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36화 (36/104)

00036  아이돌은 괴로워  =========================================================================

예능프로 촬영 전 잠깐 짬을 내서 잡지 인터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로이는 방송국 근처 카페에서 기자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놓은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문을 열고 나오는 걸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와 슈트 차림이 평소에 흔히 보던 연예부 기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문을 주시하며 앉아 있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은 이 남자가 오늘 만나기로 한 기자일 거라 싶었다. 이런 자리 배치는 인터뷰 도중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 때문에 스타의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그들이 하는 암묵적인 매너이니 말이다. 자신을 위해 구석진 자리를 예약해둔 남자는 마치 선을 보는 듯한 긴장감을 줬다.

“안녕하십니까. 로이 테일러님 맞으십니까.”

“예. 맞습니다.”

아무래도 이 남자는 그 기자가 아닌 모양이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스타를 만나서 이런 식으로 인사하면 인터뷰 거절당한다. 공손하기는 한데 자신을 모르는 듯 구는 건 잘나가는 연예인에게 ‘널 모두가 알 거라 착각하지 마.’라 찬물 끼얹는 기분 나쁜 짓이었다.

자리에 앉아 시킨 지 얼마 안 된 듯 훈기를 내뿜는 커피 한 모금을 마셔봤다. 그런데 그는 뭐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들어오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바라봤다. 뭔가 싶어 검은 정장을 입은 이에게 뭐하는 분이냐 물으니, 그가 자신의 임무는 로이님을 보호하는 일이라 했다. 주안이 자기 없다고 걱정이 돼 보디가드라도 보낸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놈의 기자가 감히 슈퍼 스타를 기다리게 하다니, 편집장한테 죽으려고 환장한 모양이었다. 하긴 자신이 30분 일찍 왔다. 그런데 보통 자신을 인터뷰하려는 기자들은 이 정도는 기본으로 미리 와 있었다. 문자로 ‘5분 안에 안 오시면 촬영이 있어서 그만 가보겠습니다.’라고 보내니 바로 전화가 왔다.

“로이씨, 제가 지금 카페 앞인데 못 들어가고 있어요.”

무슨 변명을 해도 그따위로 하나 싶어 ‘개구라 치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그랬다가는 김사장이 알고 지랄할 것 같아 정중하게 ‘제가 지금 카페인데 최 기자님이 보이지 않습니다.’라 하니 이상한 검정 정장들이 안에 못 들어가게 가로 막고 있단다. 혹시나 해 카페 문을 열고 나와 보자 딱 봐도 성깔 더러워 보이는 여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일단 깔끔한 차림이기는 한데 왠지 모르게 피곤에 찌들어 보이는 걸 봐서는 오늘 자신이랑 인터뷰하기로 한 기자가 맞았다. 그런데 사채를 빌렸는지 조폭들한테 붙잡혀 있었다.

“저 정말 로이씨랑 만나기로 했다니깐요!”

그녀의 외침에 검은 사내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그렇습니까?’라 물었다. 이 사람들도 주안이 보낸 모양이었다. 자신이 돼지 안경한테 납치를 당하고 상당히 불안해하는 것 같더니만, 이러면 자신은 Reve가 짱 싫어진다. 이 기획사가 다른 거는 몰라도 사생활 보호라 쓰고, 방치라고 읽는 시스템 때문에 있는 거니 말이다.

“최민 기자님 맞으신가요?”

“예. 로이씨!”

자신의 부름에 그녀가 반색을 하며 ‘맞잖아요.’라 앙칼지게 남자들을 뿌리쳤다. 전화 목소리로는 남자인 줄 알았는데 그저 담배 많이 피워서 걸걸해진 모양이었다. 아님 선천적으로 목소리가 허스키하다는 건데, 저 정도 듣기 좋은 바리톤이라면 가수해도 괜찮겠다 싶었다가 손바닥을 탁 쳤다.

“그대 내 사랑 모르죠! 최민!”

아아, 기억났다. 최민의 데뷔곡인 ‘그대 내 사랑 모르죠.’가 한 5년 전쯤에 한창 인기가 있었다. 거의 앨범 출시와 동시에 일어난 가요계의 샛별이었는데, 방송 나오고 팬들이 남자인줄 알았던 자신의 가수가 그냥 평범하게 생긴 여자라는 걸 알자 그날부터 내리막길을 달리다가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그때 자신의 나이가 14살이라 한창 물 오른 미모와 맑고 청명한 천상의 목소리로 라디오 순위 프로그램에서 24주간 동안 1등 하고, TV 순위 프로그램에서는 10주간 1등을 하면서 너무 로이 테일러만 해먹는다며 1위 횟수 제한이 생겨났던 시기인지라 다른 가수들이 밥통 되긴 했지만, 자신이 유일하게 ‘어라? 노래 좀 하네?’라며 눈여겨봤던 음반 판매 2등 가수가 바로 최민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악수를 청했다. 손을 꾹 잡으며 어떻게 지냈냐 물으니 연예계 생활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 기자가 되었단다.

“헤에~ 그럼 누나 아직 가수할 생각이 있구나.”

로이는 그러면 다음 앨범에 누나가 피처링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민이 깜짝 놀라 정말이냐고 물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사라지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는가. 그녀가 자신의 손을 꼭 잡고 고맙다며 인사를 해대는 데 우선 인터뷰나 빨리 하자고 했다. 다음 스케줄에 늦으면 안 되니 말이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햇볕 잘 드는 창가에 걸터앉아 포즈도 취하고, 테이블에 앉은 채 커피 마시며 책 읽는 척도 하고, 먹지도 않을 거면서 도너츠 물고 웃는 모습도 연출하면서 센티멘털하고 인텔리하며 큐티한 로이 테일러의 매력을 잔뜩 발산하며 사진을 후다닥 찍었다. 그리고 민에게 한곡만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녀는 쑥스러운 듯 뒷목을 긁적이더니 자신의 루시퍼를 발라드 버전으로 불렀다.

“숨길 수 없는~ 너의 매력적인 포이즌. 혈관을 타고 들다 시작된 나의 변신~. 이제 넌 끝이야~. 오늘 밤 너는 나의 노예~. 이제 즐겨볼까 너와 나의 매직 나이트.”

음……, 일단 발성이 엉망이었다. 오랫동안 쉬어서 그런지 감을 살짝 잃은 것 같았다. 뭐랄까. ‘그대 내 사랑 모르죠.’에서 사람을 끌어들이던 매력이 사라졌다고 할까나? 일단 장르가 확 바뀌었으니 발라드로 부는 그녀만의 색이 느껴져야 하는 데 이건 그저 자신의 짝퉁이었다. 괜히 피처링 해달라고 했나 후회스러웠다. 만약 최민이 진짜 가수가 될 만한 실력이었다면 5녀 사이에 재기를 했을 텐데, 못한 걸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였다.

그냥 계속 기자로 있는 게 더 나을 듯싶었다. 괜한 자신의 설레발로 기대심만 키워버린 것 같아 미안했다. 뭐 목소리는 좋으니 죽어라 연습 시키면 한 마디 정도는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다음 싱글 앨범 낼 때 녹음실로 불러야지 싶기는 하지만 굳이 함께 노래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그냥 다른 잘나가는 아이돌들이랑 뭉치는 게 더 이슈가 되니 말이다.

자신이 피처링 부탁했다고 다시 가수가 된 것 마냥 기뻐해서 쫌 찔렸다. 얼른 인터뷰 시작하자고 재촉하니 민이 테이블로 녹음기를 올렸다.

“인터뷰 내용을 녹취하겠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예.”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최근에 루시퍼 안무가 방송 금지됐죠? 춤 안 추니깐 바로 내추럴한테 1등 빼앗겼을 때 심정 어떠셨어요?”

아우 썅! 이 쌍년이 회사로 보낸 예상 질문대로 안 물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성질 긁어내는 이 질문은 뭐란 말인가. 이거 완전히 시비 거는 거였다. 하지만 자신이 여기서 화내봤자 이로울 것 하나 없어 침착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뭔가 구린내가 나서 테이블 밑으로 폰을 만지작거려 녹음기를 재생시켰다. 하도 더러운 일이 많이 벌어지는 곳이니 나중에 문제 일어나면 써먹게 말이다. 위에 있다 보면 시기와 질투가 장난이 아니어서 어떤 걸로 발목 잡혀 밑으로 굴러 떨어질지 모르니, 조금 또 조심해야 했다. 이 여자가 뭐 때문에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녹취하겠다면서 녹음기 버튼도 안 눌렀다.

“최 기자님, 그 질문 다시 한 번만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자신의 질문에 민이 드라마 속 너무 착한 척해 재수 없는 여주공인 마냥, 그러나 ‘너 다 들었으면서 모른 척이니?’라는 듯 아주 싸가지 없게 실실거리며 ‘로이씨, 루시퍼 섹시 춤 안 추니깐 바로 내추럴한테 발렸잖아요. 기분 어때요?’라는 질문을 했다. 하지만 자신은 절대 화나지 않는 척 웃으며 ‘네가 잘나가는 건 그 잘난 몸뚱이 섹시하게 굴려서 그런 것뿐이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질문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Natural은 정말 멋진 후배들입니다. 가끔 음악 방송이 끝나고 방송국 복도에서 마주치는데 별다른 안면이 없는 저한테도 깍듯이 인사하는 바른 인성을 가지고 있더군요. 무대에서는 멋진 퍼포먼스로 보기가 드문 아이돌이죠. 특히 힘든 아크로바틱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건 그들이 아무리 후배라 할지라도 저도 본받고 싶은 점입니다. 그런 훌륭한 후배와 좋은 경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기뻤고, 제가 상을 받지 못했다는 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선배로서도 굉장히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래요. 최근에 소속사 사장, 같이 드라마 촬영 중인 김수혁씨랑 연애설 났었죠? 제가 보기에는 그리 루머 같지만 않던데 로이씨는 참 대단해요?”

‘너 잘나가는 거 소속사 사장이랑 붙어먹어서 그런 거지?’라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 반대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 무너져가던 구멍가게를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 기회사로 만든 게 바로 자신이었다. 로이 테일러를 너무 우습게 알았다. 자신은 전설의 아이돌인데 말이다. 스타는 다리를 꼬며 턱을 치켜든 채 최 기자를 거만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정중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저희 사장님 게이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닌 스타일리스트랑 사귀고 있습니다. 수혁씨는 그저 친한 형인데 팬들이 저랑 얽어서 로수 커플이라며 좋아하더라고요. 뭐 저희는 그런 반응이 재미있어서 그냥 웃어넘기고 있습니다.”

여기자의 표정이 안 좋았다. 마치 나는 네 비밀을 다 알고 있어, 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입꼬리가 내려가 심술 맞은 불독같아 보였다. 로이는 얘 정체가 뭘까 싶어 의자 등받이에 허리를 깊게 파묻고 더 이상 인터뷰에 관심 없는 듯한 포즈로 그녀를 바라봤다. 어떻게든 이 바닥에 다시 돌아오고 싶어 기자나 하고 있는 주제에 피처링 시켜준다는 고마운 은인한테 아주 싸가지가 없었다.

“로이씨, 지금 인터뷰 자세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소리를 버럭 지르는데 어차피 녹음기에는 음성만 녹음됨으로 자신은 아주 달콤한 목소리로 ‘최기자님, 제 인터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겁니까. 죄송합니다.’라 했다. 그러자 민이 테이블을 손으로 탁치며 일어서 ‘내가 말하는 건 그게 아니잖아. 이 싸가지야! 어린 게 잘나가니깐 눈에 뵈는 게 없지? 너 잘나가는 게 그 반반한 얼굴이랑 더럽게 굴려 먹는 몸 때문인 거 내가 모를 줄 같아? 내가 너보다 못한 게 뭐 있는데 월드스타? 개뿔. 지랄 염병 떨지 마. 너 그거 거품인 거 다 알 거든. 나랑 똑…. 아니지. 이건 나중에 써먹어야지.’라며 다시 자리에 앉는 거다.

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만 스케줄 때문에 일어나보겠습니다. 최민 기자님.’이라 마지막까지 예의를 차려 인사하고 가게를 나왔다. 그 뒤를 따라 나온 검은 정장을 입은 자신의 보드가드가 ‘로이님, 해치워버릴까요? 조용한 곳에 묻어버리겠습니다.’라며 마치 조폭 마냥 굴어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봤다. 주안에게 카톡으로 ‘나 보드가드 필요 없음.’이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 아, 이 인간 정말 짜증난다.

스타는 가게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검은 무리를 발견해 밴에서 내린 소속사 이사에게 ‘나 보드가드 필요 없어.’라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보드가드 고용 안했는데.’라는 거다. 그래서 아직 통성명도 못한 남자를 쳐다보자 그가 90도 인사를 하며 ‘로이님을 수호하기 위해 파견된 자룡부대입니다.’라는 거다. ………이 룡룡이 아저씨가 미쳤나 보다.

그녀는 얼른 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마디 해줘야겠다 싶었다. 사람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도 없이 조폭들이나 보내다니 뭔 짓이란 말인가. 그런데 뭔가 탕탕 총소리가 들리는 게 아직 그 세계에서 발 빼지 못하고 조폭 전선에서 활동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배우인 줄 알았는데 투잡이었던 것이다.

“로이, 죄송해요. 조금 시끄럽죠?”

전쟁이라도 났는지 비명소리가 엄청났다. 사이코 년들한테 하루 종일 시달린 거 화풀이 하려고 했는데 이러다 내 남친 죽는 거 아닌가 싶어 걱정됐다. 그런 생각이 들자 괜히 눈물이 나 수화기 붙자고 다치지 말라 했다. 그런 거 하지 말고 빨리 빠져나오면 안 되냐고 묻자, 그가 ‘걱정 마세요. 안 다치도록 할게요. 로이.’라는데 총알이 삐용 삐용 날아다니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사랑한다며 뽀뽀를 쪽 쪽 해대는 거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애교부리는 목소리조차 섹시한지 모르겠다. 수혁의 잘난 얼굴이 떠올라 너무 보고 싶어졌다. 이런 국보급 배우의 정수리에 흑룡이 그려졌다니, 이건 말로 안 되는 신의 농간이었다. 로이는 엉엉 울며 죽지 말라 외쳤다. 그러자 ‘야! 김수혁! 너 뒤지려고 촬영 중에 연애질이냐?’라는 삼촌 목소리가 들렸다.

로이는 뻘쭘함에 수정과 자룡부대의 눈치를 보고 ‘촬영 잘 해. 끊는다.’라며 얼른 통화를 종료했다.

“도련님을 걱정하시는 로이님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이 자룡부대는 감동했습니다. 과연 도련님이 선택하신 분답습니다.”

요즘 은근 슬쩍 자신을 안티질 하는 자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수정이 ‘아이고, 닭살이야! 커플지옥 솔로천국! 술 고픈 세상이로다.’라며 밴으로 들어가 버렸다. 로이는 쪽팔림에 얼굴을 가린 채 혹시 몰라 자룡부대에게 ‘요즘 조폭은 총 싸움 안 하나요?’라 물었는데 한국은 총기 소지가 금지되어 있다며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네요, 라는 소리나 들었다.

“정말, 정말 총으로 안 싸워요? 총 하나도 없어요?”

자신의 물음에 그들은 잠시 침묵하더니 ‘로이님, 세상에는 가끔 모르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질문에 답하면 저희 도련님께 혼납니다.’라는 거다. 이거 완전히 ‘원래는 총으로 안 싸우는데 그래도 우리는 총기 소지하고 있음.’이라 답하는 거랑 똑같았다. 왜 이렇게 후덜덜한 남자랑 자신이 정분이 났는지 모르겠다. 로이는 혹시 몰라 수혁에게 카톡으로 ‘나는 평화주의자가 좋아. 인류의 평화를 사랑하지.’라 보내니 바로 전화가 왔다.

“로이, 앞으로 유니세프 활동을 하겠습니다. 저도 인류의 평화를 사랑합니다. 과연 저희는 천생연분이군요.”

어찌나 우렁차게 외쳐대는지 귀가 아팠다. 살짝 수화기를 떼어내니 메가폰으로 ‘김수혁, 한번만 더 전화질이면 사진과 동영상 공유를 하지 않겠다.’라는 삼촌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자신 같은 초특급 섹시 금발 미녀랑 사귀기로 해놓고 감히 이상한 야동이랑 누드집을 보려들다니! 이 놈의 남자란! 울 삼촌이 연애 한번 못 해본 노총각이라 그런 빨간 것들이 참 많을 거라 예상돼 수혁에게 ‘절대 보지 마.’라 외치니, 그가 아예 대답을 안했다.

“이만 끊어야겠습니다. 로이 사랑합니다.”

아무튼 긴박하게 템페스트를 촬영하는 것 같았다. 앞좌석에 앉아있던 수정이 자신을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언제까지 그럴 것 같아? 그거 다 한때다. 분명 나중에 가면 귀찮아서 카톡 받아도 답장도 안한다.”

로이는 남 연애하는 꼴 절대 못 보는 모태 솔로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누나, 남자 소개시켜줄까?’라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난 남자 필요 없어. 그것들은 다 언젠가 변한단 말씀이야.’라며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그래? 그럼 할 수 없네. 차승주 소개 시켜줄려고 했는데. 전에 같이 광고 촬영할 때 누나 봤는데 딱 자기 스타일이라며 연락처 좀 알려 달라 했었거든. 뭐 할 수 없지. 안 된다고 해야겠다.”

스타는 어떻게 하면 김 오누이를 낚을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뛰어 노는 귀여운 먹잇감이니 말이다.

“로이야, 내가 말했던가? 사랑이란 정말 놀라운 거란다. 그건 인류의 기적이야. 차승주 폰 번호 좀 알려줘.”

“키키키키키.”

그녀는 수정의 말에 옆으로 엎어져 차 시트를 손바닥으로 쳐대며 웃었다.

“뭐야! 너 농담이었어? 아씨~, 내가 그럴 줄 알았지. 하긴 차승주가 왜 나 같은 걸 좋아하겠어.”

조수석에서 그녀가 자신을 때리기 위해 막 손을 휘두르는데 그런 짧은 팔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로이는 의자를 뒤로 제키고 등받이에 달라붙어 ‘우화화화화. 차승주가 누나 좋아하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라며 약을 올렸다. 그러자 임시 매니저가 ‘내가 상상하던 로이 테일러가 아니야.’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이사장님, 진정하세요. 제가 우리 애들한테 많이 당해봐서 아는데 저런 거에 계속 반응해주면 자꾸 말랍니다.’라는 거다. 수정이 씩씩거리며 ‘내가 반드시 차승주 꼬신다! 너 나랑 내기하자. 나중에 내가 차승주랑 사귀면 내 결혼식 비용 다 내! 하얏트 호텔에서 최고급으로 치러주마.’라는 소리를 해 알겠노라 했다.

“그럼 누나가 못 꼬시면 어쩔 거야? 하얏트 호텔에서 초호화로 결혼하려면 2억 정도 들지? 그럼 나 2억 줘. 기간 정하자. 일주일 어때? 계약서 작성해.”

“야! 그게 뭐야. 어떻게 남자 꼬시는데 일주일밖에 안줘. 한 1년이라든지.”

수정이 자신의 말에 우물쭈물하며 2년이 좋겠어, 라 했다.

“헐~ 지금 장난해? 내가 지금 내려서 아무나 붙잡고 5분 안에 여자 꼬셔볼까?”

“………넌 스타고, 난 일반인이잖아. 이건 불공평한 조건이야. 그리고 계약서는…쫌 아니라고! 엉엉. 주안아. 빨리 돌아와. 너 없으니깐 내가 로이한테 몰이당하잖아.”

그녀가 울면서 ‘난 사실 차승주 안 좋아해. 한주석이 더 좋다고.’라는 거다. 그래서 로이는 피식 웃으며 스마트 폰을 들었다.

“어, 형. 나 로인데. 울 스타일리스트가 형 싫다네. 한주석이 더 좋데.”

수정은 설마 저게 날 또 낚는 건가 싶었지만 통화 내용을 엿 들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승주씨, 아니에요. 저 승주씨 좋아해요!’라 외치자 로이가 전화기를 내렸다.

“으하하하하하. 우화하. 아이고 나 죽네. 그랬쪄요? 그렇게 차승주가 좋았쪄요?”

수정은 그런 로이를 보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반드시 차승주를 꼬셔 얘 엿 먹이고 만다.

“두고 봐 너~, 내가 한 달 안에 데려온다. 현찰이나 두둑이 준비해둬라.”

그리하여 그녀는 세기의 아이돌과 계약서를 두 번이나 작성하게 되었는데. 첫 번째는 Reve 전속 연예인이 되겠다는 거였고, 두 번째는 소속사 이사와 스타가 맺기에는 전혀 생뚱맞은 현찰 2억이 달린 사랑 내기에 관한 것이 되었다. 금발의 천사는 씨익 웃으며 밴에서 내려 영혼이 빠져 해롱거리는 수정을 보며 피식 웃었다. 원래 결혼식 정도는 자신이 해주려고 했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차승주만 수지맞았다. 이거 가만히 앉아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으니, 이 큐피트의 노고를 보답 받아야 했다. 멘붕이라 메이크업 수정을 못할 듯하니 로이는 그냥 자신의 스텝을 버리고 홀로 방송국으로 들어가 차승주에게 전화 걸었다.

“형, 누나도 형 좋데. 내가 밑밥을 잘 깔아둬서 그런 줄 알아. 내가 연애에 관심 없다는 걸 막 1시간 동안 형이 얼마나 멋진지에 대해 설명을 했지. 그러니 그렇게 인품이 좋은 남자면 한번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거야. 조만가 찾아갈 거니깐 기다려. 나중에 꼭 밥 사. 울 누나 무지 순진한 여자니깐 울리면 죽는다.”

“고맙다. 로이야. 내가 이 은혜 안 잊을게.”

그녀는 키득키득 웃으며 대기실로 향했다. 하여간 이렇게 마음이 비단결 같은 자신에게 김 오누이는 왜 그렇게 악마라 외쳐대는지 모르겠다. 딱 봐도 천사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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