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0 반하게 만들겠어 =========================================================================
수혁은 아침 일찍 로이 테일러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하고,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 승냥이들 검열을 한 다음 오랜만에 팬픽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얼마 전 그녀가 수혁룡이라는 아이디로 팬카페에 들어온 적 있어 자신의 유일한 욕구분출구인 내사랑로이를 더 이상 써먹을 수 없었다. 자신의 정체를 모르지만 그 어마어마한 야설을 우리 천사가 읽게 되는 건 안 되니 말이다. 그래서 글을 삭제 후 아이디를 ‘로수최고.’로 바꿨는데 그러고 나니 뭔가 뿌듯하고 로이와도 더 잘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새로 구상해 놓은 스토리는 꽃가게 처녀 로이와 자신의 야설 로맨스로, 자신은 손님여서 그곳에 꽃 따러 가는 이야기였다.
으아~, 설정 차체가 기가 막히게 좋다.
톱스타에서 소설가로 변모한 로수최고는 ‘흐드러지다.’를 적어나갔다. 누가 자신을 일본인으로 알겠는가. 이렇게 토종 한국인 보다 더 글을 잘 쓰는 자신을 두고 말이다. 정말 야설로 자신이 한국어를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타자를 빠르게 누르며 이제 일본 키보드 보다 익숙한 자판을 눌렀다.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회사를 출근하는 길이었다. 신호등을 건너기 위해서 우연치 않게 새로 생긴 꽃집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신호등이 켜진 것도 모르고 아름다운 꽃집 주인이 꽃을 다듬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짝사랑은 시작되고 만 것이다.
로이는 정말 천사와 창녀 사이를 오가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마치 꽃이 아닌 자신을 팔듯 그 어떠한 장미 보다 농염하고, 백합 보다 순결하며, 물망초 보다 사랑스럽게 꽃다발을 끌어안고 자신을 찾아오는 사내들에게 웃음을 팔았다.
그녀의 금발머리는 결코 염색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특별한 색이었고, 아카시아 꿀을 길게 뽑아낸 것처럼 달콤했다. 목련처럼 부드럽고 하얀 허벅지는 언제나 자신을 만져달라는 듯 로이가 의자에 앉을 때마다 짧은 치마 사이로 속살을 보였다. 자신이 가게에 들어가면 그녀는 살짝 다리를 벌리고 의도하지 않은 듯 그곳을 내보이며 ‘오늘은 뭘 사시러 오셨나요?’라 물었다. 속옷을 착용하지 않아 얇은 티셔츠 위로 도드라진 젖꼭지를 빨아먹고 싶게 말이다.
사뿐 사뿐 자신의 앞에서 걸을 때마다 엉덩이는 자신에게 박아달라는 듯 흔들렸다. 정말 잔망스러운 여인이었다. 오늘은 붉은 꽃을 사고 싶다는 자신의 말에 그녀는 ‘흐음~, 장미랑 백일홍, 아마릴리스, 팬지, 거베라, 튤립, 로이가 있는데 뭘 사시겠어요?’라며 카운터 위에 앉으며 슬쩍 제 치마를 들추어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내에게도 이럴까 싶어 화가 났다. 어째서 이렇게 쉽게 몸을 굴리나 싶어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가게 셔터를 내리고 안에서 문을 잠갔다. 로이는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자신의 치부를 훤히 보인 채 줄기를 다듬고 있던 백합의 꽃봉오리를 똑 따서 자신의 그곳에 꽂았다.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티셔츠를 벗어던지고 제 젖가슴을 이름도 모르는 남자 앞에 드러냈다. 분홍색 베고니아 보다 색이 더 고운 로이의 꽃판에 꽃 수술 마냥 붉은 유두가 자신을 꼬집는 사내의 손가락에서의해 모양이 뭉그러졌다.
“아아앙~.”
그녀의 간드러진 콧소리가 로이라는 꽃으로 벌이 날아가고 있노라 자신에게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자신이 그녀의 질부에 손을 넣자 꽃을 빨아먹고 있던 그녀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꽃물을 흘려냈다.
“어째서 날 유혹하는 거지?”
자신의 물음에 그녀는 붉은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축이더니, ‘꽃이 벌을 유혹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당신, 내 꿀을 빨아보겠어?’라며 완전히 치마를 벗어던졌다. 자신은 로이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얼른 바지를 내리고 자신의 것을 그녀에게 삽입해버렸다. 하얀 유방이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크게 흔들렸고, 자신은 그 말캉한 여인의 살덩이를 입에 한 가득 넣고 빨았다. 자신의 페니스를 오밀조밀한 붉은 봉우리로 품어낸 금빛 꽃은 벌의 춤사위에 흐드러지며 달콤한 향을 내뿜었다.
“아흐응~, 빨리 싸버려.”
그녀가 자신의 성기를 꽉 졸라내며 사정을 유도시켰다. 하지만 자신은 이 음탕한 여인을 벌주기 위해 밑구멍이 헤져버릴 만치 피스톤질을 할뿐, 꽃에게 물을 주지 않았다.
“말해. 나 말고 다른 놈한테도 이랬나?”
“아아앗, 아니. 아니야.”
“웃기지마. 네가 처녀라고? 그럼 이 음란한 행동거지는 뭐지? 이름도 모른 손님한테 말이야.”
그런데 진짜 로이의 꽃에서 처녀혈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얀 허벅지를 흘러내리는 붉은 핏줄기가 바닥으로 똑 떨어졌다. 놀란 자신이 성기를 빼내자 로이는 다리를 모으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스스로를 소개하길, 성인식을 치루고 인간 세계에 나온 화인인데 적어도 일주일 간격으로 자신에게 물을 주지 않으면 말라 죽는다고 했다. 그럼 그 전에는 어떻게 지냈냐 물으니 화국(化國)의 여인들은 서로에게 물을 준다며 그녀는 몸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자신의 짝꿍은 리나라는 아주 거친 엉겅퀴였는데, 성격이 나빠서 너무 힘들었단다. 로이가 ‘네 벌침이 내 꽃잎에 내려앉으니깐 그녀와 하던 것보다 훨씬 좋아.’라며 자신에게 안겨왔다. 그러니깐 꽃처럼 아름다운 꽃집 아가씨가 진짜 꽃이었던 거다.』
수혁은 ‘흐드러지다.’를 마지막 구절을 쓰며 ‘송리나, 로이는 결국 널 버리게 되어있어!’라 외쳤다. 유치하기는 하지만 눈에 뵈는 게 없던 질풍노도의 학창시절로 돌아가 각목으로 리나의 대가리를 깨놓으면 로이가 슬퍼할 거라는 걸 아니 이렇게 팬팩으로 참아내는 거였다. 사랑이라는 건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안 하는 거였다. 아무리 좋아하는 행동을 많이 해도 결국 그 한 번의 실수로 기존에 한 수많은 공들을 망치는 거라, 어머니는 항상 외가로 자신에게 갈 때 그리 말했다.
그는 짧지만 강렬한 글 쪼가리를 팬카페에 올리고 템페스트의 촬영을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톱스타지만 다른 연예인들처럼 바쁜 스케줄은 아니었다. 그저 로이와 한 공간에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라 그녀와 같이 하는 작품이 아니면 죄다 거절을 하고 있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최근에 찍은 영화 푸른 소타나처럼 로이가 좋아하는 만화나 소설을 영화화한 건 반드시 자신이 남자주인공을 맡았다. CF를 찍는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내 스타가 했던 걸 조금이라도 공유하고 싶고, 그녀의 일부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이런 자신의 행동이 들키며 분명 극성스러운 승냥이들 때문에 사생팬을 싫어하는 로이가 자신을 경멸할까, 본의 아니게 그녀를 속이고 있어 마음이 답답했다. 하지만 자신의 팬질이야 아버지가 자식을 버리게 할 정도인데 그 깊고 강렬한 사랑을 한순간에 멈출 수 있을리 없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과 결혼해 아이 셋 정도 낳아 도망 못 가게 되면 (일본에서 ‘선녀와 나무꾼.’은 ‘우의전설.’이라 불린다.) 자신도 안심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일본에서 흑룡회를 다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수혁은 드레스 룸에서 옷차림새를 확인하며 금세 머리카락이 까까머리 정도로 자라난 걸 보고 과연 야한 생각을 많이 하면 빠르게 자란다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싶었다. 그럼 상철에게 포르노를 던져주고 어서 머리카락을 기르라고 해야겠다. 하여간 우리 로이는 취향도 참 독특해서 대머리가 취향이라니. 흑룡회 신입들 보고 혹시 반하는 거 아닌가 걱정됐다. 머리 길이로 조직의 위계질서를 확고히 나누는 곳이라 대부분 대머리로 이뤄져 있었다.
“하아~, 남들은 다 잘생겼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지?”
자신이 자뻑하려는 게 아니라 이 정도 얼굴과 몸매, 집안이면 완벽한 신랑감이었다. 아버지를 닮아 변태 같은 구석이 있어서 그렇지, 어머니에게 그가 노예처럼 비굴해지듯 자신도 아주 말을 잘 들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자신에게 연애 경험이 없어 곧 로이에게 멋진 데이트 신청을 해야 하는데 자신이 아는 거라고는 드라마 속에서 매번 재벌 2세로서 위기의 순간 멋진 외제차 타고 나타나 여주인공을 구해주는 거라든지, 분위기 좋은 고급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 단 둘이서 식사를 하다가 남자주인공이 피아노 치며 고백하는 식의 방법밖에 몰랐다. 그런데 왠지 그걸 현실에서 따라하면 로이가 자신에게 ‘실장님~.’이라 외칠 것 같으니 차라리 처음 사귀기로 한 날 그녀가 올 수 없었던 게 다행인지 몰랐다.
상민이 드레스룸으로 들어와 식사 준비를 다했다고 했다. 로이가 여자랑 사귄다는 말을 듣고 식욕이 전혀 없었지만, 냉장고 앞에 붙여놓은 금발머리 천사가 자신에게 환히 웃어주고 있으니 그거라도 보며 꺼끌꺼끌한 입으로 밥을 집어넣었다.
“도련님, 저희가 확 갔다가 그 리나 뭐시기를 해치워 버리겠습니다. 말없이 저희만 움직이면 아가씨도 그저 단순한 사고인 줄 아실 겁니다.”
정말 혹하는 제안이었다. 어떻게 없앨 것이라 물으니, 배때기를 갈라 창자로 목을 감아 죽여 버리겠단다. 차라리 교통사고가 자연스러울 듯한데 그럼 자신의 조직원들이 다치니 연쇄살인마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싶었다.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다 싶어 한숨을 쉬자, 철구가 일본에서 연애잡지를 가져왔다고 해 그걸 둘둘 말고 머리를 때려줬다. 지금 십대 여자아이들이나 읽는 걸 보고 자신더러 뭘 어쩌란 말인가.
아………. 그런데 로이가 십대였다. 그 나이 또래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겠다 싶어 얼른 살펴보니 어떻게 하면 귀여운 머리 모양을 만들 수 있는지와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 요일별 옷 코디하는 법, 화장법, 별자리 운세, 행운의 아이템 등등등이 있었다.
“죽어. 죽으라고!”
자신은 결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상철과 상민, 철구는 매는 버는 머저리들이었다. 그러다 수혁은 괜한 이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싶어 후회했다. 결코 아버지 같은 존재가 안 되려 했는데 이건 완전 어머니가 외가로 돌아가면 지랄하는 그와 똑 닮아있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맞아놓고도 도련님이 늠름해져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며 좋아하는 흑룡의 부하들을 보고 있고 있으려니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가, 이대로 계속 성질 더러워져 보스가 되어달라는 말에 조용히 손을 내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상철씨, 상민씨, 철구씨. 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식사하시죠.”
톱스타는 젓가락을 들어 김치를 집고 김치냉장고 CF라도 찍듯 상큼한 미소로 한입 베어 물었다. 국은 다시다 광고에서 국물을 마시듯 시원한 표정으로 후루룩 들이키고, ‘우리 한돈 먹읍시다.’라 말하듯 믿음이 가는 이미지로 제육볶음을 집어먹었다. 쓸데없이 멋있게 식사하는 도련님을 보며 조폭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노처녀 히스테리 보다 무섭다는 노총각 히스테리 때문에 죽겠다. 빨리 장가나 가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