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35화 (35/104)

00035  아이돌은 괴로워  =========================================================================

거머리 하수연에 버금가는 진드기 하이안이 자신의 팔에 매달려 이제 밥 먹으러 가잔다. 힘들어주겠는데 누가 그런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나 싶어 성질이 팍 났다. 얼른 그녀의 매니저를 찾아보니, 그가 안절부절 못하며 자신의 여배우를 바라보는데 왜 이렇게 스타 관리를 못 하나 한심스러웠다. 수정에게 눈짓을 보내자 ‘로이야, 서둘러. 다음 스케줄 늦었다.’라며 손목을 한번 보더니 손가락으로 열심히 쳐댔다. 시계도 없으면서 마치 있는 거 마냥 굴다니. 굿 잡~. 우리 누나 저 정도면 신인상 받을 만했다. 지금이라도 Reve 때려치우고 연예인하는 게 낫을 듯싶었다.

이안이 자신의 팔을 슬그머니 놓으며 ‘…오빠, 이안이랑 이제 사귀는 거죠?’라는데 이 여자 미쳤나 싶었다. 이런 돌아이는 이미 템페스트 찍을 때마다 만나니 충분한데 말이다. 설마 그렇게 이안이랑 키스해 놓고, 그것도 혀로 마구마구 자신의 입안을 헤집어 순결을 빼앗아놓곤 버릴 거냐며 엉엉 울어대 짜증났다. 이거 연기자라 자신이 무지 나쁜 놈, 아니 년 같았다.

스텝들이 뭔 일인가 기웃거리며 구경하더니 혀를 쯧쯧 찼다. 로이가 또 여자 하나 꼬셨군, 이라는 데 진짜 억울했다. 괜히 여기서 잘못 처신했다가는 스캔들 또 터지게 생겨서 큰 소리로 ‘이안씨, 오늘 광고 촬영 너무 즐거웠습니다. 전 이안씨의 프로 정신에 놀랐습니다. 일 때문에 한 키스였지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이렇게 들러붙은 게 하나 둘이 아니라 익숙했다.

“……알았어요. 오늘은 이만 넘어가도록 할게요.”

울고 있던 이안이 고개를 치켜들더니 ‘오빠가 겁먹으니깐, 이안이가 봐줄게.’란다. ……아, 젠장. 내 팬들은 왜 이렇게 무섭나 싶다. 지금 자라나는 승냥이들이라도 더욱 혹독히 다뤄 제 2의 하수연과 하이안을 탄생시키면 안 될 것 같았다. 뒤돌아서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한번 휙 휘날린 여배우가 ‘나는 더 이상 철없는 소녀가 아니에요. 오빠만 좋다면 저도 좋아요. 어젯밤 침대에 누워 우리의 첫만남을 떠올렸어요. 당신은 참 예뻤죠, 그리고 난 참 어렸고. 하지만 우리 느꼈죠. 사랑에 빠졌다는 걸. 이건 어느 멋진 날의 이야기. 우리 어린 날의 사랑. 나는 더 이상 철없는 소녀가 아니에요.’라며 자신의 노래를 불렀다.

이거 뭔가 싱숭생숭했다. 이 노래가 섹시 이미지를 벗고 싶은 마음에 특별히 작곡가한테 부탁해 소년적 감성을 담아 만들어진 곡이었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 통기타 치면서 노래하자 팬들은 귀엽다며 국민 남동생이라 난리가 났는데, 언론은 로이 테일러가 전설의 작곡가 하정무의 노래를 망쳐 놨다며 엄청 갈궈 결국 한달 만에 댄스곡을 불렀다. 그런데 그렇게 짧게 등장했다 사라진 노래를 팬이 불러주니 내가 노래를 못하지는 않았구나 싶어 괜히 울컥했다. 정말 자신이 하 선생님 노래를 망친 건가 싶어 죄스러운 마음에 한동안 결렬한 춤이 들어간 곡만 선곡해 립싱크를 했는데 그걸 또 사람들은 ‘세기의 섹시 아이콘, 한국 가요계의 전설을 쓰다.’라 말해 연예계 생활에 회의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아빠는 로이만이 이 노래를 부를 자격이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안의 말에 깜짝 놀라 바라보자, 그녀가 웃으면서 ‘사람들은 모르죠. 그저 보이는 것만 믿죠.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는 거죠.’라며 ‘소년의 사랑.’을 이어나갔다.

“왜 사람들을 알아주지 않을까요? 아니 왜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걸까요? 로이도 알죠? 소년의 사랑이 있던 앨범은 100만장 넘었잖아요. 그런데 왜 그 앨범이 망했다고 하는 거죠? 다들 로이한테 너무 기대가 높은 것 같아요. 500만장 팔았으니깐 계속 그만큼 해야 된다고, 그 이상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자기들 원하는 기준에 맞춰달라고 로이한테 떼쓰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요. 화가 나요. 음악성과 대중성이 너무 달라서.”

이안은 아빠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로이 테일러에 대한 평가를 알려주기로 했다.

“아빠가 그러는데 로이는 사람들을 너무 사랑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고 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 남 눈치 보느라 못하고 싫은 걸 불러서 반짝반짝 빛나도 그 빛이 너무 슬퍼 보인데요. 루시퍼 같은 노래 부르지 마요. 무대 위에서 섹시한 로이도 너무 멋있어서 좋은데, 그래도 로이가 노래 부르면서 행복한 거 보고 싶으니깐요. 사람들 눈요깃거리로 전락하지 말고 진정한 뮤지션이 되어줘요. 한국 노래인데 영어 가사만 잔뜩 나와 멋 부리고, 별 내용도 없이 반복되는 신나는 후크송에 춤을 추는 건 그저 한순간의 사랑일 뿐이라고요. 좋은 음악은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한테 불려지고, 감춰져 있어도 언젠가 수면으로 드러나는 거래요. 아빠가 로이 줄려고 작곡해놓은 거 많아요. 죽기 전에 로이가 무대에서 그 노래들 부르는 거 꼭 듣고 싶다고 했는데, 늦어버리긴 했지만 그건 아빠가 아빠를 위해 쓴 노래가 아니라 오직 로이만을 위한 쓴 노래들이니깐 로이를 위해 불러주세요.”

로이는 별세한 작곡가 하정무의 딸이 그의 유작들을 자신에게 주겠다는 말에 눈시울이 매워졌다. 모두들 자신을 얼굴로 뜬 아이돌이라고 말할 때, 나는 로이처럼 어린놈이 그렇게 노래 잘 부르는 건 처음 본다며 칭찬해줬던 너무 감사한 노래 선생님이었다. 가끔 찾아뵙고 싶어도 전 소속사에서 엄청스럽게 뺑뺑이를 돌렸는지라 암으로 병원에서 투병 중일 때 찾아뵙지도 못하고 있다가, 임종도 못 지키고 장례식이나 갈 수 있었다. 엄마와 이혼하고 미국으로 떠나버린 아빠를 대신해 하 선생님이 그 빈자리를 채워주셨다. 비록 전화로 밖에 만날 수 없던 사이지만 누구보다도 존경하는 선생님이었고, 자신의 하나뿐인 아버지였다. 그러니 하이안이 그의 딸이면, 그녀는 자신의 여동생이었다.

계속 배를 꼬륵거리는 이 불쌍한 것을 데리고 어서 콩나물국이나 한 그릇 사줘야겠다 싶어 밖으로 데려나갔다. 수정이 ‘정말 영악한 아이야.’라며 이마를 짚는데, 우리 선생님 따님이 그럴 리 없었다.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뭐 힘든 거 없냐 묻자 밤마다 아빠가 없어서 혼자 잠들기 외롭다며, 로이가 자장가를 불러주면 잘 잘 수 있을 것 같단다. 그래서 자신의 폰 번호를 알려주니 하이안이 ‘사랑하는 울 오빠♥’라고 저장해 생이별한 동생을 만난 듯 따스한 눈으로 ‘그래, 내가 네 오빠야. 동생아, 많이 아껴줄게.’라 바라보며 그녀의 머리를 토닥여줬다.

알고 보니 애가 속도 깊고 참 착한 거 같았다. 하긴 선생님 따님이니 오죽하랴. 왜 진작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으냐 물으니, 오빠의 사랑을 한번 혼자의 힘으로 차지해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말한 거란다. 그런데 자꾸 누나가 오빠라 하니깐 쫌 뭐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여동생으로 삼기로 했으니 좋은 오빠가 되어줘야겠다 싶었다.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 음식을 시켰다. 자신이 콩나물 국밥을 먹는다고 하니, 이안이도 따라 시켰다. 수정이 한숨을 쉬며 ‘네 약점이 이것밖에 더 있냐.’라며 턱을 괴고 ‘아줌마, 순대국이랑 소주 한 병이요.’라며 낮부터 술을 시켰다. 그래서 자신이 근무 중에 마시지 말라 하자, 술 먹는 하마가 냄새만 맡을 거라며 소주잔에 술을 따라 코를 벌렁벌렁 해댔다. 그러면서 알코올 향이 달달하게 좋다며, 한잔만 마시겠단다. 절대 안 된다고 하니 ‘요즘 너 루시퍼 부르고 스캔들 기사 장난이 아니야. 하이안이랑 괜한 루머 만들지 마. 스네이크한테 그렇게 잘 일러주더니, 정신 차려. 하이안이 하정무 선생님은 아니다.’라며 잔을 비워냈다.

“……알아. 하지만 하이안은 선생님 딸이잖아.”

테이블 위로 자신의 손을 잡은 이안이 그런 자신의 말에 ‘제가 왜 로이를 좋아하는 줄 알아요? 그건 로이가 너무 멋진 스타라는 것도 있지만, 그 화려한 포장 속에 파묻힌 알맹이가 싸가지 없는 아이돌이 아닌 마음 착한 천사라 그래요. 제가 아빠 딸이라는 걸 아니깐 함부로 못 대하겠죠?’라며 웃는데 애가 보통내기는 아니구나 싶었다. 하긴 다이어트가 무지 독해야 성공하는 거였다. 그런데 그 백돼지가 초특급 뽀샤시 미녀로 재탄생했으니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지 싶었다.

“밥이나 먹자. 나 말 놔도 되지?”

“응, 로이야.”

이안은 활짝 웃으며 음식이 나왔는데 앞에 두고 그냥 바라만 봤다. 새까만 눈과 머리카락이 하얀 얼굴과 대비돼 마치 백설공주를 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 자신 앞에 놓인 맑은 국물이 마녀의 거울인양 먹을 걸로 취급하지 않았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 물을 의도로 쓰려는 거 아니면 뭐하나 싶었다. 그러다 식당 안 사람들이 자신들을 폰으로 찍어대자, 굶주린 여배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럭 성질을 냈다.

“찍지 마 이것들아. 너희는 초상권도 모르냐! 내놔.”

그녀가 팬들의 휴대폰을 빼앗으려고 들어 자신이 얼른 막았다.

“무슨 짓입니까. 하이안씨!”

“…아, 로이야. ……그게. 사람들이 우리 식사하는 거 찍으려고 하잖아.”

공인이라면 당연한 일인데, 왜 이러나 싶었다. 식당에 온 손님들 표정이 안 좋아 웃으면서 그들과 일일이 어깨동무를 한 채 사진을 찍어줬다. 입술을 자근자근 씹는 이안에게 다이어트도 좋지만 너무 안 먹는 것도 안 좋다 말하니, 이따가 단백질 쉐이크 마실 거라 못 먹는다며 엉엉 울어 마음이 짠해졌다. 연예인이랑 체중 조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 관계였다.

아무리 실제로 말랐다고 하더라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기본 5kg는 자신의 몸무게에 추가된다고 여겨야 했다. 그 때문에 여배우들이 조금만 살쪄도 캡처 당한 후 돼지 됐다는 소리를 들어 다들 많이 힘들어했다. 과연 일반인들이 우리들이 겪는 고통을 알까 싶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에게 이리 모질게 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자신들도 사람인지라 먹고 싶은 것도 참 많은데 그거 먹고 인기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심정으로, 입은 너무 행복한데 마음은 무겁게 식사를 했다. 다이어트 약 먹으면 입안은 바짝바짝 마르고 쓰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려 스케줄 소화해내기 힘들었다. 거기다 약 먹고 빼면 요요가 엄청나 작품 끝나고 휴식기에 몸무게 불어났다는 스타들을 종종 기사로 만나는 거였다.

자신도 먹는 거에 대한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어서 잠깐 거식증이 온 적 있었다. 먹고 싶은 거는 참 많은데 운동만으로는 다 소화시킬 수 없어 목구멍에 손 넣고 토해내는 방법을 너무 많이 써먹었다가 진짜 골로 갈 뻔했었다.

“일단 먹어. 콩나물국 한 그릇에 40칼로리야. 그리고 밥 반 그릇 먹으면 150칼로리. 이거 다 먹어도 200칼로리가 채 안 돼. 윗몸 일으키기 200번만 하면 그거 다 소모할 수 있어. 어서 앉아서 먹어.”

자신의 말에 하이안이 밥에는 손도 안 데고 콩나물국만 먹었다. 그런 그녀가 걱정돼 자신도 제대로 식사를 못하고 있자, 어느새 수정이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커억~하며 트림을 했다. 저거 한 병에 400칼로리인데 정말 미쳤다. 술기운이 도는지 순댓국에서 내장과 순대를 수저로 퍽 퍽 퍼먹는데 저게 350칼로리라는 걸 알지만 너무 맛있어 보였다. 자신은 오늘 바나나 우유를 들입다 먹어서 콩나물 국밥이나 먹는데 말이다.

로이는 미끄럼이 자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먹는 걸 보며 이건 순대야, 라는 암시를 걸고 콩나물국을 먹었다. 물론 그런다고 콩나물이 순대로 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200칼로리나 되는 걸 촬영하면서 6개나 마셔 굶지 않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며 절대 순대를 먹으면 안됐다. 그거 마셨으면 배가 차야 하는데 화장실 몇 번 다녀오니 오히려 더 배가 고픈 것 같았다. 고칼로리 음식치고 포만감 금방 안 꺼지는 거 못 봤다. 이안도 순대를 보며 수저를 빨고 있었다. 이럴 때는 연예인이고 뭐가 다 때려치우고 막 먹고 싶었다. 식당 안에 화장실이 있나 눈으로 찾아봤다. 그러자 있었다.

“아줌마, 여기 순대 2인분만 주세요. 내장 많이요.”

자신의 주문에 이안이 로이는 마음대로 먹어도 안 쪄서 좋겠어요, 라며 자신을 신의 축복 받은 종족으로 여겼다. 뭐……금방 다 토해낼 거긴 한데 그런 거 알려주면 좋을 거 하나 없어 그냥 입 꾹 다물고 음식 나오자마자 순대를 흡입했다. 컴백 준비하느라 오랜만에 먹으려니 순대가 왜 이렇게 고소하고 맛있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몇 점 집어먹자 술에 취한 수정이 풀린 눈으로 자신을 보다가 정신이 들었는지 발작을 하듯 의자에서 일어나 순대 접시를 들고 도망쳤다. 그런데 취객이 뛰어봤자 가게 안이었다. 키도 조그마한 것이 계속 비틀거려 그 목덜미를 덥석 잡았다. 빼앗긴 순대는 되찾아 오면 되는 거였다.

“취했으면 그냥 잠이 자.”

“안 돼, 로이야. 너 순대 먹었다는 거 알면 주안이 뒤집어져.”

“그래서 없을 때 먹잖아. 걱정 마. 이거 누나가 술 취해서 꿈꾸는 거야. 그러니 그 접시 이리 내.”

자신의 말에 그녀가 ‘그렇구나. 하긴 로이가 순대를 먹을리 없어.’ 라며 접시를 건네줬다. 그래서 등 돌리고 허겁지겁 다 먹어버린 다음, 곧장 화장실로 뛰어갔다. 최대한 빨리 토해내야 했다. 하도 목젖이 건드려대 이제는 웬만해서는 구역질이 안 나왔다. 하지만 자신도 요령이라는 게 있어 ‘우웨엑.’ 소리를 내며 상체를 들썩이며 헛구역질을 했다.

변기를 잡고 옥옥거리고 있자, 밖에서 하이안이 미친 듯이 문 두드리며 괜찮냐고 물었다. 먹은 거 다 토해내고 물로 입을 헹궈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나가 갑자기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거 같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노력하지 않아도 팬들에게는 원래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게 스타의 마음이었다. 그녀가 소화제 사다줄까, 라고 물어 이동하면서 약국에 들를 거니 괜찮다고 했다. 가게를 나와 이안과 헤어져 밴에서 대기하고 있던 임시 매니저한테 수정 좀 데려오라고 한 후 차에 올라탔다.

삼촌이랑 치킨 먹은 이후 처음으로 토하는 건데, 갑자기 토를 하니 옥옥선생 백민호가 떠올랐다. 도대체 병원에 갔으면 어떻다 저쩧다 말을 해지야 이것들이 아주 감감 무소식이었다. 하긴, 원래 무소식이 희소식이었다. 두 게이가 다시 눈 맞아 병원에서 불꽃의 게이게이를 하고 있을 테니, 그저 말없이 김사장을 응원해주기로 했다. 자신에게는 그 편이 더 좋았다.

그에게 ‘다름 사람한테 민폐니 1인실 가셈.’이라 카톡을 보내자 ‘어, 이미 쓰고 있음.’이라고 답이 와, 그 생각에 확신이 생겼다. 하여간 벌써부터 그 짓이라니 정말 못 말리는 게이들이었다. 민호가 아픈 게 다행이었다. 뭐 때문에 자신한테 꽂힌지 모르겠지만, 병간호 해주면서 러브러브 게이지를 도로 키워 주안이 게이가 되는 편이 우리 모두에게 행복한 일이었다.

로이는 임시 매니저한테 업혀온 수정을 보며 쯧쯧쯧 혀를 찼다. 주안이 없다고 기강이 완전히 풀어져버렸다. 그 모습을 찍어 그에게 전송해주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수정이 핸드폰을 들고 ‘엽때요?’라며 혀 짧은 소리를 했다가 ‘아닌데요. 이거 김수정 핸드폰 아닌데요.’라며 사기를 쳐 ‘형, 누나 술 마셨어.’라 뒷좌석에서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그녀가 ‘로이는 순대 먹었어.’라며 고자질해 ‘누나는 소주 2병 마셨어.’라 하니 수화기 너머에서 둘 다 그만하라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로이 너는 스케줄 끝나고 헬스장에 트레이닝 받으러가. 누나는 이번 달 월급 없음.”

“헐~ 기이김주우아아안~. 너어어어~!……한번만 봐주면 안 돼? 응? 내가 너무 속상해서 그랬어. 너도 알잖아. 하 선생님 돌아가시고, 로이 어땠는지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이 어디 있냐. 아주 죽어라 오열하다가 병원에 실려 갔었잖아. 근데 선생님 딸이 그런 로이 마음 가지고 장난질 치는 거야. 제 아빠 빈소에서 어땠는지 뻔히 봤을 거면서.”

그런 누나의 말에 동생은 잠시 침묵하다가, ‘로이한테 큰 충격일까?’라는 거다.

“당연하지. 그런데 민호는 어때? 위궤양이래? 하여간 내가 진작 병원 좀 가라 그리 말했건만 아주 병을 키워, 그 미련퉁이가.”

“……어. 별거 아니래. 위가 조금 안 좋다네? 그래도 이참에 민호 걱정돼서 이것저것 검사 좀 시키려고. 2주 정도 나 없어도 둘이 잘 해낼 수 있지? 그런데 스네이크는 로이가 도와줄 거야? 뭐 잘했어. 걔네는 너무 걱정 말고. 로이는 다음 잡지 인터뷰지? 너 꼭 대본 대로 말하기다.”

로이는 뭔가 그런 주안에게서 이상함을 느꼈다. 목소리가 칙칙하고 무척 지쳐있었다. 갑자기 너무 소속사 사장 같이 든든하게 굴어 민호 무슨 일 있냐고 물으니, 아무 일 없단다. 그러면서 바쁘다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뭐가 싶어 수정을 바라보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며 ‘나 이번 달 월급 나올까? 어제 루브탱에서 구두 5켤레 샀거든.’라고 말해 주안이 알기 전 얼른 환불하는 게 신상에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줬다. 그러자 자기도 그럴 생각을 하고는 있었는데 어젯밤에 술 마시고 길 가다가 어떤 놈이 헉헉거리며 쫓아와 무기로 사용해버려 환불할 수 없단다.

“나 돈 좀 빌려주면 안 될까? 응? 우리 슈퍼스타 로이님?”

수정이 두 손을 모은 채 자신을 초롱초롱………은 개뿔, 술꾼의 눈으로 바라봐 그냥 눈 감고 잠든 척했다. 이따가 운동하려면 죽어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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