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23화 (23/104)

00023  마피아는 싫어  =========================================================================

어쨌든 수혁의 초대로 개막작의 무대 인사를 보러간 로이는 레드카펫에서 자신이 도와줬던 김우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을 일부로 찾아왔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 게 엄청 콧소리를 내며 친한 척 해왔던 것이다. 뭐 이런 걸로도 유명해지기는 했다. 톱스타와의 연애소식만큼 사람들의 입에서 쉽사리 오르내릴 수 있는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은 없을 테니 말이다.

로이는 그런 우리를 그냥 모른 척 지나쳐 자리에 앉아 무대를 올려다봤다. 그런데 어디서 머리털을 구해왔는지 김수혁의 룡룡이가 사라져버렸다. 하여간 이 놈의 가발 공장을 다 불태워버려야 하는데 말이다. 여자 MC가 머리 스타일을 바뀌었냐며, 잘 어울린다고 칭찬을 건네고 있었다. 딱 봐도 가발인데 장난하나 싶었다.

그녀는 다리를 거만하게 꼬고 어디 한번 해보라는 식으로 그를 봤다. 여 MC는 지가 좋다고 완전 뿅가서 눈이 풀려 있으니 잘만 하면 둘이 사귀겠다. 그런데 저 여자는 저래가지고 뭘 하겠다는 건가 싶었다. 영화 홍보하라고 고용한 건데 지금 아직도 영화 이름 하나 그 입에서 안 나왔다. 수혁씨 멋져요, 라 하기 바쁘니 말이다.

괜히 짜증난 아이돌은 폰을 꺼내서 볼 것도 없는데 만지작거렸다. 검색어 1등이 자신인데 이상하게 안 기뻤다. 시선을 들어 그에게 찝쩍거리는 여자랑 자신 중 누가 더 예쁠까 비교해봤지만, 당연 승자는 자신이었다. 그런데 저 아저씨가 혼자 1일이라는 둥 헛소리를 하더니만, 로이 테일러보다 안 예쁘고 나이도 많고 덜 유명하고 기타 등등 다 후진 여자한테 눈웃음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흥, 누가 저 남자가 전직 야쿠자라는 것 좀 알려줘야 했다. 전화부를 확인해 스포츠오늘의 기자들의 번호를 찾아봤다. 이 목소리가 워낙 유명해 신고를 할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안 그랬으면 바로 공중전화로 달려가 ‘김수혁은 마피아! 살인마 잭! 모두들 속고 있는 겁니다. 저 달달한 목소리와 눈동자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게기다 게이…는 아닌 거 같고, 바람둥이입니다! 이 미성년자를 꽃미모로 현혹하려 했습니다. 처단하십시오.’라 소문을 퍼트릴 텐데 말이다.

수혁이 이번에는 여 MC 말고 옆에 서 있던 청순가련 여배우에게 하하하 웃어보였다.

그래? 그렇게 좋냐? 아주 입이 찢어지려고 하네.

…………그런데 나 미친 건가? 지금 질투하는 거야?

로이는 얼이 빠져 수혁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자 MC가 싱글벙글하며 그에게 질문을 했다.

“예. 이번에 푸른 소나타에서 굉장히 섹시하게 나오신다고 들었는데요. 수혁씨, 특별히 섹시하게 나오기 위해 준비한 게 있나요? 섹시한 천재 살인자라니. 이거 무서우면서도 완전 보고 싶은데요?”

“감독님이 강박증에 시달리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원하셔서 체중 감량을 좀 했습니다. 이 작품을 위해 5kg 정도 감량을 했는데. 하하하. 제 손만 찍으시더라고요. 덕분에 복근은 템페스트에서 잘 써먹었습니다.”

“앗. 저도 봤습니다. 장난이 아니던데요? 역시 수혁씨의 복근이 템의 시청률을 살렸습니다. 그런데 이건 제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템에서 카호 커플 만들어진 거 알죠?”

“카호? 그게 뭡니까?”

“극 중에서 로이씨가 맡은 카렌과 수혁씨가 맡은 준호의 이름을 따서 지금 다들 카호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후후. 어라? 마침 당사자들이 다 모여 있네요. 로이씨, 무대 위로 올라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 여자가 뭔 짓인가 싶었다. 영화 푸른 소나타를 홍보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왜 드라마 홍보를 시킨단 말인가.

로이는 ‘싫은데?’라 삐딱하게 노려봐주고 싶었으나 관객들이 ‘로이! 로이!’하며 환호성을 질러대 웃으면서 일어났다. 이런 게 연예인의 일이니 말이다. 그녀는 방금 전 만났으면서 마치 오랜만에 만난 것 마냥 반갑다는 듯 수혁과 단단히 악수를 나누고, 이 자리를 빌려 템페스트를 홍보할 수 있게 해준 MC가 무지 고맙다는 듯 바라봤다.

“이야~ 대박이다. 로이씨 이런 말하면 실례인거 알지만 완전 예쁘세요. 과연 천사 로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습니다.”

“하하하. 과찬입니다.”

실례인거 알면 하질 말던가. 아줌마.

“그래서 지금 수혁씨랑 스캔들 돌고 있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뭔 질문이 이 따위로 하나 싶었다. 순간적으로 욕이 나올 뻔했으나, 예쁘게 잘 포장한 채 송곳을 내미는 MC에게 웃으면서 ‘그저 친한 형과 동생의 사이일 뿐이랍니다.’ 라 했다. 무슨 남남끼리 엮으려 드나 싶다. 그럼 완전 훅 가는데 말이다. 아무리 자신과 수혁이 게이 커플이어도 방송계는 알아도 대중은 모르도록 덮어주는 게 관행이었다. 잘나가는 톱스타 홍준호가 사실 게이인데 소수의 팬들만 그걸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아주 끈덕지게 둘이 사진 찍은 걸 봤다는 둥, 잘 어울린다는 둥 헛소리를 해댔다. 우릴 매장시키려나 싶어 수혁에게 한마디 하라 바라보니 그냥 아주 좋아 죽으려고 했다.

“예. 우리 잘 어울리는 커플이죠?”

“꺄아아~ 네! 로수! 로수!”

생각보다 그 이야기가 심각하게 퍼진 모양이었다. 저 놈의 로수가 여기서도 들리는 걸 보면 말이다. 자신의 어깨를 단단히 끌어안은 수혁이 자신을 너무 너무 너무~ 사랑해 죽을 것 같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어 이러다 자신이 게이로 낙인찍힐 것 같았다. 로이는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떨궈내며 여기서 화내면 자신만 성질 더러운 놈 되니, 한층 밝은 목소리로 ‘형아~ 자꾸 이런 장난치니깐 사람들이 오해하잖아. 여러분, 저 여친 있습니다. 완전 예뻐요.’라 폭탄 발언을 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따귀 한 대 얻어맞았나 싶었다. 머리가 깨질 듯한 비명이 들리고 웃고 있던 관객들이 ‘싫어~’라 울부짖었다. 자신더러 나 아닌 여자 사귈 거면 차라리 게이나 되지, 라며 악담을 퍼붓고 있었다. 그런데 나 여자라 게이는 못 될 듯싶다.

자신과 수혁 때문에 영화의 주인공이 여배우가 쭈구리가 되어 참 미안했다. 이 자리는 그녀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곳이니 말이다. 물론 자신이 오기 전부터 MC라는 것이 남자한테 눈이 멀어 여배우는 나몰라라하고 방치해 계속 안색이 안 좋기는 했다. 그래서 자신이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어줬다. 자신의 본질을 흐린 자격 없는 MC의 역할을 자신이라도 땜빵해줘야 제대로 무대인사가 마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공짜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이안씨, 이번 영화를 보면서 효주처럼 예쁜 여자친구를 가지고 싶어지라고요. 극중 효주역이 제 이상형인거 알아요? 청순하고 보호본능을 일으키는데, 천재 피아니스트의 뮤즈로서 굉장히 매력적이더라고요. 물론 광기에 미친 정진한테 연민을 느끼고, 키스하는 장면이 제일 좋았어요. 그런데 키스 씬이 그냥 연기 같지만은 않던데, 그 키스 씬 찍은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자신이 방금 한 질문으로 영화를 모르고 온 관객들은 푸른 소타나의 중요한 내용을 요약해 들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영화 홍보를 자연스럽게 해주고, 분위기를 정리해줘야 하는 거였다. 자신의 하이라이트 장면 언급에 여배우는 밝은 얼굴로 ‘수혁씨랑 찍게 되어 정말 영광으로 생각했답니다. 워낙 젠틀하셔서 제가 긴장하지 않게 농담도 건네주시고, 현장 분위기가 좋아 영화가 잘 만들어진 거 같아요.’라는 대사를 읊었다. 분명 이걸 말하기 위해 그녀는 소속사가 지어준 인터뷰 대본에 맞춰 연습을 해봤을 거다. 노력한 걸 해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느덧 소란이 잠잠해진 채 자신들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는 관객들이었다. 로이는 여배우에게 더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져야함에도 남자배우에게만 쏠려 있던 관심이 드디어 제 중심을 되찾았다는 사실에 조금 안색이 편해진 그녀에게 질문 한 개를 더 하고 끝내기로 했다. 이게 바로 MC가 해야 하는 일인데 말이다.

“푸른 소나타가 첫 데뷔작이죠? 그런데 부산영화제 개봉작으로 선정되다니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기분 어떠세요?”

“솔직히 잘 실감하지 못한 거 같아요. 이런 질문 받을 때마다 항상 너무 영광스럽다고 말은 했지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 실감을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제가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로이랑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겠어요. 저 오늘 밤,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자신의 팬이었다니 이거 참 신기했다. 원체 어려서부터 활동해 팬들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게 익숙하지만 설마 이렇게 커서, 그것도 자신 앞에 스타가 되어 나타날 줄이야.

로이는 습관적으로 머리를 넘기고, 승냥이들에게 하듯 그녀를 조련시켜줬다.

“오빠도 이안이 좋다. 예뻐서.”

그러면서 손바닥에 뽀뽀를 해 날려줬다. 그러자 눈물을 글썽거리는 승냥이가 ‘오빠~’하고 달려들어 ‘쉿! 영화홍보 잘하고 가.’라 말한 후 ‘여러분, 하이안 주연 푸른빛 소나타 많은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하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도대체 갑자기 불려와 이게 뭔가 싶었다.

로이는 다시 자리에 착석 안하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하여간 김수혁이랑 얽히면 짜증났다.

저런 바람둥이 야쿠자 따위 정말 싫어!

============================ 작품 후기 ============================

ㅎㅎㅎ사실 바람을 피운게 수혁이가 아니라 로이였다는...의도하지 않게 여자 둘을 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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