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19화 (19/104)

00019  마피아는 싫어  =========================================================================

로이는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에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할리우드라 착각해 기겁하며 일어났다. 파파라치들은 호텔만 나서도 자신을 찍어 잡지에 팔아먹는 놈들이었다. 그녀는 성질을 팍 내며 짧은 미국 생활로 배운 유일한 영어 ‘Don't take a picture.’를 외쳤다. 그런데 지금 저 돼지 안경이 아무리 봐도 한국인 같지 않는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분명 차 안에서 자고 있었는데 왜 이상한데 와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벽면 가득 자신의 사진이 붙어져있어 소름만 돋을 뿐이었다. 대박 무서웠다. 전문 포토그래퍼도 아닌 주제에 그는 전문가용 DSLR카메라를 자신에게 바짝 드밀고 목덜미를 찍어댔다. 순간 너무 놀라 손으로 목을 가리자 단추가 4개나 풀러져 있었다. 로이는 벌어진 와이셔츠를 움켜잡고 속살을 가려냈다. 그러자 돼지 안경이 두툼한 손으로 자신의 뺨을 때렸다.

“지금 내가 사진 찍는 거 안보여?”

“………너 누구야.”

“누구? 어쩜 네가 그럴 수 있어. 하루 종일 네 뒤만 쫓아다녔는데 어떻게 날 모를 수 있냐고! 내가 준 초콜릿 팬 사인회 때 먹었잖아. 상자 예쁘다고 칭찬해줬으면서 벌써 잊었어? 아직 1년밖에 안됐는데. 편지 받는 거 좋아한다고 해서 꼬박꼬박 사랑한다고 편지 보낸 것도 벌써 6년째야. 앨범 나올 때마다 5개씩 샀는데 이런 날 몰라? 너 월드 투어 콘서트 다 쫓아다녔는데 이런 나를 모른다고!”

사생팬은 자신이 알아보지 못한다고 두 눈에 핏줄이 서서 광분하려 하고 있었다. 이에 스타는 웃으면서 ‘아아~, 형이 그 형이구나.’하며 아는 척 해줬다. 이런 위험인물은 최대한 성질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았다. 그런데 도대체 그 많은 사람들 중 자기를 알아봐 줄 거라는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뭔가 싶었다.

초콜릿 먹었다고? 그런 것쯤은 회사로 하루에 몇 박스씩 오고 있었다. 명품 가방이나 구두, 옷, 보석, 심지어는 돈을 넣은 여행 가방까지 오는 마당에 그런 사소한 것을 자신이 알 턱없었다. 선물들은 갖고 싶은 것만 선별해 나머지는 전부 기부하고 있었다. 그편이 이미지도 좋게 보이고, 그대로 다 받았다가는 팬 등골 빼먹는다는 욕을 처먹어 그랬다. 편지는 감성적인 아이돌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해 좋다고 한 거였다. 자신처럼 바쁜 스타가 일일이 읽어보고 있을리 없지 않는가. 그리고 그걸 팬들도 암묵적으로 알고 묵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알아봐주지 않는다고 이 납치범이 자신을 탓해댔다.

나는 이러이러했는데 왜 너는 이러이러해주지 않아, 라고 말이다. 바보 같긴. 원래 스타와 팬 관계는 그런 건데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너무 너무 고마웠어. 형. 로이도 잘 알지. 형이 준 초콜릿 너무 맛있었는걸.’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그러자 돼지 안경이 순종적으로 돌변해 ‘로이야, 내가 너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라는 미친 소리를 했다.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굳이 이런 놈의 사랑까지 받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그녀는 눈꼬리를 접어 화려한 미소로 그의 시선을 옭아맨 채 단추를 모두 잠가냈다.

“도대체 요즘 왜 그렇게 스캔들이 많아. 주안이랑 붙어먹었다는 둥, 김수혁이랑 놀아난다는 둥, 다 거짓말이지?”

“당연하지. 사장님은 민호 형이랑 사귀는 걸. 내 스타일리스트 알지?”

자신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니, 스토커가 그렇다고 답했다. 둘이 호텔 들어가는 거 확인해서 자신을 안 믿었단다. 로이는 그런 돼지의 말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기분을 거슬리지 않기 위해 ‘당신과 만나서 기뻐요.’라 말하는 듯 최대한 예쁘게 웃어보였다.

“그런데……너.”

그가 자신을 지그시 봤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잘도 젖꼭지를 공개했더라?’라며 자신의 가슴을 잡고 ‘여자애가 조심해야지. 그러면 쓰니?’라 했다. 로이는 하얗게 질려 납치범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엉덩이 걸음으로 침대에서 벗어나려 했다가, 뺨을 맞아 밑에 깔리게 되었다.

“자꾸 나 화나게 하지 마. 넌 엉덩이 무거운 년인데 사람들은 자꾸 널 갈보 취급하잖아. 그치, 로이? 너 남자 경험 없는 거 오빠는 알고 있어.”

로이는 남자의 말에 숨 쉬는 것도 멈추고 그 넙대대한 얼굴을 바라봤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뒷목덜미로 넘어간 손이 다시 단추를 푸르고 자신의 쇄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오빠도 처음이다.”

개, 개 더러워.

목이 없는 건 자신의 삼촌만으로 이미 이 지구상에 충분하다고 느꼈건만, 이 놈은 더 심각했다. 두 개로 접힌 턱과 얼굴 가득 돋아난 붉은 여드름 자국은 보는 것만으로도 토 쏠리는 얼굴이었다. 코는 옆으로 퍼져 콧대도 넙대대하고 콧구멍은 컸다. 입술은 두껍고 도대체 양치랑 가그린을 얼마나 해댔는지 입만 열면 독한 박하향이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냥 자신 위에 올라타 있는 것만으로도 돼지라 구린 땀 냄새가 진동을 해 미칠 것 같았다.

마치 연인을 바라보는 듯 그가 자신을 보며 점점 다가왔다. 로이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 흉측한 주둥이를 피해봤다. 그러다 좁은 오피스텔 안에 놓인 고양이 귀를 발견했다.

“잠깐! 타임!”

“뭐야. 꿍꿍이 쓰는 거면 이따가 너 개통시킬 때 좆 그냥 박아버린다. 오빠는 자상한 남자라 네 보지물 나오게 해주려고 약도 준비해뒀단 말이야.”

자신이 키스를 방해했다고 다시 흉포해지려는 납치범이었다. 로이는 얼른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기분 나쁜 성희롱 발언에도 ‘물론 나도 오빠랑 자고 싶은데 우리 재미난 놀이하자.’라며 고양이 귀를 쓰고 싶다 졸라댔다. 그러자 돼지 안경이 피식 웃으며 쿵쿵쿵 바닥이 울리게 걸어 책상 위에 놓여있던 머리띠를 가져왔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에게 고양이 귀를 씌워주고, 자신의 손을 울퉁불퉁한 기름진 제 얼굴에 문지르며 ‘하으으윽~’하는 변태 같은 신음소리를 냈다.

로이는 차라리 이 변태 스토커에게 이대로 당할 바에는 혀 깨물어 죽자 싶었다. 물론 그 전까지는 최대한 시간을 끌어 사장이 자신이 없어진 걸 알고 구하러 올 때까지 버티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감격에 차 ‘네가 드디어 내 것이 되다니. 네 예쁜 그곳을 잔뜩 핥아줄게.’라는 변태 발언을 하는 남자에게서 최근 보았던 네티즌 댓글이 떠올라 설마 했다.

어쨌든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봐온 팬이었다. 그건 어느 정도 그가 절제력을 가지고 있어 납치를 벌일 정도는 아니었다는 걸 뜻했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꾹꾹 눌러 담은 변태 심리를 누가 건드렸다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에라이, 어차피 내 인상은 이제 끝이야.’라며 우발적으로 납치를 해버린 것일 수도 있었다.

로이는 잘못된 팬심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찍기 위해 전문가 마냥 셔터를 누러대는 납치범에서 순수한 스타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벽지 대신 자신의 브로마이드와 사진을 붙여놓은 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기분 나쁜 아이돌 오타쿠였지만, 소녀 팬들도 그 정도는 하지 않는가.

“엎드려서 엉덩이를 이쪽으로 돌려봐. 그래, 고개는 날 보고.”

이제 아예 자신한테 포즈 지시까지 해댔다. 그나마 사진을 찍느라 이상한 짓을 하려했던 걸 잊어버린 것아 마음이 놓였다.

“야옹하고 울어봐.”

“야옹.”

어서 주안이 오기만을 바라며 돼지 안경이 시키는 대로 주먹을 쥔 채로 고양이 손등 핥기 포즈를 하고, 야옹야옹 울어댔다. 그런데 그 변태 놈이 갑자기 바지를 벗는 게 아닌가. 로이는 자신이 지금의 상황을 너무 만만히 봤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쉰내 나는 이불을 온몸에 돌돌 말고 침대와 벽이 맞붙은 구석으로 도망갔는데 정수리가 선반에 부딪쳐 올려다보자, 위에 카메라가 설치되어있었다.

씨발. 이거 충동 범죄가 아니라 완전 지능범이구만.

그래도 팬이라 좋게 좋게 포장해주려 했는데, 바닥에 앉아 제 페니스를 만지며 자위하는 남자를 더 이상 좋게 봐줄 수 없었다. 너무 징그럽고 더럽고, 무서웠다. 배는 남산만한 게 고추는 조그만 해서 손가락마저 지방이 달라붙어 특수 분장한 것만 같은 두툼한 손으로 만져대니, 다행히 성기는 큰 손 안에서 보이지 않지만 하얀 정액이 털북숭이 허벅지에 뿌려지며 지린내를 내뿜어 아주 끔찍했다.

로이는 구석에 붙어 오들오들 떨며 자위나 하고 나 같은 건 잊어버리라 열심히 기도했다. 눈물이 주룩주룩 나오고, 콧물도 흘러나왔지만 코를 훌쩍이면 자신한테 다시 관심을 보일까봐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린 채 조용히 숨 죽여 울었다.

“로이야, 오빠가 좋은 거 보여주잖아. 어서 나와.”

그런데 돼지 안경이 이불을 내리지 않으면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노라 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자 그가 제 오줌통을 만지던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음료수를 내밀었다. 수상해도 너무 수상한 게 박카스의 뚜껑이 이미 따져 있었다.

“마셔.”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가 자신의 볼을 눌러 억지로 입을 벌린 채 병을 디밀려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돼지의 머리통을 잡아다가 바닥에 던졌다. 눈물 때문에 흐릿한 시야에 키가 큰 검은 악마가 맺혔다가, 눈꺼풀을 깜빡여 안구를 닦아내자 수혁의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 그가 미친 듯이 주먹으로 납치범의 얼굴을 가격하고 있었다.

코뼈가 내려앉았는지 코피가 흘러나오는 돼지의 낮은 코가 아예 납작해져버렸다. 그런데 그는 킬킬킬 웃으며 자신을 바라봤다. 그리고 깨진 안경알에 맺힌 그 집착어린 눈빛에 자신이 얼어붙자 수혁이 또 주먹을 날렸고, 고개가 옆으로 돌아간 납치범은 피에 젖은 이빨을 토해냈다.

“흑…흑. 엄마.”

자신의 작은 흐느낌에 수혁의 어깨가 크게 움찔거렸다. 그는 납치범의 위에서 일어나 울먹이는 자신을 꼭 끌어안아줬다.

“이제 괜찮아요. 로이. 이제 괜찮아.”

천천히 등을 쓸어주며 돼지 놈이 자신의 뒷목을 쓰다듬었던 것처럼 머리통을 만져주었다. 하지만 그가 해주는 거는 전혀 불쾌하지 않고 안심이 됐다. 그녀는 부드러운 손길에 안도감을 되찾고 겁에 질려 내지 못했던 울음소리를 크게 냈다.

“엉엉엉. 이 바보야 왜 이제 왔어.”

괜히 수혁에게 화풀이하며 등짝을 때렸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에게 화내지 않고 ‘늦게 와서 미안해.’라 작게 속삭였다. 넓은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울었을까,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돼 고개를 들자 방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파랗게 질린 주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방안은 물론 복도까지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가득 서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역시 스타는 보디가드를 데리고 다녀야하나 보다.

“훌쩍. 지금 몇 시야.”

“2시 정도 됐습니다.”

다행히 영화제에는 늦지 않을 듯싶었다. 로이는 자신을 공주님처럼 안아든 남자의 목에 팔을 감고 앞으로는 늙은 후배에게 잘해줘야겠다 싶었다. 이렇게 착한 사람을 게이로 몰아 추락시키려하다니, 그러니 이렇게 벌을 받은 것이리라.

그녀는 나를 구해줘 고맙다, 수혁의 뺨에 뽀뽀를 쪽 해줬다. 그러자 멀쩡히 걸던 그가 다리가 꼬여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자신을 떨어트리지 않은 대견함을 보였다. 선배는 그런 후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잘했노라 칭찬해줬다. 그러자 어딘가 바보 같이 얼굴로 풀어진 미남자가 돼지의 배를 밟고 지나갔다.

“꾸엑!”

수혁에게 밟힌 납치범이 짧은 비명과 함께 배를 움켜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아주 쌤통이었다. 로이는 왜 이렇게 자신의 마음에 드는 짓만 골라할까, 수혁을 바라봤는데 덩치 큰 떡대들이 ‘도련님, 어떻게 처리할까요?’라 합창을 하자 다정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사람들 죽이러 온 냉엄한 사신만이 있어 살짝 쫄았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やっつけろ.’라 했다. 한국말을 너무 잘해 자꾸 잊게 되는데 과연 일본인다웠다. 그래도 콘서트를 위해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뭔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말이다. 이게 본토 발음이지 싶다.

그녀는 잠시 후배에게 내려달라고 하고, 몸을 감추고 있던 쩐내 나는 이불을 돼지 위에 덮어줬다. 그리고 자신에게 먹이려 했던 박카스를 피가 칠갑된 납치범의 주둥이에 부어줬다.

“아저씨들. 이거 이상해져도 절대 병원에 데려다 주면 안 돼요.”

“예, 아ㄱ….”

그런데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떡 벌어진 어깨를 자신에게 보이던 수혁의 보디가드들이 자신보고 아, 라 외치더니 뒷말을 삼켰다.

“어? 설마 내 이름 몰라요? 나 대빵 유명한 데.”

자신이 그렇지 않냐 수혁에게 동의를 구하기 위해 뒤돌아보자, 검지로 입술을 가리고 있던 그가 얼른 손을 내렸다.

“뭐야? 완전 이상해. 뭐 나 속이고 있는 건 아니지?”

“하하하. 뭘 말입니까. 로이? 저의 보디가드들이 혹시 조폭 같다는 오해를 한 건 아니겠지요?”

수혁은 그녀가 한 인터뷰 중 ‘조폭 영화가 싫다. 폭력을 합리화 시키는 것 같아 보기 불편하다. 그들은 악일 뿐, 결코 영화 속 멋진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걸 보고 어린 관객들이 조폭을 우상시할지도 모르니 말이다.’라는 소신 발언으로 한동안 한국 영화계에 들끓었던 조폭 영화 흥행 열풍을 한순간에 잠재웠던 걸 떠올렸다.

“아. 미안. 약간 예민해졌나봐. 날 구해준 분들인데 그런 나쁜 존재일리 없지.”

“……………예. 로이. 저들의 선량한 시민입니다.”

그는 자신의 발언에 떨떠름한 표정을 바라보는 사내들에게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 약기운을 돌았는지 이불 안에서 헉헉거리는 돼지를 차마 선량한 시민들은 팰 수 없어 도련님이 사랑하는 아가씨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언젠가는 자신들을 솔직하게 소개해주겠지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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