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6 사랑이 뭐길래 =========================================================================
수혁은 아침 발기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찬물이 쏟아지는 샤워기 아래에서 득도하는 기분으로 명상하였다. 그런데 이 주체할 수 없는 힘들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아 열심히 푸시 업을 30분 동안 했는데, 이게 이상하게도 더 발딱발딱 서버렸다. 왠지 그녀와 자신이 하고 있다는 야한 상상이 들어버린 것이다. 할 수 없이 귀를 잡고 토끼뜀을 했다. 근데 그것도 자신 위에서 뛰는 로이의 모습이 연상되니, 운동하기도 힘들었다. 할 수 없이 다음으로 윗몸 일으키기를 했는데 감독과의 오해를 만들었던 그 사건이 떠올라 그녀의 끄응거리는 숨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안 되겠다. 달리자.”
그는 미친 듯이 런닝 머신 위에서 달렸다. 심장이 터져라 1시간을 뛰고 바닥에 드러눕자 예쁜 내 님이 천장 위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수혁오빠, 로이랑 손잡고 놀 테야?’
“으아아악! 괴롭다! 미치겠어!”
29년 동안 사내로서의 모든 욕망을 참아낸 이는 주먹으로 땅을 치며 이 풀릴 수 없는 갈증을 어찌하나 싶었다. 그래,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이 내사랑로이가 되어 그녀와 자신이 이어지는 팬픽을 쓰는 방법이었다. 수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재로 달려갔다. 노트북을 키고 우선 로이의 새로운 기사를 검색해서 내용을 살핀 후 팬으로서 댓글도 달고 지상 최악의 악플러 로이뒈져의 동향도 살폈으며, 자신의 스타에게 야한 농담을 하는 발정난 승냥이들을 혹독하게 공격하여 그들에게 사과를 받아냈다.
거기다 요즘 말도 안 되게 자신의 천사가 하수연과 사귄다는 둥, 김우리랑 사귄다는 둥, 하이안이랑 사귄다는 둥 말들이 너무 많아 다들 순결한 자신의 천사에게 ‘갈 때까지 갔다. 엄청 가벼운 놈. 색기 흘리고 다니는 것 좀 봐라. 여자 후리는 기술이 탁월하다.’는 식의 글들을 올려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며 난리를 치다가 제2의 강용석이라는 말을 들게 되었지만 그녀들의 팬들은 자신처럼 욕망의 불꽃이 뛰는 자들이라 항상 고삐를 풀어줘서는 안됐다.
이제 어느 정도 팬들 정리가 된 것 같아 팬카페에 들어가 어제 써놓은 글의 조회수를 확인했다. 한 편당 조회수가 1000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거 참 공지보다 많이 읽히고 있어 쑥스러웠다. 보통 다른 팬들의 조회수가 많아봤자 400정도인 것에 비하면 이건 진정한 사랑의 힘이었다. 아무리 로이 테일러의 팬들이 극성이라지만 로이에 대한 모든 팬픽을 읽는 건 아니었다. 이건 정말 특별한 경우였다. 자신은 로이 팬으로서 그들에게 스타격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글에 수혁룡이라는 사람이 ‘솔직히 로이는 별로 안 예쁘다. 수혁 오빠한테는 하수연이 잘 어울림. 작가님, 하수연이랑 수혁 오빠 이어주세요.’라는 것이다. 아니 왜 로이 테일러 팬카페에 와서 하수연 팬질이란 말인가.
『수혁룡이님, 저는 로수 커플 찬양자입니다. 그딴 거 안 쓰니깐 하수연 팬카페 가서 활동하세요.』
그러자 지금 로그인하고 있었는지 바로 리코멘트가 달렸다.
『그렇습니까.ㅜㅠ 저는 내사랑로이님이 그 미친 글빨로 수혁 오빠랑 수연 언니 이어주면 템 때문에 생긴 이상한 루머 가라앉으리라 생각했는데. 로이랑 수혁 오빠 사귄다는 소문은 참 아니라고 봅니다. 개랑 같은 학교인데 여친이랑 물고 빠는 거 봤습니다.』
수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게 어디서 사기를 치나 싶었다. 자신이 김수혁이라는 걸 밝힐 수도 없고 로이한테 이상한 스캔들을 만들려고 해 당장 분노의 자판 두드리기를 했다.
『저도 로이랑 같은 학교인데 로이는 여친 없습니다.』
당연하지. 자신의 천사가 여자랑 사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이랑 어제 사귀기로 했다. 그런데 자신의 스타는 10살 때 박민하라는 같은 아역배우랑 사귄 경력이 있어 조금 불안했다. 한참 자신의 댓글에 반응이 없던 수혁룡이가 다시 글을 올렸다.
『제가 작가님 팬이라 특별히 인증 사진 보여드리겠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사진방에 글 올리고 올릴 테니 바로 대기하시고 봐주세요.』
수혁은 설마, 설마 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잡았다. 그리고 바로 새로 생긴 수혁룡이의 글을 확인했다. 그는 내가 잘 못 본 것이야, 하며 화면 속 로이가 한쪽 눈을 윙크하며 어떤 소녀의 볼에 뽀뽀를 하는 사진을 지켜봤다. 그러나 곧바로 삭제된 인증 사진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자신 외에도 이미 봐버린 승냥이 200명이 미친 듯이 ‘그 계집년 이름이 뭡니까. 수혁룡이님.’부터 시작해 정작 일을 저질러버린 수혁룡이는 잠적해버렸는데 팬들은 난리가 나 그들 사이에서 로이가 다니는 학교 이름과 ‘방금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송리나라 함.’ ‘개잡년 잡으러 가세.’라는 여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큰일 날 것 같았다.
결국 지능적인 로이의 안티 때문에 팬카페는 뒤집어졌고, 수혁은 카페지기로서 모두에게 자중할 것을 요구했으나 승냥이들은 그동안 기사는 많았지만 정확한 증거는 없었던지라 모두들 믿지 않아 이게 처음으로 자신의 아이돌에게 여친이 생겼다는 스캔들이어서 생각보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는 자판기를 재빨리 두들겨 로이를 변호했다. 하지만 그들은 배신감에 몸부림치며 당장 로이의 집에 찾아가자 항의를 올리자는 의견으로 판세가 기우러지고 있었다.
수혁은 이 상황을 그녀도 알까 싶어 로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아침부터 날벼락을 맞은 스타는 벌벌 떨며 ‘내가 여친 사귀는 거 그렇게 큰 잘못이야? 그저 게이 기사 내리고 싶었을 뿐인데.’라는 말을 했다. 이에 남자는 지금 울먹거리는 천사의 정체가 바로 방금 전 팬카페에 나타난 수혁룡이겠다 싶어 이마를 짚었다. 그런데 자신의 팬픽을 읽어봤나 싶다. 철저히 내사랑로이라는 걸 숨겨야겠다.
“일단 지금 인터넷에 기사 뜬 거 같으니깐 가만히 계세요. 괜히 수습한다고 나서봤자 판만 더 커지니깐. 그리고 이따가 템 촬영장 오면 저랑 사진 몇 장 다정하게 찍어서 게이설로 몰아가는 게 더 나을 거라 봅니다.”
로이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노라 하였다. 연예계 경험도 없는 늙은 후배 주제에 제법이었다. 그녀는 수혁과의 전화를 끊고 주안에게 호되게 혼나겠구나 싶었는데 소속사 사장은 아무 말도 않은 채 놀라지 않았냐며 자신을 껴안아줬다. 주안이 자신의 정수리에 턱을 괴고 등을 쓸어줬다. 이제 이렇게 아프고 힘든 연예인 생활 따위 집어치우고 그냥 평범한 로이 테일러가 되는 게 어떻겠냐며 물었다. 이게 신종 혼냄 기술인가 싶어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그러자 주안이 한숨을 쉬며 그런 자신에게 매니저로서 오늘 음악 방송 나갈 거냐고 물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스캔들에 무너져서 방송 활동을 못할 정도면 이미 자신은 이 세계에서 도태되어 스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음악방송을 위해 차로 이동했다. 그런데 리허설을 무사히 끝낸 자신에게 PD가 다가와 괜찮냐고 물었다. 왜 자신이 연애를 하는 게 죄가 되는 건가 싶었다. 자신이 진짜 남자였다면 이 나이에 당연히 여자친구를 사귈 수도 있는 걸 텐데 사람들은 마치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것 마냥 화를 내고, 분노하며, 배신당했다고 했다. 아이돌이라 팬들이 바라는 모습만 보여줘야 하고, 그들이 동경하는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구는 건 다른 말로 바꾸면 그들이 원하지 않는 건 보여주지 않아야하고 팬들의 이상형에서 어긋나면 이 자리에서 떨어진다는 걸 의미하는 거였다. 로이 테일러가 아무리 열심히 19년 동안 연기하고 춤을 추고 노래하고, 팬 관리를 했어도 인기라는 건 영화제에서 터지던 폭죽처럼 자신의 몸을 불살라 빛나는 스타를 보고 잠깐 ‘예쁘다.’하며 감상하다 자리를 떠나던 관객과 같았다.
자신은 섹시 스타고,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돌이며 고로 불특정 다수들에게 수많은 사랑을 받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영원하지가 않으니 매번 이슈를 일으키고, 검색어 순위 하나에 목숨 걸고, 여자라는 걸 밝히지도 못하면서 비겁함으로 거짓되게 반짝 반짝 빛나는 존재가 되어 자신을 보는 팬들에게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하고 있으니 아이돌로서는 실격이었다. 하이안이 자신을 따라 연예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그녀로 인해 들떴던 것 같다. 그래서 가볍게 나는 너희들이 바라는 대로 게이가 아니야, 라 말해도 따라와 줄 거라 믿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팬들이 싫다고 외치고 있었다.
리나가 공연 전에 잠깐 자신에게 전화를 해 까르르 웃었다. 너 때문에 내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다며, 이대로 우리 결혼하는 건 어떠냐 농담을 했다. 자신이 엉엉 울며 미안하다고 하자 그러라고 예전에 허락해줬는데 무슨 소리야, 라며 로이 여친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단다. 나 같은 애가 너 같은 천사랑 언제 사겨보겠냔다. 그리고 쫄지 말란다. ‘너는 엄청 도도하고 싸가지 없고 당당한 게 멋있어. 무대에서 확 해치워버려.’라는 데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싶었다.
자신이 우는 동안 눈 밑에 티슈를 뎄던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로이는 ‘훗, 이 몸이 또 나셔줘야겠군.’하며 눈물로 지워졌던 화장을 수정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턱을 치켜든 채 거울을 보니 엄청 예쁘장한 금발의 소년이 ‘뭘 꼴아봐.’라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반갑다, 로이 테일러. 우리 신나게 무대에서 놀아보자.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스텝들이 자신을 찾으러 오기 전 미리 백스테이지로 나가 스탠바이하고 큐, 라는 싸인에 자신의 끼를 마음껏 뽐내며 인트로 없는 버전의 노래를 불렀다. 이 세상에는 스타라는 것만으로 그냥 얻을 수 있는 혜택도 참 많았지만 불공평하게 얻는 불이익도 많았다. 악역을 많이 한 배우는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으면 취객이 다가와 뒤통수를 때리기도 하고, 이유도 없이 악플에 시달려 자살하는 이들도 있으며, 공인이기에 언제나 남들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도마에 올라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연예인들이 좋은 것도 많지만 안 좋은 게 더 많은 이 생활을 계속 해나가는 건, 자신들이 사람들의 사랑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지만 그 유한적인 팬들의 사랑조차 좋았기 때문이었다.
로이는 오랜만에 처음 가수로 대비했을 때가 떠올라 가슴이 설렜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자신의 염려는 기우였는지 승냥이들이 울면서 ‘로이! 로이! 타락천사 사랑해요! 루시퍼 스펠!’을 외쳐대고 있었다. 그래서 스탠드 마스크를 잡고 한 바퀴 돌린 후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채 ‘이제 넌 내꺼야. 오늘 밤 너는 나의 노예.’라는 노래가사를 팬들에게 불러줬다. 그러자 꺄악 꺄악 언제나 기운 넘치는 그녀들이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어냈다.
첫방송 이후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아 새로운 안무를 익혀야 해 간단한 퍼포먼스밖에 없었다. 그저 마이크 하나 들고 눈빛으로 팬들을 유혹해야 한단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야한 춤을 추는 거 아니냐며 이 노래를 완전히 접던가, 아예 춤을 추지 말란다. 그래서 춤 안 추고 노래만 부르겠다고 했다. 팬들은 내 노래를 듣는 거라고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으니깐. 그리고 자신이 믿었던 것만큼 너희 나 언제 떠날 거냐 털을 갸르릉 세우고 경계했을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그들의 믿음과 신뢰가 보였다. 로이는 가사를 따라 부르는 소녀들에게 윙크를 날리고 ‘사랑해.’라 외쳤다.
사랑한다. 사랑해. 내 팬들아. 사랑해. 너희가 나 언젠가 떠날 거라는 거 알지만, 그래도 날 사랑하는 만큼 나도 너희 이제 사랑해줄게.
로이는 노래를 끝내고 1위 후보 발표를 기다렸다. 그런데 1등은 Natural이었고, 자신은 미끄러졌다. 잠시 위기의 순간이 와 착하게 살아야지 했던 아이돌은 독기 충만으로 후배들에게 축하하노라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건네고, 춤 안 췄다고 새파란 후배에게 밀린 굴욕에 ‘이제 나는 삐뚫게 나갔어용.’이라는 눈으로 팬들에게 ‘아까 한말 취소.’라 말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흥. 흥. 누가 너희를 믿을까봐. 앞으로 빡세게 조련시켜주지. 승냥이들.
화가 난 스타는 곧바로 핸드폰을 들고 휴지를 두 갈래로 찢어 눈 밑에 붙인 다음 우는 척 양 볼에 주먹을 얹는 포즈를 찍어 트위터에 올려버렸다.
『로이 1등 못했어용.ㅜㅠ 넘 슬퍼용. 훌쩍.』
켈켈켈. 이제부터 낚시질이다. 그렇게 내가 게이가 되는 게 좋다면, 오냐! 좋다! 게이 로이가 되어주지.
그녀는 만만돌이 주안을 붙들고 그의 볼에 쪽하는 사진을 올려버렸다. 이 참에 수혁이랑도 뽀뽀하는 거 올려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