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53화 (53/104)

00053  다 보여줄게  =========================================================================

자신이 김수혁으로부터 매니저가 되겠다는 말을 들은 바로 그날 저녁, 한류스타 김수혁이 소속사 Reve에 왔다는 기사가 판을 쳤다고 한다. 요즘 KISS ME를 찍고 있어 인터넷을 안 하는지라 수정에게 들은 내용은 그러했다. 로이는 진짜 남의 소속사로 연예인이 찾아와 매니저 시켜달라며 면접을 봤다는 것과 그것을 Reve가 허락했다는 사실에 이건 미친 짓이다 싶었다. 틀림없이 Reve는 상식이 없는 회사였다. 그리고 김수혁은 더더욱 상식이 없는 인간이었다.

아침에 그 인간이 자신의 침대에 있어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몰랐다. 아, 내가 요즘 많이 고파서 꿈을 꾸는 구나 싶고, 그래서 내 얼굴 빤히 쳐다보는 잘생긴 김수혁 생령이 반가워 활짝 웃어줬을 뿐이고, 그러다가 그가 자신의 옆으로 기어와 ‘잘 잤어요? 로이?’라며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여 애간장을 사르르 녹아내대 주둥이 부딪치려고 했다가 카메라가 보여서 발로 등짝을 차 침대 밖으로 밀어내 너무 미안했다. 그와 자신은 사실 사귀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 젠장. 너무 미안했다. 분명 이런 짓 저런 짓 다 해보고 살 나이인데 자신이랑 사귀면서 데이트 한번 못하고 독수공방하니, 연하로서 가끔 불안했다. 김게이 보면 남자들은 야동이랑 섹스 없으면 못 사는 것 같던데,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 자신을 그가 이해해줄까 싶었다.

분명 이러다 깨질 것 같다. 본래 나이라면 보면 안 되지만 새벽에 라디오 방송 끝나고 DMB로 19금 예능을 볼 때가 있는데, 어린 여자친구랑 만나는 남자들이 꽤나 섹스 못한다는 이유로 헤어진다고 사연을 보내오더라. 솔직히 자신도 그냥 몸매도 끝내주고, 얼굴도 잘생겨, 거기다가 목소리까지 졸라 죽여주는 남자가 나 좋다고 무지 잘해주니깐 머릿속으로는 베드 인 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하라고 하면 무서워서 못할 것 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섹시 콘셉트로 밀고 나가는 아이돌이라고는 하지만, 어리긴 어린 것 같았다.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졌던 수혁이 혹시 자기 차다가 발 다치지는 않았냐고 자신의 발을 잡고 살폈다.

“하아~, 다행입니다. 로이의 발이 다쳤으면 저는 너무 속상해서 제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었을 겁니다.”

어째서 맞은 사람이 저런 말을 하는 걸까도 싶고, 수혁이 자신을 발을 잡고 빤히 쳐다보는 게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러다 그가 상큼하게 웃으며 ‘아침 시작 하시죠?’라 하는 말에 왜 여기에 김수혁이 있을까 싶어 자신이 미친 듯이 ‘누나아아아~.’라 부르짖자 수정이 방에 뛰어 들어왔다.

로이는 그녀에게서 전후 상황 설명을 듣고 일본 아줌마들의 대통령님께서 자신의 임시 매니저가 되었다는 사실에 혹시 몰카 하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녀가 절대 아니라며 몸서리를 쳐 일단 지켜보기로 했지만 영 찜찜했다. 아무리 자신이 낚았다고 진짜 매니저를 하겠다는 그나, 이걸 받아주는 자신의 소속사나 제정신이 아니니 말이다.

그 일이 있은 뒤, 자신이 식탁에 앉아 샐러드를 기다리자 수혁이 냄비에서 미음을 떠 자신에게 줬다.

“이거 드시면 ねこご飯(한국에서는 네코맘마라 불리나 원래 발음은 네코고항이다.)를 드리겠습니다.”

“뭐야? 나보고 고양이 밥이나 먹으라고?”

“하하하. 로이 농담을 참 재미있게 하십니다. 제가 어떻게 로이한테 고양이 밥을 드리겠습니까. 일본 가정식입니다. 간단히 만들 수 있어 ねこ飯라 부르는 겁니다. 요리는 제가 해본 적이 없어 오늘은 빈약하지만, 내일부터는 제대로 된 식사를 차려드릴게요.”

수혁의 말에 머쓱해진 로이는 미음을 떠먹었다. 일본인들 네이밍 센스가 이상한 거지 자신이 무식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자신의 앞에서 비주얼 톱스타가 턱을 받치고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봐서 이게 아무리 꿀떡꿀떡 삼켜도 되는 미음이라지만 목에 턱턱 막혔다. 확실히 자주 봐도 질리는 얼굴은 아니었다. 매일 볼 때마다 나날이 외모가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아 무슨 아저씨가 이렇게 꽃 같이 예쁜가 싶어 배 아팠다. 자신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의 검은 눈동자가 너무 맑아 본래 나이 보다 어려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착한 사람이라는 게 확 느껴진 달까. 도저히 정수리에 무시무시한 용 두 마리를 그리고 있는 남자 같지가 않았다.

살짝 걷어 올린 소매로 드러난 팔뚝은 근육질로 단단해서 온화한 임금님 얼굴과는 상반되는 남성미가 물씬 풍겼다. 사실 다 벗겨버리면 완전 대단한 식스팩이 배에 있기는 하지만 충분히 와이셔츠 위로도 그의 단단한 가슴 근육과 등 근육을 따라 셔츠 주름이 섹시하게 잡혀, 지금 자신의 옆에서 야동아줌마가 눈 풀린 채 침을 꼴딱 삼키는 중이었다. 자신이 식탁 밑으로 그녀의 발을 툭툭 차며 정신 차리라 하자, ‘어어? 뭐라고?’란다.

“정신 차리라고. 하여간 잘생긴 것만 보면 눈깔이 뒤집혀서 아주 정신이 나가지. 누나 남편한테 내가 전화하기 전에 정신줄 챙겨.”

“……히잉. 하지만 나 수혁씨 팬이란 말이야.”

지금 이 여자가 안하던 귀여운 짓을 하는 게 죽을 때가 다 된 모양이었다. 하긴 서른넷이면 음란마귀랑 동거하는 마녀란다. 요즘 자신이 ‘굿나잇키스.’에 빠져 참 많은 걸 알게 됐다. 이 나이 되면 남자랑 섹스하려고 얼굴이 아니라 허벅지부터 본다는 데, 김수혁은 얼굴부터 팔 다리 배 허벅지 모든 것이 완벽한 남정네니 아주 정신이 회까닥 돌 테지. 그런 의미로 김변녀가 김수혁 말벅지를 노린다고 있다고 100% 확신이 들었다. 최근에 야설과 야동에 눈을 뜬 에로계의 늦둥이는 꽃수 앙탈수 떡대수 기타등등이 붙은 김수혁 동인지 보며 하앍거리는 발정녀이니 말이다. 젠장, 이 이 남자 너무 예쁘게 생겨서 정말 짜증난다.

“감사합니다. 수정씨.”

그런데 저 남자가 지금 누구한테 꼬리를 치나 싶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한테 살짝 눈꼬리를 잡고 애교를 부려 손바닥으로 확 얼굴을 훑어버렸다.

“야! 너 수혁씨한테 무슨 무례야.”

“하하하. 괜찮습니다. 수정씨. 전 로이가 제 얼굴을 만져준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왠지 자신만 이곳에서 소외된 것 같았다. 역시 늙은이들이라 그런지 둘이 쿵짝이 잘 맞아 기분 나팠다. 로이는 다리를 꼬고 흥, 콧방귀를 끼었다. 수혁이 자신이 먹은 미음 그릇을 치우고 따뜻한 밥에 가쓰오부시와 쯔유(일본 간장.), 맛술, 참기름, 계란후라이를 얹어 자신에게 줬다. 이게 그 고양이밥인 모양이었다. 자신이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있자 그가 밥을 비비더니 한술 떠 ‘아~.’ 했다. 입을 벌려 덥석 받아먹으니, 또 한술 떠 줘서 그냥 입 벌려줬다. 거절하면 자신만 방송에서 성격 배배꼬인 나쁜 놈 되니 그냥 먹어주는 거였다.

그러다 로이는 계란 후라이 칼로리가 장난 아닌데 아침부터 이렇게 많이 먹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이걸 먹으면 나중에 다이어트를 해야 되서 먹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나 그만 먹을래.”

“아직 반도 안 먹었는데요?”

“하지만 계란은 칼로리가 높단 말이야. 노란자는 다 콜레스트롤 덩어리야.”

“계란은 완전식품입니다. 성장기에 소식은 좋지 않습니다. 제가 로이 나이 때는 하루 5끼씩 먹었습니다. 활동양이 많은 데 적게 먹으면 몸에 무리가 갑니다. 어서 드세요.”

그거야 남자랑 여자는 기대치 몸무게가 다르지 않는가. 아무리 자신이 남자 아이돌로 활동하고 있어도 그 기준선은 맞춰줄 필요가 있었다. 그나저나 하루 5끼라니. 그러고도 군살 없는 저 몸매는 또 뭔가 싶었다. 어서 이 사기 캐릭터를 없애버리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당장 폰을 쥐고 김수혁 게이설……아, 이건 이제 쓸모없어졌지. 그러면 김수혁 루머를 마구 마구 퍼트려 그를 생매장 시켜버리라고 악마 로이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켈켈켈 웃으며 외쳤다. ‘당장 저 놈을 골로 보내려버려~.’ 그러자 반대편에서 천사 로이가 ‘안 돼, 로이야. 어쨌든 네 남친이잖아. 착한 사람인데 괴롭히면 안 되지.’라 했다.

‘남친? 헐. 증거 있어? 그러면 말을 마. 로이. 어서 저 사기캐를 없애 네가 최고가 되는 거야.’

‘로이야, 넌 이미 최고야. 수혁씨는 너랑 같은 분야도 아니잖아.’

‘헛소리. 연예인한테 분야가 어디 있어. 다 적이지. 저 새끼는 네 CF를 훔친 도둑이야! 어서 복수하는 거다. 가라~ 로이.’

로이는 자기와의 갈등으로 머리가 다 아팠다. 그런데 수혁이 자신이 먹었던 수저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걸 입에 물었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쑥스럽다는 듯 배시시 웃은 그가 입에서 수저를 빼내고 작게 ‘우리 지금 간접 키스 했어요.’란다. 아 젠장. 늙은이 주제에 너무 귀여워. 왜 이렇게 나이에 안 맞게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그 모습을 본 수정이 미친 듯이 팔뚝을 문지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쭈~~~, 수정이 쭈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용.’라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로이는 벌떡 일어나 그녀의 등짝을 발로 차줬다.

“으아악. 내 앞에서 역겨운 소리 좀 하지 마. 토 나와.”

“쭈우우~, 로이가 수정이 발로 찼어용. 나중에 혼내주세용.”

“으아아악. 으아아악. 저리 꺼져. 커플지옥 솔로천국! 모든 커플은 지옥으로 떨어져라.”

“쭈우우~ 로이가 우리의 사랑을 질투해용. 막 수정한테 소리질러용. 수정이 너무너무 무셔워용.”

귀를 막고 ‘쭈우우~.’거리는 미친 아줌마의 목소리에 자신이 발광하자, 수혁이 자신에게 베베를 건네주며 ‘로이, 우리 촬영해야죠.’란다. 헉! 너무 흥분했더니 깜빡했다. 워낙 그의 등장도 쇼킹했지만, 특히나 김수정의 ‘쭈우우~.’는 너무 소름 돋아서 잠시 정신을 놓고 말았다. 로이는 호흡을 가다듬고 허공에 손을 들어 가위질 싸인을 보냈다.

“이거 편집해줘요!”

그리고 금발의 아이돌은 다시 방으로 돌아가 거실로 처음 나오는 척 베베를 꼭 끌어안고 ‘안녕, 형아.’라며 귀여운 목소리를 냈다.

“네. 로이 안녕하세요. 베베도 안녕.”

“안녕.”

인형의 팔을 흔들어 인사를 건넨 로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수정이 기가 막히다는 듯 자신을 쳐다봐 왔지만 이게 일인 걸 어쩌란 말인가.

“오늘은 ねこご飯(네코고항)를 아침으로 준비했습니다.”

수혁이 진짜 갑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지금의 상황을 되풀이하는 걸 보면 역시 보통내기가 아닌 듯싶었다. 하긴 한류의 제왕이라는데 보통이면 큰일이지 싶다. 실력도 없는데 얼굴 때문에 인기 있는 거였으면 자신이 그를 발라버렸을 거다. 지랄 맞은 성격이라 그런 건 절대 못 봤다.

자신이 남아있던 식사를 다 끝마치자, 그가 웃으면서 씻고 오라고 했다.

“앞으로도 밥을 남길 때는 이런 방법을 써먹어야겠습니다.”

로이는 어째서 저렇게 인자한 미소를 짓는 그의 잘생긴 얼굴이 반찬 투정하는 아이한테 밥을 먹여 뿌듯한 엄마 같아 보이는 걸까 싶었다. 하마터면 수혁엄마라고 부르며 안길 뻔했다. 자신이 엄마가 참 고픈 아이라 막 눈물이 났다. 괜히 그 앞에 가서 껄쩍거리다가 폭 안기니깐, 그가 자신의 등을 쓸어줬다. 다정함은 너무 싫다. 그건 무장하고 있던 마음의 벽을 느닷없이 무너트려 안에 갇혀 있던 울분을 터져 나오게 했다.

“왜 그러세요. 로이?”

“씨이~, 엄마 보고 싶어.”

“클났다.”

수정이 자신의 발언에 헐레벌떡 뛰어와 ‘로이, 어머니가 곧 온데. 걱정 마.’라며 폭발 직전인 자신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그런데 이미 자신의 눈에서는 눈물이 폭포수마냥 흘러나왔다.

“내가 엄마 보고 싶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안 와! 엄마! 엄마!”

엄마에 대한 감정이 참 묘했다. 딸을 아들로 취급해서 너무 원망스러운데, 어릴 때 직접 매니저 노릇하며 같이 고생하느라 제일 믿을 수 있는 존재이자 든든한 이기도 해 가끔 일하다 힘들 때면 생각났다. 그리고 아빠가 로지만 데리고 가 나는 버림받았구나 싶은 마음에 엄마가 아무리 무정해도 매달리게 되었다. 엄마까지 없으면 자신은 완전 외톨이이니 말이다. 너무 너무 외로웠다. 친구라고는 리나 하나인데 잘 만나지도 못하고, 매일 일만 하고, 남친 사겼어도 별 의지도 안 돼서. 그럼 엄마라도 날 구해줘야 하는데, 예전처럼 옆에서 하나하나 신경 써주고 지켜줘야 않아 너무 보고 싶었다. 왜 지금 내 옆에는 아무도 없는 것일까.

“I miss him so much. (나는 그가 몹시 보고 싶어.) I'm so lonely. (나는 너무 외로워.) He didn't even say bye before he left. (그는 안녕이라 말하지도 않고 떠났어.) I was left in the basket. (난 버림받았어.)”

로이는 자신이 뭐라고 말하는지도 모른 채 중얼거렸다. 믿었는데, 사랑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로지만 데리고 가버린 아빠였다. 눈시울이 잔뜩 붉어져 우는데 수혁이 정신 차리라고 했다.

“정신 차려요. 왜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죠? 로이는 그 누구보다 사랑받는 아이입니다.”

짜증났다. 위로해주려고 하는 말인 건 아는데 자신이 배배 꼬여서 열 받았다. 마치 절망하는 사람한테 당신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노래 불러주는 것처럼 그의 말이 역겨웠다.

“네가 뭘 알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로지 보다 말 잘 듣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애교도 더 많이 불렸단 말이야. 아빠 등은 내거였어. 내가. 내가 더 목마 탔다고. 아빠한테 로지보다 더 사랑한다고 말했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저 쓰레기 같은 인형 꺼내기 싫다고 했잖아. 그런데 방송 찍는다고, 나 보고 동정표를 사라며 싫다는 거 억지로 꺼내 놓고 병신 같은 소리나 지껄이게 하고. 다 필요 없어! 난 나 혼자 지낼 거야! 나 혼자여도 돼. 너희는 다 쓰레기야. 내 상처 뒤집어서 돈 벌어먹을 생각이나 하지? 내가 얼마나 힘든지 너희는 절대 몰라. 내가 얼마나 비참한지 너희는 절대 모른다고.”

로이는 어렸을 때 아빠한테 받은 낡은 곰인형의 목을 잡아당겨 목을 뜯어내버렸다.

“엄마도 싫어. 날 위해 아이돌을 시킨다고? 그거 그냥 지가 하고 싶은 걸 나한테 대리만족하는 거면서 개소리 말라고 해! 다 미워. 다 싫어.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자신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울고 있자 수정은 고개 숙인 채 미안하다고만 하고, 수혁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다시 고개를 내린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로이, 로이는 그때 어려서 잘 몰랐겠지만 로이의 아버지는 로이를 지키기 위해 어머니랑 법정까지 갔었습니다. 그런데 재판 기간 중 그가 그녀를 폭행하게 되어 양육권을 모친께서 가져가신 거고, 로이의 어머니는 로이만 데리고 가겠다고 한 겁니다. 전 로이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 같아 그냥 지켜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면 그만 두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로이는 절대 버림받은 게 아닙니다. 아버님은 로이를 지키려 했습니다.”

“으아아앙. 대디~ 대디~.”

수혁의 품에 안겨서 엉엉 울었다. 그가 자신을 안아 침대에 눕히고, 오늘은 푹 쉬라고 했다. 스케줄 가야 한다고 하니깐, 그런 건 너무 걱정 말라며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그러면서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해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괜한 불안감에 김수혁을 옆에 눕혀놓고 안겨 있자, 수정이 ‘너 조울증 도졌지? 나 약 타러 갔다 올게.’라며 나갔다.

“로이, 조울증이 있었습니까?”

“………그거야 연예인 하는 사람 치고 없는 게 비정상이지. 공황장애,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쇼핑중독, 허언증. 강박증, 도박중독, 불안장애, 완벽주의. 피부 미용 집착. 뭐 각기 다르기는 하지만 다들 미친 연놈들 아니겠어.”

“하하하. 전 아직 연예인이 덜 된 모양입니다. 매일 매일 로이를 만나 행복하거든요.”

정말 웃겼다. 지가 연예인 아니면 누가 연예인이라고. 고작 그런 걸로 행복하다니 참 바보 같은 남자였다.

로이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뭐랄까. 완전 밑바닥까지 속내를 다 드러내니깐 갑자기 사이가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런데 자신만 다 보일 수는 없었다.

“이제 형도 비밀 말해봐. 나한테 숨기는 거 있으면 완전 끝이야.”

“그거 무서운 협박인데요?”

그가 자신의 머리를 끌어안고 정수리에 턱을 괬다.

“사실 저는 로이의 골수팬입니다. 로이를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좋아했으니깐 벌써 19년이 넘었네요. 제가 참 많이 로이를 좋아해서 아버지와는 사이가 굉장히 나쁩니다. 중학교 때는 잠깐 반항심으로 폭주족을 했었고. 음…. 또 뭐가 있을까요. 전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라 말할게 없네요.”

그나저나 김수혁이 자신의 골수팬이라니 참 신기했다. 그래서 어떻게 좋아했기에 아버지랑 사이가 안 좋아졌냐고 물으니깐, 방에 있던 자신의 브로마이드를 아버지가 불태워서 의절하고 한국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했다. 너무 어의가 없어 뭐라고 하자, 그래도 로이가 불에 타는 것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아팠단다. 자신이 쫌 위험한 남자를 만나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다 자신이 아이돌이라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자, 억지로 오디션 보게 했던 엄마가 조금 고맙기도 했다. 사실 팬들이 열광해줄 때 제일 좋은 거는 엄마가 아니라 자신이라 엄마 탓할 것도 없었다. 땀 흘리며 춤 연습할 때면 기분이 상쾌했다. 요즘 시작한 작곡 공부도 재미있고, 연기는 워낙 어려서부터해 현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즐거웠다. 특히 팬들이 자신이 부르는 노래에 맞춰 따라 불러줄 때가 제일 뿌듯했다. 아이돌이라 나쁜 것도 많지만, 결국 좋은 게 더 많아 하게 되는 거였다.

“이건 뭔가 불공평한 것 같아. 이걸로는 김수혁의 굴욕사가 아니라고. 빨리 불어. 안 그러면…알지?”

“로~이~,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진짜. 전 결백합니다.”

“킥, 웃기지마. 가끔 이상한 상상을 하더구만. 짜끼잉~. 로이한테 뽀뽀하는 상상했져용? 아앙. 로이는 몰랑. 너무 뿌그러웡.”

자신이 장난스럽게 눈웃음치며 애교를 부르자 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어디가. 가지 마! 삐졌어? 미안해 형.”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잠시 화장실에 가야할 것 같습니다. 로이의 화장실을 더럽히게 된 점 정말 죄송합니다.”

수혁이 최대한 빨리 끝내고 돌아오겠다며 나가버렸다. 그런데 이 내용을 나중에 누가 프리뷰(편집이 편하도록 영상 내용을 정리해 적는 일.)할 거라 생각하니, 큰일이었다. 이럴 때는 소속사 힘을 빌리는 게 나았다. 로이는 스타일리스트를 간병하러 병원에 간 소속사 사장한테 전화해 오늘 KISS ME 녹화 테이프 좀 방송국에서 빼오라고 했다.

“왜, 또 뭐 사고 쳤어?”

“큰 건수는 아니고 내가 또 울면서 지랄발광 했거든. 거기다 발작 끝나고 김수혁이랑 침대에 누워 러브러브한 분위기도 조금 뽐내고.”

“너 김수혁이 뭐했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 테이프 빼와줘.”

“나한테는 그 사실이 더 중요해. 그 조폭새끼가 너 억지로 사귀게 한 거잖아. 혹시 침대에 누워서 옷 벗기려든?”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나…억지로 만나는 것도 아니고. 형도 내 성격 알잖아. 아무렴 내가 쫄아서 사귈까.”

“그럼 지금 좋아한다는 거야? 너 조폭 싫어하는 거 알아서 내가 내버려 뒀는데, 둘이 친하게 지내지마. 나 질투나.”

“흐하. 미치겠다. 김게이. 요즘 왜 그러냐. 진짜 돌았냐?”       “어, 나 너한테 돌았어. 내가 김수혁 너 홍보하는 데 도움 되니깐 매니저 허락시켰지만, 이런 식이면 일이고 뭐고 없을 줄 알아.”

단호한 목소리로 주안이 자신한테 연애금지령 내리겠다며 엄포를 내렸다. 그러더니 자신더러 괜찮냐고 물었다.

“다시 상태 안 좋아진 거는 아니지? 어디 사이판이라도 가서 놀다올까? 약은? 그거 꼭 챙겨먹으라니깐 왜 자꾸 먹었다가 안 먹어. 그러니깐 자꾸 재발하잖아.”

“아니, 괜찮아. 나 진짜 괜찮다고. 형까지 나 미친놈 취급하지 마. 그냥 갑자기 화가 나고 우울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 그래도 약은 꼭 챙겨먹어. 누나는?”

“지금 약 타러갔어.”

“오늘은 그냥 하루 쉬어. 내가 다 말해둘게. 테이프는 아, 젠장. 그 새끼들이 줄란가 모르겠다. 그거 절대 안 내놓으려고 할 텐데.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미친다. 이으고, 망아지. 집에 가면 엉덩이 까고 맞을 준비해라. 존나게 형이 패주마.”

“킥킥킥. 지랄. 그게 가능할 것 같음?”

로이는 주안과 통화를 하던 도중 싸늘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문틀에 기대선 수혁이 자신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끊어.”

“아, 잠깐. 잠깐만.”

그가 다급하게 잠깐 끊지 말라 외치더니, 갑자기 ‘사랑해.’란다. 이런 미친 새끼야, 라고 욕하니깐 ‘그래, 미치게 사랑해.’라며 뚝 끊어버렸다. 로이는 아무 말 없는 수혁을 불안하게 바라봤다. 그러자 다크다크한 룡룡이가 조용히 ‘좋네요. 소속사 사장한테 사랑한다 고백 받고.’라 빈정거렸다.

“게이새끼 주제에.”

“야! 너 뭐라고 했어.”

로이는 주안을 무시하는 수혁의 말에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러십니까. 사실이지 않습니까. 김주안씨가 게이라는 거 로이도 알면서 아니라고 하실 생각이십니까.”

목소리의 높낮이가 변함없는데 왠지 으스스했다. 탁하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가 자신을 비껴 바닥에 떨어진 곰인형에 맺혔다. 그리고 그 작은 눈빛의 변화만으로 로이는 그가 주안의 목을 저렇게 만들어버리겠다는 느낌을 받고 말았다.

“하지 마.”

“예. 저는 절대 로이가 싫어하는 짓 안합니다.”

수혁이 다시 활짝 웃으며 ‘로이, 모처럼 휴가가 생겼는데 저희 집에 놀러 오실래요? 저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셨죠? 다 알려드리겠습니다.’라며 자신의 손을 잡아끌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어느 틈에 진부한 드라마 마냥 삼각관계가 형성된 모양이었다.

============================ 작품 후기 ============================

늦었지만 양이 짱 많다는 거...ㅜㅠ

연재 쉬어서 죄송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