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0 마피아는 싫어 =========================================================================
수혁과 복도로 나오자 마치 죽은 사람의 낯빛 마냥 검은 얼굴로 서 있던 주안이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평소 같으면 ‘왜 그래 형, 짜짜구리 해주면 용서해주지.’라 장난스럽게 말했을 테지만 심적으로 힘든 로이는 그런 그에게 웃어 보일 수 없었다. 물론 화난 건 아니었다. 애초에 소속사 사장인 주안은 자신 말고도 다른 연예인들이 앨범 낼 때마다 콘셉트 회의도 참가해야 하고, 뮤직비디오라든지, 기타 해외시장 공략에 대한 계획서도 검토해야하는데 자신 때문에 매니저로서 심부름도 하고 운전기사노릇도 하고 성질도 다 받아주고 있으니 무지 피곤한 거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은 삼촌이랑 모텔에서 2시간이나 자고도 차 안에서 기절할 정도로 너무 피곤해 자다 납치당하는지도 몰랐는데, 잠 한숨 못잔 그는 쉬지도 않고 운전을 했으니 교통사고 안 낸 게 고마울 정도였다.
“이제 보디가드 쓰자. 응? 병원도 가고, 너 시상식 못 간다고 할게.”
그런데 자신을 너무 과보호하려 드는 게 문제였다. 약간 충격받기는 했지만 부산 영화제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걸 빼먹는단 말인가. 한 컷의 멋진 사진에 불과한 그게 연예인들의 운명을 바꿔놔 여자 배우들은 아주 헐벗고 나왔다. 오늘만 해도 안 봐도 뻔했다. 대충 젖꼭지만 가리고 가슴을 훤히 내보이겠지. 그나마 남자는 벗고 나오는 게 없으니 천만다행이었다.
로이는 ‘내가 죽일 놈이야.’라며 혼절하기 일보직전의 매니저에 대가리를 한 대 쳐줬다.
“김 사장. 정신 차려. 너 죽일 놈 아니야. 너도 사람인데 잠도 자고 살아야지 않겠어. 그런데 나 빼고 다들 어디 갔던 거야.”
“……휴게소에 잠깐 내려 라면 먹고 왔어.”
“헐~, 나 빼고 라면 먹었다고? 이게 죽을라고.”
꼬꼬마 입맛 아이돌은 사장의 볼때기를 사정없이 꼬집으며 손가락으로 비틀었다.
“으으윽. 아파 로이야.”
“잘못 했어 안했어?”
“잘못했어.”
주안이 더럽게 콧물을 훌쩍이며 ‘나 폰도 차안에도 두고, 차키도 꽂고 내렸으니깐 더 때려줘.’라 했다. 회장님 코스플레이 때도 그렇더니만 완전 노예근성이 찌들어있었다. 이 ‘잘못했어요. 주인님, 절 벌주세요.’라 말하는 것 같은 눈망울이라니. 하긴, 자신이 이렇게 습관을 들이기는 했다.
로이는 병원에 가야한다며 울먹이는 매니저의 이마에 꿀밤을 먹이고, 수정에게 민호는 어디 갔냐고 했다. 그러자 라면 먹은 게 체한 거 같다며 화장실에서 토하고 있단다. 자신 때문에 무지 놀랐나 보다.
아무튼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해결되었으니 우선 씻고 싶었다. 돼지가 더러운 손으로 이 고귀한 얼굴을 만져서 구린내가 났다. 거기다가 얼마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위를 해대면 색이 노랗게 변색되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둘둘 말고 있었더니 온몸에서 쩐내가 장난이 아니었다.
“형, 나 씻게 호텔 가자. 예약해놨지?”
“어. 그런데 정말 병원 안 가도 돼? 우리 활동 접고 푸켓이나 하와이로 놀러 갈까?”
“됐어. 외국 나가면 더 난리나. 거긴 로이 테일러가 비틀즈 급이지.”
톱스타는 오만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든 채 ‘우하하하.’하고 웃어댔다. 그런데 사람 무안하게 주안이 농담으로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그나마 한국이 총기 소지가 금지돼 안전해.’라는 것이다. 로이는 뒷머리를 끄적거리며 애써 그의 시선을 피해 수혁에게 ‘구해줘서 고마워, 잘 가.’ 라 했다. 쫌 많이 창피해야지 원.
그런데 자신이 이제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스타로 변모한 모양이었다. 그가 호텔까지 자신이 데려다주겠노라 하며, 자신의 보디가드를 데려가라 했다. 월급은 안 줘도 되니 앞으로 달고 다니란다.
뭔가 싶었다. 같은 소속사 식구도 아닌 주제에 자기 스텝까지 나눠줄려는 태도라니 영 꺼림칙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무리 봐도 이 잘생긴 배우가 게이임이 틀림없는 거 같고 자신한테 feel이 꽂힌 거 같아 너무 너무 좋은 먹잇감이다 싶었다. 아아~, 생명의 은인이니 분명 괴롭히면 천벌을 받을 텐데 왜 이리도 수혁 몰이를 하고 싶은 거지?
로이는 손을 뻗어 그의 뺨에 올려놨다. 그리고 중지를 살짝 그의 눈꼬리에서부터 날렵한 턱 라인을 따라 훑으며 가까이 다가가 귓가에 ‘하아아~ 수혁씨. 나 한번만 봐줘.’라 헐떡거리는 소리 좀 내줬다. 그러자 불타는 귀가 된 수혁이 뒷걸음치더니, ‘그, 그럴 수는 없습니다. 상철아, 이제부터 로이가 네 주인…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이니 잘 모셔라.’라 했다. 쳇! 조금 더 했으면 거시기를 팔딱 세워서 망신줄 수 있었는데.
“예. 도련님.”
그런데 무슨 보디가드가 이리도 야쿠자 같은지 모르겠다. 로이는 검은 양복을 입은 대머리를 보며 ‘뭔가 떠오를 것 같은데, 음~.’ 머릿속을 뒤져봤다. 그러자 ‘반짝반짝 민머리가 참으로 문어 같네? 어 문어? 꿈에서 본 문어대가리다.’라는 과정을 거쳐 그와의 만남이 떠올라 반갑다는 듯 바라봤다. 그런데 수혁이 자신의 눈을 가리며 ‘대머리가 취향이었습니까. 그럼 저도 깎겠습니다.’라는 발언을 해 속으로 킥킥거리며 굴욕적인 김수혁의 모습을 인터넷에 널리널리 보급하고자 고개를 끄덕였다. 상상만으로도 완전 웃겼다.
“어, 형아. 로이는 민머리가 좋아. 빤짝빤짝 빛나서 예쁘잖아.”
“상철아. 너는 집에 가라. 철구야. 앞으로 로이 잘 모셔라.”
그녀는 그런 남자의 태도가 너무 재미있어 일부로 ‘안 돼. 나한테 상철 아저씨 주기로 했잖아.’라며 어리광을 부렸고, 수혁은 ‘김상철, 앞으로 방밖으로 한발자국도 나올 생각하지 마.’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어서 바리캉을 들고 오라며 제 보드가드들을 닦달하는데, 아주 바람직한 일이었다. 부산 영화제 개막작으로 푸른 소나타가 선정돼서 레드 카펫은 물론이고 무대 인사까지 해야 하니, 이제 김수혁은 민머리로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그의 리그인 일본에서도 미친놈 소리를 들을 테니 말이다.
한국의 브리트니 스피어스로 만들어주마.
로이는 켈켈켈 사악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선배로서 나는 후배에게 더 유명해질 기회를 준 거야. 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진짜 이 미친 후배가 영화 아저씨를 찍었다. 쭉하니 머리카락 사이로 면도날을 집어넣고 깎아내는데 머리카락 한 무더기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고, 마치 ‘지금 구하러 갈게. 꼬맹아.’하는 비장함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구해줘 놓고 또 저 혼자 멋있는 척 한다.
“………….”
그러고 보니 이 아저씨 핸드폰이 나랑 같은 기종이었지. 비밀 패턴도 똑같고, 내 사진도 왕창 있었어. 범인은 먼 곳에 있지 않았어.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네가 범인이다.
그녀는 또 다른 스토커를 피하기 위해 얼른 주안의 뒤에 숨어서 ‘형아, 빨리 도망가자.’라 했다. 그러자 그가 ‘………로이야, 수혁씨 무대 인사해야하는데 왜 그런 말 했어.’라며 자신을 책망했다. 설마 진짜 깎을 줄 몰랐지.
로이는 그와 속닥거리며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수정에게 손짓해서 오피스텔을 빠져나갈 것을 지시했는데, 남의 집에서 실컷 토하고 나온 더러운 민호가 눈치도 없이 ‘로이야, 괜찮아?’라 물어 shut up이라 해줬다. 그런데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저 형이 문제였다. 완전 병자 마냥 하얗게 질려서 비틀거리는데 눈 밑이 파랗게 질려 완전 청순미 포텐이 터졌다.
수혁이 제 머리를 다 밀고 자신을 바라봤다. 어깨에 떨어진 제 머리카락을 떨며 자신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듯 지그시 바라보는데 의뢰로 까까머리가 잘 어울려 미친 외모긴 하네 싶었다. 근데 왜 이렇게 정수리가 화려한지 모르겠다. 가까이 다가가 키가 멀대 같이 큰 배우에게 고개 좀 숙여보라고 하고 뭔가 확인해보니……….
“수혁님. 그럼 이만 소자는 영화제 준비를 위해 물러나 볼 터이니 부디 옥체 보존하시길 바랍니다.”
로이는 국어책 일기로 잽싸게 인사를 하고 열라 뛰었다. 정수리에서 검은 용이 하늘로 승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냥 조폭 문신이 아니라 마치 예술 작품 마냥 섬세하게 수가 놓아져 비늘 한 올 한 올 꿈틀거리는 장신 정신이 담겨 무려 예쁘기까지 했다.
“로이~, 잠시만요.”
자신을 애타게 부르며 그가 뒤에서 쫓아왔다. 후덜덜하게 무서웠다. 지금까지 자신이 개긴 남자가 사실 레벨 999의 마왕님이었다니. 흑룡의 후예는 가제트도 아니건만 긴 다리를 쭉쭉 뻗으며 달려와 자신을 붙잡았다.
“왜 그런가요?”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까. 흑룡님.
겁 많은 소녀는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마피아 삼합회인가. 아, 그건 중국 마피아이지. 그럼 일본은 뭐지? 아니, 너무 한국말을 잘하니 조폭인가? 야산을 그리 전력질주 하더니만 역시 사람 죽으러 뛰어다녀서 체력왕이었던 거였어? 그럼 지금은 어두운 과거를 털고 연예인으로 인생 재기한 건가?’ 등등의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 김수혁이 졸라 무섭다는 거였다.
로이는 오들오들 떨며 수혁이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걸 보고 질끈 눈을 감았다.
“……제가 무섭습니까?”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여지는 건 결코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머리를 만지려던 손을 떨구며 ‘전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요.’라 했다. 그, 그럼 죽이지는 않고 죽을 때까지 팼다는 거?
이제 보니 보디가드들이 아니라 저들은 조폭이었던 거다. 주안도 그의 흑룡이를 보고 자신을 보호한답시고 앞을 가로 막는데, 이 허벌라게 덩치 큰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아이 마냥 엉엉 울었다.
“나는 로이가 좋은데, 너무 너무 좋은데 안 되나요?”
어? 그런데 이 남자………. 쫌 많이 귀엽다.
로이는 까치발로 수혁의 룡룡이를 쓰다듬어줬다. 두 쌍의 용이 싸움질을 하는 게 어찌 보면 교미를 하는 것처럼 보여 엄청 섹시해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