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55화 (55/104)

00055  다 보여줄게  =========================================================================

자동차가 깡통 마냥 쉽사리 사내들에 의해 쭈그러져버렸다. 안에 있는 파파라치가 살려 달라 소리를 질렀다. 로이는 그 모습을 보며 너무 무서워 수혁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가 가만히 서서 그 과정을 지켜보다가 손을 들었다. 조폭들은 뒤로 물러섰다. 수혁이 차 문을 열었다. 그래, 이건 영화일 것이다. 지금 자신은 영화 촬영하는 걸 보는 거다.

배우는 스타들의 사생활을 팔아먹으며 사는 파파라치의 카메라를 빼앗아 메모리칩을 빼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건 좋지 않습니다.’라 웃었는데, 수혁이 아무리 온화한 목소리로 말해도 그 내용이 ‘네 내장을 꺼내주지.’ 정도로만 들리는 건 그 미소가 너무 살벌해서 그런 것이리라. 살인자 잭이 조용히 울고 있는 파파라치의 눈물을 다정하게 닦아줬다.

“얘들아, 손님 배웅해드려라.”

“예. 도련님.”

조폭들이 차 안에 있던 운전수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로이는 역시 전직이 의심되는 남친을 두는 건 아니다 싶어 열심히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러자 남 다른 다리 길이로 주변 연예인들을 죄다 쭈구리로 만들었던 우월한 톱스타께서 성큼성큼 뛰어와 자신에게 백허그를 했다.

“로이, 밥 먹고 가세요.”

설마 밥솥 안에 쌀과 함께 손가락이 있다던가, 고기국에 든 게 소고기가 아니라 인육이라던가, 햄과 만두에 들어있는 고기가 파파라치의 뱃살이라던가, 그러지는 않겠지? 로이는 오늘 하루 계속 있어주면 안되겠냐고 어리광을 부리는 남자한테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나 일의 노예로 자라서 그런지 일 하지 않으니깐 불안하네. 지금이라도 스케줄 소화하러 갈게.’라며 그의 팔을 풀고 열심히 달렸다. 그러다 주택가를 벗어나자마자 여성 팬들이 ‘꺄아~, 로이다.’라며 달려들어 그녀들에게 붙들려 머리카락이 쥐어 잡히고, 포옹당하고, 옷 다 늘어나고, 그러다 어떤 년이 자신의 입에 키스하려고 달려들어 다른 팬들이 그거 데리고 다구리하고, 아주 난리가 났다. 쌍코피 터져서 우는 숙녀팬이 참 안쓰럽기는 하지만 승냥이들이 무서운 거야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이 알고, 그 대상인 로이 테일러도 알고, 지들도 아는 사실이니 어쩔 수 없었다.

뒤늦게 따라온 수혁이 ‘스케줄 소화하실 거면 제가 매니저이니 함께해야지요.’라며 이제 너는 24시간 나의 감시 하에 놓여있다 켈켈 웃었다. 물론 진짜 그런 이상한 웃음소리를 낸 거는 아니고 그냥 기분상 그랬다. 로이는 자신의 금발이 뽑혀 있는 걸 본 룡룡이가 정색하며 누가 그랬냐고 묻는 말에 살짝 눈을 내리깔고 ‘잘 모르겠는데.’라 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반짝이는 사파이어로 ‘저 년의 손에 나의 고운 허니 블론즈가 있음요, 출격하라 룡룡 28호. 암~, 이 수퍼 스타를 대머리로 만들려 했으니 그건 팬이 아니라 지능적인 안티.’라는 듯이 한 명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수혁이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펴냈다.

정확한 물증이 있으니 이제 저 여자는 빼도 박도 못하고 머리털이 다 밀릴 것이다. 불쌍하기는 하지만 눈물 나게 아팠으니 진정한 팬이라면 자신의 선택을 이해하리라.

로이는 그가 미쳐 날뛰어 팬을 폭행하면 감옥에 갈 테니 그때 면회 가서 두부나 넣어주고 헤어져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자신이 룡룡이를 잘못 판단한 모양이다. 수혁은 한류의 제왕을 코앞에서 목격해 뿅간 여인네에게 살인미소로 ‘다음부터는 우리 로이 머리카락 뽑지 말아요.’라며 심장을 간질이다 못해 폭발할 것 같은 목소리로 그녀의 귀를 멀게 하고, 그 미친 미모로 장님을 만들어낸 다음 넋 나간 그녀의 손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빼앗아 득템한 걸 잽싸게 자기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설마 지금 저거 얻었다고 봐줄려는 건 아니겠지?

“로이, 가시죠.”

매니저 수혁이 하얀 이 7개를 드러내 보이며 치약 광고를 한번 찍어주시고, 승냥이들을 자기 팬으로 만들어버리는 개매너를 보여줬다. 분명 그녀들은 자신의 팬이었는데 김수혁만 바라보고 좋아라 해댔다. 정말 철새 떼 같은 팬들이었다. 이러면 자신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아이돌이라 쓰고 질투의 화신이라고 읽는 현직 스타는 목이 다 늘어나버린 티셔츠가 섹시하게 보이게끔 쇄골이 두드러지게 옷을 한쪽 어깨에서 흘러내리게 했다.

로이는 살짝 고개를 치켜들어 목근육을 당긴 다음, 게슴츠레한 눈으로 도톰한 입술을 모아 섹시 아이콘이 되어보였는데 너무 오버를 한 듯싶었다. 추운 날 이러면 미친년밖에 안 되는 건데 말이다. 팬들 반응이 없어 뻘쭘해져서 어깨를 가리자, 그제야 그녀들이 두 손을 모은 채 ‘꺄아아~ 너무 귀여워. 지금 질투한 거야? 우리 로이? 우쭈쭈. 누나가 예뻐해줄게.’라는 거다. 흥. 이미 늦었다.

“몰라. 나 삐졌어. 미워!”

비뚜름하게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글썽거리니, 승냥이들이 ‘사랑해. 로이.’라며 달려와 안아줬다. 치. 이번 한번만 바람피운 걸 봐주도록 하지. 하지만 다음에는 국물도 없어.

로이는 ‘날 사랑해주는 건 고마운데, 나는 스타고 너는 팬이야. 그건 너무 당연한 거잖아.’라는 듯 도도한 표정으로 그녀들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럼  빠빠이~. 인터넷에 나 욕하는 글 올리면 죽음이야.”

주먹을 불끈 쥐고 겁을 주자 승냥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수혁이 자신에게 졸래졸래 다가와 역시 스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며 마치 초짜 무명 신입 마냥 굴어 ‘훗, 잘 보고 배워.’라 했다. 그런데 진짜 이 한류 스타가 고개를 끄떡이며 ‘예. 명심하겠습니다. 로이.’라는 겸손한 후배의 모습을 보여 괜히 자신만 개싸가지 오만한 선배가 되고 말았다. 정말 이 인간이랑 같이 못 다니겠다.

집에 돌아갈 생각으로 스케줄 소화하겠다고 한 건데 매니저가 되어버려서 그에게서 도망갈 구멍이 없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노는 게 좋을 듯싶었다. 로이는 수혁에게 자기랑 놀면 안 되냐며 애교 좀 부려보라고 했다. 한번만 더 해주면 자신도 받아줄 용의가 있었다.

“로이~~, 오늘 저랑 놀아주시면 안돼요?”

아, 누가 요 아저씨를 제 나이 그대로 아저씨라 볼 것이고, 무지막지하게 파파라치 차에 매달려 추격신을 벌이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대머리들의 도련님으로 볼 것이며, 영화제를 앞두고 자기 머리를 바리깡으로 밀어버리는 정신병자로 볼 것이란 말인가. 그 밖에 기타등등 제정신이 아닌 모습을 더 본 것 같기는 한데 너무 많아서 자신이 잘 기억 안 나는 것 같았다. 자기 입으로 스스로를 평범하고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그는 분명 연예인이었다. 돌아이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그 대머리 아저씨는 괜찮은지 모르겠다.

“형, 그 문어 아저씨 괜찮아?”

“설마 지금 제 앞에서 상철이를 걱정하는 겁니까? 걱정 마십시오. 로이가 총애하는 상철이는 아주 아주 건강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 보장은 못하겠네요. 스트레스로 암이 걸릴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그는 용 주제에 제법 귀여웠다. 로이는 수혁의 허리에 슬그머니 팔을 두르고 걸었다. 그러자 놀란 자신의 남친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죄송합니다아~.’라며 뛰어갔다.

“형, 어디가?”

“……화장실.”

전속력으로 달리던 남자는 잠깐 멈춰서더니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미친 듯이 뛰었다. 쯧쯧. 고작 이런 걸로 발기를 하다니 참 안습이었다. 완전 토끼였다. 토끼. 로이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던 김수혁의 유일한 단점이 조루였다는 사실에 결혼은 하지 말아야지 싶었다. 아무리 예쁘게 생긴 용이라 할지라도 결혼 생활이 얼굴 뜯어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다 잠자리 궁합이 맞아야 되는 거 아니겠는가. 물론 자신은 평생 남자 아이돌일 테니 처녀로 살 테지만 말이다.

로이는 그 틈을 타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다 자신이 한 번도 혼자 돌아다녀본 적이 없어서 5살 꼬마도 아니고 혼자 집에 못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아역 스타의 말로인 것이다. 결국 그녀는 수혁의 빌라로 돌아가 그가 화장실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자신이 있는 줄도 모르고 뇌쇄적인 신음소리를 내는 게 나중에 문 열고 나왔을 때 상당히 쪽 팔리겠다. 이거 자리를 살짝 피했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나 싶었다.

그나저나 우리 후배님, 베드씬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저 정도 급이면 등만 노출해도 19금 클리어 할만 했다. 물론 그딴 거 자신은 찍어본 적 없지만, 섹시 콘셉트를 위해 야동을 많이 봤으니 그쪽 분야에서도 선배라고 할 수 있겠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누워있던 그녀는 수도꼭지 물 내려가는 소리에 발을 까닥거리며 흥얼거렸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어서. 어디를 가느냐. 산 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토실토실 알밤을 주워서 올 테야~.

참으로 야한 노래였다. 토끼가 막 뛴단다. 산 고개……그거 엉덩이 말하는 거 아닌가? 하. 참나. 이런 걸 동요라고 만들어서 요즘 아이들이 그렇게 야동을 보는 거 아니겠는가. 토실토실한 알밤이 바로 불알을 뜻하는 거겠지.

로이는 기력이 쪽 빨려 화장실에서 나오는 수혁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축하해. 토끼후배님.”

어찌나 소스라치게 놀라던지, 누가 보면 자신이 귀신일 줄 알겠다. 그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화장실에 도로 들어간 그가 엉엉 우는 소리에 문에 기댄 채 울지 말라고 했다. 솔직히 엉엉이 아니라 너무 소리를 죽여 아무 소리도 안 들렸지만, 그냥 자신의 느낌이 우는 것 같아 그렇게 말했다.

“사내자식이 뭘 그런 걸 가지고 울어. 다 생리 현상인데.”

“………전 토끼 아닙니다. 할 수만 있다면 하루 10번도 가능한 준비된 사나이입니다.”

“키키키. 그거 참 기대가 되는 군.”

발끈하는 게 너무 귀여웠다.

“나 문 열고 들어가도 돼?”

“아니요. 제가 나갈 테니 기다려주십시오.”

수혁의 한숨 소리가 다 들렸다. 문에 기대있던 로이는 그가 나올 수 있도록 물러섰고, 눈 밑이 붉게 달아오른 그는 눈을 내리깐 채 자신의 시선을 피했다. 그의 긴 속눈썹이 물기에 젖어 촉촉한 모습이 참으로 섹시했다. 로이는 내 남자의 얼굴을 붙잡고 쪽 뽀뽀를 해줬다. 이 정도는 돼야지 연애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겠지?

환하게 웃는 로이는 그 순간만큼은 남자 아이돌이 아닌, 진짜 여자아이처럼 보였다. 아마 이게 사랑인 모양이다. 사랑은 소녀를 여자로 만든다고 하니 말이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해요.ㅜㅠ 제가 슬럼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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