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69화 (69/104)

00069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네   =========================================================================

로이는 최민이 인터뷰를 하기 전, 먼저 선수를 쳐야한다는 주안과 수정의 의견으로 기자 회견장을 마련해뒀고 그곳에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최민이 입을 열기 전, 로이 테일러가 여자라는 게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했다. 자신의 기자회견 소식을 듣고 참 많이 다급했던 모양이었다. 인터넷을 쭉 살펴보며 사람들 반응이 너무 웃겨서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키키키. 누나, 내가 진짜 여자면 무지 재미있겠다.”

“………로이야, 너 여잔데.”

너무 충격적이라 정신머리가 우주로 날아갔나 보다. 로이는 핸드폰 액정을 뚫어지게 보며 로이 테일러가 여자라는 증거들이, 그래 봤자 ‘내가 19년 전에 아침 방송 봤는데 로이 엄마가 여자라고 했다.’라는 소수의 증언들이 나오는 걸 보며 피식 웃었다. 어차피 자신이 확실한 증거를 내밀면 다들 ‘잘못 본 거겠지.’라며 쏙 사그라질 무리들이었다. 그저 이번 기회로 고개를 들었을 뿐, 카더라 통신들은 그런 존재들이었다. 만약 그들이 진짜 자신을 여자라고 믿었다면 왜 그전까지는 잠잠했겠는가. 그건 자신의 기억에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들은 뭔 가십이 돌아도 자기가 봤다고 참여하는 부류였다.

로이는 방송국에서 그 아침 방송 테이프가 분실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게 없는 한 이런 여론은 헛소문일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자신에게는 핸디캡이 있지 않는가. 이 루머가 진짜라 거 말이다. 그럼 자신은 떳떳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거였다. 연예계 사람들은 입이 세 개라 하나는 밥 먹을 때 쓰고, 다른 하나는 술 마실 때 쓰고, 마지막 하나는 남 욕할 때 쓰기 때문에 언제 이걸 진실로 만들어낼지 몰랐다.

하마 못해 세계적인 팝 황제 마이클 잭슨조차 아동 성추행범이 아니건만, 월드 콘서트 일정 때문에 고소인과 합의를 봤고 그 결과 왜 죄가 없는데 거액의 돈을 주고 합의를 했겠냐며 하루아침에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기게 되었다. 팬들은 결백을 주장하는 마이클 잭슨을 믿어주지 않았다. 고로 로이 테일러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거였다. 어쩌면 소문은 트랜스젠더나 게이라는 쪽으로 흘러갈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누나, 혜영 누나 만나러 가자.”

“거긴 왜. 빨리 가서 기자 회견해야 해.”

로이는 대답 대신 다리를 꼬고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수정이 구시렁거리며 차를 돌렸다.

“나만 믿어. 내가 누구야. 로이 테일러라고.”

“그래, 나 너 믿어. 믿는다고.”

자꾸 믿는다고 하니 못 믿겠다는 말로 들렸다. 포털사이트 검색어창이 빠르게 바뀌었다.

로이 보그.

노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자신을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해줘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세계판 보그 화보 모델이 된 최초의 한국 아이돌 로이, 라는 내용들이 쫙쫙 복사 되어 뿌려지는 걸 보니 이거 참 타이밍 기가 막히다 싶었다. 사진을 보니 누가 뭐라고 해도 이건 상남자다. 그것도 초랄 섹시한 남자 말이다.

의도적으로 흘린 게 분명한 수정 전이라는 심장 수술 자국이 있는 사진을 보고 네티즌들이 난리가 났다. 무슨 수술을 했냐, 왜 우리 예쁜 로이 가슴에 상처가 있냐, 수술 자국 치료 못 하냐, 뭐 대충 그런 내용들이 줄줄이 나왔는데 그 다음으로 뿌려진 보도 자료는 자신의 6년 전 짧은 휴식기가 사실 알고 보니 심장 수술 후의 요양이었다는 내용이었다. 거식증 당시 삐쩍 골았던 사진도 나오면서 하루아침에 힘겨운 투병 생활을 이겨낸 기적의 사나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로이는 핸드폰을 꺼버렸다. 계속 사람들 반응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Reve가 거대 자본으로 여론 몰이를 하는 거라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가는 사람들을 보려니 마음이 무거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속이는 거……. 그건 김수혁 하나로 충분했다.

***

대기실에 앉은 로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워터 프루프로 아이 라인을 그리라고 했다. 물론 울다가 살색 눈물이 흘러내리면 추하니, 워터프루프 타입 리퀴드 파운데이션도 썼다. 거기다 창백해 보이기 위해 일부로 보라색 립스틱을 바르고 파우더로 색을 죽였다.

살짝 울고 왔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 큰마음 먹고 준비한 티어스틱을 발랐다. 그 매서운 효과에 주룩주룩 눈물이 나오는데 아무리 봐도 조만간 로맨스 멜로 하나 찍어야할 것 같았다. 감성 폭발이었다. 거울을 보며 휴지로 살짝 눈물을 닦아주고 있자 수정이 혀를 찼다. 자신더러 독하다고 했다.

“내가 뭘.”

“너 이러면 그 여자 한국 땅 못 밟는 거 알지?”

“누가 밟지 말래?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최민, 국외 추방시켜. 그저 난 내 보호를 하는 것뿐이라고. 거기다 그 뒷사정이야 팬들이 그럴 거라는 가정이고, 아닐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수정이 혀를 차며 아무튼 잘하고 오라고 했다. 지금 위기에 몰린 건 자신인데 최민 한방 먹이는 비장의 카드를 준비했다고, 최민 편이나 들고 소속사 이사로서 실격이었다. 로이는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 푸르고 대기실에서 나왔다. 약속된 시간을 5시간이나 미룬 자신을 보는 기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혜영 누나가 아무리 세계적인 특수 분장사라도 자신이 부탁한 정도의 작업은 그 정도 걸렸다.

자리에 앉기 전에 일단 허리 숙여 사과를 건넸다. 늦어서 죄송하다고.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인사하니 기자들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오래 기다려서 짜증난 상태지만, 그들은 자신의 부어오른 눈을 보고 대충 ‘쟤 울고 왔나 보다.’ 정도로 생각하며 이해해주는 것이다.

최민 쪽은 이미 기자 회견이 끝나 기사가 나갔고, 그녀는 사진 정도야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Reve의 대응을 반박했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을 했는데, 그건 바로 엄마가 아기인 자신을 안고 ‘로이는 여자 아이.’라는 발언을 했던 방송을 녹음했던 테이프를 공개했다는 거다. 빼도 박도 못하게 로이 테일러는 여자라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는 자신도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그 정도 준비도 안하고 공격했으리라고는 생각 안했다. 카메라의 빨간 불빛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나지막하게 힘들다고 중얼거렸다. 혼잣말 같지만 시청자들이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로이는 ‘씩씩한 척 보이지만, 난 안 괜찮아.’ 표정으로 고개를 정면으로 든 채 자리에 앉았다.

“오래 기다리게 해 죄송합니다. 그리고 오늘 시간 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회적 분란을 일으켰음으로 공인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현재 아이돌 스타의 기자 최민 씨를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소한 상태입니다. 그녀는 고의적으로 인터뷰 내용을 날조했고, 마치 그것이 사실인 양 퍼트렸습니다. 저 때문에 아무 상관없는 여자 연예인분들이 피해를 입게 되어 정말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전 이 자리에 해명하러 나온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해명은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한 게 없는 저는 해명을 할 게 없습니다.”

로이는 조용히 입을 닫고 기자들을 훑어봤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온 건 저를 사랑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누구의 탓이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어쩌다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까지 듣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여자라고……. 하아~. 기가 막힙니다. 언제는 저보고 자기 가슴을 봤다는 둥, 여자 아이돌을 임신 시켰다는 둥, 기사를 쓰더니 제가 여자면 그게 가능합니까. 이미 밝혀졌다시피 최민 기자는 허무맹랑한 상상에 사로잡힌 여자입니다. 없는 내용을 만들어 기사를 쓸 정도로 상상력이 풍부한 분이죠.

그녀가 제시한 비디오는 저도 봤습니다. 제가 그 나이의 일을 기억할 수 없어 잘 모르지만, 어머니께서 잘못 말했던지 아님 그녀가 조작한 것이겠지요.………조작.”

로이는 피식 웃었다.

“재미있는 말이네요. 제가 화보 찍은 걸 보고 조작이라고. 그런데 그럼 최민 기자도 영상 조작이 가능한 거 아닌가요? 단어 하나만 바꾸면 되는데. ‘아들이에요.’를 ‘딸이에요.’라고.”

로이는 카메라 앵글을 응시한 채 무겁게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남자라는 증거를.”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단추를 하나 하나 풀었다. 기자들이 미친 듯이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어댔다. 이것만큼 확신할 해결 방법이 없을 것 같아 특수 분장을 한 상태였다. 사실 욕심나는 작품이 있어 남자 가슴을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최근 미국 시장에 CF를 많이 내놓으면서 할리우드쪽에서 영화 제의를 받았다. 천재 시인이자 동성애자였던 랭보 역을 위해 준비해놓은 거였다. 그런데 상반신 노출이 너무 즐비하게 있다고 시나리오 보고 주안이 안 된다고 했다.

로이는 사람들에게 가슴을 보여주고 옷을 여몄다. 이번에 가슴이 가짜라는 게 안 걸리면 김 사장을 한 번 더 설득해볼 거다. 자신도 배우라 오스카 영화제에서 상 받고 싶다.

“가슴 상처가 콤플렉스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렇게 창피한 기분을 겪고 싶지 않습니다.”

눈을 내리깔고 로이는 탁상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였다. 이 정도 연기력이면 오스카 남우주연상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와이셔츠 단추를 꿰맸다. 수정이 뛰쳐나와 부축해줬다. 로이는 비틀거리며 수정에게 기댄 채 퇴장했다. 적어도 기자회견에서 이런 쇼맨십 정도는 보여줘야 되지 않는가. 짧고 굵게! 그런데 최민의 기자 회견 전문을 읽어봤는데 무려 10페이지나 됐다.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누가 그걸 다 보고 기억해주겠는가. 그 여자는 그런 면에서 한참이나 연예계 생리를 몰랐다. 그러니 재기를 못하는 거겠지만 말이다.

보디가드들이 서로의 팔을 붙잡고 길을 만들어냈다. 로이는 복도 마다 들어차 있는 기자들 때문에 혼신의 연기를 하며 힘겨운 척 이동했다. 일단 잠깐 휴식기를 가지기로 했다. 요 몇 년 계속 달리기만 하고 쉬지 못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템페스트 마지막 회 촬영이 남았다.

벤에 올라타 삼촌한테 문자를 보내봤다. 언제 촬영 스케줄 잡았냐고 하니깐, 바로 전화가 왔다. 혹시 김수혁이랑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다.

“아니, 왜? 뭔 일 있어?”

그가 그렇게 나가버려서 자신도 마음 안 좋았다. 하지만 영원히 사귀는 걸 숨기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자신에게 시간 빼앗겨서 황금 같은 결혼적령기를 놓치고 그 잘난 남자를 평생 노총각으로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가 다른 여자랑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면 배 아프겠지만. 너무 질투 나서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로 심장이 타들어가겠지만,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에게 그 모든 기회를 앗아가고 싶지 않았다. 왜 그때 헤어져주지 않았냐는 원망의 소리 따위 듣고 싶지 않다.

김수혁한테 미움 받는 게 팬들에게 미움 받는 것보다 더 무섭다.

로이는 빨리 준호 오피스텔로 오라는 삼촌의 말에 혹시 이 인간이 손목이라도 그었나 싶어 걱정되었다. 저번에 자신이 집에 놀러가자 리나 따라하겠다고 엽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돼지 털보가 스텝들 먹을 것 좀 사오라고 했다. 울 꼬맹이, 연기에 물 오른 거 보고 감동했다며 오늘 촬영하겠냔다.

“……기자회견 봤어?”

“어, 잠깐 휴식 갖고 봤지. 으하하하. 푸하하하하. 콤플렉스예요. 다시는 이런 창피한 기분 받고 싶지 않아요. 크크크. 확실히 네가 가슴 콤플렉스 있지.”

로이는 자신의 놀리는 삼촌의 말에 가슴 가짜인거 티 나지는 않았냐고 물었다. 다행이 급히 분장한 것 치고는 제법 괜찮았나 보다. 하긴 그래서 혜영에게 특수 분장을 받은 거였다. 물론 그녀의 실력에 비례해 가짜 가슴이 한번 쓰고 버리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비쌌다. 고급 세단 승용차 한 대 값이었다. 로이는 셀카로 찍어 킹 오브 게이 김주안에게 밤에 반찬으로 쓰라고 보내줬다. 바로 전화 왔다. 자신의 깜찍한 도발에 그가 귀청이 떨어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너 지금 제정신이 박힌 거야! 도대체 생각이 있어 없어. 사람들 앞에서 벗질 안나, 그걸 왜 또 나한테 찍어서 보내. 왜 이렇게 무방비해!”

“어차피 세미 누드는 인터넷에 떠돌 텐데 뭘. 괜히 좋으면서 왜 그래 김게이. 키키.”

그런데 주안이 울먹이면서 너무한다고 했다.

“너 너무해. 너무 잔인해. 악의 없다는 거 알지만, 너 정말 밉다.”

로이는 갑자기 이 인간이 왜 이러나 싶었다. 음. 그러고 보니 백게이가 조폭이랑 눈 맞아서 졸지에 버림받았지. 이해해주기로 했다. 어디 참한 게이 하나 있으면 소개 시켜주고 싶은데, 주변에 게이라고는 김주안이랑 백민호, 김태형밖에 없었다. 스네이크가 게이 그룹이기는 한데 이미 그들에게는 공주님이 하나 있는 관계로 소개팅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자신의 주위에는 게이 천지인 것 같다. 하다못해 뇌출혈 놈들도 게이이지 않는가. 그렇다고 자신에게 고백한 남자 연예인들을 소개시켜주기에는 김게이가 너무 아까워서 안됐다. 요리 잘하고, 청소 잘하고, 잘생기고, 사업 수완 좋고, 착하고, 노예근성 쩌는 인간이라 신부를 아주 잘 골라줘야 했다. 김주안은 여우같은 게 걸리면 아주 팬티까지 벗어다줄 호구였다.

“……로이야, 내가 화내서 말씹는 거야? 미안해.”

잠깐 딴 생각 하는 사이에 주안이 울고 있었다. 그는 끅끅거리며 Je t'aimerai toujours라고 했다.

“뭐라고? 뭔 개소리야. 주 어쩌고?”

“아니, 몰라도 되는 말이야. 그런데 너 지금 어디야?”

“준호 오피스텔 가는 길. 삼촌이 촬영장 놀러오라고 해서. 그런데 형, 내가 지금 편의점 가서 간식 잔뜩 사고 그러면 이상하겠지? 뭔가 분위기상 자숙을 해야 할 것 같고, 슬퍼하면 울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그런 타이밍이잖아.”

“어, 이상하니깐. 집에 가 있어. 감독님한테는 내가 말해둘게. 일주일 정도 쉬어. 스케줄 빼놓을 테니깐.”

“근데 김수혁이 이상하다던데?”

“그쪽도 프로니깐, 믿어. 제대로 촬영은 하겠지.”

“뭐 그러긴 해.”

수정이 자신들의 대화를 듣고 U턴을 했다. 함께 일한지 오래됐던지 눈치가 백단이었다. 뭐 자신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챙겨주는 김 남매 덕분에 여러모로 편하니, 좋았다.

============================ 작품 후기 ============================

오랜만이라 죄송해요.ㅜㅠ 3월달에 있는 공모만 끝나면 널널해질 거랍니다.

참고로 주안이는 '영원히 널 사랑해.'라고 한 것입니다.

아...손발이 오글오글...사라질 것 같아..주안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