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16화 (16/104)

00016  어른이 될 테야  =========================================================================

로이는 민호를 깨워 어서 네 남편이 망령을 난 것 같으니, 호텔에 가서 엑소시스트를 찍고 오라 했다. 그 허리 꺾기가 예술인 영화를 말이다. 물론 그러다 주안에게 등짝을 한 대 어 얻어맞았지만, 자신의 핸드폰은 돌아오지 않았다.

“훌쩍. 이 멍청이. 내 맘도 모르는 바봉.”

“우는 척해도 소용없다. 로이 테일러.”

그녀는 무시무시한 게이 매니저의 차가운 말에 얼굴을 가리던 손을 내리고 시크하게 노려봐줬다.

“에휴~ 둘 다 그만하고 로이는 화장이나 하자.”

결국 수정이 두 남자, 아니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눈싸움을 중재했다. 그녀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거만하게 ‘그러던가.’하는 어린 것의 태도에 두주먹이 불끈 쥐어졌지만, 손가락에 와 닿는 보들보들한 아기피부를 만지고 있으려니 울분이 눈 녹듯 사르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역시 꼬꼬마 피부라 자신 같은 늙은 가죽이랑은 완전히 질이 달랐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미운 9살이어요, 하는 아이돌의 얼굴에 얇게 메이크업 베이스를 발랐다. 그런데 로이가 못 마땅한 표정으로 ‘지금 생리해서 엉덩이 굴욕이 났어.’라며 시상식에 못 간다는 것이다. 애가 하도 남자처럼 살아 탐폰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주안아. 탐폰 사와라.”

누나는 동생에게 삽입형 생리대를 사오라 했고, 당연하게도 그는 그것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아, 씨~. 제발 그런 부탁 좀 나한테 시키지 마. 계산할 때 쪽팔려서 죽을 것 같단 말이야. 이 마녀야.”

“그럼 로이가 가서 사리? 대한민국 누구나 다 아는 초절정 인기 스타가? 새벽부터 탐폰을? 네가 미쳤구나. 소속사 사장이 아니라 지능적인 안티야. 그렇지 로이야~”

로이는 수정이 주안을 다그치고 자신의 편을 들어줘 기분은 금세 좋아졌다. 그녀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허리를 꼭 껴안고 ‘역시 누나밖에 없어.’라 했다. 그러자 조그마한 체구의 여인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우쭈쭈, 우리 아기. 엄마가 공부하고 스마트폰 하는 거라 했지? 앞으로는 그러는 거야.’하며 설정 연기에 들어갔다.

칫. 사장 엿 먹여주려는 건 줄 알았는데 누가 오누이 아니랄까봐 똑같은 소리다.

“……누나가 사면 되잖아.”

주안은 조금 주눅이 들어 조그만 목소리로 웅얼거렸지만 두 여자가 들어줄리 만무했다. 그래서 스타일리스트에게 네가 사오라고 했는데, 민호는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쑤시며 못 들은 척할 뿐이었다. 젠장. 얼굴 반반하다 건드리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약점 잡히니 말이다. 진정한 프로란 일과 사랑을 구별할 줄 알아야하는데, 자신이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죽어라 꼬신 백민호가 손끝 하나 건드리게 못하게 할 것 같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그는 마스크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 수상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창피한 것보다는 나으니 말이다. 그렇게 특명을 받고 매니저가 나간 뒤, 로이는 주안의 핸드폰에 성인 앱을 잔뜩 깔았다. 켈켈켈. 변태 취급 받아라. 그리고 그런 철없는 아이돌의 모습에 수정은 한숨을 쉬며 로이가 어리기는 어리구나 싶었다.

그런데 인터넷 서핑을 하던 그녀가 갑자기 분노의 표호를 하는 것이 아닌가.

“우오오오! 김수혁!!! 부셔버리겠어!”

어째 트위터로 사이가 무지 좋은 척 하더니만, 역시 둘 사이에 뭔가 있었다. 언뜻 화면을 보니 부산국제영화제 개봉작인 ‘푸른 소나타’가 검색어 1등이었다. 김수혁이 주연을 맡은 광기 스릴러 영화였다. 그 덕분에 로이의 상반신 노출 사건과 루시퍼가 나란히 3등과 4등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2등은 김수혁이었다.

수정은 혀를 쯧쯧 차며 질투의 화신이 날뛰는 것을 지켜봤다. 로이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나 좀 존나게 섹시하게 화장하라는 요구를 해댔다. 어디 시상식이 아니라 야동이라도 찍으러 가는지, 자신보고 가뜩이나 야한 얼굴에 야한 화장을 하란다.

“지금도 충분히 섹시해.”

“…………아, 어째서지?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르는 돌멩이주제에 왜 이렇게 인기 있는 거야. 흑. 이제 내 약빨은 끝났다는 말인가.”

지상 최대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로이 테일러가 할 말이 아닌 듯싶었다. 거대한 팬덤을 이끌고 다니는 그녀는 작년에 모나코에서 열리는 월드뮤직어워드에서 베스트 비디오상을 수상했을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아티스트였다. 다만 생긴 거는 완전 미국 버터 발음을 쏼라쏼라할 것 같은데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토종 한국인이라 해외활동은 월드 투어로만 해 해외 방송 출연이 거의 없지만, 결코 외국가수들에 비해 떨어지는 인지도는 아니었다.

자신이 그 곁에 있어 누구보다도 잘 보지 않았는가. 일본의 나고야 요코하마 오사카 후쿠오카 사이타마는 물론, 중국 상하이, 필리핀 마닐라, 미국의 LA 로스앤젤레스 워싱턴 DC 뉴욕 뉴저지부터 시작해 멕시코 멕시코시티,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프루트까지 쉴 새 없이 세달 동안 콘서트를 했고 단 한 번도 표가 매진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바보가 자꾸 그 기적 같은 시간을 잊어버리는 모양이었다. 고작 포털 사이트 순위에 연연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수정은 연예인이라는 직종이 언제 인기가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며 불안해하는 불안전한 직업이라지만, 적어도 아직 로이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기에 아직 그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로이야, 너 짱 인기 많은 아이돌 맞아. 수혁이씨는 고작 일본 대통령이고 넌 전세계 소녀들의 대통령이잖아.”

그런데 절망 포즈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금발의 스타가 고개를 들고 오른쪽 눈썹 하나를 들어올려 자신을 비웃는 거 아닌가. ……젠장. 속았다. 결국 동생 엿 먹인 죄로 본인도 엿 먹은 수정이었다.

“알아. 나 대빵 인기 많은 거. 잊었나본데 지금 Reve 직원 300명한테 월급 주는 거 나다.”

그렇다. 김 오누이는 이 건방진 꼬맹이를 업고 다녀도 모자랄 판이었다. 로이의 정체가 워낙 극비인지라 사장과 이사인 자신이 직접 케어해주고 있지만, 원래대로라면 그녀만을 위해 항상 경호원과 매니저, 전문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헤어 아티스트들이 한 팀으로 구성되어 적어도 10명 정도는 따라다녀야 했다. 말 그대로 로이 테일러는 음반을 내는 족족 빌보드 차트를 휩쓰는 한국에 체류 중인 할리우드 스타이니 말이다.

그나마 그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면서 이 정도 거만이라면 로이는 겸손한 연예인이라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만 유명한 주제에 집 공개 조건으로 가구는 물론 집 전체의 리모델링을 요구하고, 협찬 받아놓고 선물해주라며 물건을 반납하지 않는 진장들이 이 바닥에는 판을 치니 말이다. 그런데 로이는 그들과 달리 외국 활동은 콘서트밖에 안하면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은 진짜 유명인사였다.

그런 스타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지는 존재감으로 소속사 간부는 일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돌아가 그녀가 요구하는 대로 ‘우리 로이, 아이라인 그릴까? 어머. 너~~무 예쁘다. 딱 좋다. 완전 완벽한 눈꼬리야.’라며 기분 맞춰주기에 전념했다. 그런 자신의 비굴한 모습에 민호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저 혼자 안 그런 척 하더니만,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 로이에게 갖다 바쳤다. 이 어린 소녀는 길거리를 헤매던 부랑자를 스타일리스트로 취업시켜준 은인이기도 하니 말이다.

바로 이 작은 어깨…는 아니고 듬직한 어깨에 소속사 연예인부터 시작해 직원들의 운명이 짊어져 있었다. 그런 로이가 혹시라도 힘들까 자신이 토닥토닥 안마를 해주고 있자, 주안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아니고 편의점을 지키겠다며 버티는 탐폰을 데려왔는지 아주 너덜너덜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헉. 헉. 죽는 줄 알았어.”

“웬 거지꼴이야?”

로이는 집 앞 가게에 다녀오랬더니 양아치를 만나 맞고 왔는지 몰골이 말이 아닌 자신의 매니저를 보며 그 나이 되도록 맞고 다니냐 비웃어줬다. 그런데 주안이 네 팬한테서 테러를 당했다며 이제 우리에게 경호원이 필요해, 라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다. 체계와 서열이 확실해 대열을 무너트리거나 돌발행동이 없는 승냥이들이라 자신이 여태 잘 관리해왔는데 무슨 말인가.

“싫어. 누가 나 감시하는 것 같단 말이야. 내가 잘 해결하고 올 테니깐 집안에 찌그러져있어.”

일단 자신과 사장의 루머에 열 받은 소녀들이 주안의 머리털을 죄다 뜯어놓을 정도로 성질이 나 있는 모양이니, 그들의 화를 가라앉혀줘야겠다 싶었다. 19년 경력직 아이돌은 귀여운 노란색 후트티와 청바지로 갈아입어 귀엽고 소년 이미지를 만든 다음, 주안의 애인 백민호에게 팬서비스를 위해 준비해놨던 음료수 박스를 들고 나오게 했다.

“꺄아아~ 오빠! 싫어요! 그런 아저씨 따위 만나지마요.”

“로수! 로수! 로수!”

로수는 또 뭔가 싶은데, 어디 누수된 것도 아니고 상당히 별로인 별명이었다. 그런데 어째 팬들조차 자신을 게이로 취급하는지 모르겠다.

로이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집단에게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한 순간에 조용해진 그녀들이 자신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중간 중간 아저씨들도 끼어있어 참 많이 부담되는 눈빛들이었다.

뭐 그래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싶었다. 민호가 음료수 캔을 하나 하나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승냥이들에게 돌리고,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 우는 이들에게 ‘이것이 스타의 손이다.’하며 손도 잡아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주니, 그들이 ‘우리 로이는 이렇게 친절하지 않은데…, 역시 그 정도로 사장이 좋은 거예요. 오빠?’하며 아주 대성통곡을 하다가 자신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자조적인 미소로 ‘사랑하니깐 보내주는 거야.’하는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게 아닌가.

“아 쫌! 나 좀 게이로 그만 몰이해. 진짜 사장 애인이 여기 있잖아. 민호 형, 대답해봐. 네 애인이 나랑 스캔들 났는데 성질도 안나?”

아무리 친절히 대해주려 해도, 멀쩡한 여자 게이로 만드는 팬들 때문에 성질을 내니 소녀들이 까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평소의 로이가 돌아왔단다. 헐…. 누굴 성격파탄자로 아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승냥이들이 날도 추운데 바닥에 철푸덕 앉아있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싸게 싸게 꺼지라고 손을 흔들어주자 그 모습이 시크하다며 ‘로수.’를 외쳐댔다. 그런데 아까부터 로수가 뭔가 싶었다.

“로수! 로수! 로수!”

“총수로이! 거부할 수 없는 타나토스!”

“마성 로이! 루시퍼 스펠!”

“너만을 사랑해. 미소천사 김수혁.”

지금 자신의 기분이 아주 더럽고, 마치 내사랑로이가 쓴 팬픽이 생각나고, 로수의 수가 수혁 같다는 불길한 느낌이 드는 건 너무 과로해서 그런 거였다. 여기서 왜 생뚱맞게 김수혁의 이름이 들린단 말인가. 하긴 너무 잠이 모자랐다. 폰도 뺏겼으니 부산 가는 길에 그 놈의 팬픽 좀 그만 읽고 자야겠다. 스타가 자기 팬이 쓴 팬픽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 읽는 것도 웃긴 거니 말이다.

게다가 이게 바로 김수혁이 자신을 게이로 몰이해 자신의 입지를 좁히기 위한 계략처럼 느껴지니, 순간적으로 역공인가 싶었지만 그 눈치 없는 후배가 로이 테일러의 천재적인 시나리오를 간파해냈을리 없었다. 너무 안티팬 생활을 오래했더니 그런 음모론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당분간 로이뒈져 활동을 접어야할 듯싶다.

로이는 계집애들의 하이톤 목소리에서 소심하게 들리는 남정네들을 향해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적어도 그들은 남남끼리 묶는 걸 좋아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자신이 바라보니 얼굴들이 죄다 새빨갛게 달아올라 작게 ‘로수’거리는 것이다. 안 되겠다. 기필코 자신의 스마트폰을 못된 사장에게서 구출해내어 김수혁 지능 안티로 변신해야할 것 같다.

아이돌은 잽싸게 집으로 돌아와 원숭이 마냥 동생의 머리털을 살피고 있는 수정에게 코드 A를 발동하겠어, 라 외쳤다. 아무래도 젖꼭지 유출 사건 때문에 자신의 승냥이들이 발정이 나버린 것 같았다. 어째 인터넷에서 반응들이 너무 거세다고 싶더니만 하루만에 오프라인으로 표출될 정도면, 이러다 팬들이 자신의 합성 사진이나 동영상을 돌려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범죄자로 만들어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모르니 말이다.

끈 풀어진 망아지들을 자신이 책임지고 다시 예전의 로이찬양 합창단으로 되돌려놔야 했다. 오랜만에 하는 코드 A라 걱정이 되긴 하지만 너무 팬들이 자신을 성적욕구 대상으로만 대해 그들을 중재시킬 줄 필요가 있었다. 자신은 그녀들이 믿고 동경하는 아이돌이니 말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자신의 말에 진지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