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7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네 =========================================================================
민호는 합성을 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비슷한 체구의 남자 상반신에 자신의 머리를 얹으면 되지 않겠냐고. 말이 되는 소리였다. CF에서 나오는 몸이 사실 연예인의 실제 몸이 아닌 바디 모델의 것이라는 걸 시청자는 모를 테지만,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며 얼마나 영상이라는 게 믿지 못할 것인지 민호는 알게 되었고 잠시 잊고 있던 자신에게 일깨워준 거였다.
“로이 한번 벗으면 사람들이 계속 벗기려 들 거야. 그럼 어쩔 건데. 무대 위에서 벗으라고 하면? 화보 찍자고 에디터가 벗기려고 들면? 그동안 왜 노출 안했다고 물으면?”
주안의 물음에 민호가 끙끙 앓더니 ‘그럼 상처 있어서 노출하기 싫다고 하는 거야. 사실 내가 보이고 싶지 않은 흉터가 있어요, 하고 울면서 기자회견을 하면 사람들이 안 벗기지 않을까?’ 물어왔다. 로이는 혹시 이 형이 천재가 아닐까 싶었다. 바보 주제에 제법이었다.
“그래, 그거 좋겠다. 지금은 시간 없으니깐 일단 사진으로 다가 화보 하나 찍으면 되겠다.”
주안이 스튜디오 예약하겠다며 폰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모든 건 자신이 웃통을 까야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잠깐만. 지금 나보고 벗으라고? 뭐……. 해볼게.”
“절대 안 됩니다! 누드라니. 저도 못 본 로이 가슴을!”
로이는 수혁의 말에 저 변태는 그냥 화초 마냥 관상용이지 싶었다.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이 헐벗고 사진을 찍게 생겼다는 게 아니라, 로이 테일러가 여자라고 밝힐 최민의 기자회견 전에 뒤통수를 치는 거였다. 그래도 생긴 건 워낙 청초해서 그런지, 수혁의 얼굴은 황진이가 다른 사내에게 화초를 올릴 수밖에 없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이 도령과 아주 비슷했다. 괜히 야반도주하자고 꼬시고 싶은 얼굴이다.
김수혁이 조금만 못 생겼어도 차버렸을 텐데, 볼 때마다 뭘 먹고 자라서 이렇게 잘생겼나 싶을 정도로 흐뭇해지는 얼굴이라 자꾸 그의 변태스러움을 참게 되었다. 역시 이 세상은 얼굴이 다였다. 물론 그 때문에 자신도 먹고 사는 거겠지만, 참으로 불공평하기는 했다.
“로이 가슴이 아니라, 다른 사람 가슴 보여준다고, 김수혁씨! 말귀 좀 알아들어 줄래?”
“그래도 안 됩니다. 로이가 벗은 걸 누군가 찍어야 될 거 아닙니까. 사진이라면 제가 찍겠습니다.”
“그래서, 합성하는 법은 알아?”
“……배우면 됩니다.”
“초보자 따위가 할 거면 차라리 안하는 게 나아. 들키면 끝이라고. ………걱정 마. 내가 할 테니깐.”
주안과 수혁의 대화를 듣던 민호가 ‘어, 맞다. 형 영상 전공했지?’라며 아는 척해왔다.
“형, 심장 수술해서 상처 있잖아. 그거 로이꺼라고 구라치면 되겠다.”
로이는 둘이 침대에서 뒹굴어야만 알 수 있는 사실을 바보 민호가 말해버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태형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우화화 크게 웃었다. 저 미친 조폭이 김주안의 목을 따버리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위기의 순간에 최대 조력자를 잃게 되고 말 것이다.
“우리 민호,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쁠까나. 오빠랑 뽀뽀 한번 할까?”
로이는 민호에게 다가가 주둥이를 쭉 내밀었다. 그가 ‘하지마아앙~.’하며 앙탈을 부렸다. 태형이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채더니, 목덜미에 칼을 드밀었다.
“뒤질라고 어디서 꼬리질이야. 그 곱상한 상판을 저며 줘야 정신 차리지!”
“손 치워. 로이 건드리기만 해. 그럼 얘도 죽는 거야.”
어쩌다가 자신의 인생이 조폭영화가 된지 모르겠다. 수혁이 민호의 목을 팔로 죄이며 목뼈를 바스라트리겠다고 했다. 그의 건강한 팔에 작은 머리통이 끼어있으니 민호가 참으로 연약해보였다. 로이는 그의 등을 때리며 어서 놔주라고 했다. 태형이 잽싸게 자신을 놓아주고 민호를 챙겼다.
“걱정 마. 걱정 마. 민호야. 아저씨가 저 새끼 죽여줄게. 널 나한테서 떨어트리는 건 무조건 죽어. 그러니깐 저 새끼도 죽어.”
태형이 민호의 뺨에 입술을 비벼댔다. 민호는 조카를 죽이는 삼촌이 이 세상에 어디 있냐며 친하게 지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확고하게 수혁을 노려보며 손안에서 칼을 돌렸다. 결국 아랫사람인 수혁이 물러서기로 한 모양이다. 조카는 정중하게 민호를 위협한 걸 허리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백민호씨. 다시는 로이에 대한 위협이 없는 한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삼촌! 우리 로이,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또다시 선 보고 싶습니까? 제가 삼촌의 애인 분을 존중해주는 것처럼, 삼촌도 로이를 존중해주십시오. 로이를 양년이라고 부르면 어머니께 연락드리겠습니다. 삼촌이 미친 듯이 여자랑 결혼하고 싶어 한다고.”
예의바르면서 확고한 수혁의 태도에 태형이 바로 꼬리를 말았다.
“양…아니 너, 우리 강아지한테 요사 떨지 마. 네년이 아무리 나한테 역겹다한들, 넌 더럽게 섹시하니깐.”
도대체 더럽게 섹시한데 역겹다는 건 또 뭘까 싶었다. 태형이 민호를 꼭 안으며 ‘우리 아기를 너무 넘보는 연놈들이 많아서, 아저씨 슬프다. 우리 민호가 조그만 덜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섹시하면 얼마나 좋을까.’라 했다. 로이는 착각 속에 빠져 사는 게이들을 보며 혀를 찼다.
“힝. 미노가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섹시한 건 어쩔 수 없는 걸용. 아저씨는 참~.”
로이는 슬쩍 주안의 눈치를 봤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호와 저러고 놀았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아니 오히려 소름 돋도록 냉정하게 그들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사랑이 떠났다고 단번에 감정이 정리됐으리 없다. 아마 주안은 민호를 만났을 때부터 그 사랑을 정리하기 시작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남자끼리의 사랑은 아무래도 결혼이나 아이와 같이 사회적 약속이 없으니, 언제 헤어져도 이상할 것 없지 않는가. 사랑도 감정이니 언젠가 흐릿해질 것이고, 무뎌질 텐데 속박이 없는 커플이 계속 함께하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 주안과 민호가 헤어져버린 것처럼, 태형과 민호도 저리 좋다고 붙어있어도 언젠가 헤어져있을지 모른다.
그게 그들의 사는 세계의 사랑이지 않나 싶다. 자신도 여자이지만 남자 아이돌로 활동해 수혁을 좋아하는 마음 한편으로는 언제든지 이별해도 괜찮을 정도로 감정을 차갑게 식히고 헤어질 걸 염두에 두고 만나고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고 수정이 들어왔다. 밖이 어수선하다 싶더니만 기자들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뒤이어 리나가 따라 들어왔다.
“흐아. 힘들어 죽겠다.”
수정이 이마를 훔치며 ‘로이야, 너 기자회견하기로 했어. 준비해.’란다.
“아우 썅. 내가 진짜 친구 하나 잘 둬서 국민 껌 됐어. 아주 쫄깃쫄깃 잘 씹어대네? 내가 폭주를 뛰던, 모텔에서 나오던 지들이 무슨 상관이야?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초코바 100개 사내.”
이번 스캔들로 리나가 또 사람들에게 씹힌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모텔에서 나오는 걸 찍혔다니, 혹시 다른 남자랑 나오는 거 들켜냐니깐 예전 사진이란다. 요즘은 남친 집에서 해서 상관없다고, 거기다 모텔 사진은 여자랑 나오는 거라 아무도 섹스하고 나왔다는 걸 모른다고, 너한테는 피해 없다고, 리나는 웃었다. 근데 기자들이 자꾸 과거를 헤집고 지랄을 떨어서 요즘 다시 꼰대가 요양원으로 보내려고 든다고 했다.
“미안해. 리나야.”
로이는 하나밖에 없는 친구를 꼭 안아줬다. 수혁이 눈에 불을 키며 ‘게이도 모자라 레즈비언이라니, 한국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없습니다. 한창 성정체성을 잡혀가는 로이의 주위에 이런 자들만 있다니.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저랑 결혼해서 어서 확고한 성정체성을 갖추죠.’라는 되먹지도 않은 소리를 했다. 은근슬쩍 청혼하려고 들고, 순둥이주제에 이제 능구렁이가 다됐다.
“형, 웃기지마. 결혼. 난 그거 평생 못해. 결혼하고 싶으면 다른 여자랑 하던가.”
“……왜 못합니까? 우리 사랑하잖아요. 우리 사귀는 사이인지 않습니까. 그리고……저 로이랑 사귀고 있는 것 맞습니까? 아니, 우리 지금 사랑하는 거 맞나요?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최소한 절 애인으로 생각했다면, 절대 다른 여자랑 사귀라는 말은 안 할 겁니다.”
“그럼 헤어지던가. 아님, 계속 숨어서 사귀든지.”
자신의 선택사항에 수혁이 하, 짧게 헛웃음을 짓더니 나가버렸다. 괜히 분위기가 이상해져버렸다. 꿀꿀함에 리나에게 안겨서 어리광을 부리자 그녀가 머리를 쥐어박았다.
“너 너무 이기적이야. 잔인해.”
“알아. 그런데 어떻게. 현실이 그런 걸. 괜히 나랑 사귀고 있다가 혼기 놓치는 것보다 백번 낫지.”
“……바보 같긴. 거기다 지가 제일 어른이라고 착각까지 하고.”
사랑 노릇하고 살기에는 자신의 삶은 너무 번잡스러웠다. 고작 십대 잡지에 인터뷰 나온 것 가지고 사람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이때가 기회이라는 듯 자신을 추락시키려고 인터넷은 들끓을 텐데 그동안 한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로이는 스읍, 숨을 가다듬고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돌 로이 테일러 배역에 몰입해봤다. 고개를 들고 활짝 웃어봤다. 나 여전히 멋지지?
“나가자. 너랑 나 사진 찍해야 되니깐.”
로이는 리나의 어깨를 감싼 채 병실 문을 열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플래시 때문에 눈이 아팠으나 눈을 부릅떴다. 눈 감은 사진 만큼이나 못나 보이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눈이 너무 매어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이건 또 무슨 기사로 나올까 싶어 머리 아팠다. 무대 위에서 아이라인 때문에 울어도 기사 나고, 플래시 때문에 눈 시려서 울어도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 울면 안 되는지 그게 다 특별나고 사연 있는 것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굳이 그걸 밝히고, 로이 테일러도 인간임을 알려주지는 않기로 했다. 잔뜩 상상하고 환상을 가지고 자신을 보라고 일부로 처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 모두들. 빠릿빠릿 움직여줘. 나를 욕하든, 최민을 욕하든. 날 언급하고, 날 위로 올려 보내.
기분 나쁘게 똥 밟은 걸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화제가 되는 것만큼 연예인에게 홍보도 없었다. 거기다 이건 처신만 잘하면 자신의 생명력을 더 길게 해줄 사건이었다. 최민은 고맙게도 자신을 띄어주기 위해 온몸을 다 받치고, 인생을 희생해준 고마운 은인이었다.
로이는 보드가드들이 길을 떠주는 대로 걸어 나갔다. 주안이 뒤에서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절대 로이 테일러는 이 정도로 무너질 아이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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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해요. 설날이라 친척 얼굴 보고, 삶이 아주 고달파요.ㅜㅠ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