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65화 (65/104)

00065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네   =========================================================================

로이는 신발을 사오라고 했더니 협찬을 받아온, 유능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띨띨한 것인지 모를 김 매니저를 보며 혀를 찼다. 이래서 연예인이 문제였다. 특히나 자신과 같은 아역출신은 혼자서 아무 것도 해본 적 없어 어른이 되어도 버스 타는 법도 모르고, 혼자서는 집에서 가까운 편의점 밖에 못 가는 병신이 되는데, 김수혁 또한 같은 맥락인 도련님 출신이라 성인이 되어 데뷔했어도 자신과 별다르지 못한 거였다.

“지금 이런 듣보잡을 나보고 신으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것도 방송에서.”

수혁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발을 까닥이는 그녀의 모습에 긴장했다.

“몇 켤레 받아온 거야.”

“……30켤레입니다.”

“하? 지금 제정신이야? 내가 지금 협찬 받은 명품이 몇 개인 줄 알아? 근데 그건 돈 받고 신는 거잖아. 그런데 이건 공짜고. 나, 그렇게 쉬운 사람 아니야. 샤넬, 아르마니, 페레가모, 뭐 그런 거 가지고 와도 시원치 않을 판에 고작 신인 디자이너가 만든 신발을 신으라고?”

“돌려주고 오겠습니다.”

“지금 나 욕 먹이려고 작정했어? 휴우~.”

로이는 한숨을 쉬고 수혁을 노려봤다. 자신이 너무 매니저로 데리고 다니며 구박을 했더니 제대로 노예화가 된 게 조금 불쌍하기도 했다. 이런 대우 받은 존재는 아닌데 말이다. 그러기에 누가 매니저 하랬나 싶다.

“어디야, 가자.”

“예? 로이, 어쩌시려고요? 반납하시게요?”

“어쩌긴 그거 다 사겠다고 해야지. 고작 이런 걸로 톱스타의 자존심을 건드려야겠어? 형이 내 진짜 스타일리스트였으면 죽었어. 하여간 하라는 매니저 일은 안하고.”

로이는 지금은 근무시간이니, 수혁이 남친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그런데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을 쳐다보는 김배우의 미모에 차마 얼굴은 때릴 수 없어 정수리를 가격했다. 물론 그도 얼굴로 먹고 사는 배우라 같은 동업자로서 배려해준 점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녀는 수혁을 따라 그가 들렸다는 매장으로 들어갔다.

꽤나 B급 연예인들의 사진이 많이 걸려있는 것을 봐 연예인 광고에 정성을 들이는 브랜드 같았다. 그러니 김수혁을 보고는 눈깔이 뒤집혔으리라. 한류의 제왕만큼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단숨에 듣보잡에서 명품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회이니, 그들은 필사적으로 수혁에게 신발을 건넸을 것이다.

자신의 등장에 매장 직원들이 달려 나왔다. 왜 자신이 이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름 똑 부러지게 일하던 민호가 그리웠다. 로이는 턱을 빳빳이 들고 다리를 쭉쭉 뻗으며 카운터로 다가갔다.

“계산해줄래요?”

“……예?”

그들이 당황해서 서로를 쳐다봤다. 로이는 카드를 내밀고 ‘수혁형이 내 매니저로 일하는 거 방송으로 봤죠?’라며 상큼하게 웃어보였다.

“네. 로이씨.”

그나마 제일 경력 많아 보이는 MD가 금세 정신 차리고 ‘수혁씨가 로이씨 신발 받아가셨어요.’라고 대답했다. 로이는 그것 때문에 내 피 같은 돈이 허공에 흩뿌려져서 잘 알지, 라고 이를 부드득 갈며 대꾸하고 싶었으나 속과 달리 겉으로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신발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구입하게요. 계산해주실 거죠?”

이건 나름의 거절의 방법이었다. 괜히 협찬 받았는데 제품을 방송에서 안 내보냈다가는 욕  먹고, 협찬으로 받아놓고 안 하겠다고 되돌려 보내면 업계에서 소문이 더럽게 나니 차라리 이렇게 해결 보는 게 나았다. 고작 눈앞의 돈 몇 푼이 아까워서 구질구질하게 놀아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다는 게 오랜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점이었다.

“예! 지금 결제해드릴게요.”

로이는 여유 있게 웃으며 그녀들을 향해 금발을 쓸어 올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얼마나 멋져 보이겠는가. 저들의 입장에서는 지금 이런 횡재수가 없을 것이다. 무려 로이 테일러가 자신의 제품이 좋아서 협찬 보낸 걸 개인적으로 사겠다고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이게 세계적인 명품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자신은 돈로이라고 불리는 존재라 명품 아니면 안 입고 안 쓰고 안 입었다. 적어도 팬들 앞에서는 그랬다. 개인적으로는 김주안이 입던 다 늘어난 추리닝을 집에서 입고 돌아다니지만, 스타의 이미지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였다.

수혁이 안절부절 못 하며 지갑 챙겼으니 자신이 사겠다고 나섰다. 민호가 협찬으로 받은 시계를 잃어버려 샀던 거에 비하면 이건 그나마 양반이었다. 고작 600만원이지 않는가. 그 개새끼는 1억 5천만 원짜리를 잃어버려서 영원히 로이 테일러에게 충성해야하는 계약의 노예가 되었다. 그러니 수혁도 그러면 됐다. 진짜 미친 듯이 부려먹으면 된다.

로이는 직원들에게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고 매장에서 나왔다. 일단 길거리이니 수혁에게 웃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할 수 있지. 안 그래?”

“……로이.”

자신의 노예님이 꽤나 감동한 모양이다. 앞으로 삶이 600만원 어치 고달파 질 텐데 말이다.

로이는 그래도 나 같이 착한 연예인은 없지 싶었다. 스타일리스트들이 오래 일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정말 개 같은 연예인들 때문이었다. 협찬은 말 그대로 빌려준 거다. 그럼 곱게 입고 돌려보내야 했다. 그런데 개중에는 제품을 망가트리거나, 아예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럼 스타일리스트가 책임지고 자기 돈 내고 물건을 사야 해, 그들은 항상 일 간둘 때 월세 방 빼고 뭐하고 해서 빛 잔치를 벌였다.

대중들이 흔히 하는 착각은 스타는 돈이 많아서 명품을 죄다 제 돈 주고 살 거라는 점이었다. 물론 그런 이들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자신들은 공짜를 무지 좋아했다. 병원도, 밥도, 커피도, 옷, 신발, 화장품, 여행, 심지어 결혼식까지, 어딜 가도 공짜로 받으니 자기 돈 주고 사기 싫어했다. 사람이라면 당연한 거 아닌가. 우리들은 그렇게 길들여져 그렇게 되어버렸다.

예전까지만 해도 협찬=내거라는 공식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기자들이 그런 연예인들의 행동을 고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신들이 협찬을 받으면 대중들은 눈살을 찌푸렸고, 톱스타들은 이미지를 생각해 공식석장에 나갈 때만 빼면 사적인 물건은 웬만하면 자기 돈 주고 구입하고 있었다.

그래서 상위 1%도 실속 없었다. 우리들은 방송 안 나와도 계속 관리를 받아야해 품위유지비로 돈이 엄청나게 깨졌다. 그래서 드라마 한편 당 5천만 원을 받는 톱배우도 스폰서가 없으면 은행에서 대출 끼고 빌딩 사는 거였다.

로이는 수혁의 빌라로 돌아와 새신발을 사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사이즈 260. 다들 루시퍼 활동 내내 나 따라다니느라 고마웠어. 그래서 선물. 예쁜 신 신고 나 어디가도 따라와야 해.^^ 선착순 29명 카운트 시작!』

이양 돈을 썼으면 효과를 최대한 뽑아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이런 기가 막힌 아이디어로 자신이 여태 톱인 거였다. 팬들이 얼마나 감동하겠는가. 로이는 순식간에 달린 멘션들을 보고 수혁에게 폰을 던져줬다.

“주소 확인해서 택배 보내. 난 민호 병원에서 놀다 올게.”

로이는 문어 아저씨를 대동하고 A대학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 문을 열자 징글징글 맞은 게 게이 커플이 한 침대에 누워서 자신을 쳐다봤다.

그 모습에 내가 저런 것들이 보려고 여기까지 기어왔나 회의감이 들었지만, 아픈 식구 챙기는 건 스타로서 당연한 도리 같아 로이는 환자가 아니라 그냥 임산부 같은 자신의 스타일리스트에게 딸기를 건넸다. 민호가 딸기를 받아들고 보조개가 쏙 들어가도록 웃었다. 정말 귀여운 형이었다.

“로이야 사랑해.”

“즐, 반사.”

“히히히. 좋으면서 괜히 앙탈이야. 아저씨, 우리 딸기 먹어요.”

민호가 내미는 딸기를 태형이 받아들고 씻으러 갔다. 덩치도 큰 사내가 환자 침대를 차지하는 건 정말 민폐다 싶은데 정작 당사자는 좋다고 찰싹 달라붙어 있으니, 아무 상관없는 자신이 뭔 말을 건네겠는가. 원래 이건 목숨이 아깝다며 회사로 도망간 주안이 해야 하는 말인데, 그동안 둘이 질척하게 연애한 건 뭔가 싶을 정도로 주안과 민호는 남남인양 행동했다. 헤어지면 님에 점 하나 찍어 남이 된다고 하더니만, 대중가요라고 틀린 말 하는 거 아니었다.

딸기를 씻으러 갔던 태형이 도로 돌아와 민호 옆에 누웠다. 그가 민호를 품에 안은 채 딸기를 입에 넣어줬다.

“우리 아기 괜찮겠어?”

“네. 미노 이제 건강해요. 헤헤헤. 딸기 맛있당~, 아저씨도 아.”

저 모습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백민호가 혹시 위암 수술을 받다가 부작용으로 혀가 짧아지고 지능이 낮아진 게 아닌가 하는 거였다. 그런 스타일리스트를 위해 자신은 의료 분쟁을 할 용의가 있다.

로이는 혀를 끌끌 차며 자신이 왜 저 한 쌍의 바퀴벌레가 있는 병실에 찾아오게 되었는지 회의적이게 되었고, 이 우울감을 타파하고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로 했다. 그녀는 소파 턱에 다리를 올리고 누은 채, 300권의 야설 중 저번에 읽다가 간 헨델과 그레텔의 진한 근친 로맨스를 감상했다.

“야아~, 로이야~. 너 내가 그런 거 읽지 말라고 했지.”

꼴로 남친 앞이라고 착한 척이었다. 민호가 ‘어린 아이는 그런 거 읽으면 안 돼.’라며 손을 잼잼거리며 어서 책 내놓으라고 귀여운 척했다.

“나 지금 공부 중이야. 야설이 어떻게 쓰이고, 어떤 포인트에서 사람들이 발정하는지를 알아야 섹시해지지. 같은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어도 형이 입으면 초라한 거지 패션이고, 내가 입으면 섹스 그자체지. 그 차이가 뭔 줄 알아? 그건 몸에 베어난 색기, 눈빛, 분위기. 그 차이라고. 그럼 나한테 월급 받는 형은 어째야겠어. 나한테 야설을 권해야할까, 아님 방해해야할까?”

“……야설을 권해야 되지.”

“양년, 너 주둥이가 아주 시건방지다. 너 같은 년이나 그런 패션이 거지고, 우리 민호가 입으면 섹시인 거야. 이게 어디서!”

태형이 자신의 멱살을 집어 들었다. 그렇다고 쫄 자신도 아니었다. 로이는 그런 태형에게 ‘때려 봐. 그럼 너 백민호한테 미움 받는다. 난 쟤 살려준 은인이야.’라며 눈을 부라렸다.

“아저씨, 안돼요. 우리 로이한테 무슨 짓이에요.”

“아우 썅~.”

태형이 신경질적으로 손을 놓았다.

“기어오르지 마. 시멘트 발라서 바다에 던져버리기 전에.”

“한번 해보던가. 그럼 넌 철컹철컹이야. 내가 보통 존재인 줄 알아? 나 사라지면 대한민국 뒤집어져. 그냥 시답지 않은 아이돌도 그런 일 있으면 검색어 1위해. 근데 난 국민 아이돌이잖아. 당신이야 말로 나한테 잘 보이는 게 좋을 걸. 내가 말까는 게 재수 없으면 내 광고주 하던가. 그럼 대우해주지. 그 전에는 어림없어.”

“……그래, 양년. 너 BD그룹 광고 모델해라. CF 열라 찍게 하마. 이제 너 나한테 존댓말 해.”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까지는 세상사 모르는 일 아니겠어?”

“나 한입으로 두 말 안 해. 네 회사로 지금 사람 보내마.”

태형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Reve로 로이 테일러 광고 모텔 계약서 보내.’라 했다. 로이는 그 모습에 한쪽 입꼬리를 삐쭉 올렸다. 이렇게나 어른 대접 받고 싶어 하니 불쌍해서라도 해줘야겠다.

“회장님~~. 나이스.”

로이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광고주에게 아양을 떨었다. 전화를 끝낸 태형이 기가 막힌다는 듯 자신을 쳐다봐왔다. 이런 걸 바랐으면서 왜 이러나 싶다.

“하여간 어린 게 돈 밝히는 거 봐라.”

그런 태형의 말에 민호가 ‘로이야, 너 그렇게 돈 모아서 뭐하게.’라 물었다.

“뭐하긴 나중에 밥 먹고 살려면 부지런히 모아야지. 아이돌이 한 오백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반짝 인기 있을 때 미친 듯이 벌어야하는 거 아니겠어? 인기가 뭐 별건가. 그거 그냥 텔레비전에 안 비치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거야. 거기다 난 이제 군대도 가야하는데 여자잖아. 다른 놈들이랑 훈련받고 같이 샤워할 수 있겠냐고. 그러니 미국 국적 있다며 해외로 토껴야 않겠어?

근데 나 국민남동생이잖아. 그거 무지 좋은데, 분명 그것 때문에 괘씸죄니 뭐니 하면서 출입금지 때릴 거야. 다시는 한국 땅 못 받게 할 거라고. 그럼 내가 외국 나가서 뭐 먹고 살겠어. 물론 할리우드에서 활동해도 되겠지만, 형도 알잖아. 나 영어 안 되는 거. 이 얼굴만 믿고 화보 찍는 게 얼마나 가겠어. 이 미모가 얼마나 가겠냐고. 한 10년? 그럼 그 뒤로 뭐할 거야.

난 연기랑 노래, 춤 말고는 아무것도 해본 적 없는데 다른 뭘 해보겠냐고. 그러니깐 죽어라 벌고 죽을 때까지 엄마 돈지랄하는 거 계속할 수 있도록 벌어놔야 해. 아, 씨발. 도대체 온다고 한지가 언제인데 엄만 아직도 안와.”

프랑스에서 온다는 엄마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로이는 도대체 내가 번 돈들이 얼마만큼이고, 또 얼마만큼 쓰이고 있는 것일까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거기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연예인이라는 직종은 일정한 수입이 들어오는 게 아니어서 불안했다.

그녀는 피곤한 표정으로 소파에 털썩 앉았다.

“이런 날 누가 지켜줄 것 같아? 팬? 웃기지마. 걔네가 철새인 거 모르는 병신이 어딨어. 돈이 나 지키는 거야. 돈이라도 많아야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그나마 왕년에 잘 나가던 아이돌이었다고 추앙받으며 사는 거야. 내가 돈 없으면 얼마나 씹어댈까. 그렇게 꼴값 떨고 군대 빼더니만 잘 됐네, 하면서 사람들 무지 고소해할 거야. 근데 내가 미국에 대저택에 살면 적어도 그러지는 않아. 나, 비참해지지는 않는다고.”

“……어린 게 참 고달프게도 사네.”

태형의 읊조림에 로이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뭐 그래도 좋아서 하는 거니깐, 참을 만은 해.”

그때, 병실 문이 벌컥 열리고 주안이 뛰어 들어왔다. 어찌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헉헉거렸다. 혹시 민호가 보고 싶어서 저런가 싶어 태형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 아직 주안과 민호의 사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태형으로 인해 병실은 피 바다가 되지 않았다.

“로, 헉! 로, 허억! 로오~.”

“그래, 나 여기 있어. 뭐야 김사장.”

주안이 호흡을 헐떡거리며 가다듬고 자신에게 잡지를 건넸다.

“너 나 없을 때 최민 기자랑 인터뷰했냐?”

“어.”

“그년이 뭐라고 써놨는지 내가 말할까. 아님 네가 지껄일까.”

“왜, 나 졸라 친절하게 대했거든.”

로이는 뭔가 싶어 잡지를 받아 살폈다. 씨발, 내가 이년의 주리를 틀어버릴 거다.

“형, 발행금지 처분 때렸어?”

“어, 회수까지 끝냈어. 근데 인터넷에는 기사 떴다. 너 아니지? 안 그랬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내가 이미지 관리를 얼마나 철저하게 하는데. 명예훼손으로 고소는 했고?”

“젠장. 했다. 했어! 허위사실 유포죄도 고소했어. 최 기자 진짜 미친 거 아니야? 그런 기사는 사실 아니어도 이미지 망가지는 거 순식간인데. 씨발! 아니어도 더럽혀진다고. 으아아악!”

주안이 머리를 잡아 뜯으며 발광했다. 쯧쯧, 저런다고 해결되는 게 아닌데 말이다. 잡지 표지를 살펴보니 ‘로이 테일러의 아찔한 사생활, 그리고 로이의 여자들의 임신설.’라는 헤드라이트가 보였다. 이게 시중이 나돌았으면 잡지 발행부수가 최고치를 달성했겠구나 싶었다. 이거 보고 많이 당황했을 텐데 용케 뒤처리를 다 하고 자신에게 보고 하러온 김 사장이 기특했다. 역시 괜히 Reve의 수장이 아니었다.

“형, 이리와.”

자신의 부름에 그가 다가왔다. 로이는 주안의 머리를 토닥여줬다.

“대응 잘했어.”

“대응을 잘하면 뭐해! 너 이미 인터넷에 기사 퍼졌단 말이야. 고작 찌라시 같은 잡지인데 네 이름 붙어서! 하루 만에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됐었다고! 포털 사이트 기사는 내렸는데 그래도 그거 본 사람들 무지 많아. 도대체 아이돌 스타 같은 쓰레기 잡지랑 왜 인터뷰했어. 걔네는 기자 아니야. 그것들 쓰레기야. 그러니깐 이렇게 겁 없이 행동하지.

설마 네가 여자랑 모텔에서 뒹구는 사진, 걔네가 찍혔다 쳐도 그거 기사 내보내기 전에 먼저 소속사에 연락 넣어서 협상하는 게 관례야. 그런데 이런 잡것들은 그냥 없는 사실도 막 지른 거라고! 왜! 그냥 쓰레기니깐! 너 같은 톱 아이돌이 나오는 것 자체가 위로 발돋움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니깐! 내가 이번 기회에 이놈들 죽일 거야. 회사 재기 못하게 짓밟을 거야.”

이미 충분히 작은 잡지사를 짓밟고 온 거 같은데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로이는 버럭하는 사장을 보며 이럴 때 나라도 침착해야지 싶었다. 편집장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기사를 허락했는지 모르겠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이건 초등학생들이 주된 독자층이 잡지인데 이런 식으로 헤드라인을 잡으면 곤란했다. 자신이 화가 나는 이유는 그거였다.

거짓말치고 그걸 기사내서 내 얼굴에 먹칠시킬 수 있다. 하지만 어린 팬들한테 이런 내용을 보였다는 건 용서할 수 없었다.

“형, 아이돌 스타. 문방구에서도 팔잖아. 비록 엘르, 보그, 쎄씨, 인스타일 같은 잡지는 아니어도 초딩들 사이에서는 나름 유명해. 달마다 용돈 모아서 사 보는 잡지지. 그래서 인터뷰한 거야. 난 초딩 팬들한테도 팬서비스하고 싶으니깐. 그래서 이거 화난다. 나 더럽혀서 화난 게 아니라, 아직 어른처럼 분별력 없는 내 어린 팬들한테 마치 사실인양 떠들어서, 내 팬 상처 입혀서 화나. 이것도 나름 책이고, 그래서 초딩들은 여기에 적히는 게 다 사실이라 생각하고 읽었을 거 아니야.”

“………야, 너 그렇게 팬은 언젠가 떠나는 거라는 둥. 갈대라는 둥, 철새라는 둥. 믿지도 못하면서 왜 그렇게 챙겨. 넌 그냥 너나 챙겨. 승냥이들 일일이 챙기다가 너 등골 휜다.”

자신이 강하게 나가자 흥분한 주안이 자신을 가라앉히기 위해 목소리를 누그러트렸다. 백번 나는 괜찮다 말하는 것보다 이런 편이 더 빨랐다. 매니저에 스타일리스트, 소속사 사장까지. 도대체 아이돌인 자신이 관리를 받는 게 아니라 해주는 것 같다. 하여간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인간들이었다.

로이는 대한민국 최고의, 그것도 한 번도 정상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적 없는 자기 관리 철저한 아이돌로서 자신만만하게 소속사 사장에게 웃어보였다.

“괜찮아. 내가 누구야. 바로 위대하신 로느님 아니겠어?”

자신은 겉보기와 다르게 능구렁이라 이런 시련쯤은 문제없었다. 그녀는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폰을 꺼냈다……가 아니라. 어라? 어디 갔지?

“아………. 나 폰 김수혁한테 맡겼다.”

“지금 이거 트위터로 아니라고 몇 마디 한다고 해도 소용없어. 진짜 아니어도 이런 기사 난 것 자체가 너 똥 밟은 거라고. 인터뷰할 때 싸가지 없이 대했어? 얼마나 싸가지가 없으면 이딴 식으로 기사가 나와.”

“형, 나 못 믿어? 그리고 연예인 짓 하다가 똥 밟는 거야 일상이지. 그거 가지고 쫄지 마. 이런 걸로 무너지면 나 진작 망했어.”

로이는 주안에게 폰을 받아 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가 오는 동안 천천히 최민 기자가 뭐라 썼는지 읽어보기로 했다. 자신의 이상형이 가슴 큰 여자라. 그거 참 첫줄부터가 장난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오랜만에 오지만 용량은 짱입니다. 부디 너그럽게 용서하시길ㅜ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