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9 병문안을 가자 =========================================================================
로이는 문을 열고 나오자 밴까지 일렬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길을 터준 보디가드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팬들과 자신은 가까이서 이야기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손을 잡고 농담을 나눌 수 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지금의 열기가 식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한번 거리감을 느끼면 예전처럼 자신이 친구라는 인식을 그녀들에게 심어주기 힘들었다.
어라? 로이가 무지 대단한 존재였나 봐. 지금 승냥이들의 표현이 그랬다. 어떨떨하고, 기자들 틈바구니에 끼어 자신을 불안한 눈으로 쳐다고 있는 게 이제 자신을 더 이상 가까운 존재라고 느끼지 못하게 된 것 같았다. 2년 전에도 그랬다. 할리우드 스타가 되어 나타난 자신에게 팬들은 뿌듯해하면서 감히 자신을 다가갈 수 없는 존재인 양 어렵게 대했다. 아무리 환호로 대해도 그건 인간 로이가 아닌 언론이 포장한 로이를 보고 좋아해주는 거여서 사람들의 박수 속에서 자신은 너무 외로웠다. 그건 마치 자신을 칭찬해주는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는 소속사를 옮기고 콘셉트를 변경해 팬들의 교체를 기다렸지만, 그 방법이 또 먹히기에는 이번에는 너무 판이 커진 것 같았다. 적어도 자신이 17살 때에는 어린 아이돌을 따라 미국 파파라치들이 자신을 쫓아오지는 않았다. 괜히 매니저 한번 잘 못 써서, 팬들에게 자신은 그들의 세계 속에 속했던 친구인자 연예인인 로이였는데 이제는 손도 제대로 만질 수 없고 대화도 나눌 수 없는 할리우드 스타 로이 테일러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Roy~.”
자신을 미친 듯이 불러대는 외국인들이 카메라를 들이밀며 2년 전의 공포를 떠올리게 했다. 스타에게 숨어들고 싶고 눈에 띄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다니, 스타의 본질을 부정하게 만드는 그들은 과연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면 할리우드 스타들이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자들다웠다. 연예인도 사람인데 다들 왜 이렇게 몰아대나 싶을 정도로 저들은 자신들에게서 사생활을 빼앗고, 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인간적인 실수까지도 공개해 연예인들의 정신을 붕괴시켜서 피 빨아 먹는 거머리였다. 공생할 수밖에 없는 관계라지만, 달갑지는 않았다. 아니, 너무 싫다.
더욱이 슬픈 건 이제 자신과 팬들 거리가 세 발자국이 넘는다는 거였다. 로이는 일일이 눈을 마주치고 팬들과 이야기하고 싶은데 보디가드들이 밴으로 밀어 넣으려고 들어 그들의 손을 쳐댔다. 그러자 그걸 또 파파라치들이 좋아라 찍어댔다. 지금 성질 같아서는 저 카메라를 던져버리고 싶은데 그러면 욕밖에 더 먹겠나 싶었다. 그때 KISS ME 카메라라 자신에게 다가왔다.
“로이,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네.”
그녀와 같이 밴에 올라탄 로이는 급작스럽게 몰려온 피로감으로 한숨을 쉬었다.
“왜? 다들 네가 미국에 복귀한 걸 축하해주는데. 할리우드 스타라고. 좋지 않아?”
“뭐……그건 좋은데, 너무 인기가 많아서 팬들이랑 친하게 지낼 수 없는 건 싫어서요. 파파라치 때문에 신경 쓰이고, 팬들이 많아지다 보면 동시에 안티도 많아지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또 그런 것들 때문에 보디가드도 써야하고. 그래서 배부른 말 같지만 외로워요. 스타라는 건 별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냥 하늘에 떠있어서 한번 예쁘구나 하고 보고 지나치는 거. 없어도 그만인 거.
그러니 이양이면 스타가 아닌 태양이 되고 싶어요. 일방적으로 대해야하는 별 같은 존재가 아니라. 태양은 멀리 있지만 별과 달리 사람들한테 골고루 자기 빛을 나눠 줄 수 있잖아요. 전 아무리 팬이 많아도 모두와 눈을 마주치고, 같이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존재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게 제가 꿈꾸는 아이돌이에요.
남들은 Reve가 절 착취하고 대우 안 해준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오히려 다른 아이돌들은 텔레비전 안 나오는 동안 행사 뛰지만, 저는 그런 거 안하고 텔레비전에만 나오는 거라 다른 아이돌이 일하는 것보다 더 일하는 것 같아 보인 것뿐이죠. 보디가드도 제가 극구 싫다고 한 거였고, 그래서 그전까지는 아침마다 절 기다린 팬들이랑 대화를 나눴어요. 안녕, 하고. 그럼 팬들은 저랑 대화를 해줬죠. 로이 오늘도 멋있어, 라고. 제가 그럴 수 있었던 건 사장님이 절 배려해줘서 가능했던 거고요. 서로 믿음이 있었달까?
전 아무리 인기가 좋다고 해도 실감 안나요. 그저 따뜻한 응원 한 마디 받으면 저도 팬과 마찬가지로 기뻐요. 공연을 해서 관객수를 눈으로 보여주는 것 보다 그 외의 시간에 팬들과 대화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하고요. 이기적일지 모르나 그들의 삶에서 제가 사라지면 흔적이 남길 원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태양이 사라지면 곡식이 말라비틀어지고 지상의 생명체가 살 수 없게 되듯 누군가에게 절대 없어서 안 되는 존재가 싶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런 쪽으로는 전 팬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면 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아픈 거 싫으니깐. 그저 추억으로 조금 남길 바라는 정도죠.
스타들이 죽었다고 따라죽는 걸 볼 때면 내가 함부로 죽어서는 안 되는 공인이구나 싶어 책임감이 생기고 행동거지, 말 한마디 조심하게 되곤 해요. 그런 걸 보면 스타와 팬은 마냥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 보다는, 내 옆에 있다는 기분을 들게 해주고 싶고요.
아, 젠장. 나 왜 이렇게 횡설수설이지? 미안해요. 이거 편집해줘요. 사실 아직 어떤 아이돌이 되고 싶은지 저도 잘 몰라요. 그냥 사장님이 태양 같은 존재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반해서 Reve에 있는 거거든요. 그게 어떤 건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멋진 아이돌일 거라 생각해요.”
로이는 괜히 PD나 잡고 헛소리를 했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마른세수를 했다.
“그런데 병원까지 따라 오려고요?”
“응, 스타일리스트 병문안 간다며.”
“그럼 지금 대화 나눠서 분량 뽑을 게요. 거긴 따라 들어오지 마세요. 아픈 환자한테 민폐 끼치기 싫으니깐.”
“음…뭐랄까. 로이. 넌 멀리서 볼 때 굉장히 장난기 많고 잘난 맛에 사는 싸가지 없는 아이돌 같아 보였는데 여태 널 지켜보니깐 그냥 넌 서툴고 생각이 깊은 아이 같아. 확실히 네 나이 또래 보다는 깊어.”
그러면서 PD가 웃어보였다.
“고민이 많은 거 같은데 힘내. 어떤 아이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다 정리하지 않아도, 넌 이미 충분히 멋진 우리들의 우상이니깐. 스타일리스트 걱정해서 나 보고 따라오지 말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넌 이미 된사람이야.”
로이는 뜬금없이 받게 된 칭찬에 얼떨떨해져 고맙다고 했다. 그러자 수혁이 운전을 하다가 한 마디 더 건넸다.
“로이가 원하는 아이돌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모두에게 소중해진 것은 틀림없습니다.”
“히히. 그래, 로이야. 너 진짜 내가 봐도 짱 멋져. 인정할 건 인정!”
그러면서 수정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갑자기 이 인간들이 왜 이러나 싶어 로이는 혹시 감동 모드로 나가는 게 KISS ME 종방연이라 그런 거냐고 물었다.
“시청률도 좋은데 우리 시즌 투 나가죠?”
“하하하하. 로이 너 우리 프로 안 보면서!”
그런 자신의 말에 KISS ME PD가 카메라가 흔들릴 정도로 웃어댔다.
“아, 그게 자꾸 나한테 사장이 로이는 베베가 좋아. 외로워. 그딴 식으로 토 나오게 말하라고 하니깐 그렇죠! 내가 그것 때문에 무서워서 인터넷을 끊었다는 거 아니야. 사람들 욕할까봐 무서워서.”
“천하의 로이 테일러가 악플이 무섭다고?”
“당연한 거 아니에요? 나도 사람이고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인데. 아마 내가 죽으면 로이 테일러의 최대의 흑역사로 KISS ME가 꼽힐 거라고요.”
“그런데 시즌 투 하자고? 우리 계약서 준비한다?”
“어허~, 하여간 사람이 뭔 말을 못해. 그건 소속사와 상의하시죠. 전 일개 연예인이라 그런 거 모릅니다.”
“로이야, 너 출연해도 돼. Reve 이사장으로서 허락하지.”
“누나!”
자신의 고함에 다들 웃어댔다. 너무 열 받아서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자, KISS ME PD가 캠코더를 꺼내 보여줬다.
“우리 KISS ME를 너무 무시한 벌이다.”
그녀의 말에 뭔가 싶어 화면을 들여다보자, Reve 사장실에서 자신이 주안에게 ‘로이는 베베가 좋아요.’라는 식의 말투를 쓰라 적혀 있던 대본을 받고 지랄발광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형 미쳤어? 나보고 인형이나 들고 다니며 로이는 어쨌쪄용. 이렇게 말하라고?”
“그래, 너 요즘 이미지가 너무 막나가는 것 같아서 귀여운 걸로 밀려고.”
“미친. 이건 귀여운 게 아니라 모자란 거야.”
화면 속 자신이 손가락으로 머리에 원을 그리며 사장을 비아냥거렸다.
“로이는 꽃 달았어요. 라라라랄.”
“킥, 야~. 요즘 이게 트렌드야.”
“트렌드는 개풀. 너나 해. 너나! 내가 진짜 다른 데로 소속사를 옮겨야지. 아주 이걸 확!”』
………지금 이게 방송으로 다 나갔다고? 대본 들고 이로 물어뜯고 발을 동동거리며 ‘싫다고오오~!’라 짜증 부리는 게?
로이는 차라리 ‘로이는 베베랑 친구예요.’라고 말하는 버전을 방송한 게 낫다 싶었다. 이걸 어쩌나 싶어 이마를 붙잡고 푹 한숨을 내쉬자, PD가 ‘몰래 카메라였어.’라는 거다.
“아니 무슨 몰카를 아무런 상의도 없이 해요? 그건 90년대에 경규 아저씨나 했던 거라고요. 아주 날 골로 보내려는 지능적 안티구만. 이거 안 되겠다. 방송국 지분 다 살 테니깐 KISS ME 테이프 내놔요. 다 불살라버리게. 도대체 방송 어떻게 나갔어요?”
“어떻게 나가긴. 너 베베 들고 귀여운 척하다가, 인형 배때기 때리는 거까지 다 보여줬지. 그래도 욕은 삐 처리 해줬다.”
“씨~. 그럼 KISS ME 마지막은 로이 테일러의 삐로 끝나겠습니다. 이런 삐 같은 방송아! 확 망해버려라!”
로이는 카메라를 붙잡고 으르렁거렸다. 드디어 이걸로 지긋지긋한 예능은 촬영 끝이었다. 그녀는 발로 조수석을 뻥뻥 차며 성질을 부렸다. 그리고 마음을 다 잡고 KISS ME PD에게 생긋 웃으며 이미지 관리 들어갔다. 자신의 못 볼 꼴 다 본 그녀라지만, 이 미친 미모로 홀려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조금이라도 흑역사 덮기가 수월할 테니 말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자신의 인사에 PD가 그동안 잘해냈다며 어깨를 토닥여줬다. 너무 열 받아서 김주안 좀 죽여야 풀릴 것 같던 기분이 조금 가라앉을 것 같았다. 일단 로이는 그녀를 방송국에 내려주고 민호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누가 연예인도 아니고 스타일리스트를 VIP실에 입원시켜주겠냐. 자신이나 되니깐 해주는 거였다. 그러니 백게이건 김게인건 자신을 신처럼 떠받들려야 할 것이다.
로이는 이 두 게이가 지금쯤 주둥이 부비고 있겠거니 싶어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주안이 놀란 눈으로 사과를 깎다가 자신을 쳐다봤다. 젠장. 아주 둘이 꽃이 폈네, 꽃이 폈어. 사과를 토끼 모양으로 깎다니 과연 게이다웠다.
“야아아아아아! 이 빌어먹을 좆 게이야!”
그에게 달려가 목을 조르자, 주안이 머리를 대롱대롱 흔들면서 살려달라고 했다.
“나 보고 게이 소문난 거 덮으려면 동정표가 최고라고? 파파, 로이는 파파가 보고 싶어용. 씨발. 넌 내게 모욕감을 안겨줬어. 우리 달콤한 인생 좀 찍어볼까. 땅에 파묻어주마.”
“으아아아. 로이야 잘못했어. 살려주세요. 로느님.”
“로이야, 나 선물 없어? 너 어쩜 병문안 한번 안 오냐?”
자신이 주안을 목을 팔뚝에 휘감고 꿀밤을 먹이고 있자, 이놈의 먹보 스타일리스트가 소보로빵 없냐며 자기 그거 먹고 싶다고 했다. 로이는 일단 배신자를 놓아주고 그래도 환자라니 먹고 싶은 거는 사다줘야 할 것 같아서 병원 매점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벌써 자신이 왔다는 게 소문이 났는지 문 열고 나가니 꼬마들부터 시작해 아줌마, 아가씨, 아저씨, 할머니, 간호사까지 복도를 순대 속 마냥 꽉꽉 메꾸고 있었다.
“누나, 민호 소보로 먹고 싶데. 사가지고 와.”
“주안아, 나 소보로 하나만 사다줘.”
“………하여간 내가 동네북이지.”
자신이 수정에게, 수정은 주안에게. 확실히 서열 체계가 잡히 Reve였다. 민호가 자신이 왔다고 좋아라 실실거리며 음료수는 안 사왔냐고 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수혁에게 알로에 음료수 한 박스를 받아 건네자 그가 꼭 끌어안았다. 너무 방치했더니 자신의 사랑이 부족했나 보다. 혀를 쯧쯧 차며 머리를 토닥여주자, 그가 자기 대신 알로에 주스 좀 마셔달라고 했다.
“왜, 형이 마시지.”
“나 음료수 못 마셔.”
“못 마시긴 왜 못 마셔. 빵도 처먹고 싶어서 앙탈을 부리더만.”
“사실 빵도 못 먹어.”
“………뭐야? 금식이야?”
그런데 침대에 아무것도 안 붙여져 있었다. 가뜩이나 삐쩍 골은 민호가 수술한지 얼마 안 되서 죽밖에 못 먹는다고 했다.
“뭔 수술을 받았는데 여태 아무것도 못 먹어.”
“위암 수술.”
로이는 너무 놀라 담담하게 위암이었어, 라고 밝히는 그에게 미쳤냐고 했다. 기껏해야 잘 토하는 더러운 놈이니 위장병이겠지 싶었는데 위암이라니. 너 이제 죽는 거냐고 물으니깐, 자신의 스타일리스트는 웃으면서 ‘암이면 다 죽냐?’라며 웃어보였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 못 먹는다고 했지. 그럼 언제까지 못 먹는 거야?”
“지금은 종이컵 하나에 죽 따라서 5번씩 나눠 먹고 있어. 천천히 먹어가는 양 늘리면 돼.”
그럼 지금 토끼 사과는 오로지 김주안이 지를 위해 깎고 있던 거라는 뜻이었다. 진정한 변태로 임명해줘야겠다.
“예. 여보세요.”
전화가 왔는지 수혁이 병실 구석으로 가 전화 통화를 했다. 로이는 신경 끄고 민호에게 도와줄 거 없냐고 했다.
“아니. 괜찮아. 그런데 나 없는 사이에 너 옷 진짜 구리게 입더라. 내가 아무리 몸매가 예뻐도 청바지랑 티셔츠만 입지 말라고 했잖아. 넌 스타라 명품 좀 휘감아줘야 해. 그런 비정상적인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아이고, 감사합니다하고 꾸밀 줄 알아야지. 퇴원하면 같이 쇼핑가자. 팬들한테 받은 거 입는 것도 좋은데 그럼 너무 없어 보여. 너 그렇게 돈 쌓아놓고 안 쓰면 그것도 욕먹는 일이야.”
“킥, 하여간 아파도 그 주둥이는 멀쩡하지.”
“거기 어디야!”
로이는 갑자기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버럭 들려 뒤돌아봤다. 그러자 수화기에서 미친 남자가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수혁은 당황해서 ‘병원이데요.’라 답했다.
“말해! 어느 병원?”
“A대학 병원 특실인데…삼촌 미쳤습니까.”
“넌 닥쳐. 방금 민호 목소리 들렸단 말이야. 내가 갈게. 민호야. 내가 가.”
수혁은 정신 나간 삼촌이 드디어 망령든 것 같아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슨 일이야?”
“삼촌이 정신병자라서 이렇게 가끔 이상해집니다.”
“그거 참 안됐다. 힘내 형. 나도 미친 사장이랑 미친 메이크업 아티스트랑, 미친 스타일리스트랑 새로 생긴 미친 매니저를 곁에 둬서 이해가 가네.”
“………로이, 그 미친 매니저가 혹시 접니까.”
“형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런 거겠지. 민호형, 그런데 위암이면 위절제술 받은 거야? 몸무게 몇 킬로 빠졌어? 내가 요즘 살이 너무 쪄서 위밴드술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거든.”
“헐~. 로이야, 우리가 미친 게 아니라 네가 미친 거네. 살이 찌긴 뭘 쪄. 그 동안 해골 같아서 보기 안 좋았는데 이제야 사람 같건만. 그리고 너 그 키에 그 몸무게면 뼈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 네가 가슴이 없는 거잖아.”
“환자라고 봐주려고 했더니만, 뭐가 어째? 그리고 가슴은 없을수록 좋지. 내가 남자 아이돌인데.”
로이는 요즘 부쩍 커진 것 같은 가슴을 만져보고, 이걸 수혁에게 보여줄 정도는 아닌데 예전처럼 훌러덩 벗어 보일 수도 없는 크기라 그 애매함에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살 빼야할 것 같았다. 이제 양배추만 먹고 살아야겠지 싶어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처먹은 자신이 너무 싫어졌다.
“나 물 줘.”
“그래, 그래. 내가 이제 네 시다바리고, 넌 스타해라. 근데 퇴원하면 국물도 없으니깐, 적당히 부려먹어.”
그녀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민호에게 따라줬다. 그러자 물도 함부로 마실 수 없는 지 그가 가제 수건에 물을 젖혀 입술에 얹었다. 마음이 짠해졌다. 위암이라는 거 수술해도 힘든 모양이었다. 하긴, 그래서 사람들이 암을 무서워하는 거겠지. 로이는 침대에 걸터앉아 스타일리스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런데 하도 머리를 안 감아 이놈의 개털이 아주 미역줄기 같아서 좀 씻으라고 한 대 때려줬다. 설마 위가 아픈 건데 머리 때렸다고 피 뿜으면 죽는 건 아니겠지.
“아앗. 아파. 로이 미워.”
“지랄. 지랄. 너 이렇게 될 때까지 내가 가만히 둔거 보면 사람들이 날 또 얼마나 씹어 되겠냐? 그러기에 내가 미련 떨지 말고 진작 병원 가라고 했어? 안 했어?”
로이는 주먹으로 민호의 인중을 꾹 누르며 돌렸다. 이건 형이 아니라 완전 동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폐인 하나가 뛰어 들어와 자신을 미치고, 민호를 끌어안았다.
“어이, 너 뭐야? 남의 병실에 함부로 들어오지 마.”
“…죽고 싶지 않으면 닥쳐.”
이 천하의 로이 테일러가 쫄고 말았다. 어찌나 살벌한 게 생겼는지 눈을 희번덕거리게 뜬 것도 무섭고, 목소리도 낮고 굵은 짐승의 울음소리 같아서 소름이 쫙 끼쳤다. 보디가드를 불러야 할 것 같아 자신이 작전상 후퇴를 하자, 수혁이 ‘삼촌!’이라는 거다. 그 미쳤다는 삼촌이 이 남자인 모양이었다.
“민호야, 민호야. 민호야. 민호야.”
수혁이 부르던 말든 삼촌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스타일리스트 손을 잡고 제 얼굴을 비비대며 울었다. 그리고 그때, 때 마침 주안이 소로보 빵을 사와 셋이 딱 마주치게 되었다. 로이는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게이 치정사인가 싶어 눈을 부릅뜨고 구경해줬다. 이 세상에서 제일 제미 있는 게 섹스 구경, 불구 경, 싸움 구경인데 싸움 구경 중에서 게이 싸움 구경이 최고봉이었다.
“아저씨, 여기 병원이에요. 괜찮아요?”
“흑, 너 아픈 거야? 왜 병원에 있어.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우리 강아지. 얼굴 반쪽 된 거 봐.”
미친놈이 무릎 꿇고 우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저건 미친 게 아니라 그냥 불쌍한 거 같았다. 그가 민호의 얼굴을 매만지며 보고 싶었다고 아이 마냥 울어 자신이 곤란해 하는 스타일리스트를 구해주기로 했다.
“이 봐. 당신, 내 스타일리스트한테서 떨어지시지? 걔 임자 있는 몸이야. 저기 보이지? 짱 잘생기고 돈 많고 똑똑한 사업가. 우리 소속사 사장이야.”
로이는 짝다리를 짚고 시건방진 표정으로 정체 모를 수혁의 삼촌에게 경고를 했다. 그러자 민호의 앞에서 연약하고 보잘 것 없이 보이던 남자가 쓱 일어서더니, 자신의 머리통을 한 손으로 잡아챘다. 이렇게 키가 큰 줄 몰랐는데 190이 넘는 듯싶었다. 그의 큰 손에 자신의 머리가 다 잡혀버렸다. 수혁이 그런 제 삼촌의 정강이를 차며 자신을 구하려고 했지만, 무슨 사람이 이렇게 힘이 쎈지 너무 아팠다. 자신이 눈물을 찔금 흘리자, 민호가 그런 사내의 등판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우리 로이 괴롭히지 마요.”
“씨발년, 운 좋은 줄 알아. 다시는 혓바닥 제대로 못 놀리게 잘라버리는 수 있으니깐.”
로이는 처음으로 겪는 대우에 깜짝 놀랐다. 모두가 자신에게 잘 대해주고, 친절하려고 쩔쩔 매는데 말이다. 사내의 머리가 잔뜩 산발인 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듯한 분위기도, 피로 얼룩진 눈도 너무 무서웠다. 수혁한테 달려가 그의 품에서 오들오들 떨자, 그가 자신을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줬다. 저 이상한 미친 놈 때문에 자신이 그저 사랑받아온 어리광쟁이 스타였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인기 너무 많아서 피곤하다고 방금 PD한테 투정부린 행동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저 새끼가 우리 강아지 애인이라는 양년의 말은 뭘까? 응? 우리 민호는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저씨는 하나도 못 알아들어 처먹겠는데?”
태형은 재킷에서 커터 칼을 꺼내 손안에서 휘돌렸다. 그 모습에 민호는 주안에게 어서 도망가라고 눈빛을 보냈다.
“글쎄요. 미노는 전혀 모르겠어용. 왜 그런 오해가 생겼을까용? 힝~, 미노는 아저씨가 너무 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용.”
“그래. 우리 강아지. 아저씨도 우리 민호를 인간적으로 대해주려고 했는데 개새끼 마냥 집 나가서 많이 보고 싶었어. 이제 도망 못 가게 목에다가 줄 매달고 진짜 개처럼 굴려줄게.”
“………사실 제가 암이었답니다.”
민호는 웃통을 까 제 수술 자국을 보여줬다. 그러자 태형이 부들부들 떨더니 뒤로 쓸어져버리고 말았다. 바닥에서 팔 다리를 달달 떠는 게 참 안쓰러웠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가 수술도 잘 되었으니 이제 걱정 없었다. 그는 침대 옆에 달린 호출 버튼을 눌러 간호사를 불러줬다. 그러자 태형이 쇼크로 호흡곤란을 일으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상태가 많이 안 좋은지 게거품을 물어 민호는 시간 좀 벌겠다 싶었다.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싶었다. 주안은 민호에게 다가가 ‘네 아저씨가 저 사람이야?’라 물었다.
“응.”
“……너 진짜 남자 보는 눈 없다. 나 같이 잘난 놈 놔두고 저런 이상한 남자를 못 잊겠다고 질질 짰다니.”
“뭐 그런 것 같긴 해. 그런데 우리 사이 절대 떠벌리지 마. 조폭이거든. 남의 배를 아무렇지 않게 갈라 내장 꺼내는 게 취미인 사람이야. 형이랑 내가 잔 거 알면 칼로 거시기 잘라낸다는데 내 전 재산을 걸게.”
“……………로이야~.”
주안은 급히 고개를 돌려 로이에게 달려가 나에게는 너밖에 없다 외쳤다. 그러자 수혁이 남의 여자 넘보지 말고 꺼지라며 진정한 이중인격 연예인이 뭔지를 몸소 보여줬고, 로이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이제 형아 고추 없겠네? 축하해. 조폭의 남잘 건드리면 최후가 비참하지.’라며 웃어보였다.
“주안씨,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저의 삼촌은 진정한 칼잡이입니다. 아주 깨끗하게 잘라드릴 겁니다. 만약 제가 입 다물기 원하신다면 우리 로이한테 눈길 주지 마십시오.”
“…미워잉. 왜 다들 나만 가지고 이러는 거야! 나 혼자 했나?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라고!”
주안이 토라져서 달려갔다. 아니 도망가는 거겠지. 로이는 혀를 쯧쯧 차며 수혁의 삼촌 앞에서 혀 짧은 소리를 내던 스타일리스트를 보고 ‘미노는 보고 싶어용.’라 그를 놀렸다.
“귀엽네. 미노라. 킥. 그 나이 처먹어서 그러고 놀면 좋지.”
“……아구구. 배야. 왜 이렇게 수술한 데가 당기지?”
민호가 배를 움켜잡으며 아픈 척 하더니, ‘로이는 외로워. 로이한테는 베베밖에 없어.’라며 작게 속삭였다. KISS ME가 끝났으니 이제 그 인형 머리를 한 번 더 뽑아버려야겠다.
============================ 작품 후기 ============================
제가 참 늦게 왔지만 용량이 짱짱이랍니다^^
.....그런데 알바자리를 구했답니다. 아는 언니 가게에서 알바하기로 했읍니다요~.~
1월부터 다닐 것 같은데 단기 알바라 연재는 계속할 수 있으니 걱정마시길.
반드시 완결을 내 보이겠습니다. 파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