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41화 (41/104)

00041  반하게 만들겠어  =========================================================================

로이는 내사랑로이의 팬픽을 확인했다가 글이 사라져 있어 황당했다. 아니 이놈의 작가가 요즘 게으름을 떨더니만 말도 없이 날라버렸다. 유일하게 자신을 왕 찌찌 초 수퍼 미녀로 그려주는 작가라 아쉬움에 침대를 대굴대굴 굴러다니는데 새로운 글이 베스트에 떠 클릭해봤다.

“오오~, 죽이는데?”

“뭐야, 너. 또 이상한 거 보는 거지. 그거 이리 내.”

주안이 없어 자신의 집에서 대신 걸레질을 하던 수정이 다가와 폰을 빼앗으려 들었다.

“팬픽 보고 있거든.”

“내놔! 너 주안이한테 이를 거야.”

“이거 왜이래 김여사. 내 나이에 이 정도는 충분히 읽어도 돼. 김게이에게 물어봐. 언제부터 야동 봤나. 내가 확신하는데 그 인간은 분명 초글링때 봤어. 늦어도 중글링인데 구라 잘 치는 인간이라 고딩때 봤다고 해주지.”

“……아니거든! 우리 주안이 대학 가서 봤어.”

누나는 대답하면서도 목소리가 기어들어가 자신감 없이 바닥을 노려봤다. 그러자 로이가 자신의 휴대폰을 빼앗아 동생에게 카톡을 날려버렸다.

『너 야동 언제부터 봤어?』

『왜. 누나도 보게?』

『응. 나 요즘 밤이 너무 외로워. 근데 너 몇 살 때부터 봤냐고.』

『게이물, 자매물, SM, 아님 정상?』

야설 소녀는 야동 사장의 물음에 이 인간이 어지간히도 많이 에로물을 본 밤의 황제구나 싶었다. 어쩌면 민호가 쓰러진 것도 주안이랑 AV따라 하다가 몸살 난 건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런데 무슨 병원에 2주나 있겠다는지 모르겠다. 이거 분명 건강 검진한다고 구라치고 둘이 호텔방에서 뒹구는 게 틀림없었다.

『닥치고 내가 묻는 말에 답해!』

『13살.』

로이는 주안에게 답이 오자마자 수정에게 내밀었다.

“봤지?

수정은 자신인 척 밤이 외롭다는 로이의 대화문을 보고 그녀의 등판에 스매시를 날렸다. 동생이 지금 자신한테 영상 하나를 보내는데 ‘꿀 재미 보삼.’이라는 글귀가 너무 무서웠다. 그거 보고 자신이 로이를 미친 듯이 때리자 그녀가 ‘같이 김주안 취향 어떤지 감상할까?’라며 미친 소리를 해 ‘너 미성년자야!’라 했다가 네 동생은 초글링때 보았노라, 하는 로느님의 말씀이 있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수정은 소속사 스타의 폰을 빼앗았다. 자신은 이사장이니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헐~, 누나 지금 미쳤구나. 내가 또 납치 당해봐야 정신 차라지?”

스타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하아~ 이 섹시한 날 모두가 소유하고 싶어 안달이 났어.’라며 잠옷을 끌어올리는데 자신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가고, 로이가 여자라는 걸 알면서도 ‘오빠, 조금만! 조금만 더!’하며 두 손 불끈 쥐고 그 앞으로 다가가 잘록하다 못해 뼈밖에 없는 개미허리를 노려보는데, 왠지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드니 자신의 아이돌이 ‘누나 많이 고팠구나?’라며 자기 팬픽 읽으란다. 사실 하나도 안 궁금하고, 안 궁하고, 전혀 보고 싶지 않은데 보호자로서 이 어린 소녀를 보호하고자 확인 차 읽어보기로 했다.

수정은 스크롤을 올려 로이가 왜 이렇게 팬픽을 읽어대나 싶어 소설의 처음으로 되돌아가 그것을 읽어 내렸다. 그리고 점점 벌어지는 입을 막지 못한 채 ‘얘 미친 거 아니야!’라며 당장 성희롱 및 명예훼손죄로 신고해야 된다고 난리를 쳤다가 정작 팬픽의 주인공에게 바보냐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 스타가 팬픽 쓴 팬을 고소해. 키키키. 물론 사실인양 떠들면 문제 되겠지만 이건 팬픽이라 써놓고, ‘현실과 허구를 구별 못하는 얼간이는 죽어.’라잖아.”

“아니, 그럼 이렇게 당하고만 있어.”

“나 당한 거 없는데? 오히려 좋구만 뭘.”

수정은 팬픽에서 자신이 막 뒹구는 걸 보고도 그런 말을 하는 로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다시 폰을 가져가 뒤적거려댔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싶어 보지 말라고 매트리스를 탕탕 쳐대니 로이가 나지막하게 ‘닥쳐. 시끄러워서 공부 안 돼.’라는 황당한 소리를 했다.

“야! 야설 보는 게 뭐가 공부야! 내가 진짜 네 팬카페 날려버릴 거야.”

“흐음~, 글쎄. 김여사. 할 수 있겠어? 내가 보기에 여기 팬클럽 회장님이 돈이 짱 많아 보이는데?”

그러면서 로이가 스마트폰 액정을 보여주며 이거 보면서 뭐 느끼는 없어, 라 물었다.

“………글쎄. 너 팬 많다는 거?”

“뭐 그것도 정답이기는 하지만 이 카페가 말이 카페지 웬만한 포털 사이트 웹디자인 급이야. 아예 사이트 하나 차려도 될 정도로 수준이 높다고. 쫌 괜찮은 쇼핑몰 만드는데 천만 원인데 여기에 비교하면 그건 완전 허접한 수준이지. 뭐 느껴지는 거 없어? 누나는 이런 거 봤나? 지금 한 사이트가 단 하나의 스타를 광고해주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이 팬 카페가 나에게 주는 천문학적인 이익이 계산이 돼?

그런데 지 돈 퍼부어가며 나 광고해주면서 비영리로 운영되고 있어. 찾아가서 아주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야. 베스트 지수를 따져서 팬픽 광고 올리는 건 있어도 절대 팬카페 안에 나와 관련되지 않은 광고는 존재하지 않아. 사실 이런 야한 글 올리는 데는 가끔 성인 광고가 글인 척 올라오기도 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이 정도 규모면 웬만한 제품 광고해도 하루 수익이 몇 천씩 나오는데 그런 걸 전혀 안 해. 우리나라 최대 포털 사이트 메인 광고가 하루 1억인 거 알지? 얘네는 조금 모자란데 그래도 준프로급이야. 그런데 사업성 추구가 가능함에도 팬카페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고 있지.

소설만 있는 게 아니잖아. 내 스케줄 표랑, 단체 활동시 주의 사항을 올려 팬들 관리하고, 콘서트 후기, 사진, 영상 같은 게 더 많아. 더군다나 이 거대한 제국을 로이지기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어. 욕설 및 로이 테일러 비방글, 팬질과 상관없는 동영상과 글, 광고 등은 지속적으로 삭제가 돼. 그건 사이트 관리하는 직원이 적어도 회사 하나 차릴 만큼 많다는 뜻이고, 내 팬클럽 회장은 초대박 부자라는 걸 뜻하지. 내 생일 때마다 로이지기가 1000만 원짜리 이하로 선물 준 적 없어. 지금 내 드레스 룸에 팬클럽 회장이 준 명품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

난 적어도 그 사람은 우리 Reve의 대주주라 판단해. 팬들이 자기 좋아하는 스타 회사 주식 사는 거는 이제 일반화된 일이야. 이런데 이렇게 로이 테일러 광고를 빠방하게 해주는 사람이 아닐 것 같아?

왜, 내가 야하게 나와서 싫어? 그런데 이거 좋은 거야. 광고 무지 되고, 내 인기 장난 아니게 뜨는 거라고. 20세기와 21세기의 팬클럽 문화 차이 알아? 예전에는 팬픽 활동이 정말 대단했지. 말 그대로 아이돌은 십대들의 장이잖아. 그리고 포털 사이트의 규제는 그리 심각하지 않아 모두에게 오픈된 장소에서 19금 팬픽들이 연재되었어. 그런데 대부분 팬픽이라는 게 야해. 무지 야하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 아이돌은 다 게이라 자기 멤버들이랑 붙어먹고, 여자 아이돌은 여자끼리 붙어먹고, 아님 남자 주인공 하나 있으면 걔한테 미쳐서 다들 한 놈 가지고 뒹구는 게 다반사야. 그걸 예전 십대 팬들은 보면서 팬질했고, 그들끼리 교류하며 소사이어티를 형성해 스타와 팬이 아니라 팬과 팬이라는 결속력이 생겼었지.

지금은 검열이 강화돼 회원수가 30만이나 되는 팬카페에서도 팬픽의 조회수는 많으면 100정도, 추천은 5를 넘기기 힘들지. 예전만큼 그들의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아. 그래서 팬덤의 수는 많지만 스타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졌어. 왜 그런 거 같아? 그때에 비해 아이돌이 너무 많아졌다고? 아니, 그건 감정 이입을 할 수 없기 때문이야. 단물 다 빠진 연예인이 마지막에 에로 영화 찍는 건 효과빨 있지만 그 인기 별로 안가. 바로 사라져버리지. 왜냐. 내가 좋아하기에 저 스타는 너무 더럽거든. 그런데 팬픽은 달라. 일단 허구라는 걸 기본으로 깔고 가고 스타는 모르는 우리들만의 은밀한 이야기라 그 속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굴려먹어도 내 아이돌은 깨끗해. 거기다가 지속적인 팬픽의 독자는 일종의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 같은 효과를 내. 드라마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이 진짜인양 기를 쓰고 여주 괴롭히지 말라 항의하고, 욕하고, 배우 만나면 그 배역처럼 대잖아. 그것처럼 소설 속 로이랑 현실의 로이는 다르지만, 최근 강세인 로수 커플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화두가 될 정도로 그들은 그 속에 푹 빠져버려 김수혁과 내가 커플인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긁어모으며 열광하고 있지.

이걸 영리한 아이돌 1세대는 마케팅 전략으로 이용해 인기를 키웠어. 적어도 1.5세대까지는 그랬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남자 아이돌 그룹 중 최장수인 에볼루션이야. 그 형들 이제 다들 서른인데 활동하는 거 보면 진짜 대단하지 않아? 근데 그렇게 오랜 시간 팬들의 충성도가 지속될 수 있었던 건 팬픽이 있었기 때문이야. 팬들은 자기 소설, 혹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 속에서 완벽한 성적 판타지로 표현되던 스타를 못 잊게 되어있어. 그건 그들에게 마치 첫경험을 나눈 연인과 같거든.

에볼루션은 무대 리허설과 콘서트에서 팬픽에서 대세로 꼽힌 커플끼리 자주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 물을 먹여줬지. 이동 중일 때는 꼭 둘이서 다니고, 라디오로 ‘저희도 팬픽 읽어봤는데 잘 쓰시는 분들 많더라고요. 그런데 뭐랄까. 하하하. 완전 다른 사람인데 그래도 저희 이름 나와서 너무 쑥스러워요. 여러분 자제해주세요.’라 말하는데 그거 읽고도 역겹다는 소리는 절대 안 해. 우리는 게이는 아니지만 너희 취향을 존중한다, 뭐 그 정도로 끝내지. 그러면서 행동거지는 팬들 헷갈리게 애매모호한 떡밥으로 팬질에 불을 붙이고, 상상력에 힘을 불어넣지.

그 형들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거 팬들도 아는데 다들 금방 화해할 거라고 믿어. 에볼루션이 오죽 잘 싸워. 그러니 소문 쫙 깔리는데 자기들 방송 나오면 우리는 그렇게 싸우고 풀어서 다른 그룹 보다 더 끈끈한 팀워크를 가진 거 같아요, 라잖아. 그러면 팬들은 그 말 진짜라고 믿어. 아니, 그 말이 아니라 그전에 보여준 그들의 환상을 믿는 거지. 실제로 그 형들 이제 미운 정도 많이 붙어서 잘 안 싸우고, 세상풍파 다 겪고 난 뒤 정신 차려 서로가 다른 것도 이해하는 사이가 됐어. 지금은 우리밖에 없다며 의지하고 지내니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이 아니게 되었고.

팬픽과 스타는 악어새와 악어의 관계야. 섹시 어필은 이미 우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생존수단이고. 그런데 들입다 헐벗고 나서면 평가절하 받고 스타의 생명성은 짧아지는데 그걸 팬들이 대신해주는 거잖아. 보다 안전한 방법으로. 난 야한 거 안 찍고 리스크를 안 떠안아도 팬들이 알아서 그 효과를 뽑아주니 오죽 좋아.

물론 팬픽 중에서도 순수한 내용도 있어. 하지만 일단 팬픽하면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붕가붕가하는 거 나올 거는 게 아직까지 일반적인 인식이야. 우리나라 최고의 여자 아이돌 걸프린세스도 팬들은 완전 국민 창녀로 써먹고 있는데 자기 스타가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무지 좋아서 그러는 거지. 이건 인간의 본성이라 어쩔 수 없어. 원시인들은 글을 배우기도 전에 남녀 붙어먹는 걸 벽에다 그렸고, 사람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 외치는 걸 좋아하는 부류라 자기 마음속에서 스타랑 붙어먹는 걸 상상만으로 끝내기에는 그들은 너무 욕구불만이야. 실제로 나랑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럼 그걸 다른 동지들이랑 읽으며 그들의 반응을 통해 나에게서 얻을 수 있는 쾌감을 대신해야 해.

누나는 유글링이라 모르 텐데 내 전체연령 팬카페랑 로이 제국의 회원수는 대략 20배차이야. 거기다 다들 성인 인증 받고 들어온 회원이라 나에게 돈이 되는 건 이들이지. 어린 아이 코 묻은 돈 공갈해봐야 뭐 좋을 게 있겠어. 학생들끼리 돈 모아 선물 보내면 돌려보내고, 로이 제국에서 보내는 명품은 다들 밥 먹고 사는 인간들이 돈이 남아돌아 조공하는 거니 받아도 되는 거지. 난 내 돈 주고 명품 사는 거 더럽게 아까워서 싫어. 대가리에 총 받은 것도 아니고 왜 지갑 하나에 300만원 주고 사.

내가 왜 얘네들이 좋은지 알아? 적정선을 지켜. 공지를 봐. 사랑하는 로느님을 상대로 일수다공은 글 삭제. 텍본 돌리기와 로이제국 이외에서 다른 이들과 소설 공유는 실질적인 보복 있음. 로느님께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쓴 자에게는 제국의 간부들이 진짜로 밟으러 감. 안티가 기어오면 작살내버리겠음. 뭐 이게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불명예의 전당에 몇몇의 이름이 기제가 되었는데 철저하게 사이버 테러를 당한 자들이 본보기로 있어.

이들은 그저 평범한 팬카페가 아니야. 세력이 장난이 아니라고. 내가 왜 이렇게 장기돌이 된 것 같아? 그게 다~~ 팬픽을 보고 팬들의 욕망을 읽어내 활동을 해서 그런 거지. 우리 아기, 이제 알겠어요? 사람들은 짱 야한 거 좋아하는 늑대들이라는 거. 우쭈쭈.”

수정은 자신의 엉덩이를 토닥이는 로이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너 대빵 무서운 아이였구나.’라 중얼거렸다. 무슨 아이돌 팬의 심리를 연구하는 학자 마냥 진짜 팬픽 보고 공부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자 세기의 아이돌이 아침이라 떡진 금발을 쓸어 올리며 상큼하게 웃어보였다.

“왜, 반해버리겠어?”

“………그런데 그 흐드러지다의 다음 편은 언제 나오는 거야. 그건 도저히 너로 볼 수가 없어 감정이입이 잘 된다.”

“키키키. 열심히 추천과 댓글을 올려봐. 그럼 나오나니! 팬픽 덕후는 사랑에 목마른 자들이로다.”

로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문까지 걷다가 뒤 돌아봤다. 그리고 그녀가 ‘아아앙, 로이 꽃을 따먹을 테야?’라며 교태로운 몸짓으로 새끼손가락을 살짝 깨물어 수정을 모른 척 폰을 확인했다. 이 로이가 그 로이가 아님을 내 어찌 모르리오. 그저 재미난 소설에 거지같은 아이돌 이름이 튀어나온 것뿐인데. 수정은 로이가 씻으러 가나자 주안이 자신에게 보내준 동영상을 슬쩍 확인해봤다. 요 녀석!!! 끝내주게 예쁜 금발 머리 사파이어가 취향이라니. 하여간 이거 딱 로이였다. 저 로이 말고 팬픽용 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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