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50화 (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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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 잠옷 입고 지내는 거 정말 못 할 짓이다 싶었다. 분명 자신은 소녀인데 사내아이로 자라나 닭살이 오소소 돋았다. 그래서 얼굴에 스킨 발라주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자신더러 춥냐고 물었다. 그런데 입 열면 토 나올 것 같은 말투를 써야 해서 그냥 곰돌이 머리를 끄덕였다.

“주안아, 로이 춥데. 바닥이 쩔쩔 끓는데 아무래도 감기 걸렸나봐.”

“로이야, 너 감기 걸렸어?”

매니저가 무릎을 짚고 허리를 숙여 자신과 눈높이를 맞췄다. KISS ME가 아니라 Chicken Skin이라 리얼 예능의 제목을 붙였으면 딱 좋았겠다 싶다. 꼴에 자기도 방송 나온다고 BB크림 바른 김게이가 착한 척하는 걸 보고 있으려니, 가운데 손가락이 막 올라가려 했지만 자신은 프로라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건 외로워서 추운 거야.’라 했다.

“으아악! 못 해먹겠다. 악! 더러워! 나 지금 완전 게이 같았어. 초랄 역겨움. 형 토 쏠린 거 알아? 로이야 너 감기 걸렸어? 우엑. 가식 쩌는 발연기라니. 가서 백게이랑 뒹굴어.”

곰인형을 멀리 던져버리고 자신이 방방 뛰니, 주안이 이번 화는 아픈 로이가 콘셉트라며 어서 앉으라고 했다. 여성 시청자들의 모성 본능을 자극해야한다는데 자신이라면 TV 보다가 이런 남자 아이돌 나오면 그냥 채널 바꿔버리고 말거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곰을 주워와 손발이 오그라지다 못해 발가락이 사라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문제의 대사를 끝마치니, 수정이 수고했다고 어깨를 토닥여줬다.

로이는 곰인형의 팔을 움직이며 목소리 변조를 했다.

“로이는 넘 외로워. 베베는 알아. 로이한테는 베베밖에 친구가 없어.”

그런 자신의 모습에 주안은 피식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고, 결국 고개를 돌리더니 박장대소했다.

“으하하하하. 아고 나 죽네. 미안, 아 미안. 그런데 로이야. 너 진짜 잘 어울려. 로이는 귀여워. 베베는 알아. 키키키.”

“아우 썅! 그래서 나 이딴 거 못 한다고 했잖아.”

너무 열 불나 머리를 헤집으며 성질을 내자, 그가 ‘아니야. 최고야. 최고. 너~~~무 잘 어울려. KISS ME 대박 나고 있으니깐 어서 곰돌이 다시 주워.’라는 거다.

“정말 잘나가는 거 맞지? 나한테 사기 치는 건 아니고?”

자신이 웬만하면 모니터를 할 텐데 그거 보면 그날로 로이 테일러는 자살 혹은 은퇴할지도 몰랐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에게 이건 너무 잔혹한 시련이었다. 요즘 자신이 너무 쪽팔려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자신만 보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 스텝들과 동료 연예인들 때문에 죽고 싶었다.

무슨 기사들이 나돌고 있을지 안 봐도 뻔했다. 인터넷 확인하면 자신의 굴욕적인 모습들이 캡처당한 채 떠돌고 있을 거다. 자신이 웬만한 스캔들에는 눈 하나 깜작 안하고 사는데 KISS ME 하는 동안에는 무서워서 인터넷을 못했다. 그래도 시청률이 24.4%라 참았다. 그건 드라마라 쳐도 대박에 속하는 수치이고, 예능으로 치면 초초 대박이니 말이다.

로이는 이 악물고 낡은 솜덩이를 흔들었다.

“베베는 너무 슬퍼. 시청률 개구라치다 걸리면 김주안, 로이가 죽여버릴 거니깐. 김사장 뒈지고 싶지 않으면 어서 진실을 토해내. KISS ME 망했지? 너 시청률 표 조작했지?”

“허허. 이거 왜이러시나. 로이야~ 형 막 사기치고 그런 캐릭터 아니다. 너 얼른 화장 받고 옷 갈아입어. 형 빨리 민호 병간호 하러 가야 하니깐.”

그녀는 수정에게 메이크업 받고 의상 들고 화장실로 가 청바지랑 면티로 갈아입었다. 침실은 카메라가 있어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드라마 촬영에 필요한 의상은 Reve에서 보낸 서브 스타일리스트가 촬영장으로 가져올 것이다. 아무리 같은 회사여도 스타일리스트라는 게 경력 짧은 얘들은 워낙 잘 그만 두고, 베테랑이라 할지라도 담당 스타가 여러 명인 직업군이라 비밀 보장을 해줄리 없다고 생각한 주안으로 인해 수정을 제외한 로이 스텝들은 제대로 자신과 붙어 있지 못했다. 친하게 지낼수록 약점을 드러낼 확률이 크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자신이 보기에도 그건 맞는 거 같았다. 처음 민호 데려왔을 때만 해도 자신이 여자라는 걸 안 밝혔는데 어느덧 까발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자신이 집에서 나오자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승냥이들이 ‘베베짱~ 베베짱~.’이라며 환호성을 질러, 로이는 빽 소리 질렀다. 여기는 카메라 없으니 화내도 됐다.

“시끄러워. 너희! 내가 아침에 학교 가라고 말 했어 안했어! 혼나 볼래!”

“까르르르. 화내는 거 좀 봐. 완전 귀여워. 어쩜 좋아 우리 베베.”

아이돌은 망할, 이라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어린 팬들이 교복 차림으로 자신의 집 앞에 있다는 사실에 소녀들에게 폰 좀 달라고 했다.

“왜요? 아무리 오빠라도 그건…….”

“오빠 믿지?”

자신이 하는 말이지만, 정말 믿음이 안 생기는 대사였다. 그래서 그 내용에는 네버 신경 쓰지 말라 하얀 이를 드러내며 상큼하게 웃어 보이니, 승냥이들이 하나 둘 씩 폰을 자진 납세했다. 로이는 그녀들의 전화번호부를 뒤져 ‘마녀, 마더. 엄마. 마미. 아줌마…….’라 저장된 이름들을 누르고 어서 따님 데려가라고 했다. 학교 안가고 땡땡이 쳤다니깐, 엄마들이 알려줘서 고맙다며 당장 오겠다고 했다.

“배신자~~~. 오빠 너무 해요.”

소녀들이 한꺼번에 눈깔 부라리며 야리는데 고 거 참 누가 팬클럽 이름이 승냥이 아니랄까봐 앙칼지다 싶었다. 로이는 앞머리를 쓱 넘기며 반듯한 이마를 보였다. 그리고 살짝 속눈썹을 내리깔고 청순하게 ‘네가 너무 걱정돼서.’라며 우수에 찬 눈빛으로 그녀들을 쫙 스캔해줬다. 그러자 팬들이 걱정시켜서 미안하다며 당장 오빠를 위해 학교를 가겠노라 돗자리로 쓰던 가방을 챙겨, 길 엇갈릴 수도 있으니깐 엄마한테 각자 전화하라고 했다. 매일 아침 자신이 이렇게 이 얘들 학교 보내느라 스케줄 보다 일찍 집에서 나오는 거였다.

밴에 올라타자 수정이 앞좌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주안은 하품하면서 운전을 했다. 로이는 목 베개하고 담요를 덮었다. 좀 눈 붙이고 일어나니 어느새 템 촬영하는 준호 오피스텔 주차장에 와있었다. 운전석이 빈 것을 봐 김기사는 택시 타고 간 모양이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KISS ME 촬영팀이 자신에게 인사를 걸어왔다.

“안녕. 로이 잘 잤어?”

“으응, 아니요. 너무 졸려요. 하암~.”

자신이 기지개를 키며 칭얼거리자, 여자 PD가 자판기에서 갓 뽑은 따끈따끈한 코코아를 건넸다. 어떻게 자신이 일어난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나 싶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럴 때는 박카스 건네는 건데 말이다. 귀요미 콘셉트라 달달한 거 주는 모양이었다. 로이는 컵을 기울이는 척 입술을 꼭 깨물고 코를 벌렁이며 코코아 스멜을 잔뜩 흡입해본 후 나는 다 마셨노라, 수정에게 건넸다. 지금 이거 마시면 템페스트 촬영하면서 늘어날 자신의 칼로리에 122칼로리가 더 추가되는 거였다.

아침부터 피곤에 쩔어 혹시 미모 포텐 안 터졌을까봐 아이돌은 카메라 앞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밴에서 나와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대본을 리딩하던 수혁이 자신을 보고 달려와 ‘카렌, 어서와.’라며 반겨줬다.

“형아, 안녕. 좋은 아침이야.”

카메라 신경 쓰여 일찍 일어났더니 눈꺼풀이 계속 잠겼다. 삼촌한테 언제 촬영 들어가냐고 묻자 1시간 뒤에나 한다고 했다. 로이는 준호의 침대에 가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수혁이 자신의 옆에 따라 누웠다. 자신이 조용히 복화술로 ‘꺼져. 지금 촬영 중이야.’라 하자, 그가 자신의 등을 토닥이며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라 했다. 하여간 무사안일주의에 쩌든 도련님이었다.

“하루만 너의 침대가 될게. 내가 꾸는 꿈 속 모든 걸, 너에게 보여주고 싶으니깐. 오우오~ 아님 난 따스히 널 덮은 이불이 되어 널 보살필 거야. 넌 외로움이 많은 아이니깐.”

이거 자신이 5년 전에 부른 Dream이었다. 그때 자신이 아직 탈 어린이를 하지 못해 상당히 안 어울리는 콘셉트였다. 스스로 이 가사를 제대로 이해나 했나 싶은 노래였다.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볼일 보고 뒤 안 닦은 찝찝함이랄까. 꿈이라고 하기에는 사물이 되고 싶다는 이상한 소년의 마음을 자신이 어찌 알겠는가. 남의 옷 훔쳐 입은 듯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여기서 Dream의 진정한 주인이 있었다.

CF의 황제 김수혁이 낮은 목소리로 ‘나의 꿈은 너의 일부가 되는 거야.’라고 그 매혹적인 음성과 함께 자신의 가까이서 뜨거운 숨결을 뿜어내, 온몸이 녹아내리며 이 노래가 이렇게 에로틱한 내용이었던가 싶었다.

그가 자신의 손에 깍지 끼고 ‘하루만 너의 침대가 될게. 네가 편히 믿고 쉴 수 있게.’라고 노래를 불렀다. 로이는 눈을 뜨고 ‘나 잠 좀 자게 조용히 좀 해. 형.’이라 소리 지르고 베개로 김수혁을 때려 침대에서 내쫓았다. 하여간 소녀 마음을 벌렁벌렁하게 하는 저 예쁜 늙은이 때문에 자신이 로수최고의 팬픽이 고픈 거였다. 이런 자신들을 보고 과연 누가 커플이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수혁이 침대 밖에서 자신에게 ‘잘 자 로이야.’라며 감수성 충만해지는 새벽에 라디오 DJ 해도 좋을 만큼 굿 보이스로 인사를 해, 귀 막고 눈을 꼭 감았다. 지금 얼굴을 봤다가는 입술 박치기를 해버릴지 몰랐다. 그런데………나 지금 예능 촬영 중이었지? 아씨. 예능 쩔게 싫다.

이게 다 자신의 예능 출연은 반대한 소속사들 탓이었다. 예능 출연해봤자 이미지 실추된다며 안 시켰던 전 소속사, 예능 나가면 네가 깽판 칠까봐 무섭다며 안 내보내는 현 소속사로 인해 별로 예능 촬영이 없었던 자신인지라 방송 초짜 마냥 굴고 말았다. 그놈의 평정하다를 뒤이어 하는 KISS ME도 자신에게 그다지 이로운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로이는 알아서 편집해주겠지 하며 이불을 둘둘 말고 잤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김수혁이 아무리 왕자님 마냥 나타났어도 모른 척 할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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