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17화 (17/104)

00017  어른이 될 테야  =========================================================================

코드 A. 그 프로젝트가 처음 발동된 것은 자신이 17살 때 케빈 클라인 화보를 찍은 지 반년 뒤였다. 단 한 장의 사진이 그렇게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킬지는 자신도 몰랐다. 그저 단순히 하얀 와이셔츠 한 장을 걸치고 단추는 3개 정도 푼 채 바닥에 엎드려 사진기를 응시하는 구도였다. 물론 상의 안에 팬티를 입고 있었음으로 그렇게 야한 화보는 아니었다 생각했다. 그런데 할리우드 가십 방송에서는 자신의 엉덩이를 백만 불짜리라며 삼각팬티 밑으로 삐져나온 굴곡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문제는 갑작스럽게 한국의 꼬마가 너무 세계적으로 유명해져버렸다는 거였다. 엄마는 이제 할리우드 스타가 되는 거라며 자신을 미국 호텔에 처박아놓고 되지도 않는 영어 공부를 시켜댔고, 당근 자신은 생긴 거는 영략 없이 백인이건만 그들의 언어를 전혀 따라하지 못했다. 너무나 공평한 신은 내가 너에게 미모를 줬으니 머리는 없어도 되는 거라며 돌 머리로 만들어버린 모양이었다. 뭐 애초에 한 번도 학교에서 제대로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한국 연예계 아역의 실태란 그런 거였다.

그렇게 사람들과 아무런 대화도 못한 채 자신을 찍기 위해 24시간 사생활을 침범해대는 파파라치 때문에 그 시절의 자신은 방송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이 많이 나약해져있었다. 하지만 그걸 이해해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섹시 로이~’라 환호성을 지르며 세계적인 섹시 심볼이라 추앙해댔다.

보통 어린 아이가 아니야, 저 눈빛을 봐. 저렇게 깊은 코발트블루로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살짝 벌어진 허벅지 안쪽을 봤니? 그 귀여운 발바닥은? 손끝을 봐. 무언가를 말하고 있어. 목덜미에 흐트러진 눈부신 허니 브론즈는 마치 아폴론의 머리카락 같군. 완벽한 미소년이야. 더, 더 섹시하게 해봐. 노출 좀 해. 그 야한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라고.

모두들 자신을 그런 식으로 바라봤다. 가끔 그들의 요구가 무서워 촬영을 하다 엄마의 품으로 달려들면 그녀는 자신을 떨쳐내며 ‘모두 네가 예뻐서 좋아해주잖니. 로이, 어서 가. 감독님을 기다리게 하지 마.’라 다그쳤다.

하지만, 하지만 엄마. 나 무서워. 꼭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단 말이야.

슬금슬금 피부 위를 핥듯 움직이는 사람들의 눈빛이 ‘너 이미 해봤지? 도대체 얼마나 놀아본 거니?’라 묻고 있었다. 할리우드는 키스에 수천달러를 지불하지만 영혼에는 50센트만 지불하려는 곳이었다. 이미 자신 이전에 마릴린 먼로가 그 과정을 거쳐 갔고 로이 테일러 또한 온전한 배우, 가수, 진정한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으나 섹시한 이미지 때문에 들어오는 배역은 죄다 여자를 유혹하는 매혹적인 뱀파이어거나, 섹스를 즐기는 타락한 십대 청소년역이어서 선배의 전처를 밟지 않기 위해 출연을 거절해야만 했다.

엄마는 그런 자신에게 배불렀다고 했지만, 하루도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언론 때문에 마음 편이 잠들 날도 없었고, 경호원들은 호텔 방만 나가려해도 어딜 가시는 거냐며 귀찮다는 눈으로 그만 빨빨거리라 말하는 것 같아 나갈 수도 없었다. 결국 자신은 이렇다 할 뚜렷한 활동 없이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고 사람들은 자국으로 돌아온 스타에게 할리우드 최고의 섹시 스타라 칭찬해줬다.

잘했어. 잘했어. 로이. 정말 최고야.

그런데 우리 세미 누드 찍어볼까? 아주 반응이 좋을 거야. 리바이스 청바지만 입고 네가 원하는 대로 누워있어. 그럼 모두가 널 더 좋아할 거야.

포토 그래퍼들이 자신에게 또 다른 케빈 클라인 같은 화보를 찍으라 하는데, 이전의 노출 보다 더 강렬해야한다며 압박을 넣어댔다. 그리고 자신이 찍는 어느 광고에서든 그건 마찬가지였다. ‘벗는 게 그렇게 어렵나?’라는 식으로 어서 벗으라 해댔다. 도시의 전광판에는 자신이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손가락을 빠는 사진들이 걸려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다른 상황을 연상하였다.

싫어요! 그 한 마디를 할 수 없어 혼자 꾹꾹 참다 결국 소속사에 말도 없이 혼자 도시 한복판을 걸어봤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데 혼자 있는 게 처음이어서 막상 자유를 얻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목도리를 칭칭 둘러맨 다음, 마스크를 쓰니 아무도 로이 테일러를 알아보지 못한 채 무심하게 걸어 다녔다. 그래서 노래를 불러봤다.

나는 더 이상 철없는 소년이 아니에요.

누나만 좋다면 저도 좋아요.

어젯밤 침대에 누워 우리의 첫만남을 떠올렸어요.

당신은 참 예뻤죠. 그리고 난 참 어렸고.

하지만 우리 느꼈죠.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아직 발표하지 신곡이었는데, 사람들은 관심도 없는지 그냥 지나쳐갔다. 가끔 힐끗 쳐다보기는 했지만 자신이 로이라는 걸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노래하는 동안 팬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 게 아니라 살짝 눈웃음치는 매력적인 얼굴과 섹시한 동작을 하는 몸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늘에서 조금씩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아스팔트에 작은 눈송이가 내려앉았다가 녹아 없어졌다. 고개를 떨어트리고 사라져가는 ‘나’를 바라보고 있자 어떤 남자 하나가 버스 정류장 광고판을 보며 구시렁거렸다.

“아, 세상이 말세야. 말세. 도대체 애새끼가 못하는 짓이 없어.”

뭐가요? 제가 뭘 그리 잘못했나요? 그냥 짧은 반바지를 입고 하얀 스웨터를 걸쳤죠. 반투명한 흰색 스타킹을 신었고요. 그리고 전 의자 위에서 한쪽 다리를 접어 제 허벅지 안을 보여줬어요. 광고 시안이 그렇게 나왔거든요. 어른들이 그렇게 하라고 했단 말이에요.

하지만 자신은 목도리를 코까지 끌어올려 얼굴을 가렸을 뿐이었다. 차가운 눈은 하늘에 있을 때는 예쁜데 바닥에 떨어지면 더럽고, 싫은 것이 되니 말이다.

“저기 너. 혹시 연예인이 될 생각 있니? 아까 들었는데 노래 진짜 잘 부르더라.”

요즘 세상에 누가 길거리 캐스팅을 하나 싶었다. 그것도 한국 최고의 아이돌을 상대로 말이다. 어리숙한 남자다 싶어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싫다 자리를 피하니, 그가 자신의 뒤를 졸졸 쫓아와 명암을 쥐어줬다.

Reve 앤터테이먼트 대표 김주안.

듣도 보도 못한 기획사라 길에다 버려버렸다. 그러자 주안이 큰 소리로 ‘널 스타로 만들어줄게.’라 외쳤다. 너무 웃겨 잠시 허리를 접고 하하하 웃었다. 하하하. 하하하. 너무 웃겨. 네까짓 게 날 스타로 만들어준데. 그래서 목도리를 풀러 얼굴을 보여줬다.

“이봐, 아저씨. 나 알지? 그럼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

“……어? 로이?”

“그래 내가 그 로이 테일러야.”

“하지만 아까 진짜 노래 잘했는데…….”

주안은 자신을 얼빠진 얼굴로 바라봤다. 로이 테일러가 노래 잘하는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1등만 주구장창해대는 가수인데 말이다. 하지만 왜 그걸 몰랐냐 따지진 않았다. 그건 그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러하니깐, 그냥 뒤돌아 걸었다. 그런데 그가 뛰어와 자신을 다시 불러 세웠다.

“잠깐만! 그럼 너 스타 말고 태양해라. 별은 자신을 빛내기 위해 몸을 태워야하니깐 아프잖아. 금방 사라지고. 내가 너 태양으로 만들어줄게. 언제 어디서 보든 빛나는 존재로.”

가지 거는 쥐뿔도 없는 주제에 자신만만하게 호언장담하는 남자는 소속사 사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얼굴은 반반한데 그렇다고 톱스타가 될 재목이 아니라 연예인 사업을 하나 싶은 못 미더운 존재였다. 게다가 요령도 없어 보여 성공하기는 글렀다는 느낌이 왔다. 그 정도 안목은 베테랑 아역에게도 있었다. 그런데 주안의 마지막 대사가 자신을 함락시켰다.

“너 이렇게 끝나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사실 노래 무지 잘하는데 말이야.”

그 말에 깨달았다. 위에 있는데, 누구보다도 위에서 사랑받는데 그건 자신의 밑바닥을 거꾸로 봐서 그런 거였음을. 잘나가는 스타는 급속도록 추락할 일만 남은 거였다. 별이 빛나는 것은 죽을 때가 되었다는 의미, 그래서 자신 같은 존재를 스타라 부르는 거였다. 가장 빛나는 순간이 그들의 마지막이라 그 뒤는 추락 속도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걸 지금 알았냐? 이 병신아?”

엉엉 울었다. 무서워서. 다들 나만 좋다는데 그 사랑이 허상이라 붙잡을 수 없고, 아직 시작도 안한 것 같은데 ‘이미 너는 최고다.’ 하여 불안했다. 그래서 얼굴밖에 모르는 남자를 껴안고, 그 사람이 사기꾼인지도 모르는데 그 품에 안겨 안심한 채 그 어디에서도 내보일 수 없었던 눈물을 흘려냈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보다 모르는 그가 진짜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해주는 것 같았으니깐.

물론 기존 소속사와 계약을 해지하고 다 무너져 가는 Reve의 사무실에 기어들어갔을 때는 이제 끝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자신이 17년 동안 찾지 못했던 웃음이 있었다. 주안은 바보 멍텅구리이니 말이다.

“로이 테일러의 이미지 변신을 위한 코드 A 발동!”

처음 그 말을 듣고 무슨 개소리냐 황당해서 쳐다보자, 그는 웃으며 abstinence(금욕)이라 했다. 네 팬들은 너무 과도하게 너를 과식한 것뿐이니깐 네가 절식시켜 다시 제정상적으로 돌려놓으라고 말이다.

로이는 메이크업 수정이 끝났다는 소리에 눈을 떴다. 거울 속 자신은 창백한 피부의 색이 죽은 입술과 눈 밑이 파래 병자 같았다. 일명 청순가련이라 하고 아파서 죽을 것 같아, 라 부르는 꾀병 화장이었다.

목까지 단추를 다 채우고 살짝 눈빛을 죽여 봤다. 입술은 꾹 다물고 고집 있어 보이는 모범생 타입을 연기하자, 그나마 색기가 많이 눌러 담기긴 했는데 간간히 자신이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찰나가 너무 야해보였다.

“헐~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로이야, 너 지금 존나 야해.”

이 코드 A를 만든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 싶었다. 그런데 왜 2년 전에는 가능했던 버전이 지금은 안 되나 자신도 의문이었다. 은은한 우아함이 담긴 몸짓은 자신이 보기에도 전혀 노출이 없는데 상상력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래서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답이 안 나왔다.

“안되겠다. 로이 네가 아직 미성년자라는 걸 어필해야겠어.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봐.”

로이는 수정의 말에 좋은 생각이 다 싶어 하얀 와이셔츠와 감색 바지를 입고 나왔다. 그런데 반응이 영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자켓을 입혀 최대한 몸 실루엣이 보이지 않도록 꽁꽁 감싸매줬다.

“………저기 내 뇌에는 똥만 들어나 봐. 그런 거지?”

그런 누나의 말에 동생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학생회장이 있었으면 내가 매일 학교 갔을 텐데.”

그러면서 주안이 자신을 넋 놓고 바라보며 ‘회장님, 저 복장 불량이니 처벌해주세요.’라 변태소리를 해대 민호가 그의 정강이를 뻥 차버렸다. 스타일리스트는 자신에게 뿔테 안경과 책을 건네며 공부하는 척 해보라 했다.

“뭐 일단. 엄청 똑똑해 보이기는 하니깐, 이거 찍어서 트위터에 올리자. 설정 냄새가 너무 나기는 하는데 팬 서비스라 치지 뭐.”

민호가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은 자신의 소매 각도와 바짓단을 정리해줬다. 마치 화보 찍는 거 같지 말이다. 로이는 그의 말대로 의식하지 않은 척 한 손으로 책을 펼쳐들고 바라봤다. 찰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셀렉(사진 찍은 것들 중 제일 잘 찍힌 A컷을 고르는 것)도 없이 업로드를 끝냈는지 민호는 자신에게 다음은 코드 C를 도전해보자는 거다.

“뭐? 그건 뭔데?”

“큐티. 고양이 귀 준비해놓을게.”

“앗! 그럼 나도 신청할래! 코드 M. 마스터가 되어 절 굴복시켜주세요. 주인님.”

주안이 자신의 학생회장 코스프레이에 발정이 났는지 엄청 신이나 sm가게에 갔다 오겠노라 하였다가 민호에게 얻어터졌다.

“그렇게 맞는 게 좋으면 내가 굴림 해주지. 멍멍아, 꿇어.”

알고 보니 자신의 어리광을 모두 받아주는 착한 오빠가 여왕님이었다는 사실에 로이는 동안이라 순진무구한 소년 같은 남자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발에 매달려 주안이 잘못했다며 싹싹 비는데, 정말 어른들의 세계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싶었다. 수정이 그런 자신의 눈을 손으로 가려줬다.

“이상한 거 보고 배우지마.”

다행히 게이들만 그러는 모양이었다. 로이는 수정에게 탐폰을 어떻게 사용하는 거냐 묻고 화장실로 향했다. 저런 못 미더운 사장이랑 일하려니 자신이 참 고생이 많은 듯싶다. 시상식이나 가서 예쁘게 사직 찍혀 알아서 밥그릇 찾아 먹어야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