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42화 (42/104)

00042  반하게 만들겠어  =========================================================================

샤워를 끝마치고 나온 스타는 목욕가운을 입은 채 소파에 널브러졌다. 옷 입기도 귀찮았다. 요즘은 너무 빡빡하게 활동하는 거 아닌가 싶어 조금 쉬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잠깐 한 눈 파는 사이에 가득이나 싱싱한 것들이 치고 올라오는데 텔레비전 볼 때마다 불안해서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나 있을까 싶어 힘들어도 무리하는 거였다. 수정이 식탁에 샐러드 꺼내놨다며 먹으라고 했다. 인류에 야채가 없었으면 인간은 참 행복한 존재가 되었을 거다. 다들 뒤룩뒤룩 살이 쪘을 테니 자신이 조금 살찐다 해도 티날리 없으니 말이다. 뭐…, 고기만 있는 세상이 온다 해도 연예인들은 굶을 인종들이었다.

로이는 양배추를 먹기 싫었으나 이거 먹으면 100만 배 더 예뻐진다는 암시를 걸고 우적우적 먹었다. 그나마 다행인 거는 바나나가 식단에 추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샐러드는 아무리 배불리 먹는다 해도 금방 꺼지고 속이 허해서, 여기다가 뜨끈뜨끈한 라면 국물에 밥 말아 먹으면 딱 제격인 상태가 될 뿐이었다. 물론 치킨이나 햄버거 같은 걸 먹으면 더 좋겠지만 자신도 양심이라는 게 있어 상상에서조차 그 정도로 끝냈다. 너무 끝까지 가면 반드시 새벽에 일어나 뭐라도 처먹으니 말이다.

자신이 이 따위로 아침을 때우는 동안 다이어트가 필요 없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저 혼자 컵라면과 삼각 김밥을 가지고 방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진짜 악독한 것이 냄새 때문에 식욕이 일어날까봐 양치하고 향수 뿌리고 나온다는 점이었다. 이거 참 자신을 배려해주니 눈물 나게 고마웠다.

요즘 스타일리스트가 없어 자신이 대충 예쁜 옷을 주어입고 있었다. 회사에 사람 하나 보내달라고 하기가 참 뭐했다. 다름이 아니라 병신 같은 거 올까봐서였다. 협찬을 받아올 사람이 없으니, 팬들한테 받은 조공으로 치장하고 있는데 이게 또 반응이 쏠쏠하고 좋았다. 리나랑 스캔들 터트리고 과거 동영상이라며 불량소녀가 인터넷을 점령했지만, 자신을 만난 후 예쁘고 사랑스러운 발레소녀로 재탄생한 그녀의 모습에 다들 로이가 인간 만들었다고 이 커플 뭔가 다르다는 반응이었다. 아아, 걔 만나고 자신도 쫌 많이 변하기는 했다. 역시 친구는 잘 사기고 봐야 하는 거였다. 토마토를 포크로 집고 입에 넣어봤다. 탱탱한 껍질이 터지며 토마토 물이 입안에 고였다. 이걸 맛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맛있는 거였다.

“아, 씨발. 더럽게 맛없네.”

사실 자신은 초딩 입맛이라 연예인하기 글러 먹은 존재였다. 어디 과자 CF 안 들어오나 싶은데 자신의 몸값이 날이 갈수록 높아져 다들 함부로 못 부르고 있었다. 그건 역시 아역 때나 찍을 수 있는 거였다. 한때 초코칩 쿠키의 전속 계약으로 광고 회사에서 과자를 몇 박스씩 선물해줘 원 없이 먹다가 돼지 될 뻔했다. 아, 그게 유일하게 자신이 방송을 쉰 때다. 꽤나 오리 쉬었다. 무려 1년이나 사라졌었으니 말이다.

그 지방을 다 빼내느라 자신은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모기 마냥 피 대신 물을 쭉 쭉 빨아 마시며 살았다. 그런데 무기력하게 늘어져 일주일 동안 살을 빼면 그 후로 폭풍 흡입이 따라오게 되어 미친 요요로 살이 부끼뿌기 쪄 다이어트 약도 손대고, 그러다보니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 어느새 목구멍에 손을 넣고 토해내는 지경까지 갔었다. 물론 그 뒤로 거식증이 와 쭉 쭉 살이 빠졌었는데 활동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 자신을 엄마는 이제 울 아들 재기 못하는 거냐며 자기 애인 요양원에 처넣었다. 살쪘을 때에는 그렇게 먹지 말라고 악을 악을 쓰더니만 자신더러 밥 좀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안에 갇혀 있는데 너무 편하더라. 아무도 싸인해달라고 안 오고, 뭐라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 안자도 되고, 사람들 시선 신경 안 써도 되서 무지 좋았다. 딸보고 아들이라 외치는 엄마한테 이제 포기하라고 열심히 굶었다. 아직 그때 한류 스타 정도는 아니어서 이 정도로 끝내자 싶었다.

그렇게 간식으로 나온 고칼로리 통조림을 변기에 버리며 방안에서 열심히 뛰어 체중 감량을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요양원에 어떤 미친년 하나가 왔었다. 걔도 자신처럼 머리가 남자 마냥 짧았다. 입은 걸걸하고, 오만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데 자신과 전혀 다른 성격이라 너무 멋져 보이는 거다. 12살의 로이 테일러는 알맹이가 하나도 없이 그저 예쁘기만 한 아역 스타였을 뿐이었다. 아니, 그 시절의 자신에게는 스타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듯싶었다. 우울증에 걸려 암울한 눈으로 세상만사 다 산 얼굴을 한 자를 보고 누가 빛난다고 하겠는가.

리나는 말썽꾸러기였다. 동네 노는 언니들을 요양원까지 데려와 낄낄거리며 놀았고, 오토바이도 몰 줄 아는 조금은 불량한 아이였다. 자신은 그저 그 모습을 보고 어떤 면에서 사람들이 리나의 매력에 이끌리는 것일까를 연구해봤다. 식판을 들 때의 그녀의 손 모양이라든지, 그 특유의 머리 쓸어 올림, 누군가를 비웃는 모습조차도 섹시한 톰 보이. 아니 톰 걸을 요양원 사람들은 모두 사랑해 연예인으로서 몰래 송리나라는 배역을 맡았다 생각하고 따라해 봤다.

그런데 나무줄기에 매달려 그네를 타다 땅으로 착지했던 소녀의 모습을 낮에 봐뒀다가 밤에 몰래 뜰에 나가 따라해 봤다가 당사자에게 걸리고 말았다. 리나는 자신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너무 창피해 자신이 나무 뒤에 숨어버리자, 그녀는 키득키득 웃으며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야, 너 로이 맞지? 근데 왜 이런데 기어 왔냐?”

“………….”

“하여간 귀엽긴. 나와 봐. 얼굴 좀 가까이서 보자. 네가 자꾸 숨어 다니니깐 이 누나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내가 남자한테 구미 당기는 건 네가 처음인데, 너 나랑 사귈래?”

도저히 리나는 12살짜리라고 안 보였다. 당시 자신 보다 키가 컸던 그녀는 바닥에 담배꽁초를 던지고 비벼서 껐다. 성큼성큼 다가온 소녀는 자신의 얼굴을 잡고 입을 맞췄는데 담배 연기가 넘어와 자신은 콜록였고, 그녀는 ‘하하하하. 순진한 것.’이라며 자신의 등을 두드려줬다. 지금 생각해도 리나가 돌+아이였던 건 틀림없다.

DOL+I. 이걸 거꾸로 읽으면 IDOL이 돼 자신들이 서로 인생을 바꿔 사는지 모르겠다.

자신은 그 반짝반짝 별님을 밀어버렸다. 아주 독기에 올라 노려봤던 거 같다. 그녀는 황당하다는 듯 자신을 보더니 헛웃음을 치며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너 나랑 친구할래?”

“………아니.”

“헐~ 야, 너 목소리 왜 그래. 방송 보니깐 완전 꾀꼬리더만. 변성기냐?”

“아니, 하도 손가락 넣고 토해내서 병신 됐어.”

“히야, 너 완전 성깔 장난 아니구나. 아주 말하는 데 싹수가 보인다. 키키키. 그런데 너 나 따라했지. 그거 왜 그런 거야?”

“……그냥. 네가 빛나 보여서.”

자신의 말에 리나는 황당하는 듯 쳐다보더니만 ‘너야 말로 장난 아니게 빛나잖아.’라 했다.

“내가 너 처음 보고 완전 깜짝 놀랐다니깐. 막 천사가 걸어 다니는데 내가 세상에서 본 생명체 중 제일 예쁜 거야. 아니, 넌 무생물까지 따져도 1등.”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소녀는 ‘근데 무지 우울하고 슬프고 괴로운 표정을 지으니깐 다들 널 피하잖아. 네가 적대적인 시선으로 나한테 다가오지 말라고 하니깐, 너 예뻐서 내가 물고 빨고 하고 싶은데 차마 다가갈 수 없더라.’라며 개구리 왕눈이를 불렀다.

“개구리소년 개구리소년 네가 울면 무지개 연못에 비가 온단다. 비바람 몰아처도 이겨내고 일곱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울지 말고 일어라 피리를 불어라. 삘릴리 개굴개굴 삘릴릴리. 삘릴리 개굴개굴 삘릴릴리. 무지개 연못에 웃음꽃이 핀다. 오 예~, 원 모얼 타임.”

생각했던 것보다 리나가 멋진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아버리게 된 자신은 그녀를 버리고 가려고 했다. 그러자 소녀는 자신의 바짓단을 붙잡고 조금만 더 놀다 가라고 했다.

“너 여기 왜 왔어? 난 커밍아웃 했다가 아주 죽는 줄 알았다니깐. 아니 이 나이에 약혼을 하라고 난리잖아. 그래서 여자가 좋다니깐 정신병자라고 몰아대는데. 크크크. 완전 웃긴 거 있지?”

자신은 정상인이지만 정신병자 옆에 앉아 ‘난 거식증. 그런데 너 미쳤구나.’라고 말 상대를 해줬다. 확신히 그녀는 자신의 흥미를 끄는 존재였다. 리나는 자신에게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 데 그것들을 왜 안 먹냐고 뭐라 했다. 그건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너무 맛있는 게 많아 사는 게 괴로웠다. 소녀는 자신의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를 듣고 초코바를 건네줬다. 그래서 자신은 그걸 멀리 던져버렸다. 눈에 보이면 먹고 싶어지니 말이다.

“야, 너 이게 얼마나 힘든 게 얻은 건 줄 알아!”

외부 음식을 들이기 위해 담벼락에서 노는 언니들이랑 거래하는 걸 봐 얼마나 힘들게 얻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약 빼돌리고 얻어낸 거니 말이다. 리나는 잽싸게 초코바를 주워와 자신 앞에서 맛있게 먹었다.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난 사실 여자가 좋은 게 아니라 남자가 싫은 거야. 음~, 뭐랄까. 역시 그것보다는 털 혐오증에 가까울 라나? 바바리맨을 봤는데 다리에 털이 수북한 거 있지. 아, 젠장. 내 눈이 썩는 줄 알았다니깐. 다리고 거기기고, 아주~. 내가 그 뒤로 남자한테 정이 똑 떨어졌다는 거 아니냐. 이젠 수염도 싫어.”

“……….”

“근데 넌 역시 털이 없어서 그런지 만져도 두드러기도 안 나고, 완전 예뻐서 좋다. 딱 내 스타일이야. 우리 결혼하자.”

“………나 여자야.”

“으앗, 거짓말. 네 어디를 봐서!”

리나가 벌떡 일어나 자신의 가슴을 짚더니 아무것도 없다며 구라치지 말라 했다. 그렇게 자신이 싫으냐며 화내는데, 믿기 싫으면 믿지 말라는 말에 ‘그럼 너 왜 방송에서 남자라고 나와?’라고 물어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엄마 욕 해봤자 자기 얼굴이 침 뱉기였다.

“그래서 이제 연예인 안하는 거야?”

“…………….”

“으으~, 아깝다. 넌 진짜 반짝반짝 빛나는데. 너 같은 애가 연예인 안하면 누가 하냐?”

“뭐 그건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왠지 리나랑 있으니 자신이 뻔뻔해지는 느낌이었지만, 그녀는 별 신경 안 쓰는 듯싶었다.

“너 이거 비밀이지? 그럼 내가 죽을 때까지 이 비밀 지켜줄게. 나랑 내기할래?”

“무슨 내기.”

“넌 내가 빛난다고 했잖아. 그런데 난 네가 빛나는 거 같거든. 그러니깐 우리 서로 역할 바꿔서 살아보자. 난 조용하고 예민하고 공격적인 소녀가 되는 거고, 넌 싸가지. 아니 오만하고 밝은 내가 되는 거지. 어때? 재미있겠지?”

“……그래서 그 내기에서 내가 뭘 얻을 수 있는 건데.”

“초코바 줄게.”

“………….”

자신의 침묵에 리나는 손가락 한 개를 더 폈다.

“2개! 아니 3개!”

체중조절 하다가 거식증 걸린 자신을 먹을 걸로 유혹하다니 참 바보 같다 싶었다. 피식 웃으며 알겠다고 하니, 리나는 정색하며 침묵했다. 그녀가 본 자신의 모습이 그런 듯싶었다.

로이는 오랜만에 어린 시절 리나와의 만남을 떠올리다가 ‘으아아악! 송리나 이 사기꾼! 내 초코바 내놔!’라 카톡을 날렸다. 그런데 답변으로 ‘ㅋㅋㅋ 공소시효 완료임.’이란다. 거의 7년 전 주제를 느닷없이 꺼낸 건데 누가 소울 메이트 아니랄까봐 척척 알아들었다.

“로이야, 뭐 좋은 일 있어? 너 오늘따라 무지 예뻐 보여서 누나 막 설렌다.”

배신자 수정이 라면 먹고 나와 두 손을 꼭 모으고 ‘로느님, 저 좀 바라봐주셔요.’라 말해 로이는 다리를 바꿔 꼬며, 벌어진 가운을 사이로 발끝을 까닥 까닥 그녀에게 명령했다.

“초코바 사와. 지금 당장! 안 먹을 거니깐 걱정 말고.”

“넵!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진짜 구경만 할 거다. 자신은 아이돌이니 말이다. 이따가 템 촬영가서 김수혁한테 먹이며 욕구를 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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