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4 병문안을 가자 =========================================================================
로이는 아침부터 전화하는 비양심 민폐 덩어리 때문에 욕을 고래고래 지르려 했다가, 그래도 환자라고 꾹 참고 ‘어.’라 대답해줬다.
“로이야, 올 때 떡볶이랑 오징어 튀김이랑 순대랑, 오뎅이랑, 탕수육이랑, 피자랑, 그리고. 그리고…….”
정말 이 인간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왜 먹지도 못할 거면서 매일 임산부 마냥 먹을 거 타령이나 하고, 그걸 자신더러 다 먹어 달라 한단 말인가. 양배추만 처먹어도 모자란 직종을 지닌 이 아이돌이게 말이다.
“그리고 딸기 먹고 싶어. 씨잉. 딸기. 딸기 먹고 싶어. 으허어엉. 딸기. 딸기.”
딸기 정도라면 먹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민호가 울면서 딸기를 목 놓아 불러 로이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뭔가 방 풍경이 이상하다 싶었다가 수혁의 집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이거 참 남자 집에서 눈을 뜨는 로이 테일러라니, 기자들이 알면 기사 한번 제대로 나겠다 싶었다. 그나저나 이 시간에 우리의 떡대수께서는 어디 갔나 모르겠다.
로이는 수혁의 침실에서 나왔다. 아무리 봐도 그는 수였다.
저 봐라, 아주 자아알~ 어울린다.
그녀는 부엌에서 앞치마를 하고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 가나라 가나라 아주가나.’ 대장금 코스플레이를 하고 있는 김 배우를 구경했다. 저 잘록한 허리와 탱글한 엉덩이, 쫙 빠진 다리가 청바지에서 우월함을 뽐내니 그 뒤로 살짝 다가가 섹시한 오른쪽 궁둥이를 움켜잡고 성희롱 좀 해봤다. 그런데 놀리는 재미도 없게 수혁이 웃으면서 일어났냐고 했다.
아, 눈부셔. 이 인간. 나는 눈곱도 제대로 안 뗐는데 도대체 언제 이렇게 꽃단장을 한 거지?
“로이, 왼쪽도 만져주세요.”
“아침부터 캐미 폭발시키지 마. 확 뽀뽀해버릴까 보다.”
“그럼 뽀뽀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수혁이 눈을 감았다. 이거 참 난감일세.
그는 보통 남자라고 하기에는 비정상적인 외모라던가, 아무것도 없는 납작한 가슴에 대한 집착이 사실은 게이이지만 미소년 같은 소녀에게 반했음을 입증하는 증거 같아 보이는데, 눈을 감으니 특히 저 긴 속눈썹이 아주 게이스러워 보며 속이 느글거렸다. 이건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백게이도 김게이도,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김게이2(김태형)도 모두 속눈썹이 길고 잘생기고 겉모습은 아주 멀쩡했다.
원래 있는 놈들이 더하는 거라고, 잘생긴 놈들이 게이 짓하는 게 정석이라고 김씨들과 백씨는 몸소 보여줬다. 그런 의미로 김게이2의 조카 김게이3(김수혁)도 게이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다. 비록 그가 자신의 남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뽀뽀, 안 해주시는 건가요?”
자신이 아무런 반응을 안 해주자 그가 슬그머니 눈을 뜨고 고개 숙인 채 수줍다는 듯 교태를 부렸다. 이 남자는 과거에 여자로 태어났으면 어우동, 혹은 황진이로 불렸을 인간이다. 아침부터 먹지도 않은 식사가 체하게 왜 이렇게 예쁜척하나 싶다.
“로이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게 되다니. 정말 행복한 하루입니다.”
“…거 배고프네. 밥 줘.”
아무리 봐도 수혁은 참 참했다. 자신이 의자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자 있자, 식탁에 그릇을 놓는 폼이 아주 고와 며느리 삼고 싶었다.
“형, 고백해도 돼. 난 준비가 되어 있어.”
“정말입니까?”
그가 반색하며 좋아라 했다. 역시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로이.”
수혁이 빨갛게 익어서 고개를 돌렸다.
턱 라인 죽이고, 오! 저 목젖. 쇄골. 완벽한 각도를 그리는……………
“팬티 주시면 안 될까요?”
변태였군. 변태였어.
로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제 우리 그만 만자나 했다. 연예인 중에는 상 변태가 많은데 그중 김수혁이 홍준호에 버금가는 것 같다. 참고로 홍준호는 자신에게 게이더라든지, 여러 가지 게이들의 성지식을 알려준 이야기꾼이자, 주안이 망태할아버지이니 도망가라고 한 연예계에서 벌레 같은 존재였다.
“잠깐. 그러고 나가시는 겁니까.”
그가 다급하게 자신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팬티는 벗고 나가세요. 로이.”
이거 알고 보니 참으로 못쓸 인간이다 싶었다. 로이는 경멸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습관처럼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손에 뭔가가 걸렸다. 이게 뭔가 싶어 머리에서 벗겨내자 남자 사각 팬티였다. 이게 왜 여기 있나 싶어 의아해졌다.
아! 맙소사! 새벽에 안대가 없어서 잠에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던 자신이 서랍을 뒤져 모자를 뒤집어썼던 기억이…, 아 젠장. 김수혁이 변태가 아니라 내가 변태였어.
로이는 창피함에 팬티를 쥐고 가까운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자 남자 방이라 그런지 벽면 가득 빨간색 표지로 되어있는 책들이 한가득 꽂힌 책장이 보였다. 침대에서 자고 있던 대머리가 깜짝 놀라 ‘우억!’하고 비명을 질렀다.
“살려주십시오. 아가씨.”
설마 팬티를 든 자신이 강도로 보이나 싶었다.
“도련님, 저는 결백합니다!”
대머리가 미친 듯이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수혁이 문을 열고 들어와 야수와 같은 몸짓으로 침대로 뛰어올라 미친 듯이 문어 아저씨를 발로 차댔다.
“씨발입니다. 아주 좆 같습니다. 죽어주십시오. 상철씨.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 목을 졸라드리겠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로이를 꼬시는 겁니까. 저한테 그 비법을 말하지 않으면 내시로 만들어버리겠습니다.”
왜 욕을 하는데 저리도 섹시해 보이는 걸까.
쫙쫙 뻗는 수혁의 다리가 대머리를 발로 차며 이게 바로 SM능욕 플레이구나 하는 걸 알려줬다. 로이는 그의 밑에서 하윽, 하윽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들으며 이게 바로 야동이지 싶었다. 아저씨가 엉엉 울며 수혁의 다리에 매달려 비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얼마 전에 읽은 ‘나를 능욕해주세요, 주인님.’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침부터 음란마귀가 붙었나. 왜 이렇게 저 남자가 야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최신 게이 야동은 A대학 병원에 가면 있지 싶어 쪼그려서 구경하는 걸 그만 두고, 아픈 스타일리스트를 위해 딸기를 사가자 싶었다. 그러자 수혁이 상큼한 미소로 자신을 돌아보며 ‘로이, 식사하시겠습니까.’라 물었다.
“나 다이어트 중이야. 민호형이 하도 돼지처럼 날 처먹여서 돼지가 되었거든. 이러다가 춤추다 뱃살 접혀서 굴욕당하겠어.”
“아니, 로이에게 뱃살이 어디 있습니까. 요즘은 너무 마르면 사람들이 보고 싫다고 합니다. 아직 나이도 있는데 어서 딸기 우유를 마셔야 합니다.”
“어디서 그런 구라를 아직도 믿는 건지. 쯧쯧. 그럼 바나나 우유 마시면 바나나가 커지냐? 잔말 말고, 병원이나 가자. 백돼지가 딸기 사오라고 난리야. 아! 냉장고에 딸기 있지?”
로이는 대머리 아저씨의 방에서 나와 냉장고를 열어봤다. 그리고 선반 가득한 딸기를 보고 혀를 찼다. 이런다고 클 가슴이면 진작 알아서 컸을 거다. 심각한 착각 속에 빠져 사는 수혁이 불쌍했다. 민호 형한테 다 먹어치우라고 해야겠다.
그녀는 딸기 6팩을 꺼내 식탁에 올려뒀다. 그러다 수혁이 갈아놓고 딸기 우유를 보고 한번 마셔주기로 했다. 목구멍에 쭉쭉 넘어가는데 조금 가슴이 커진 거 같기도 했다. 이게 다 변태 수 때문에 그런 거였다. 하도 주변에 변태 게이랑 변태 남자가 있어 자신까지도 변태녀가 되고 마는 거였다.
수혁이 마스크랑 모자, 외투를 챙겨서 나왔다. 로이는 그의 방에 걸어뒀던 패딩을 입고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그리고 마스크를 하는데 이게 바로 변장이고, 이게 바로 연예인이다 말하는 것 같아 한숨을 내쉬었다. 남들은 화장 안하면 다들 못 안아봐서 잘만 청담동, 명동, 압구정동을 놀러 다닌다는데 왜 자신은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세수를 안 해도 빛나는 자체 발광 꿀피부라던가, 입생로랑 틴트를 바른 듯 촉촉하고 섹시한 입술은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스타가 될 수밖에 없는 팔자지 싶게 만들어 스스로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선글라스도 껴야 하는데 왜 김 매니저는 안 챙겼나 싶었다. 자신이 손가락을 까딱까딱, 어서 가져오라 명령하자 그가 부리나케 달려가서 디올 선글라스를 가져왔다.
이게 아이돌이었다. 이 감출 수 없는 빛남.
로이는 한번 보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는 딥 블루 아이를 선글라스로 가리고, 모델 워킹으로 자신감 충만하게 현관으로 갔다. 그런데 슬리퍼가 한 짝밖에 없었다.
“김 매니저. 내가 지금 맨발로 미친년 마냥 돌아다녀야 정신 차리지?”
“지금부터 근무시간이었습니까.”
수혁은 도도한 아이돌이 ‘나 외출하게 신발 사와.’라고 하는 말에 머슴이 되어 ‘예, 로이.’하고 달려 나갔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본팬들이 켄사마를 외치며 환호해줘, 김 배우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알파 오메가에 올라탔다. 태형의 차고에서 훔친, 아니 빌린 차였다. 그는 가까운 신발 매장에 들어가 구두를 둘러봤다. 왜 이렇게 하이힐이 눈에 밟히는지, 빨간색 하이힐도 우리 로이한테 잘 어울릴 것 같고, 은색 빤짝이도 잘 어울릴 것 같고, 귀여운 핑크색 리본이 달린 둥근 코의 구두도 예쁠 것 같았다.
“수혁씨, 싸인해주세요.”
“사진 한 장만 부탁드릴게요.”
구두 매장 직원들이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자신이 연예인은 연예인인가 보다. 로이도 그녀들처럼 자신을 좀 멋있게 봐주면 좋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수혁은 여자 종업원들에게 싸인을 해주고 사진을 찍어줬다. 그러다 매장 안을 둘러보고 개인 소장용이라고 하기에는 가게 벽에 걸린 다른 연예인들의 흔적이 많아 이런 식으로 홍보하는 집이구나 싶었다.
그는 로이의 신발을 사러 온 것이라 급한 마음에 신발을 둘러봤다. 그런데 다른 매장에서는 다들 직업 정신이 있어서 이렇게까지는 않건만 왜 이렇게 뒤를 쫓나 싶었다.
“저 혼자 둘러보겠습니다. 편히 계셔도 됩니다.”
“저기 수혁씨, 저희가 템페스트에 구두 협찬하고 싶어서 연락 넣었는데 못 들어셨나봐요.”
“아, 죄송합니다. 작가님이 준호의 구두로 지정해주신 게 있어서 그것밖에 못 신는지라.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른 작품에서 신겠습니다.”
드라마가 잘 나가다보면 협찬이 많이 들어오게 되고, 그럼 로이나 자신 같은 급은 돈을 주고 입어주기도 했다. 인기 드라마는 방영되자마자 웬만한 광고 보다 효과가 좋아 아무리 콧대 높은 업체여도 톱스타들에게 그런 식으로 협찬했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카렌은 액세서리가 많아지고, 잠옷 하나에 50만 원짜리는 입는 ‘나 좀 납치해주세요.’하는 꼬마 마법사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저번 촬영에서는 헤어밴드를 하루에 5개나 착용해 감독한테 한 소리 하기도 했다. 극 중 날짜가 안 바뀌었는데 옷과 구두, 온갖 팔지부터 목걸이, 귀걸이, 머리띠까지 변하지 않는 게 없어서 말이다. 그래도 조카가 예쁘니 너그러운 한 감독이었고, 시청자들이었다. 일단 눈 돌아가게 예쁜 그녀의 모습에 사람들은 로이의 현란한 변신을 수긍해줬다. 시청률과 인기가 모든 것을 대변하는 연예계였다.
수혁은 편해 보이는 붉은색 로퍼 슈즈를 들어올렸다. 260. 보통 여자들이 발 사이즈 보다 컸지만, 로이의 키에 비하면 작은 편이었다. 자신이 사줄 신발을 신고 그녀가 걸어 다닐 걸 상상하자 손바닥에 올려진 신이 로이의 발 같아서 사랑스럽고 너무 예뻐 보였다. 그는 얼른 결제를 하기 위해 청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재빨리 나오려다보니 지갑을 안 챙기고 나왔던 거다.
“………이거 협찬 되죠? 로이가 템페스트에서 신고 나올 겁니다.”
“수혁씨, 잠시간 기다리시겠어요.”
그는 자신의 말에 여종업원들이 구두를 한 무더기 더 포장해서 건네는 걸 받아들고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싶었다. 분위기상 이걸 다 받아가야 할 것 같은데 촬영 때 로이가 신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싶다. 수혁은 사람 상대하기 힘든 자신에게도 매니저가 꼭 필요하다 싶었다. 앞으로는 어딜 가든 상철을 끌고 다녀야겠다. 자신은 상철이를 많이 애정해서 많이 때린 것뿐이었다. 원래 매니저와 스타의 관계는 그렇다고 19년차 선배가 직접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