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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돌이다-43화 (43/104)

00043  반하게 만들겠어  =========================================================================

로이는 수정이 사온 초코바를 탐욕스럽게 보며 ‘나는 사실 이것을 증오한다, 왜냐. 이걸 먹으면 윗몸 일으키기를 20분 동안 해야 하니깐! 아, 왠지 보는 것만으로도 살찌는 느낌이야.’라는 암시를 걸으며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아무리 자신이 아이돌이라지만 개념돌이 되기 위해서는 가끔 이렇게 학생 코스플레이를 하고 학교 가야 했다. 전신 거울로 교복 입은 모습을 체크하는데, 캬아~ 아주 옷빨이 죽여줬다. 살짝 단추 하나 풀고 주머니 한쪽에 손을 꽂아 삐딱하게 서봤다. 이건 그냥 화보였다. 이 완벽한 9등신은 신이 내린 비율이나니 모두 개 부러워 할지로다. 우히히히.

………이렇게라도 살지 않으면 인생이 참 힘들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한쪽 앞머리를 뒤로 쓱 넘기고 날카로운 자신의 턱선을 감상했다. 이 베일 듯한 각이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가끔 사진 기자로 위장한 안티팬이 밑에서 들입다 찍어대며 연예인들 안습 만드는 경우가 있어서 관리 또 관리해야 하는 거였다. 도대체 키 164cm에 몸무게 47kg의 여자 아이돌에게서조차 두 턱 만들어내는 촬영 실력이란 가히 911 테러에 버금가는, 가공할만한 능력이라 할 수 있겠다. 한 장만 찍는 것도 아니면서 일반인이 찍어도 그것보다는 잘 찍겠다.

그러니 예쁜 사진 써달라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 거였다. 지금 생각났으니 어장 관리 좀 해야겠다 싶었다. 로이는 폰으로 ‘오늘 날씨 쌀쌀하다 하니 감기 조심하세용^.~♥’이라 단체 톡을 돌렸다. 여기에 플러스라면 게임 하다가 하트 보내는 거였는데, 그건 연예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떡밥을 날리자 다들 다다다 빠른 속도로 답을 보내왔다. 우리 다음에 밥 한번 먹자, 드라마 잘 보고 있다, 신곡 죽이더라 등등등. 뭐 그들도 나중에 인터뷰를 위해 스타와의 인맥을 쌓고자 자신에게 적당히 떡밥을 던지는 것뿐이지 그것에 일일이 의미가 담겨있다 보는 건 참 곤란했다. 자신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 이름 빼고 단체 톡을 돌리고 하트 보내는 자들이니 말이다. 그냥 서로 알면서 모른 척 하는 거였다.

수정에게 핸드폰을 던지고 적당히 답 보내라고 한 다음 집을 나왔다. 바닥에 앉아있던 승냥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빠, 걔랑 사귀는 거 아니죠? 완전 소문 안 좋아요. 사이코래요.’라며 리나의 정체를 까발리기 위해 노력했다. 기를 쓰고 노력하는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으며 ‘나도 알아. 걔 완전 미친년이야. 근데 좋은 걸 어떡하냐?’라 답하니 자신들도 미친년이란다. 그것도 알고 있었다.

“오빠가 오토바이 타라고 하면 탈 것이고, 담배를 피우라면 필 것이고, 브래지어만 입고 농구하라면 할 것이고, 우리도 그거 다 할 수 있는데 왜 하필 송리나야! 엉엉엉. 너무 싫어. 그 년 죽여버릴 거야.”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런데 언제 속옷만 입고 농구했나 싶었다. 하여간 초 사이언 송리나였다. 혹시 따라할까 무서워 ‘오빠는 조용하고 공부 잘하고, 착한 여자가 좋아.’라니깐 이것들이 눈 부릅뜨고 ‘근데 왜 그 따위 것 만나!’라며 성질을 버럭 냈다. 하여간 요즘 어린 애들이 무서웠다. 로이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깐. 그건 날 만나기 전의 리나잖아.’라 했다. 그런데 팬들은 엉엉 울며 내가 죽어야 정신 차릴 거냐며, 계속 만났다가는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이거 인터넷으로는 좋은 기사들이 많이 나와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역시 소속사에서 힘을 써준 모양이었다. 할 수 없이 ‘이건 사실 비밀인데….’라며 검지를 입술에 붙이고 살짝 눈웃음치자, 승냥이들이 울음을 그치고 자신을 올려다봤다. 가끔 귀찮고 짜증나기는 하지만, 어쨌든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로수는 사실일지 몰라.”

“…………….”

왜 반응이 없나 싶었다. 혹시 말로만 떠들다가 현실에서는 BL이 싫은 건가 싶어 표정을 굳히자 소녀들이 서로 얼싸안고 쿵 쿵 뛰어댔다. 확실히 이 나이 때가 넘치는 식욕으로 살이 포동포동 올라 무거울 시기다.

“흐어엉.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깐. 내가 말했지? 이게 다 연막작전이라고. 울 오빠는 장국영을 넘어섰어. 그 아저씨가 살아생전 그렇게 아니라고 잡아뗐는데 사실이었잖아.”

“오빠, 고마워요. 절대 나 아닌 여자 만나지 마요. 그럼 그년 잡아다가 우리가 뭔 짓을 할지 몰라요. 우리 범죄자 안 만들 거죠?”

참으로 해맑게 웃으며 정말 악독한 말을 해대는데, 자신이 진짜 남자였으면 인기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늙은이가 되어서야 여자랑 결혼할 수 있겠다 싶었다. 로이는 자신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소녀팬들에게 ‘너희는 내가 게이라 좋아?’라 묻었다. 그러자 당연히 그렇다고 답할 줄 알았던 그들이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라 답했다. 그럼 왜 그렇게 김수혁이랑 엮으려 드냐 물으니, 승냥이들이 ‘오빠는 팬의 마음을 몰라요.’라는 아리송한 말을 했다. 그들의 심리를 다 꿰찼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도 먼 모양이었다.

뭔가 자신의 입으로 커밍아웃을 하다니, 자신이 꽤나 겁을 먹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들은 자신에게 절대 이 비밀을 지킬 거라며 맹세했는데, 자신은 그 말이 더 불안했다. 혹시 이것들이 로이 테일러가 게이라고 불고 다닐까봐 불안해서 발걸음이 안 떨어졌다. 수정이 빨리 차 타라고 재촉하는데 찜찜함 때문에 자신이 자꾸 뒤돌아보자, 승냥이들이 조용히 ‘오빠, 가세요. 저희도 알아요. 오빠 게이 아니라는 거. 그런데 저희 때문에 그렇다고 말해준 것 고마워요. 그리고 저희 오빠가 아니라는 거 알지만 그래도 믿을 게요.’라 말했다.

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거였나 보다. 자신들의 믿음이 깨지지 않게 하는, 그것이 비록 다 아는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환상을 헤치지 않는 것 말이다. 그런데 김수혁이랑 사귀는 거 사실인데 말이다.

로이는 씨익 웃으며 뒤돌았다. 밴에 올라타자마자 우리 룡룡이가 보고 싶어 전화를 거니, 그가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그래서 뭘 잘못 했냐 물으니 자신을 상대로 어떠한 상상을 했단다. 이거 참 순진한 아저씨로다 싶었다. 그녀는 의자에 누워 ‘아아앙, 수혁씨! 나 젖어가.’라는 야리꾸리한 신음을 냈고 수정이 이 미친놈아, 라며 주먹을 자신에게 휘둘렀다. 하여간 팔도 짧은 여자가 이상한 거 생각한다. 키키키.

로이는 수화기 너머에서 조용한 수혁에게 ‘무슨 상상했어? 자기.’라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우리 로이가 생수를 마시다가 엎질렀다고 생각했습니다.’라며 뜬금없이 반야심경을 읊었다. 그래서 불교냐고 물으니 자기는 무교라고 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좋아서 그런지 이 아저씨가 반야심경을 외우니 무지 달달하게 들렸다. 자신이 노래 좀 불러달라고 하자 수혁이 애국가를 불렀다. 그래서 그냥 일 보라고 전화 끊어줬다. 기자들도, 승냥이들도, 자신도 그렇고 모두 알면서 모른 척하는 지혜가 있었다.

로이는 학교에 도착하기 전 검은 렌즈를 끼고 가발을 뒤집어썼다. 자신이 다니는 걸 알면 수업이 불가능해지니 이 정도 변장은 해줘야 했다. 거의 눈 밑까지 가려내는 앞머리가 긴 가발이라 이거 쓰니 완전 섹시미 폭발이었다. 어째서 이 몸은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잘났을까 싶기는 한데, 여기다 뿔테 안경까지 쓰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음침하기는 하지만 넌 미소년이야!’라 외칠 듯한 검은 머리 남자가 거울 속에서 자신을 쳐다봤다. 그런데 이 정도로 자신을 못 알아볼 팬들이 아니어서 번거롭기는 하지만 분장하러 아는 특수분장사 작업실로 이동해야했다.

자신을 반갑게 맞이한 혜영은 영화 촬영을 위해 배가 갈라진 더미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더러 너도 참 힘 힘들게 산다면서 얼굴에 화상 자국들을 만들어줬다. 약간 호러이기는 한데 이게 확실했다. 다들 자신을 자세히 쳐다보려고 안 해 학창시절 내내 정체를 안 들켰다. 더불어 6년 내내 왕따인 거는 두 말하면 잔소리였다. 손거울로 확인하니 진짜 자신 같아도 도망가고 싶을 듯했다. 만족스럽게 웃으며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수정이 산 초코바 한 개를 주니, 혜영이 무지 좋아했다. 역시 남 살찌우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로이는 다시 차에 올라타 등교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은 점심시간에서야 학교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골목길에 차를 세웠다. 일단 밴을 타면 대부분 연예인이라 생각해 어쩔 수 없었다. 책가방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나 그냥 멨다. 한품을 하며 돈만 있었으면 분식집에서 떡볶이 사먹었을 텐데, 라는 생각으로 가게 앞을 천천히 지나며 냄새를 음미했다. 이래서 주안이 자신에게 용돈을 안주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저기 저 고운 처자는 자신의 베프 리나가 아닌가 싶었다. 긴 생머리 휘날리는 청순미 뽐내는 미소녀가 바로 7년 전 톰보이와 동일 인물이라니, 이거 참 세월이라는 게 무섭구나 싶었다.

그런데 어떤 머슴아가 리나 뒤를 쫓아 달리고 있었다. 뭐가 싶어 지켜보자, 그 새끼가 자신의 발레 소녀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간신히 그녀의 머리카락 끝을 잡았다. 그러자 남자혐오증 개 사이코 리나는 남자가 자기 머리카락 조금 만졌다고 교복 주머니에서 커터 칼 꺼내 지 머리채를 잘라버렸다.

“야! 송리나 너 미쳤어? 아무리 내가 싫다고 해도 어떻게 네 머리카락을 잘라.”

“내가 꺼지라고 했지! 나 남친 있어.”

“알아, 나도 기사라면 봤어. 그런데 그 사랑이 얼마나 갈 것 같아. 걔가 너 가지고 노는 거야. 그런데 난…널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

로이는 꽤나 반반한 양아치가 울 리나한테 홀딱 반했구나 싶어 혀를 찼다. 그녀의 뒤에 가 어깨를 감싸고 ‘자기야~, 나 없다고 바람피우면 안 돼.’라며 섹시 허스키 목소리를 내니, 리나가 자신을 껴안으며 엉엉 울었다. 네가 학교를 안 나오니깐 별 씨발 것이 자신한테 깝쳐서 짜증난단다. 그런데 자신의 캐릭터는 욕쟁이가 아니었는데, 역시 연기자가 아닌 그녀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뭐 자신도 진짜 리나 보다 천만 배 더 멋진 로이를 만들어냈으니 도 긴 개 긴하기로 했다.

“야! 너 그 손 못 떼!”

우선 저 버럭 양아치를 쫓아버려야겠다 싶었다. 지금 자신이 무시무시한 분장을 하고 있어서 인상이 장난 아님으로 안경 벗고 눈깔 부라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꺼져!’라 외치면 살인자 잭에 버금가는 범죄자가 되는데, 그가 멍하니 ‘…로이?’라는 거다. 이렇게 분장하면 김 사장도 못 알아보는데 저 놈의 정체가 뭔가 싶었다.

“아, 씨발. 목소리 죽인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입학하고 줄곧 벙어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 마성의 보이스가 제아무리 얼굴에 화장 자국을 지녀도 여자들이 데이트 신청 걸어오도록 하는 마력을 지녔다는 걸 중딩 때 경험했는지라, 학교가 촬영장이라는 인식으로 벙어리 연기를 해서 교내가 아니라고 방심했다가 이런 실수를 저질러 버린 거였다. 로이는 빨간 머리가 후덜덜하게 섹시하구만, 이라 하는 말에 리나를 꼭 끌어안고 ‘내 여친이니깐 건드리지 마.’라 경고했다. 그러자 양아치가 ‘여기 로이 테일러다! 로이가 특수 분장하고 왔다!’라 소리쳤고, 운동장에 있던 아이들은 긴가민가하면서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로이다! 역시 울 학교에 로이가 있었어!’라 외쳤다. 그 소리에 흙먼지 일어나도록 계집애들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제발 이것이 악몽이라 말해주길 바란다. 무너진 대열 때문에 넘어진 친구를 짓밟으며 여자 아이들이 자신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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