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66화 (66/104)

00066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네   =========================================================================

“형, 내가 막 호색한처럼 보여?”

“아니, 당근 아니지. 넌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 최고의 엔젤. 로이 테일러라고!”

그렇다. 자신처럼 사랑스러운 남자 아이돌도 없을 거였다. 물론 원래 성별은 여자지만, 그거야 아무도 모르니 자신은 그러한 평판은 지닌 자였다. 거기다 스타일리스트가 딸기 하나 가지고 짓무르도록 쪽쪽 빨아먹는 걸 보고도 성질을 내지 않을 만큼 자신은 착하고, 아픈 그를 위해 연예인이 직접 딸기 셔틀이 되어서 찾아올 만큼 자상했다. 또 게이 둘이서 이마를 맞대고 ‘사랑해. 강아지.’ ‘아니요, 미노가 더 짱 짱 많이 사랑해요.’라는 헛소리를 들어줄 만큼 성격이 좋았다. 이건 비위라고 해야겠지만, 일단 자신은 겉으로 보이는 건 참으로 완벽한 스타였다.

“그는 천부적인 카사노바처럼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음, 똑똑해. 이런 걸로 허위사실 유포라고 고소할 수는 없잖아. 뭐 칭찬이라고 하면 칭찬일 수도 있고. 이러니 편집장이 오케이 한 거겠지. 기자의 감정이 들어간 건 기사로서는 불합격점이지만, 신선해. 편집장한테 몸 로비하는 기자라는 게 드러나는 이 허접한 문장! 인턴도 이것 보는 잘 쓰겠네.”

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자관계가 복잡한 듯, 하수연을 언급하길 피했다. 그래그래. 없는 사실을 만들어냈지만, 그렇다고 이게 명예훼손죄는 아니지. 이제 보니 기자가 아니라 소설가를 했어야 했어. 아주 상상력이 풍부하잖아.”

딱히 꼬투리를 잡아야 한다면 ‘여태 그와 열애기사가 난 여자 스타는 총 8명으로, 그녀들 중 한명은 홍콩에서 임신한 채 쇼핑 중인 걸로 밝혀졌다.’였다. 이건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었다. 어려운 말일지도 모르나, 자신이랑 연애설이 났던 홍소민은 홍콩 부자랑 눈 맞아서 지금 아이돌 그만 두고 귀부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역시 이게 찌라시의 힘이 아닌가 싶었다. 짜깁기가 아주 예술이었다. 문장 문장은 사실이고 그걸 연결하면 전혀 새로운 결과가 도출되니, 로이 테일러는 갑자기 홍소민을 임신시킨 개자식이 됐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인터뷰를 하자고 만났는지 모르겠다.

주안이 씩씩거리며 ‘부셔버리겠어어어~.’를 외쳐댔다.

“그렇게 열불 내지마. 이게 뭐 대수라고. 어차피 다들 사실 아니라는 거 알거 아니야. 난 하도 난리쳐서 뭐 대박 기사인 줄 알았는데, 김사장. 너무 오버야.”

자신의 말에 사장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봐왔다.

“로이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네가 그랬든, 그랬지 않던 아무 상관없다고. 아직도 모르겠어? 너 나보다 연예계 경험 빠삭하잖아. 이미지 하나 만들려고 우리가 얼마나 돈을 투자해.

거지한테 거지라고 외치는 거. 그건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신경 안 써. 그런데 만약 100억 자산가한테 너 거지야, 라고 하면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받아드릴까. 혹시 저 놈이 100억 자산가보다 돈이 많나, 그러겠지? 그것처럼 이 기사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이 기사를 쓴 기자와 너의 관계가 문제라고.

문맥 사이에 흐르는 이 달콤하다 못해 에로틱한 기류. 네가 이 여자한테 마치 관심 있는 거서처럼 나와 있잖아. 물론 이 여자는 자뻑이 심해서 네가 자기한테 관심을 보였다고 쓸 수 있어. 미친년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팬들은 기분 나빠. 네가 그렇게 챙기고 도는 승냥이들은 이거 지금 분서굉유하고 있다고.

우리 로이가 기자한테 관심을? 진짜? 정말일까? 물론 그 과정에 도달하는 단계는 아주 잘 짜여있어. 넌 그녀를 보자 잠깐 말을 잃어.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척 가슴을 보지. 예쁘네요. 그가 내 가슴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이 문장만으로도 넌 뒤에 나오는 카사노바라는 단어 보다 훨씬 더 많은 인식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심어준 거야. 네가 그렇게 죽어라 읽는 심리학책. 그게 실제에서는 이렇게 적용되는 거다.

우리 어른들은 사회에 뒹굴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 이용할까 계산적으로 고민하고, 더러운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그것만 연구하는 인간들이야. 이게 쉽게 쓰인 글 같니? 너 엿 먹이려고 쓰인 고도의 심리 전술이야.

사람이라는 게 뻔히 아니라는 거 알면서도 소문으로 들으면 그럴 것 같았어, 라고 하지. 남자 한번 만나본 적 없는 순결한 처녀도 쟤 임신했데, 라는 소문 퍼지면 그날로 창녀 되는 게 말의 무서움이야.

올드보이 봤지? 오대수가 왜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었겠냐. 그거 혓바닥 한번 잘못 놀려서 그래, 말이 그렇게 무서워. 요즘 인터넷이 얼마나 발달됐냐. 그래서 소문이 더 무서워졌어. 예전에는 아니 뗀 굴뚝에 연기 안 났는데 요즘은 아니야. 굴뚝이 없어도 연기가 나는 세상이라고!

최수빈 자살한 거! 걔가 왜 자살했는데. 자기 친구한테 돈 꿔주고, 강남에서 사채질 한다고 증권가 찌라시 돌고, 그거 사람들이 인터넷에 퍼트리고, 사실이라고 믿어서 그래. 넌 알지? 최수빈이 그럴 리 없다는 거.

그런데 아니야. 사람들은 아니라고! 너 지금 완전 똥 밟았어. 그것도 초특급 똥으로. 그 여자가 자기 로이 앨범 피처링 하기로 했다고 말하고 다닌단다. 그리고 업계 사람들은 한물간 여가수를 초절정 인기 아이돌 로이가!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쓰겠냐고! 말하고! 너 앞으로 마음대로 피처링하자고 말하고 다니지 마.”

주안이 이마의 핏대가 곤두서도록 소리를 지르더니, 잡지를 빼앗아 찢고 바닥에 던졌다.

“으악! 열 받아! 왜 이렇게 힘들어? 왜 이렇게 연예인 키우기 힘들고! 왜 이렇게 넌 연예인 하기 힘드냐고!”

로이는 지랄발광하는 소속사 사장을 보며 힐끔 스타일리스트를 쳐다봤다. 민호가 눈치를 보며 딸기를 내려놓고 ‘아저씨, 지금 아주 중요한 때에요. 우리 조심해요.’라며 태형과의 딸기 키스를 그만 뒀다.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저 양년이 뭔 일이 있든, 우린 지금 키스를 해야 해.”

로이는 태형의 뻔뻔함에 저 정도는 되어야 연예인이 되고도 두 다리를 쭉 뻗고 자는 건데 싶었다. 물론 소속사 사장으로서도 훌륭한 쇠심줄이었다. 자신이 앨범 낼 때마다 걱정 돼서 잘 못 자는 주안을 생각하면, 태형은 타고난 연예인 소속사 사장이었다.

“로이, 폰 가지고 왔습니다.”

수혁이 바닥에 찢겨진 잡지와, 딸기를 입에 물고 게이짓을 하던 커플과 머리를 쥐어뜯는 사장과, 그걸 보고 한숨 짖는 자신을 보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려고 했다.

“들어와.”

“……네.”

핸드폰을 건네받은 로이는 바로 최민 기자와의 대화 녹취를 틀었다. 주안이 그걸 들으며 기가 차다는 듯 ‘허, 난 로이 테일러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나 회계 투명하게 하고 있음요.’라고 두 손 들고 항복한 척 했다.

“로이야, 나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어, 물어봐.”

“너 혹시 별에서 온 외계인이라 안 늙고, 초능력으로 미래를 꿰뚫어보고, 막 그러니? 혹시 이번 주 로또 번호가 뭔지 알면 나 좀 알려줘라. 우리 매주 로또 당첨 되면 무지 편하게 돈 벌 수 있어. 그럼 내가 너 싫어하는 아이스크림 CF 안 시킬게.”

“미친,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내가 로또 번호 알면 형이랑 끝이지 뭘 또 함께 해. 그리고 우리가 아니라 나 혼자 로또 되는 거겠지. 움화화화. 사실 난 이계인이다.”

로이는 요즘 유행하는 ‘내 남자친구는 외계인’의 OST를 부르며 너무 잘생기고 멋지고 똑똑하고 돈 많아서 외계인인 이계인의 트레이드마크인, V자로 턱 괴기를 시도했다. 이것 때문에 템페스트의 시청률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 자신이 참 많이 다리를 드러내고, 귀여운 척하고, 준호의 품에 안겨 울고 그랬다.

“왜 자꾸 내 눈앞에서 얼쩡대~, 너 같은 평민 따위 내가 사랑해줄까 보냐~.”

“오, 우리 로이. 역시 가수라 노래가 되는데. 우리 오랜만에 OST 앨범 낼까?”

로이와 주안은 어깨동무를 하고 로코 최대의 이슈 메이커, 내남외의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에 수혁은 자신이 다 창피해지는 것 같아 손을 올려 얼굴을 가려냈다.

“저는…, 저는…그래도 로이를 사랑합니다. 자꾸 저에 대한 사랑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로이!”

“아저씨, 미노 이제 드라마 볼 시간이어요. 어서 텔레비전 틀어주셔요. 미노는 수준 있게 저런 어린 아이 같은 내용 말고, ‘내 남편이 바람났어.’를 보겠어요.”

수혁은 집에서 박스 포장하는 던 때가 더 좋았다 싶었다. 태형이 민호의 말 한 마디에 침대에 누워 있다가 리모컨 심부름을 하고, ‘내려요. 내려요. 아니, 올려요. 아니야. 나 광고 시간 동안은 예쁜 여자 볼래요. 아이참. 진짜 예쁜 여자가 아니라. 드라마 이름이 예쁜 여자라고요. 별걸 다 질투해. 아저씨, 내려요.’ 하는 요구를 다 들어줬다.

벌써부터 아내(?)에게 꼭 붙들려 사는 삼촌을 보며 조카는 절망했다. 대대로 여자한테 붙잡혀 사는 건 별수 없는 흑룡의 유전자 탓 같았다. 자신도 저런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아니, 이미 자신은 로이의 노예였다. 매니저가 되면 계속 붙어있어서 좋을 듯싶었는데, 사랑도 이겨내기 힘든 게 있었다.

그는 도대체 자신이 없던 사이에 병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싶었다. 그러다 그들은 일시에 동작을 멈췄다. 자꾸 채널을 바꾸는 민호의 번덕스러움에 생방송 연예 뉴스 채널이 되었는데, 로이 특집으로 나오고 있었다.

”………가수 겸 배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돌 로이 테일러가 가수 출신, 미모의 기자 최 모씨와 관련된 루머를 해명했습니다. 로이 테일러는 오늘 31일 오후, 자신의 팬카페에 ‘여자친구와 참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데 이런 소식이 돌아 속상합니다.’라며 최모씨와의 연애설을 부인했고, 사실 무근임을 밝혔습니다.

이어 로이 테일러는 ‘저야 웃으면 넘겼지만 아무 죄 없는 제 여자친구와 팬분들은 무슨 죄입니까.’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로이 테일러는 ‘같이 잡지 인터뷰차 만난 것뿐, 사적인 만남을 없었고, 저는 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입니다. 저희를 질투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여자친구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함께 전했습니다.

그런 로이 테일러의 반응에 최모 기자는 로이 테일러의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나섰는데요. 그녀는 왜 이런 인터뷰를 자청했을까요? 오늘 5시에 최모씨가 갖는다는 기자 회견장에 미리 생방송 스타뉴스가 나가 있습니다. 화면으로 만나보겠습니다.”

로이는 할 말을 잃었다. 뭘까. 도대체 자신이 뭘 그리 잘못했다고 저렇게 해코지를 할까. 사장을 돌아보자, 주안이 다시 심각해져서 녹취를 들고 있었다.

“이 싸가지야! 어린 게 잘나가니깐 눈에 뵈는 게 없지? 너 잘나가는 게 그 반반한 얼굴이랑 더럽게 굴려 먹는 몸 때문인 거 내가 모를 줄 같아? 내가 너보다 못한 게 뭐 있는데 월드스타? 개뿔. 지랄 염병 떨지 마. 너 그거 거품인 거 다 알 거든. 나랑 똑…. 아니지. 이건 나중에 써먹어야지.”

“이게 문제였네. 로이, 너 여자인거 얘한테 들켰나 보다. 휴우~.”

“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로이는 당황했다. 여자. 그건 어떤 루머로도 흠집 낼 수 없는 자신을 유일하게 무너트리는 약점이었다. 쉽게 생각했던 태클이 자신의 19년, 아니 이제 20년이 된 연예계 생활을 망가트리게 생겼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위기의 순간에 돌파구가 생각 안 났다.

로이는 당혹감에 엉엉 울었다. 이게 제 나이에 맞는 반응 아닌가 싶었다. 모두의 앞으로 어른스럽게 행동했던 건 그저 어깨에 올려진 짐이 무거워서, 그 무게를 실감하고 자신이 무너지면 다들 무서워할까봐 그런 것뿐이었다.

방송에서 자신의 과거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어떤 아역스타와 사겼었다는 둥, 그동안의 스캔들과 지금의 여자친구에 대해 말하고, 최근 방영한 리얼 예능 KISS ME 속 로이의 심리 상태를 정신과 의사가 나와서 설명해댔다. 자신이 애절 결핍증이란다. 여성 편력이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슬픔에 대한 반동이란다.

“흐으엉엉. 저거 빨리 꺼. 씨발. 나 좀 그만 내버려둬. 난 뭐 사람 아닌가. 다들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엄마는 도대체 올 생각을 안 하고, 사람들은 자길 할리우드 스타 만들고 싶어서 안달을 부리더니만 지금은 헐뜯기 위해 방송이나 하고. 아이돌이라고, 건드리고 괴롭혀도 될 줄 아는데 자신은 아직 19살밖에 안됐다. 도대체 왜! 내가 아이라는 걸, 보호받아야 한다는 걸 잊냐고! 나도 아직 미숙하고, 서툰데, 왜 다들 어른으로만 볼까. 너무 섹시한 이미지 때문일까. 텔레비전 속 그들이 말하는 자신의 모습은 너무 창피했다.

수혁이 자신을 안고 등을 토닥여줬다. 하지만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고, 마음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주안이 소속사로 전화해 기자 회견장을 찾으라고 오더를 내렸다. 그거 찾으면 뭐할 건가. 깽판을 칠 것도 아니면서.

로이는 이제 다 끝이구나 싶어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편지를 쓰고 루머에 시달리던 연예인의 최후를 맞이해야겠다 싶었다. 자신이 죽으면 최민은 팬들한테 죽을 거다. 자신의 승냥이들 중에는 꽤나 과격 팬들이 많아서 그녀에게 염산 테러할 가능성도 농후했다.

생방송 뉴스의 마지막으로 봤던 내용이 자신의 팬들이 아이돌 스타 잡지사를 찾아가서 락커로 낙서하고 돌 던지고, 그래서 방송에서 은근히 자신을 욕하는, 아니 자신을 욕하면 자기네들 욕먹을까봐 은근히 돌려서 말해서 그게 더 짜증나는 뉴스였으니, 분명 팬들이 복수해줄 거라 믿었다.

“제가 죽이겠습니다.”

수혁이 청부살인을 하겠다고 나섰다. 누가 배우 아니랄까봐 현실에서도 배역에 대한 몰입이 장난 아니었다. 누가 보면 진짜 준호가 살아와서 카렌을 도와주는 줄 알겠다.

“죽여서 뭐하게. 그리고 나 또 욕먹게?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남 말하기 좋아해? 그것도 나쁜 걸로. 좋은 기사는 열 개 나가면 한번 기억되고, 나쁜 이슈는 한번 나가면 10년 기억돼. 이러니깐 연예인들이 정신병을 앓는 거 아니야. 아무리 우리가 가쉽으로 먹고 살아도, 숨 쉴 구멍은 만들어달라고.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매번 기사내고, 트위터 글 보고 기사 내고, 아예 사생활이 없어.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내 어린 시절부터 돌아가서 엄마 아빠가 어쨌다는 둥, 누구랑 스캔들이 났었다는 둥,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서 유치하게 했던 이상형 인터뷰까지도 죄다 끄집어내서 쪽팔리게 하고!

그딴 게 왜 지금 나와야 해? 그것들이 지금 나 연애설 난 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사실 아무것도 아니잖아. 별 내용 없는 텐에이저 잡지가 이렇게 이슈될 내용인가? 왜 한쪽 말만 듣고 날 몰아붙여. 사실부터 확인하기 전에 왜 자꾸 뜯어먹어. 이제 그만할 거야. 나 연예인 때려칠 거야. 지겨워. 팬도 짜증나고, 방송도 짜증나. 작품 적게 들어올 때마다 인기 떨어진 거 아닌가 걱정하는 것도, 음악 차트 떨어질 때마다 맘 몰이는 것도 미칠 것 같아.”

괜히 수혁을 주먹으로 때리며 화풀이했다. 그는 아무 말도 않고 ‘그럼 그만 둘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라며 자신이 일을 그만 두겠다는데 안 말렸다. 어쩜 이럴 수 있냐 싶다. 완전 배신감 들었다. 이럴 때는 ‘로이, 금방 지나갈 겁니다. 그동안 잘 해냈지 않습니까.’ 뭐 그런 말로 위로해야할 거 아닌가. 이래서 같은 동종업자는 아무리 연인이어도 라이벌인 거다. 소속사 사장을 쳐다보자, ‘너 지금 이 일 때려 치면 CF 위약금 어쩔래?’라며 역시나 사업가로서 한마디 했다.

“지금 그게 로이한테 할 말입니까! 김주안씨! 그 위약금 제가 내겠습니다.”

“하아~, 이봐요. 김수혁씨. 남의 소속사 일에 신경 끄시죠. 진짜 오지랖 넓네. 제가 설마 진짜 위약금 때문에 이런 말을 꺼냈겠습니까. 로이, 이대로 절대 그만두면 안 되는 아이야. 얘는 달라. 진짜 아이돌이라고. 돈으로 시간으로 노력으로 처발라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진짜 십대들이 반짝거려서 닮고 싶고 우상으로 삶고 싶은, 그런 존재라고. 백 명 세워놓고 춤추라고 해도 얘는 사람들 눈에 튀어. 금발이어서? 잘생겨서? 아니, 가면 쓰고 춤 춰도 다들 얘만 봐. 앤 타고난 스타니깐!”

두 남자가 자신 때문에 박 터지게 싸웠다. 로이는 흥미진지하게 김주안 김수혁 주연의 막장 드라마를 시청 중인 민호에게 ‘형, 형은 막장의 대가니깐 잘 알 거 아니야. 이럴 땐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라며 별 기대 없이 물었다. 그러자 자신의 스타일리스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다들 왜 이렇게 심각한 거야?”

“야! 너, 못 들었냐? 나 지금 완전 끝나게 생겼잖아!”

자신의 버럭에 태형이 맞서 버럭 했다.

“이 양년이 어디서 반말에 호통질이야. 너 양년이라 혀가 짧냐. 내가 혀 길게 뽑아줘?”

“삼촌! 죽는다. 우리 로이 털끝만치 건드려봐.”

“조카새끼가 감히 삼촌한테 어디서 반말이야!”

로이는 칼을 빼어들고 죽이겠다며 날 뛰는 태형을 보고 하얗게 질렸다. 수혁은 겁도 안 나는지 내장을 빼주겠다며 달려들었다. 주먹으로 서로의 얼굴을 가격하고, 머리통을 잡고 바닥에 던지는 등 액션 영화로서도 다소 가격한 격투가 그들 사이에서 오고갔다.

“지금 나 엉망진창인데 다들 뭣들 하는 거야. 씹! 싸울 거면, 나가 씹창새들아!”

“그만! 타임! 아저씨, 타임!”

자신이 뭐라 할 때는 신경도 안 쓰던 태형이 민호의 외침에 수혁 위에서 벌떡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우리 아기, 너무 폭력적이라 무서웠지?”

“넹. 미노는 짱 무셨어요. 수혁씨 죽고 템 완결 못 나면, 미노는 아저씨 완전 미워할 뻔했어용. 이제 카렌이랑 뭔가 있으라고 할랑 말랑 했다고요.”

“그랬구나. 우리 미노가 저 병신 아이돌 오타쿠가 나오는 드라마 좋아했구나. 알았어. 아저씨가 꼭 유념해두고, 드라마 종결되면 죽일게.”

로이는 배우 얼굴을 때려놓고 태연자약하게 떠들어대는 조폭을 보며 분노가 들끓었다.

“이봐! 광고주! 당신, 어떻게 배우 얼굴을 이따위로 만들어낼 수 있어? 지금 이러고 어떻게 드라마 촬영하라고!”

“…괜찮습니다. 로이, 전 로이가 그만 두면 같이 그만 둘 겁니다.”

로이는 헛소리를 하는 수혁의 등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스매쉬 했다.

“죽어! 그것도 뚫린 입이라고! 내가 그만 두면 그만 둬? 그럼 지금 드라마는 어쩌고. 주인공 둘 빠지면 그 드라마는 뭐가 돼. 이거 한편 찍자고 스텝 100명에서 200명이 모이고, 밥 차오고, 뭐하고 하면 제작비가 얼마인 줄 알아? 대본 하나에 쓰인 지문 하나 재연해내려고 연출팀 좆 빠지게 고생하고, 우린 리딩 때 욕 처먹으며 캐릭터 연구하고, 그런 개고생하면 여러 사람이 키어낸 드라마를 고작 나 그만 둔다는 말에 망치려고 들어? 어쩜 그 나이가 되도록 철없는 소리야! 자기가 벌린 일에는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이 버러지야!”

자신이 고래고래 소리 질러 철없는 후배를 혼내자, 주안이 ‘그럼 됐네.’라고 했다.

“뭐?”

“네가 누구보다도 잘 알잖아. 너 벌려놓은 게 너무 많아서 못 떠나는 거. 너 빠지면 템도 망해. 거기다 영화 찍어 놓은 거 남우주연상 받아야하는데 그건 어쩌려고. 관객 1000만 넘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니? 그건 하늘이 주는 상이야. 받아놔야지.”

로이는 잊고 있던 연말 시상식을 떠올리고, 두 주먹을 꾹 말아줬다. 맞다. 지난 1년 동안 고생한 보답을 받아야지, 이대로는 억울해서 자신도 절대 못 떠났다. 그깟 한물 간 최민 때문에 자신 같은 수퍼 아이돌이 끝날 순 없다. 일단 상은 받고 은퇴를 해도 그때 하기로 했다.

“저……내가 상각해봤는데. 로이야. 너 여자인 게 문제면 남자가 되면 안 돼?”

스타일리스트 민호의 발언에 스타는 평소처럼 성질을 파르르 내려다가, 그 옆에 미친 조폭이 있다는 사실에 꾹 화를 참아 누르고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형, 누군 싫어서 안 그래? 나 보고 성전환수술 하라고?”

“아니, 그게 아니고…….”

로이는 민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뜨였다. 의외로 이 형이 천재일지도 몰랐다.

============================ 작품 후기 ============================

가끔 오지만 용량이 짱입니다....그래도 최대한 자주 오도록 노력할게요.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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