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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돌이다-47화 (47/104)

00047  반하게 만들겠어  =========================================================================

로이는 Reve 사장실에서 김 오누이랑 모여앉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시나리오를 꽤나 긴 시간 동안 이야기 나눴다. 그가 보여주는 프로파일에는 꽤나 얼굴이 알려졌었던 여배우와 은퇴한 아이돌들이 있었다. 나는 절대 못 한다 울면서 그냥 이쯤에서 그만두자고 하니, 주안이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눈을 매섭게 떠 바라봤다.

“정신 차려. 나 너 지킬 거야. 그리고 얘네들은 어차피 한물가서 평생 밑바닥에서 굴러다닐 삼류야. 그런데 예전에 인기 조금 있어서 이름값은 하니깐, 적당히 돈 쥐어주면 너 게이설 정도는 덮을 수 있어.”

“싫어. 나 살자고 어떻게 그래. 형이 인간이야?”

“약속했잖아. 내가 너 별이 아니라 태양으로 만들어주겠다고. 넌 그럴 수 있는 아이야. 그냥 모른 척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면 되는 거야. 잘할 수 있지?”

“욕심 부리지마. 왜 멀쩡한 사람을 나락으로 빠트려. 그런다고 내가 구제될 것 같아? 그저 조금 묻히는 정도야. 내가 여자라는 거 안 밝히는 이상 그래도 난 게이고, 매일 스캔들이나 일으키는 이슈 메이커라고.”

“그래, 그러니깐 오히려 잘된 거지. 모두들 또 하나의 소문일 뿐이라 여기고 잊어버리겠지.”

주안이 자신의 뺨을 손으로 닦아주며 꼭 끌어안았다.

“내가 너 겁 줄려고 막말한 거는 미안해.”

그의 손바닥이 자신의 뒤통수를 꾹 누르고, 천천히 쓰다듬었다. 쿵쿵 대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직 한국은 게이가 발붙일 곳이 아니야. 일본 같은 경우는 워낙 동성애 문화가 발달돼 괜찮다는 반응인데 그럼 너 거기 가서 성인 방송이나 뛰어야 해.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아이돌 로이 테일러가 성 상품으로 전락해버리는 거야. 그럼 너 NHK 다시는 못 가. 홍백전 못해. 걔네들 19금 방송이 한국이랑 다르게 완전 저질인 거 너 호텔에서 다 봤잖아. 듣보잡 여자 아이돌 수영복만 입혀놓고 물에 빠트리고, 가슴 만지고, 교복 치마 들추고. 게이들은 펠라하는 걸 웃음거리로 만들어서 방송 내보내는 데 너 그거 다 견딜 수 있어?

미국은 괜찮아. 거긴 할리우드 배우나 가수들 중 꽤나 커밍아웃 했으니깐. 그러니깐 내가 미국 가자고 한 거야. 근데 너 한국 떠나기 싫다며. 그럼 어차피 밑바닥인 애들한테 원 없이 돈 써보라고 하는 거야. 지들이 몸 굴린다고 그거 벌 수 있을 것 같아? 그거 못 한다는 거 아니깐 내 제안 받아들인 거고, 마약하고 고작 3년 자숙하면 다시 방송 복귀할 수 있으니 완전 땡잡은 거야. 얘네들 너 원망 안 해. 오히려 빛 보게 해줬다고 무지 고마워한다고. 로이야, 형아 믿지? 이거 절대 나쁜 짓 아니야. 나 너 지키고 싶다.”

자신의 등을 토닥이며 사장은 ‘다 잘 될 거야.’라 했다. 그런데 정말, 정말 괜찮은 것일까? 그거 묻혀도 내 팬들은 나한테 배신감 느끼고 원망할 텐데 고작 내가 이걸로 용서받을 수 있는 거라고? 그냥 이 참에 다 고백해버려도 될 것 같은데 왜 안 된다고만 하나 싶었다. 주안이 더 이상 자신을 설득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이어지고,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엄마. 엄마. 엉엉. 엄마.”

전화기를 붙들고 바보 마냥 울고 있는데 그녀가 따스하게 ‘울 아들. 엄마는 믿어. 우리 로이가 엄마 꿈 대신 이뤄주기로 했잖아. 그렇지? 사장님 말 잘 들어. 그거 무조건 옳은 거니깐 그냥 넌 가만히 있으면 돼. 엄마가 우리 로이 보러 한국 들어갈 건데, 사람들이 엄마한테 돌 던지면 좋겠어?’라 물어왔다.

“아니, 아니 싫어. 흑. 엄마 돌 맞으면 안 돼.”

“그래, 맞아. 우리 아들 착하네. 엄마가 집에 가면 우리 로이 좋아하는 달걀 후라이 해줄게.”

“응. 기다릴게. 언제 올 거야. 오늘 오면 안 돼? 보고 싶단 말이야.”

“…………알았어. 눈썹 휘날리게 갈게. 울 아들 사랑한다.”

“나도 사랑해. 엄마. 나도 사랑해.”

전화기를 붙들고 울고 있는데 엄마가 먼저 통화를 끊어버렸다. 사실 달걀 후라이를 좋아하는게 아니라 엄마가 만들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어서 그런 건데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사람 조정하는 걸 너무나 영악하게 잘하는 주안이었다. 자신이 거절할 것까지 예상하고 미리 엄마한테 전화해둔 거였다. 안 그러면 파리에서 지금 자신이 게이설 퍼진 걸 그녀가 알 리 없었다.

주안이 자신에게서 핸드폰을 빼앗고 ‘거봐. 어머니도 너 계속 연예인 하는 거 원하잖아. 네 엄마 너 돈 못 벌며 죽어.’라 했다. 소속사 사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스타의 속사정을 잘 아는 탓에 그는 자신의 밑바닥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번에 ‘아빠가 아니야’ 10주년 기념으로 네 일상생활 보여주는 프로 하나 잡아 놨어. 김수혁측에서 순순히 협조해주더군. 자기네들 잘못이니 방송국들 내어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네 특집 방송 지금 케이블로 내보내고, 너 해외에서 짱짱하게 잘나가는 아티스트라 찬양하는 내용 지상파 3사 뉴스로 트니깐 사람들이 너 게이라 욕하다가 ‘역시 대단해.’라 말하고 있어. 넌 그냥 한국 가수가 아니라 세계적인 가수인데 네가 자꾸 한국이나 굴러다니니깐 사람들이 자꾸 네 가치를 까먹잖아.

로이야, 세상은 그런 거야. 너 지금 잘나가니깐 용서받는 거야. 그런데 우리 여기다 살짝만 가미하면 너 이거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사실 로이는 넌 엄청 애정결핍이라 주변 사람들한테 포옹과 키스를 잘한다고 예능으로 보여주기만 하면 돼. 우리 은근슬쩍 아니라고 하자. 사람들이 다시 너한테 반하게 할 수 있지? 나 너 믿어도 되지?”

수정이 한숨을 쉬며 자기는 이제 나가보겠단다. 그러자 주안이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로이 테일러가 왜 연예계에서 사라지면 안 되는지는 읊기 시작했다.

“넌 타고난 아이돌이야. 모두가 널 보며 부러워할 수밖에 없지. 이 쫙 빠진 예술적인 몸매를 봐. 팔과 다리는 쭉쭉 뻗어서 시원시원하고, 180의 우월한 키와 성형 한번 안하고 이 얼굴이라고 말하면 모두 너 개 욕 한다? 아우 씨발. 저거는 왜 저렇게 잘생겼어. 내 얼굴은 옥떨메인데.”

“키키키. 뭐 그렇긴 해.”

“로이 테일러는 미의 신이야. 아폴론도 너보다는 못 생겼지. 이 찬란한 허니 블론즈와 한번 보면 빠져서 헤어날 수 없는 푸른 사파이어 눈동자라니. 거기다 완전 죽이는 건 네 목소리가 처녀도 임실 시킬 마성의 보이스라는 거지. 너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햅번. 그레이스 켈리. 이런 전설적인 미녀들 다 제치고 네가 세계 10대 미인에 뽑힌 거 알아? 이번에 타임즈에서 올해의 인물로 너 뽑았어. 근데 이까짓 게이설로 이런 네가 끝난다고?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고 해. 한국 버려도 돼. 그런데 너 네 승냥이들 못 버리니깐 내가 더러워도 꾹 참는 거야. 이 앵두 같은 입술을 좀 봐. 완전 섹시하잖아. 아아, 자기야. 나 완전 황홀하다.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한 번 할까?”

김게이가 입술을 쭉 내밀고 자신한테 뽀뽀를 하려고 들어 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갔다. 그러자 그가 자신을 뒤에서 잡아채 허리를 간지럼 폈다. 숨넘어가도록 웃다가 주안한테 꼭 붙들려버렸다. 그러다 가만히 자신의 눈을 응시하던 사장이 진짜로 입을 맞췄고, 주안이 자신을 벽으로 밀어 팔 안에 가뒀다.

“나 너 때문에 졸나게 고생했으니깐 상 조금만 줘라. 내 폰 번호 아이들한테 팔아먹었지? 그 미친년들 때문에 내가 카톡 답장 보내는 알바까지 고용했어. 크크크. 그런데 너 아닌 거 단번에 알아차리던데. 님 닥쳐! 즐! 로이가 사기 쳤음. 이라고 해서 네 폰 맞다고 핸드폰 계약서 찍어 올렸다. 야, 너도 내가 아무리 그러라고 바꿔 쓰는 거라지만 정말 너무 한 거 아니냐?”

주안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하체를 밀착시켰다. 그래서 너 게이 아니냐고 물으니, 그가 ‘요즘 사람들이 널 게이라고 불러서 그런지 막 땡기네.’라는 헛소리를 해 가벼운 거시기를 무릎으로 갈겨줬다. 백민호랑 뒹군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나, 아주 못 쓸 인간이었다.

“으아아악!”

바닥을 대굴대굴 구르며 요란을 떨어 등판을 발로 차주자 주안이 ‘야! 너 죽을래?’라 버럭했다. 정말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김게이. 그 뒷이야기는 백게이랑 해라. 난 이제부터 오천만 대군 꼬시게 꽃단장이나 해야겠다.”

자신의 말에 사장이 ‘야아아~, 나 개랑 깨졌어. 아니 깨진 것도 아니라 그냥 대타로 이용만 당한 거라고. 우린 그냥 비즈니스 사이였어. 로이야, 나한텐 너밖에 없다. 우리 결혼하자!’라고 해 손을 지그시 밟고 지나가줬다. 하여간 바지만 입으면 발정난 개새끼 마냥 덤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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