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7 사랑이 뭐길래 =========================================================================
방송국 화장실에서 화장을 지우고 대기실로 돌아오니 Natural이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90도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거 참 안녕하지 못 한데, 누구 약 올리러 왔나 싶었다. 그렇지만 자신은 너그러운 선배이니 선배 발리고 1등 해서 좋겠다, 어깨를 토닥여줬다.
“오늘 축하해.”
“아닙니다.”
영준이 자신이 만진 어깨를 꼭 쥐며 잠시 침묵했다. 호영은 자기도 토닥여주라며 엉덩이를 내밀었다. 그래서 무릎으로 까주니 아주 좋아라 했다.
“나 바쁘니까 본론.”
로이는 친분도 없는 잘 나가는 후배들이 그냥 왔을 것 같지 않아 그리 물었다. 그러자 호영이 ‘선배님, 기획사 어때요?’라는 민감한 문제를 건드려 ‘대빵 좋음.’이라 답해줬다. 주변에서 자신과 Reve를 이간질시켜 자기네로 끌어들이려는 수작질이 장난이 아니었다. 불화설만 해도 올해 들어 벌써 2번이나 있었으니 차라리 최근에 사장과 연애설이 난 거는 귀엽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여우 같은 놈이 배시시 웃으며 ‘그래요?’라 답하는 게 아주 꿍꿍이가 시꺼먼 거 같아 무슨 음해공작인가 싶었다. 호영이 옆에서 멀뚱히 서 있는 영준을 끌고 가버렸다. 별 싱거운 것들이 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주안에게 앞으로 뇌출혈 애들 오면 절대 모른 척해, 라 하니 이 눈치 없는 게이가 ‘뇌출혈?’이라며 물어 ‘Natural.’이라 말해줬다. 그제야 뭔 말인지 알아들은 그가 배를 잡고 ‘뇌출혈이래, 우하하하.’ 웃는 것이다. 바보라 참 단순했다.
“그런데 민호, 병원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야?”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 먹고 옥옥거리는 게 그냥 체한 것 같지 않아 대기실 소파에 누워있는 그에게 다가가 봤다. 그런데 식은땀을 흘리는 게 가뜩이나 창백한 낯빛이 아주 회색이었다.
“형, 눈 떠봐. 어디가 아픈 건데? 병원 가자.”
민호가 고개를 저으며 자신 더러 ‘로이야, 고마워.’란다. 이거 뭐 곧 죽는 사람 임종도 아니고 기분이 나빠 닥치라고 했다.
“김 사장, 애 이렇게 될 동안 병원도 안 데려가고 뭐한 거야. 당신 미쳤어?”
아이돌은 자신에게는 스타일리스트이지만 그에게는 연인인데 왜 이렇게 무심하나 싶어 화를 냈다. 그런데 주안의 눈에는 아픈 민호가 안 보이는지 ‘그냥 조금밖에 안 아프다고 해서. 병원 데려갈까? 그런데 로이야, 너 안색이 안 좋은 거 같아. 생리할 때 어지럽다고 누나는 무지 먹던데 점심으로 고기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병신 같은 소리나 하는 것이다.
“주안 형! 미쳤어? 돌았냐고! 지금 형 애인 죽어가는 데 내가 보여?”
“응, 이제 나 너밖에 안 보여. 민호 내 애인 아니라 그저 파트너였어. 네가 신경 쓰인다고 하면 해고할게. 네가 고용하라고 해서 데리고 다니는 애니깐.”
로이는 한 가지에 푹 빠지면 다른 거는 절대 안 쳐다보는 그의 성격을 알아 그토록 물고 빨고 잘하던 연인에게 갑자기 차가워진 주안의 변화가 이해는 됐지만 이건 너무 하다 싶었다. 그래도 사랑한다고, 너 없으면 죽을 것 같다고 난리를 치던 게 바로 2년도 2달도 아닌 바로 이틀 전이었다.
왜 게이 주제에 자신에게 꽂히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이러면 자신이 소속사 옮겨야 했다. 모른 척 넘어가주려 해도 그 쪽에서 이런 식으로 나오면 결국 쪼개지는 수밖에 없었다. 수정도 그걸 아니 사장의 등짝을 때리며 정신 차리라고 했지만, 제 누나 말을 한 번도 안 들었던 동생은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민호 병원 데려가. 그리고 네가 입원 수속 다 시키고, 간병하고, 책임지고 건강해지면 데리고 나와.”
“그러면 나 좋아해줄래?”
이 아저씨 때문에 돌 것 같았다. 백민호 처음 보고 너무 예쁘다며 싫다는 사람을 1달 동안 따라다녀서 함락시킨 거머리였다. 자신마저 헌신적인 주안의 프러포즈 공세에 스타일리스트가 부러워질 정도였는데, 그렇다고 그걸 자신이 받고 싶다는 건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가족이니 말이다. 잠버릇 나쁜 자신이 이불 없이 자고 있으면 새벽에 들어와 배 덮어주고 가고, 스케줄 많아서 소화 못 할 거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고집부리면 알겠노라 따라와 주고, 엄마 대신 먹고 싶은 반찬 만들어주고, 그렇게 집밖에서도 안에서도 그냥 너무 소중한 형인데 왜 이러나 싶었다. 자신은 지금 관계 깨고 싶지 않은데 그는 자신보고 바꾸고 싶다고 강요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형, 진지한 모습 싫다고 하니 네가 싫으면 다시 웃겠노라 했다.
“……우선 민호 형 병원 데려다 주고, 나는 소속사에서 서브 매니저 보내달라고 할게.”
“알았어.”
주안이 민호를 입고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한숨을 내쉬며 수정에게 형한테 경고 안 했냐고 물으니, 자기 말을 죽어도 안 듣는단다. 저것도 한 때뿐이니 그냥 네가 모른 척하고 지내주면 안되겠냐 하여 그러겠다고 했다. 혹시 이 낌새를 뇌출혈 놈들이 알아차리고 말을 건가 싶어 역시 이 바닥은 사람 살 곳이 아니야, 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로이는 소속사에 전화 걸어 매니저 좀 보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말로만 유명 기획사지 실상은 가내수공업 수준의 회사라 전화 받은 놈이 오겠노라 하는 것이다. 그럼 누가 회사 전화 받으냐 물으니 연습생들이 받을 거란다. 스타는 ‘내가 이런 것들을 밥 먹여 살리느라 등골이 휜다, 휘어!’라 버럭 소리를 지르고 알아서 가겠노라 했다. 고작 주안과 수정으로 시작한 Reve는 지금은 직원이 300명이 넘지만 너무 급작스럽게 몸체가 커져 아직 체계도 안 잡히고, 연예인 관리도 잘 안 되는데 그저 돈빨로 좋은 안무가랑 작곡가 섭외하고 뮤비를 빠방하게 찍어서 잘나가고 있는 거였다. 물론 자신만 잘나갔다. 고로 자신이 나가면 이 회사는 망하는 거였다.
그런데 왜 이 게이 사장이 자신한테 작업을 거냐 이 말이다. 다시 거지 되고 싶지 않으면 동생 간수 좀 잘하라 소속사 이사장님께 친히 부탁하니, 수정이 ‘우리 버리지 마. 로이야.’라며 매달렸다. 이 김 오누이 때문에 자신이 미칠 것 같았다.
“휴~, 됐으니깐. 택시 타고 가자. 내가 미쳤지. 미쳐. 왜 이딴 쓰레기 기획사로 기어들어가 이 고생이야.”
1등도 못 했는데, 민호 형은 아프고, 주안은 제 애인은 나 몰라라 자기 좀 좋아해주면 안되냐고 돌진하지, 회사는 완전 삐거덕거리며 돌아가고, 수정은 자기가 죄인이라며 옆에서 훌쩍거려 스트레스가 이빠이였다. 지금은 우는 소리 듣는 것도 짜증났다. 로이는 이 참에 소속사 옮겨서 스타 대접 좀 받고 싶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싶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Reve를 버릴 수 없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빌어먹게도 여자라 다른 소속사에 가면 사장들이 웃통 좀 벗어봐, 라며 강요를 해대기 때문이었다.
이 망할 대한민국은 남자 아이돌들이 요즘 무대 위에서 옷을 그렇게 찢어대고 있어 섹시 아이콘으로서 참으로 힘들었다. 찢호영과 짐승영준이 오늘 1등 한 것만 봐도 역시 젖꼭지 노출 정도로는 부족한 연예계는 노출 경쟁 사회였다.
노랗게 탈색한 호영은 눈웃음 살살치며 애교를 부리는 캐릭터인데, 반전이 있는 게 예능에서는 완전 귀엽고 애교가 많은 남동생 같은 이미지였다가 무대만 올라가면 웃통을 찢으며 상남자가 되니 계집애들이 난리가 나는 것이다. 자신이 봐도 그 놈 복근이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영준은 평소에 과묵하고 말이 없지만 뭐랄까. 잠깐의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귀여움일까? 둘이 아크로바틱을 할 때 항상 힘쓰는 포지션이었다. 키도 188이나 되고 생긴 것도 완전 남자 닮게 잘 생겨서 기생오라비 같은 호영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하아~, 힘들다. 힘들어.”
“……………미안해. 로이야. 지금 차 불렀으니깐 잠깐만 기다려.”
수정이 소파에 앉은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며 주안이는 자신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서라도 반드시 다시 게이로 만들겠다고 해, 다리 분지르면 운전 못하니깐 예쁜 남자신입 하나 새로 스텝으로 넣자고 했다. 물론 믿을 만한 애를 찾는 게 힘들어 자신이 이렇게 개고생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어디 길거리라도 돌아다니며 길 잃은 강아지 한 마리 또 주워야할 것 같았다.
로이는 방송국 앞에 차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자신의 밴과 똑같은 수혁의 차가 있어 뭔가 싶었다.
“……어, 그게. 카드는 주안이가 가지고 있으니깐. 나 돈 없어서.”
“으아아악! 내가 진짜 그만 둔다. 이 빌어먹은 회사 같으니라고.”
로이는 너무 화가나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러자 차 안에 있던 톱스타가 ‘우리 소속사로 오세요. 로이.’라는 것이다. 이에 그녀는 그 소속사 이름이 혹 룡룡이 엔터테이먼트는 아니냐 물으려다가 가발을 쓰고 있는 운전수를 바라봤는데, 수혁이 ‘상철이는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으실 겁니다.’라며 ‘철구야 인사해라.’라는 것이다. 확실히 고개를 돌린 운전수는 문어 아저씨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 문어 아저씨 어디 갔냐고 물고 싶어도 초고추장이 흐르는 문어 대가리가 연상되어 입 닫았다. 충분히 살인마 잭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녀는 차마 여자라 때릴 수 없는 자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복화술로 ‘누나, 이따 보자.’하며 수정을 차 안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늙은 후배님이 ‘죄송하지만 조수석에 타주시지 않겠습니까. 로이와 긴히 할 말이 있어서요.’라며 젠틀한 미소로 수정을 앞으로 보내버렸다. 로이는 어제 바람맞힌 죄로 이 조폭이 뭔가 복수를 하려는 건가 싶어 비장한 마음으로 밴에 탑승했다. 그러자 문이 닫히자마자 자신을 끌어안은 남자가 ‘너무 너무 보고 싶어요. 로이.’라며 온몸이 녹아내릴 듯 마성의 보이스로 현혹에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만을 향한 잘생긴 배우의 눈꼬리가 아예 눈동자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아주 달달하게 녹아내려 마치 ‘나 아저씨 주제에 짱 귀엽죠? 뽀뽀해주세요.’라 말하는 것 같아 두 손으로 그의 눈을 얼른 가려버렸다. 이거 정말 위험한 아저씨였다. 하마터면 차 안에서 내사랑로이 팬픽을 실현시킬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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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하루 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