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18화 (18/104)

00018  마피아는 싫어  =========================================================================

다시 하얀 슈트로 갈아입은 로이는 의상에 맞춰 백구두를 신었다. 촌스러울까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창백한 안색에 맞춰 ‘나는 뱀파이어다.’라 암시를 거니 참 멋지구리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자신이 신발장에 붙은 전신 거울에 이리저리 살펴보고, 돌아보며 이 예쁜 미소녀는 누구? 로이 테일러! 하는데 왜 거울 속에는 야시시하게 생긴 건장한 청년 하나가 서 있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괜히 멀쩡히 운동화를 신던 매니저를 갈구며 집을 나섰다. 그러자 문 앞에서 죽치고 있는 자신의 사상팬들이 ‘오빠 부산가요?’라며 말을 걸어, 스타는 투명하게 답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음료수를 나눠주며 친절했던 이와 동일 인물이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할 태도였다.

“어. 그러니깐 너희 어서 가.”

“에휴~ 우리 로이 오빠는 하루에도 기분이 수십 번 바뀐다니깐.”

소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를 툭툭 털며 오빠가 기쁠만한 소식을 들려주겠노라 하였다. 지금 유투브에서 루시퍼가 2억 뷰가 넘었다고 했다. 그거 참 고마운 소식이었다. 사라는 음원이랑 CD는 안 사고, 공짜로 노래 들어주니 말이다.

그러다 로이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은 그걸 확인 못 했으니 보고싶다 말하면……. 아이돌은 삐딱하게 서서 사장에게 확인해보게 폰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주안이 직접 검색해 액정을 보여줬다. 봤으니깐 됐냐 한다.

“씨이~, 어서 돌려줘.”

“안 돼. 너 그러다 쓰러진다. 이동할 때 잠이나 자.”

물론 잘 거지만 그래도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했다. 인터넷으로 어떤 기사가 나왔는지 확인도 해봐야하고, 이제 김수혁 안티 활동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방해하면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로이는 차 문을 열고 거칠게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팬들이 그런 자신보고 귀엽단다.

그녀는 창문을 내려 성질내는 게 그렇게 귀여우면 어디 제대로 한번 성질내줄까, 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가 곧바로 후회했다. 아이돌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이니 말이다. 금발의 스타는 그녀들의 눈치를 보며 창문에 매달려 미안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화내서 미안해.……나 미워하면 안 돼. 알았지?”

“으으으윽~ 오랜만에 등장한 츤데레 로이라니. 짱이다.”

그런데 무섭게도 남팬들이 그런 자신에게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가 소녀들에게 발차기를 당했다. 무려 이단 옆차기였다. 하늘을 날았다.

“이 씨방새끼들이. 우리 승냥이 규칙 몰라? 절대 오빠가 접근하기 전에 스킨십이란 없다. 간이 배때기에서 뛰어나왔지? 육시럴 것들이, 확 갔다가 내장으로 줄넘기를 해버릴까 보다.”

“오빠. 많이 무서웠죠?”

방금 전까지 무서운 언니 포스로 길바닥에 침을 딱 뱉으며 짝다리를 흔들어대던 그녀들이 자신에게는 상냥한 소녀들로 돌아와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다고 했다. 이에 자신이 방금 전 대박 무서운 존재들에게 성질을 냈다는 걸 깨달은 로이는 오들오들 떨며 공손히 인사를 하고 창문을 올렸다.

누님들 살펴가세요.

“형, 빨리 출발해. 빨리.”

자신의 다급한 외침에 운전기사는 급발진을 해서 속력을 붙였다. 그러면서 주안이 ‘너도 봤지? 니 팬들 짱 무서워. 나 걔들한테 맞아서 죽는 줄 알았다고.’라 엄살을 부렸다. 수정은 그런 동생에게 그럼 맞아 뒤지지 왜 살아 돌아왔냐며 빈정거렸지만, 평소라면 깔깔거리며 주안 몰이에 동참했을 로이는 이게 말로만 듣던 불량학생이나 싶어 복잡한 머릿속 때문에 그를 같이 골려줄 수 없었다. 자신이야 학교를 잘 안 가 모르지만 방송을 보면 같은 반 친구를 때리고 욕하고 고문하고 돈 뺐고 결국 자살하게까지 하는 게 바로 그들 아닌가.

그녀는 혹시 자신이 게이설을 잠재우기 위해 리나와의 연애설을 터트리면 방금 전 무서운 언니들에게 친구가 왕따 당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형아. 만약에 내가 연애설 나돌면 팬들이 화낼까?”

“키키키. 괜찮아. 괜찮아. 너랑 나랑 사귄다는 거 아무도 안 믿어. 승냥이들이야 널 꽃수로 만드는 게 취미라 그런 거뿐이야.”

이 게이가 미친 모양이었다. 왜 자신이 저랑 엮는다 말인가. 물론 어제 말도 안 되게 사장과의 연애설이 검색어 순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그거야 자신이 컴백해서 쏟아져 나온 거지, 아저씨주제에 누굴 넘본단 말인가. 이양 나이 많은 아저씨랑 연애설 날 거면 비주얼적으로 우수한 김수혁이랑 나는 게 나았다.

로이는 개조한 뒷좌석 시트를 펴 침대로 만들고 누웠다. 그리고 안에 비취해둔 곰인형을 끌어안고 눈을 붙이려고 하자, 민호가 옷 구김 간다고 당장 일어나라고 했다.

“아. 씨. 나 졸리다고. 그럼 폰이나 줘. 게임하고 놀게.”

“로이야, 그냥 앉아서 자면 되니깐 목에 베게 두르고 자. 지금 다른 여배우들은 목 베게도 못하고 자는 데 넌 그에 비하면 무지 편하게 자는 거잖아.”

자신의 스타일리스트는 스타의 건강 보다 옷의 상태가 더 중요한 모양이었다.

“백민호. 너 내려서 부산까지 걸어와.”

“야, 미쳤어? 거기가 어디라고 걸어오래.”

주안이 룸미러로 자신을 째려봤다. 흥. 그런다고 무서울 자신이 아니었다.

“그럼 내가 걸어갈까? 나 내려?”

“………………………로이야, 민호가 너 예쁘게 사진 찍히라고 한 말이잖아.”

“됐어. 형. 쟤가 억지 부리는 게 하루 이틀인가. 차 세워. 택시타고 갈게. 물론 법인 카드로 긁는다.”

사장은 차마 33만원이 아까워 KTX를 타고 오라 할 수 없었다. 그가 누구란 말인가. 분명 거리의 부랑자를 주워왔다고 했는데 고이 자랐지만 잡식성인 로이 테일러와 정반대로 이것저것 따지고 고급 한정식 집에서만 밥을 먹는, 방은 호텔 스위트룸이 아니면 안 들어가겠다고 하는, 꽃거지계의 된장남 아닌가. 물론 민호가 거지꼴로 방랑하고 다닌 게 사실 사치를 부리다 그리 된 거라 생각될 정도로, 그는 명품의 도사라 스타일리스트로서 아주 훌륭하게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주안은 민호의 얼굴을 눈이 풀려 바라봤다. 우선 짱 귀엽지 않는가. 로이가 도도한 고양이라면 그는 순둥이 강아지처럼 생겼다. 물론 생긴 것만.

운전수는 한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다른 손은 조수석으로 뻗어 민호의 가랑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었다.

“김 게이. 백 게이. 나도 있다.”

로이는 목소리를 최대한 내리깔고 자신은 뒷전이고 핑크빛 기류가 흐르는 앞좌석을 발로 뻥 차줬다.

“아 쫌! 왜 자꾸 내 앞에서 게이게이하는 거야. 그러니깐 멀쩡한 나까지 싸잡아 게이로 취급받는 거 아니야. 누나도 한 마디 해.”

“동생아. 너 발정난 짐승처럼 차안에서 뒹굴면 내가 잘 보고 감상 말해줄게.”

“끄응~.”

절대 두 여자들에게 이길 수 없는 주안은 징징거리며 의자를 차대는 로이 보고 그냥 처자라고 했다.

“형! 그럼 옷 구겨진단 말이야.”

이에 스타일리스트가 반발하였지만, 로이야 제일 마지막에 등장할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니 근처 호텔에 머물고 있다가 가는 거라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옷이야 다시 다림질해 입으면 되는 거니, 그녀를 재우는 게 모두를 위해 좋을 듯싶어 결정한 거였다. 마냥 주안이라고 생각 없는 건 아니었다.

덕분에 그들은 쥐죽은 듯 조용히 잠든 아이돌로 인해 잠시나마 평화를 맞이할 수 있었다. 입만 다물면 그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천사인데, 고 놈의 혓바닥에 가시가 박혀있어 입만 열면 사람 아프게 하는 게 완전 현실로 튀어나온 악플러 로이뒈져였다. 작은 소악마가 새근새근 숨을 골랐다. 어찌나 잘 자는지 그 모습을 보는 주안마저 졸음이 몰려왔다.

소속사 사장이자, 매니저이자, 운전기사는 몸은 하나인데 역할은 세 개라 상당히 힘든 상태였다. 그는 하품을 하며 흐릿해지는 시야를 또렷하게 하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이렇게 일찍부터 가지 않아도 되는데 일부로 늦게 카펫을 밟는 것과 지각해서 밟는 것이 엄연히 다르다 주장하는 스타로 인해 졸지에 자신만 잠 못 자고 죽어나는 거였다. 어느새 수정도 고개를 꾸벅꾸벅 흔들며 잠이 들었고, 민호는 자신의 핸드폰을 만지며 어플들을 지우고 있었다.

“뭘 그렇게 지워.”

“로이가 형 폰에 성인 어플 쫙 깔아놔서 그거 지우는 중. 그런데 피곤하지 않아? 내가 운전 교대해줄까?”

“됐어. 우리 여왕님한테 그런 거 시킬 수 없지. 대신 볼에 뽀뽀나 해줘라.”

주안은 민호에게 오른쪽 뺨을 내밀었고, 가방도 안 사줬는데 뽀뽀를 받을 수 있었다. 이거 참 로이한테 고맙다고 해야할 듯싶었다. 민호 딴에는 자신을 버리고 가지 않은 것에 대한 나름 고마움의 표시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운전기사는 모두가 잠들어버리고 난 후에도 묵묵히 운전을 해 부산을 도착하기 100km 앞두고 휴게소에 잠시 들리게 되었다.

“자, 모두 일어나. 화장실도 가고 아점 좀 먹자.”

제일 먼저 밥 이야기에 눈을 뜬 것은 수정이었고, 민호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억지로 눈을 떠 ‘커피 사줘.’라 했다. 그는 자신에게 ‘카라멜마키아또에 샷 추가해서 아주 뜨겁게, 우유는 무지방으로.’라는 주문을 했다. 그래서 무슨 휴게소 커피집이 스타벅스도 아니고 그냥 주는 대로 마시라하니 그럼 안 마시겠단다. 주안은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구나, 그래서 지금 이렇게 노예처럼 사는 거겠지 싶었다.

“왜 그래, 민호야. 한번 그렇게 주문되나 물어봐 볼게.”

“됐어. 안 마셔. 형 나 버리고 갈려고 했잖아. 내가 모를 줄 알고? 택시비 아까워서 안 내려준 거 알아.”

“아니야. 내가 어떻게 널 버리고 가.”

“몰라. 망설였잖아. 왜 바로 대답 안한 거야.”

분명 자신에게 뽀뽀해준 게 그렇지 않아 고맙다는 의미로 한 것이면서 커피 한잔 자신이 거절했다고 괜한 짜증이었다. 주안은 얼른 차에서 내려 카페에 달려가 민호가 원하는 대로 주문을 넣었는데, 우유가 무지방이 없다고 해 편의점에서 직접 사와 웃돈을 얹어주고 시켜야만 했다. 그렇게 시종 노릇이 몸에 밴 사장은 쀼루퉁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은 연인에게 커피를 갖다 바쳤다. 어리고 예쁜 거 사귀려면 이렇게 힘든 거였다. 그런 자신의 행동에 누나가 ‘이 호구새끼야, 간이랑 쓸게도 빼서 여우한테 받쳐라.’라며 빈정거렸다.

“남의 섹스 라이프에 상관 마시고, 남친 좀 사겨. 노처녀라 갈수록 성질만 나빠지잖아. 여자 나이 서른다섯이면 끝난 거 아닌가. 누나 갱년기지?”

“이! 이! 이! 아직 서른네 살이야. 생일 안 지났다고. 그리고 동안이라 다들 이십대로 본 단 말이야.”

“예에~ 예에~ 알겠습니다요. 얼른 로이나 깨워. 애 화장실 한번 보내줘야지.”

수정은 아직 서른 네이란 말이야, 하며 죽은 듯이 잠든 자신의 스타를 흔들어 깨웠다.

“로이야, 일어나. 밥 먹자.”

“…………….”

“과자 사줄게.”

“초콜릿 사줄게.”

“피자 사줄게.”

그런데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순간적으로 ‘내가 볼을 꼬집으면 일어날까? 하지만 그럼 화장이 망가지겠지.’ 싶어 등짝을 찰싹찰싹 때리며 깨웠다. 하지만 절대 일어나지 않는 로이였다. 어쩐지 요즘 무리한다 싶었다.

“로이 안 일어난다. 우리끼리 먼저 밥 먹고 오자. 나 배고파 죽겠다.”

“자기 빼고 뭐 먹었다는 거 알면 애 난리나. 어서 다시 깨워봐.”

“내가 등짝을 얼마나 때렸는데, 완전 뻗었어. 김밥이나 먹여.”

김 오누이는 로이에 대한 의견으로 잠시 마찰이 빗었으나, 2대 1로 결국 자신들끼리 식사를 하게 되었다. 민호에게 괜한 성질만 내지 않았어도 같이 밥을 먹었을 그녀였다.

물론 그들이라고 마음 편히 먹은 것도 아니었다. 매니저는 차 안에 혼자 두고 온 연예인이 걱정돼 빨리 먹고 가게 컵라면으로 메뉴를 통일시켰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12시간 넘게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지라 허기 달래기가 급급해 어느새 유리문 너머로 향하던 시선을 아래로만 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라면 면발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후다닥 먹고 나온 로이 테일러의 스텝들은 너무 허전한 주차장에서 자신들의 카니발 리무진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잘 찾아봐. 주안아. 너 어따 주차해뒀어.”

“식당에서 잘 보이게 세워뒀단 말이야. 여기라고. 바로 여기!”

소속사 사장은 갑자기 사라져버린 차와 연예인으로 인해 패닉에 빠져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처음 보는 민호와 수정은 안전부절 못하며 어서 경찰에 신고하자며 핸드폰을 찾았다가, 차안에 놔두고 왔음을 깨달았다.

“너 폰 가지고 나왔지?”

“어.”

스타일리스트의 질문에 매니저는 이상할 정도로 담담히 대답해냈다. 그런데 그는 가만히 있을 뿐 신고를 안 하는 것이다.

“형, 빨리 신고해요. 지금 로이가 납치당했다고요.”

“씨발. 아아악! 씨발!”

그러다 주안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로이꺼라 비밀 패턴 몰라.”

“그럼 공중전화. 아니 다른 사람들 폰 빌리면 되지. 김주안 일어나. 지금 바보 같이 무슨 짓이야. 우리 밥 먹는데 10분도 안 지났어. 반드시 찾을 수 있어.”

그래도 누나라고 제정신이 아닌 동생을 추스르는 수정이었다. 그런데 같은 색, 같은 기종의 리무진이 다시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제빨리 뛰어 멈춰선 차의 범퍼 위로 올라탔다.

“야, 이 미친년아. 뒈지고 싶어 환장했냐.”

검게 썬팅된 창문이 내려오고 운전석 자리에서 험악하게 생긴 대머리가 욕을 퍼부어댔다.

“이 납치범아. 어서 우리 로이 내놔!”

“………수정 누나. 차 번호가 다르잖아요.”

민호는 실성을 한 주안을 대신해 그녀를 말렸다. 그러자 뒷문을 열리며 깔끔한 정장 바지를 입은 긴 다리가 보이고, 그 다음 수려한 외모의 얼굴이 보였으며,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 나와 자신들 앞에 멈춰 섰다. 김수혁이었다.

“무슨 일이지 자세히 말씀해보시죠.”

“………아.”

수정은 연예인이라고 하기에는 공포감마저 드는 수혁의 포스에 잠시 질려 있다가, 얼른 정신을 차려냈다.

“로이가 납치됐어요. 잠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가 사라졌는데 다들 핸드폰을 놔두고 나와서.”

“Reve가 연예인 관리를 엉망으로 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 몰랐군. 로이 테일러 같은 스타를 혼자 둔다고? 그래놓고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수혁은 경멸의 시선으로 그녀의 소속사 사람들을 노려보며 바지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나다. 지금 당장 로이 핸드폰 위치 추적해.”

“저……. 통화 중 죄송하지만 그 폰이 여기 있는데….”

주안은 혼절하기 직전이고, 처음에는 당차게 행동했던 수정마저 엉엉 울고 있어 유일하게 멀쩡한 민호가 바닥에 널브러진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켜줬다. 그러자 브라운 관 속 온화한 배우이자 CF호감도 1등의 김수혁과 같은 얼굴의 낯선 남자가 ‘로이 폰을 왜 네가 가지고 있어, 이 멍청아.’라며 매니저의 멱살을 잡아 올려 아스팔트 위로 던져버렸다.

그 후 그는 다시 수화기를 들어 잠시 멈췄던 통화를 이어나갔다.

“차 번호 13 로 79**. 나랑 같은 차종이다. 애들 풀어서 당장 추적해. 휴게소에서 방금 출발했어. 아직 고속도로일 거다. 납치범이 내 여자 데리고 도주 중이니 못 찾아내면 너희가 죽는다.”

부하들에게 명령을 하달한 수혁은 거칠게 시상식을 위해 세팅해놓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가, 이 습관은 로이 습관인데 싶어 눈물을 똑 떨어트렸다. 그리고 차 안에 있던 상철과 상민, 철구는 그런 도련님의 모습을 처음 봐 두려움에 떨었다. 어찌나 두 눈을 희번득하게 뜨고 독기어린 눈물을 흘려내는지, 어찌 저런 남자를 사람들이 연예인으로 볼까 싶었다. 자신들이 보기에는 딱 조직 보스인데 말이다. 물론 아가씨의 아드님이 제 어미를 닮아 참으로 곱지만 그 아름다움에 이끌려 다가가기에 그의 정체는 너무 살벌했다. 김수혁은 일본 최대의 야쿠자 야마구치와 한국 조폭계의 큰손 김문중의 딸 김연희가 만나 태어난 하나뿐인 외동아들로서, 조폭계가 만들어낸 한일합작 최고의 걸작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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