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54화 (54/104)

00054  다 보여줄게  =========================================================================

로이는 한류스타 김수혁의 집이라, 이거 특종인데 싶어 집안을 두리번거리며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를 구경했다. 무슨 집이 이리도 황량한지 가뜩이나 큰 집이 너무 넓어 춥게 느껴졌다. 이런 곳에서 혼자 살려면 외로울 텐데 역시 어른이다 싶었다. 그는 자신에게 편하게 앉으라며 따뜻한 코코아를 타줬다. 혹시 날 엿 먹이기 위한 수단인가 싶어 눈을 세모꼴로 뜨고 노려봤다가, 오늘 하루만큼은 자신한테도 상을 주자 싶어 그냥 군말 없이 마셨다.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수혁이 추워 보인다며 재킷을 벗어 어깨에 걸쳐줬다. 실내에서 추워봤자 얼마나 춥다고 이러나 싶다. 그녀는 ‘커흠~.’하며 자꾸만 헛기침을 하는 그를 보며 목 잠겼으면 물마시라고 했다.

“……아닙니다.”

갑자기 시무룩해져서 입을 꾹 다물었다. 참으로 한심한 후배님이었다. 그냥 스킨십을 하고 싶었으면 할 것이지 눈치 보면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해버리다니, 이거 참 어른 맞나 싶었다. 제대로 연애 못한 자신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로이는 식탁 위에 올라와있던 수혁의 손 위에 손을 겹쳤다. 그러자 그가 꽁꽁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했다. 보기 안쓰러워 두어 번 손등을 두드려주자, 깍지 껴도 되냐고 물었다.

“어. 껴.”

“감사합니다.”

뭘 사귀는 사이에 손잡는 게 감사하다는 원. 그런데 한번 손을 내어주니, 참 과감해졌다. 자연스럽게 피곤하지 않냐며 자신의 어깨를 주물거리더니 그가 지그시 입술을 노려봐왔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유혹인가 싶었다. 여자 연예인들이야 ‘로이, 끝나고 가볍게 와인 어때?’라고 말하면 ‘제가 미성년자라 술 못 마셔서요. 죄송합니다.’라 이 한마디만 하면 다 해결되고, 가끔 껄떡거리는 남자야 ‘게이 즐~.’을 외치면 됐는데 수혁은 자신이 여자라는 걸 알고 있는 애인이니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물론 키스 정도야 자신도 영화 찍으면서 많이 했고, 특히 최근에는 하이안에게 입술 불어터지게 당했으니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집까지 오고, 아무도 없는데 중간에 이 인간이 못 멈추면 어떡하나 걱정됐다. 분위기가 참 묘해서 자신이 움찔하자, 그가 확하고 입술을 부딪쳤다.

“윽.”

너무 힘차게 달려들어 입술이 이에 찍히고 말았다. 수혁도 아픈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죄송합니다.’라는데 피가 났는지 그의 하얀 이가 분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형, 피나.”

“로이는 괜찮으세요?”

“나야 멀쩡한데. 키스 정도로 너무 다급하게 굴지 마. 그 정도는 나도 해줄 수 있어. 뭐……. 그 다음이라면 문제겠지만. 안 피할 거니깐 마음 편이 해.”

“진심입니까?”

그가 이렇게 기뻐하는 걸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신한테 과자 선물(테러였기는 하지만, 본인이 선물로 받아들였으니 선물이었다.)을 받았을 때 보다 훨씬 동공이 커진 채 입이 찢어져라 올라간 게 완전 에로 아저씨다 싶었다. 어차피 다른 여배우랑 촬영하면서 주구장창 해대던 걸 자신이랑 하는 건데 뭘 그리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수혁이 턱을 꺾고 자신에게 다가왔다. 턱선이 완전 예술이다. 자신이 턱관절을 확인해보지 않았더라면 분명 저거 깎았다 싶을 정도로 날렵했다. 로이는 이 각도로 바스트 샷 찍으면 죽이겠다 싶었다.

“조금 왼쪽으로 꺾어봐.”

“이렇게요?”

“응, 그대로 와.”

살짝 맞닿아진 입술에서 혀가 넘어오려고 들었다. 그런데 화면으로는 이러면 안 예쁜데 싶어 뒤로 얼굴을 살짝 뺐다.

“그러면 안 되지. 다시 해봐.”

수혁이 잠깐 망설이더니 다시 입을 맞추고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입을 벌려 혀를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러면 방송 경고 먹는다.

“다시.”

그는 팔을 뻗어 자신을 끌어안고 혀로 아랫입술을 핥았다. 이놈의 늙은이가 왜 이렇게 혀를 좋아하나 싶다.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이런 거는 좀 더 관람 등급을 높일 수 있는 영화나, 화보에서 포토그래퍼가 원할 때나 하는 거고 드라마에서는 NG였다.

“그게 아니잖아. 다시 한 번 해봐.”

“……로이, 지금 우리 촬영하는 거 아니죠?”

어쩌다 보니 자신이 후배에게 키스씬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놈의 직업병이 뭐라고. 로이는 살포시 웃으며 ‘코코아 맛있네.’라 말을 돌렸다. 수혁은 한숨을 쉬며 ‘예. 팬한테 선물 받았습니다.’ 라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방 구경을 시켜주겠단다. 혹시 이대로 자신을 홀라당 잡아먹으려는 거 아닌가 싶었다.

“싫은데. 난 거실이 좋아.”

“……어쩌다 제가 로이한테 이런 이미지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손만 잡겠습니다.”

“그래, 그럼 들어가 주지.”

자신은 금발의 아름다운 소녀라 조심해야 했다. 김수혁이 아무리 인내심이 강하다고 해도 백설공주 마냥 뽀얀 피부에 사파이어 눈이 달려 완전 인형 같이 생긴 미소녀를 보면 눈깔 뒤집히는 건 순식간이니 말이다. 거기다가 어찌나 몸매가 잘 빠졌는지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어도 계집애들이 섹시하다고 난리가 났다. 또 입술은 어떤가. 그야말로 앵두라 그냥 보기만 해도 침이 꿀떡꿀떡 넘어가는 자신의 매력 포인트라서, 새빨간 아랫입술을 자신이 살짝 깨물기만 해도 울 승냥이들은 자지러지며 실려 갔다.

인기 아이돌은 자뻑하며 남자친구 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파란색 침구와 책상만 달랑 있었다. 무슨 놈의 집에 이렇게 가구가 없나 싶었다. 자신이 바닥에 앉아 수혁은 책꽂이에서 앨범들을 꺼내왔다.

“별로 특별한 것은 없으나 로이도 비밀을 알려주셨으니, 저도 보여드리겠습니다.”

앨범을 펼치니 그의 아기였을 때 모습이 있었다. 갓난아기 주제에 또랑또랑한 눈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게 어렸을 적 자신만 못하지만 꽤나 미남이었다. 역시 제법이었다. 원판 불편의 법칙이라고 너무 완벽해 재수 없는 한류 제왕에게 굴욕이 없다는 사실에 쳇, 작게 혀를 찼다. 로이는 앨범을 다음 장으로 넘겼다. 하마터면 꼬마 소년이 너무 귀여워 사진을 뜯어가 버릴 뻔했다. 빨간색 란도셀 책가방을 든 바가지 머리의 귀요미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멜빵바지를 입고 있었다.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면 좀 더 여성스러운 얼굴이었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성별 구분이 애매모호한 그는 꼬마 공주가 남장을 한 느낌이었다.

로이는 수혁의 어릴 적 모습을 보며 꽤나 괜찮다 싶었다. 10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느낌이랄까. 그도 어릴 때가 있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짱돌 가지고 뛰어다니는 모습도 있고,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모습도 있고, 개구리 뒷다리를 쥐고 돌리는 모습도 있었다. 지금의 톱스타 김수혁으로서는 전혀 상상도 못하는 장난스러운 꼬마였다. 그러다 그녀는 한 장의 사장에서 손을 멈췄다. 헐~.

“아, 제가 말했었죠? 중학교 때 폭주를 뛰었습니다.”

이건 중학생이 아니었다. 완벽 덩치가 산만해서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겠다. 일본어가 수놓아진 하얀 가운을 입은 양아치가 담배를 물고 이상한 머리스타일을 한 채 오토바이에 앉아 있었다. 머리에다가 바게트 빵을 올려놓은 것 마냥 머리카락을 무스로 잔뜩 앞으로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친구들은 하나 같이 두꺼비 같이 생겨서 마스크를 하거나, 선글라스를 낀 채 죄다 똥 싸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드디어 자신이 찾던 김수혁 흑역사를 발견했다. 에헤라디야~ 노다지로다. 어찌나 그런 사진들이 많은지, 딱 만화책에서 주인공한테 발라지기 위해 나오는 엑스트라 양아치들 같았다. 유독 수혁만 미모가 눈에 띄어 중간보스였지만 어쨌든 굴욕은 굴욕이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어. 히히히. 좋은데?”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로이의 진짜 취향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수혁이 특공복을 옷장에서 꺼내 입었다.

“저도 웃통 벗고 농구할 수 있습니다.”

“………….”

설마 인터넷에 떠도는 리나의 미친 영상 때문에 이러나 싶었다.

“면도칼 씹고 뱉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준비했었나 보다. 주머니에서 수혁이 면도칼을 꺼내들더니 입에 넣으려고 했다.

“으아악! 타임!”

“왜 그러시죠? 역시 혓바닥으로 담뱃불 끄는 걸 좋아했던 겁니까.”

“설마 그거 리나 따라하는 건 아니지?”

“……따라하는 게 아니라 저도 충분히 로이의 취향에 걸맞은 남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는 겁니다. 손목 한번 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친~~~.”

로이는 진짜로 면도칼로 그으려고 하는 수혁을 말렸다. 이 남자가 생긴 거랑 다르게 진짜 알면 알수록 무시무시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자신한테 잘 보고 싶어 안달이나 있는 자신의 남친을 꼭 껴안아줬다.

“리나랑은 게이 스캔들 잠재우려고 그런 거야. 그냥 친구라고. 아, 진짜. 형 바보도 아니고 그 미친년을 왜 따라한다는 거야.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로이는 일진 취향이 아니었습니까? 제가 한국 문화를 공부를 해본 결과 십대들은 인터넷 소설에서 나오는 일진. 그러니깐 과거에는 우두머리의 의미로 쓰였으나, 일본 만화에 나오는 폭력조직의 이름이 학교와 학원에 전파되면서 몸짱 얼굴짱 공부짱 쌈짱들을 일컫는 의미로 변화되어 그들이 십대들의 이상형이라고 하더라고요. 로이도 십대이니 전 충분히 그 취향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 쓸데없는 걸 공부했구나 싶었다. 로이는 열정적으로 ‘시켜만 주십시오. 감독님.’이라는 듯한 눈으로 잔뜩 기대한 채 자신을 바라보는 배우에게 ‘다음에 연락할게.’라며 방에서 나왔다.

“로이~, 도대체 문제인겁니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풍선껌을 불다 손가락으로 터트려 보이겠습니다.”

리나가 사람 여럿 망치는구나 싶었다. 로이는 동영상 보고 꽤나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습을 많이 한 듯한 수혁에게 ‘난 양아치랑 조폭이랑, 야쿠자는 딱 질색이야.’라 한마디 했다. 그러자 그가 ‘저도 그런데 정말 천생연분입니다. 사실 사진 속 폭주족은 저의 형 켄지로였습니다. 로이가 비밀을 말했는데 저만 없는 것 같아 그만 거짓말을 해버렸네요. 전 조폭이 정말 싫습니다. 야쿠자라니. 그런 건 짐승입니다. 로이, 식사하고 가시겠습니까.’라며 온화한 보살 미소로 점심을 차려준다고 했다.

로이는 자기 정수리에 룡룡이가 있는 걸 보여 놓고는 뻔히 보이는 구라를 치는 수혁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조폭들이랑 있는 걸 자신이 봤는데 말이다. 바보도 아니고, 자신을 너무 무시하는 듯싶었다. 거기다 자신에게 자룡회인지 뭔지를 보내놓고 자신이 모를 거라 생각하나 보다. 그녀는 식탁에 앉아 계란말이를 해주겠다는 수혁이 앞치마를 허리에 묶는 걸 지켜봤다. 햐아~, 죽인다. 엉덩이가 탱글탱글하게 힙 업 돼 허리에서부터 다리 라인이 아주 끝내줬다. 턱을 괴고 톱스타의 뒷모습을 관상하는데 문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자 스포츠머리가 살금살금 걸어 나오다가 그대로 멈춰 섰다. 예전에 본 문어 아저씨였다. 꽤나 머리카락을 길러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안녕하세요.”

사람이 있었는데 왜 인기척을 안 냈나 싶었다.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허리를 굽히고 자신에게 인사를 했다.

“도련님 죄송합니다. 그만 화장실이 급해서.”

로이는 수혁의 손에서 식탁에 올려놓으려던 수저가 휘어지는 걸 봤다. …………이만 가야겠다. 헤어지자고 하면 날 때리려나? 막 영화에서처럼 칼로 배를 갈라버리고, 손가락을 자르며 ‘시누.(죽어!)’라 그러겠지? 아 젠장.

그녀는 재빨리 신발을 신고 도망쳤다. 자신이 현관문 닫자, 안에서 자상하고 다정하고 부드러움으로 정평이 난 밀크남의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들렸다.

“ばかやろう。(바보자식. 주: 일본어로는 가장 큰 욕이다.) どてっ 腹に 風穴を あけるぞ。(네놈 배때기에 구멍을 뚫어주마.)”

로이는 혹시 문어 아저씨가 살인마 잭에게 이러다 살해당하는 거 아닌가 싶어 살짝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자 밑에 깔린 아저씨의 상의를 벗겨내는 수혁이 자신에게 활짝 웃어보였다.

“아…. 역시 식사를 하고 가시겠습니까. 로이?”

“아니야. 하던 거마저 해. 그나저나 밑이 아니었구나. 음. 그랬군. 반전이야. 아저씨를 위해 콘돔은 꼭 사용해. 그럼 바이~.”

“로이~.”

자신의 말에 수혁이 헐레벌떡 뛰어나오라고 해 잽싸게 문을 닫고 빌라를 나왔다. 그러자 그가 맨발로 달려 나와 자신을 붙잡았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냥 놀리는 거였는데 우니깐 조금 미안했다. 로이는 전직이 수상하기는 하지만 순진해 빠진 자신의 남자가 귀여워 그의 입술에 쪽~ 뽀뽀를 해줬다.

“걱정 마. 그냥 장난친 거야.”

“흑. 너무 합니다. 전…, 전 그것도 모르고 상철이를 죽여버릴려고 했는데. 어서 병원에 데려다줘야겠습니다.”

설마 칼로 찌르거나, 손목가지를 자른 건가 싶었다. 룡룡이를 가지고 있으니 충분히 그런 흉악 범죄를 저지를만 했다. 자신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치자, 그가 한발 다가와 꼭 껴안았다. 그런데 순간 빛이 번쩍 했다. 그리고 아이돌은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캐치했다. 이거 파파라치였다.

“저거 잡아!”

자신의 명령에 수혁이 도망가려는 자동차 위로 날아올라 유리창을 탕 쳤다.

“문 열어.”

자신이 지금 영화를 보는 건가 싶었다. 차가 멈추지 않자, 백미러를 잡고 매달린 액션 배우는 주먹으로 앞 유리를 탕탕 쳐대다가 안되겠다 싶었는지 작은 잭나이프를 꺼내 차 유리를 가격했다. 도대체 연예인이 왜 저런 걸 가지고 다니나 싶었다. 드디어 아반떼가 겁에 질렸는지 멈췄다. 아니, 멈출 수밖에 없었던 거다. 쇠파이프를 든 대머리들이 나타나 자동차 주위를 에워쌌다. 수혁이 자동차 보닛에서 내려오자, 그들이 미친 듯이 차에 무기를 휘둘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