 그게 또 다른 별미지.
말 안들이면 묶어놓고 때리고, 좆 빨라고 시켜서 이 세우면 아가리를 때려서 이 몽땅 부러트려. 암캐들이 네 오줌도 받아 마시게 만들어라. 그게 진짜 군림하는 섹스다. 뭐, 조카며느리에게 해도 좋고. 그년은 딱 봐도 겁이 많아. 나한테 1시간만 시간주면 네 똥꼬까지 핥아먹게 만들어줄 수 있는데, 어때. 괜히 머리 굴리지 말고, 삼촌한테 맡길래?”
주먹 쥔 손으로 어떻게 여자를 박아대고, 때리는지 직접 시범까지 보여준 태형이었다. 수혁은 정색하며 그를 노려봤다. 손잡는 것도 아까운 내님을 상대로 뭘 하라고 지껄인단 말인가.
“로이 반경으로 100km 전급 금지입니다.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리면, 삼촌 넌 죽어.”
“까불지 마. 도끼로 대가리 깨버리기 전에.”
자신들의 대화에 민호가 옆에서 안 좋은 얼굴로 지켜보다가 자신이 사랑하는 건 인간 김태형이지 개새끼 김태형이 아니라고 하자, 삼촌이 자기는 절대 개새끼가 아니라고 했다. 이 모든 건 진표가 자신에게 가르친 거란다.
“진표가 그랬어. 알지? 김비서 남친. 걔가 완전 개새끼야. 여자를 완전 노리개 취급하고, 나한테는 그렇게 욕하라고 가르쳤다니깐. 아저씨는 전혀 욕 할 줄 모르는 인간인데 말이야. 민호야, 아저씨 계속 사랑해줄 거지?”
“네. 그럼요.”
둘이 이마를 맞대고 뽀뽀질을 해댔다. 도대체 자신보고 욕밖에 안 해주던 욕쟁이 삼촌은 어디 갔나 싶었다. 김태형이 자신은 고운 말밖에 안 사용한다고 우겨대는 날이 올 거라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네? 울 진표가 모텔에서 여자랑 뒹굴었다고요?”
책상에 앉아있던 곱상한 남자 하나가 울먹이며 뛰쳐나갔다. 뻔히 삼촌의 과거 이야기인 게 보이는데 어지간히도 진표라는 자가 믿음직스럽지 못하나 보다. 그래도 괜한 오해가 생기지는 않았으면 싶었다.
“그래서 우리 로이는 어떻게 하면 넘어올 것 같습니까. 정상적인 방법 좀 알려주십시오.”
자신의 질문에 인간으로서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김태형이 ‘여자는 외제차, 돈, 섹스로 꼬시면 돼’라고 답해줬다. 수혁은 김태형 조련자 민호를 쳐다봤다. 그가 비련미 가득하게 좁은 어깨를 감싸 안고 훌쩍였다.
“흑. 미노는 몰랐어요. 아저씨가 그렇게 천하에 죽인 놈이라는 걸. 아아~, 이제 민호는 아저씨가 못된 짓한 한 벌로 또 암에 걸릴지 몰라요.”
“잘못했어. 착하게 살게.”
태형이 풀이 죽어서 민호에게 제발 아프지 말라고 울먹였다. 그들을 보고 있는데 커다란 흑룡 한 마리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하얀 강아지가 앞발로 토닥여주는 광경 같았다.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별 걸 다 본다. 그런데 남자 둘이 저러는데 전혀 위화감이 없어 무서울 정도였다. 백민호라는 인물이 자신이 사랑하는 로이 보다 더 여자 같아 보이는 탓이었다.
“정말? 아이 기뻐라. 뽀뽀 쪽!”
까치발을 들고 태형의 볼에 뽀뽀를 한 민호를 보며 수혁은 심란해졌다. 비주얼적으로만 보면, 그들이 정상적인 로맨스고 자신과 로이는 게이 커플이었다. 물론 우리 로이도 치마 입고 가발 쓰고 여자처럼 화장하면 무지 예쁠 거라 믿는다. 남자 따위한테 질 수 없다.
“삼촌! 그래서 어떻게 하면 로이랑 다시 사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도대체 김태형한테 연애 방법 하나 듣기가 뭐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온 신경이 자기 애인한테 가 있어서 대화의 주제가 자꾸 다른 데로 새어나가 버리곤 말았다. 이 인간한테 풍부한 여자 경험이 없었다면, 자신도 이렇게 힘든 상담을 하지 않았을 거다. 자신의 외침에 태형이 민호를 꼭 끌어안고 ‘보쌈 해버려.’라고 했다.
“앗, 보쌈 먹고 싶어. 아저씨, 미노 보쌈 먹어도 되요?”
“의사가 위에 부담 주는 거 먹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조금만 참고 죽 먹으면 안 될까?”
민호가 보쌈 먹고 싶다고 울먹거렸다. 태형이 얼른 시키겠다며 손짓으로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진짜 울고 싶은 건 자신이었다. 이 게이 커플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아무래도 결론은 김태형은 개새끼였을 때나, 그나마 인간이 되었을 때나 자신의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로 끝날 듯싶었다.
1시간 내내 하도 닭털을 날려 대서 서러웠다. 로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울 로이도 백치미 뚝뚝 떨어지게 애교 좀 부려줬으면 좋겠다. 어째서 신은 저런 쓰레기한테는 귀여운 연인을 주고, 자신에게는 로이같이 힘든 연인을 줬나 싶다.
수혁은 민호가 ‘꺄아~, 신난당. 아저씨 사랑해용’ 애교를 부리는 걸 보고 그의 몸통 위에 로이의 머리를 얻은 모습을 상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한발자국만 더 나갔으면 옷 벗기고 뒹구는 수위까지 갈 뻔했다. 이래서 우리 로이는 애교가 있으면 안 되는 거였나 보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쓸모없는 삼촌, 제가 노총각으로 죽으면 다 삼촌 탓인 걸로 아십시오. 그럼 민호씨. 보쌈 맛있게 드세요.”
자신의 작별 인사에 태형의 팔에 들린 민호가 ‘로이한테 너무 잘해주지 마세요.’라고 했다.
“네?”
“우리 로이, 너무 주변 사람들한테 떠받들려지고 사랑만 받은 아이에요. 그래서 수혁씨가 로이한테 잘해주고 오냐오냐 하면 그 수많은 사람들의 대열에 낄 뿐이라고요. 나쁜 남자가 되세요. 울 아저씨처럼 개쌍놈이 되라는 건 아니고, 주변 여자한테는 다 친절한데 나한테는 이상하게 차가운, 뭐 그런 거 있잖아요. 밀땅 좀 해요. 옆에서 구경하는데 완전 로이한테 끌려 다녀서 불쌍했다고요. 아무리 사랑해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어요.
사랑은 완전히 알게 되면 흥미를 잃어요. 그러니깐 로이한테 새로운 모습도 보여주고 그래요. 나쁜 남자 되는 게 어려운 것 같으면, 배역 하나 만들어서 연기해요. 배우니깐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그렇다고 너무 밀기만 하지 말고요. 로이, 완전 공주라 자기한테 관심 안 보이면 토라져요. 그러니깐 그때 짜잔! 왕자님처럼 멋지고 다정하게 대해주세요. 그럼 바로 넘어올 거예요. 수혁씨, 파이팅!”
“………고맙습니다. 민호씨.”
“천만의 말씀을.”
로이 옆에서 스타일리스트를 하던 때의 모습으로 잠깐 돌아갔던 민호는 태형과 뺨을 마주하자,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백치 마냥 혀 짧은 소리로 애교를 부려댔다. 연애라는 게 정말 쉬운 게 아닌 듯싶었다. 수혁은 집으로 돌아가 매력적인 나쁜 남자에 대한 캐릭터를 연구해보기로 했다. 구제 불능의 불연성 쓰레기 김태형을 인간으로 만든 자의 말이니 믿을 만했다. 그나저나 정말 백치 연기가 일품이다. 누가 보면 진짜 ‘물심양면’을 모르고, 초등학교 때 ‘5명 중 5등’이었는 줄 알겠다.
그는 피식 웃으며 ‘그럴 리 없지.’하며 애교 많은 연인을 얻은 자신의 삼촌이 참으로 복 받은 남자다 싶어 부러움을 느꼈다. 남자 애인이라 천만다행이었다. 혹여나 김태형의 2세가 태어나는 날에는 인류에 크나 큰 폐해를 끼칠 테니 말이다. 민호는 본의 아니게 세상을 구한 거였다. 분명 김태형 주니어였다면 히틀러보다 백만 배 사악한 폭군이었을 거다. 물론 로이와 자신의 딸은 온 우주를 통틀어 제일 사랑스러운 존재일 테고 말이다.
“하아~.”
건물에서 나온 수혁은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이 우리 로이의 눈 색깔이라 어딜 가도 그녀 생각밖에 안 났다. 아이는 누구를 닮아도 좋으니 제발 결혼이나 하고 싶다. 이제 몇 달만 더 있으면 마법사가 되는, 29살 동정이라 슬픈 하루였다.
============================ 작품 후기 ============================
크흑...오랜만에 와서 죄송하지만 제가 앞으로 더더욱 바빠질 것 같아요.ㅜㅠ 벌려놓은 일이 워낙 많아서...그래도 무조건 완결을 낼게요.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