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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돌이다-14화 (14/104)

00014  어른이 될 테야  =========================================================================

로이는 한품을 하며 눈곱 가리기용으로 매니저에게 선글라스를 받아 눈을 가렸다. 그리고 그녀는 삼촌에게 어서 약속된 과자를 사주라 하였는데 고작 천원을 받아 지금 장난하는 거냐 화를 냈다. 미칠 듯한 식욕으로 예민한 조카였다.

정우는 이럴 거면 뭐하러 미친 듯이 운동을 했냐 싶었지만 자신의 너무도 귀여운 조카가 편의점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어 그냥 지갑을 건네줬다. 이 째깐한 것이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는가.

“로이, 저도 같이 갈까요?”

그런데 수혁이 자신에 아직도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선배된 입장으로서 그건 당연한 거였지만, 어린 자신은 그에게 말을 놓기로 했는지라 저 혼자 반말하면 엄청 싸가지 없어 보일 것 같아 늙은 후배에게 편히 말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최소한의 선마저 그어놓지 않으면 이성의 끈이 끊어질 것 같다는 이상한 말을 해 로이는 김수혁이 자신에게 반말 듣기 싫은 걸 이런 식으로 돌려 거절하는구나, 이 놈 완전 고단수다 싶었다. 대놓고 자신이 말 놓겠다고 한 걸 거절하면 아무래도 사이가 껄끄러워질 수 있으니 이딴 식으로 은근슬쩍 뒤통수 갈기는 거였다. 정말 대박이다.

“아닙니다. 수혁씨는 여기 계시죠.”

나 혼자 다 먹어버릴 거다. ……아니다. 나 살쪘는데 김수혁도 살 쪄야지.

로이는 수혁에게 잔뜩 고칼로리 과자와 초콜릿을 먹여 삼촌과 같은 뒤룩뒤룩 돼지로 만들어버리리라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위풍당당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는 카운터에 서서 꾸벅꾸벅 졸던 알바생이 화들짝 놀라며 자신을 알아보는 걸 알아차렸으나 모른 척 도도하게 걸어 쇼핑 바구니에 음료수와 과자, 초콜릿 등을 마구마구 담았다. 켈켈켈. 이거 먹고 두 턱 되라 김수혁!

그녀는 즐거운 상상과 최대한 열량을 높은 걸 골라야하는데 한 봉지에 겨우 500 칼로리라니 이래가지고 돼지가 되겠어? 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고열량 초코바 위주로 골라 담고 캐셔에게 빛나는 삼촌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이요.”

“저, 저. 로이 맞죠? 꺄아~ 오빠 사랑해요. 저 한번만 악수해주시면 안돼요?”

딱 봐도 19살인 자신보다 나이 많은 알바생이었지만, 팬의 나이가 20대건 30대건 40대건 아이돌인 자신은 무조건 오빠였다. 로이는 웃으면서 악수를 한 다음, 그녀가 너무나 많은 간식들의 바코드를 찍느라 생긴 긴 시간동안 ‘군것질 좋아하나 봐요?’라 묻는 질문을 해 로이는 간신히 아역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드디어 성인 배역을 맞이하였음으로 밖에 있는 감독과 매니저, 동료 배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완전 섹시 자신이 아직도 아기 마냥 단 거 좋아하는 건 이미지 메이킹에 치명적이니 말이다.

“근처에서 촬영을 해서 스텝들 간식 준비하는 거예요.”

“어? 우와~, 김수혁이다. 실물로 보니깐 얼굴 짱 작다.”

그런데 이 알바생이 감히 자신은 앞에 두고 멀뚱히 서 있는 키만 멀대 같이 큰 미래의 돼지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에 질투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갈대와도 같은 여팬은 자신의 식욕 급진에 크게 이바지를 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2시간 전 먹은 치킨 3조각이 몸 어딘가에서 자신의 완벽한 11자 복근을 망치는 테러범이 되어 대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을 비록 토해냈다 할지라도, 트랜스지방이란 먹으면 바로 뱃살이 되는 놀라운 아이였다.

로이는 수혁 타령만 하고 있는 자신의 팬에게 허스키한 목소리로 ‘연희야, 오빠가 사주는 거니깐 이거 마시고 힘내.’라며 커피 한 캔 주고 편의점에서 나왔다. 보지 않아도 스타의 촉이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다시금 반했노라고. 움화화화.

이름표를 읽어주는 센스야 자신 같은 베테랑만이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냥 평범한 연예인이야 ‘고마워요. 이거 마시고 힘내요.’라 말하겠지만 일단 그 앞에 이름이 들어가면 팬은 자신과 스타의 관계가 엄청나게 가까워졌다는 착각을 하고, 자신이 특별하다 느껴 그저 연예인이라는 사실에 보였던 작은 호기심이 그 사람의 팬이 될 만한 호감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바로 이게 자신의 다년간의 노하우라 할 수 있겠다. 아무나 수퍼 스타가 되는 게 아니었다.

로이는 까까 사준다고 했지 누가 비상식량 챙겨 오랬나 했냐며, 얼마나 썼냐 영수증을 내놓으라는 쪼잔한 삼촌에게 초콜릿 하나 입에 처박아주고 몽땅 수혁에게 넘겼다.

“수혁 형, 로이가 주는 선물이니깐 모두 형아 혼자 먹어야해용.”

선글라스를 벗고 그를 향해 살살 눈웃음을 치며 그리 말하니, 이 아저씨가 멋도 모르고 좋아라 했다. 사악한 아이돌은 ‘하나님! 이 놈 하나 골로 보내고, 저 CF 찍겠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전설의 악녀가 되어 하나에 230칼로리나 되는 스니커즈의 포장을 뜯어 그의 입에 넣어줬다. 그러자 매니저가 불안한지 자신에게 귓속말로 ‘갑자기 김수혁한테 왜 그렇게 잘해줘. 너 진짜 김수혁 좋아서 그러는 거 아니지?’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해, 웃으면서 주안에게 ‘내가 미쳤냐.’라 작게 소곤거려줬다. 그리고 이제 차세대 돼지가 될 대한민국 대표 미남 배우이게 웃어주니, 김 사장이 팔을 문지르며 소름 돋는다고 했다. 내가 너무 무섭단다. 누가 할 소리. 진짜 무서운 건 털보 돼지랑 자신이 뒹굴고 있다는 상상을 한 썩은 뇌를 가진 그였다.

아이돌은 차 대기도 안 시키고 자신이 간식을 사오기만 기다린 무능한 매니저의 구두를 발로 툭툭 차며 ‘내가 지금 힘들어 죽어야 정신 차리지?’라, 먹고 싶으나 먹을 수 없는 슬픈 연예인의 고충을 성질로 승화시켜 그에게 얼른 카니발 끌고 오라 했다. 그리고 잠시 자신이 그런 운전기사를 기다리는 동안, 삼촌이 택시에 올라타며 다음 촬영 때 늦지 말고 올라 말해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수혁은 지가 한류스타라는 것도 모르는지 자신처럼 가내수공업 기획사에 있는 것도 아니건만 줄줄이 끌고 다니는 꼬붕들도 없이 자신의 옆을 못 떠나고 있었다. 자꾸 사람들이 모여들어 포위되고 있는데 아주 천하태평이었다.

“형, 매니저한테 연락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요.”

“아니, 괜찮습니다.”

그럼 한 감독처럼 택시라도 타고 가든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엄청난 짠돌이라 택시비도 아까운 모양이었다. 주안이 카니발을 끌고 왔다. 할 수 없이 로이는 가슴 가득 비닐봉지를 끌어안고 너무나 행복하게 웃고 있어 없어 보이는 자신의 늙은 후배에게 같이 차 타자고 했다. 이동 중에 ‘내사랑로이’가 새로 업로드한 팬픽을 읽으려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싶었다. 그녀는 문을 열고 먼저 안에 들어가 잡았다. 그리고 차 안에 비치해둔 클렌징 티슈로 화장을 지우고, 미스트를 잔뜩 뿌린 다음 모자란 잠이나 자자 싶어 차창에 머리를 처박았더니 수혁이 자신의 어깨를 빌려줬다. 너무 딱딱해 차리라 유리가 낫다 싶었지만 귀찮아서 그냥 자기로 했다.

수혁은 금세 잠이 든 로이가 쌕쌕거리는 달콤한 숨을 내뱉어 그녀의 정수리에 볼을 맞대고 온기를 느껴보았다. 그런데 편안한 분위기를 즐기기에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로이의 금빛 속눈썹이 자동차가 움직일 때마다 파르르 떨리는데 그게 마치 오르가즘에 젖어든 듯 섹시해, 등 뒤로 땀이 베어드는 시간이었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끔 룸미러로 뒷좌석을 확인하는 매니저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어 이 절호의 찬스에 도둑 키스도 할 수 없었다. 젠장.

할 수 없이 남자는 엄지로 자신의 입술을 쓰다듬고, 입을 벌린 채 자고 있는 로이의 침을 닦아주는 척 간접 뽀뽀를 시도했다. 그리고 수혁은 이 역사적인 기념일을 어떻게 길이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해봤다. 그녀가 자신만 먹으라고 간식을 선물해주고, 엄청 친근하게 같이 차 타고 가자 제안을 하더니 자신의 어깨도 베고 간접뽀뽀까지 했다. 그는 어서 자신의 천사가 얼른 어른이 되길 바랐다. 너무나 오래 기다렸기에 3개월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너무 예쁘게 자라서 자꾸만 조급해졌다.

남자는 하루 종일 자신의 여자를 이렇게 침대 위에서 껴안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럼 자신을 보는 사랑스러운 눈꺼풀에 키스를 하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요 예쁜 입술에 키스를 하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습관이 있는 섹시한 손가락에 키스를 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머리에 키스를 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만큼 그녀에게 마음껏 키스를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키스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이 너무 노골적으로 입술을 쳐다봐서일까. 수혁은 다 왔다며 자신을 경계하는 남자에게 강렬한 포스를 내뿜으며 로이의 최측근이라 포섭하려 했으나 그가 자신의 천사를 노리는 것 같아 경고의 의미로 ‘내 여자다. 넘보면 죽는다.’라 말하니, 주안이 오들오들 떨어댔다. 일반인에게 자신 같은 존재가 겁을 주는 건 비겁한 일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금빛 천사는 너무 귀여우니 그를 주의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수혁은 곤히 잠이 든 로이와 헤어지기 아쉬워 잠시 차안에 있었다. 그러자 자신을 마중 나와 있던 조직원들이 뛰어와 왜 남의 집 앞문을 가로 막냐 차문을 쾅 쳤다. 이에 창문을 내린 그는 조용히 ‘시끄럽다. 너희가 힘이 넘쳐 이 지랄이지.’라 로이가 깰까 아주 온화하게 닥치라 했는데, 큰소리로 ‘아닙니다. 도련님.’이라 외쳐 손가락을 까닥해 제일 가까이에 있던 녀석의 머리통을 차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런 다음 놈의 민머리를 잡아 ‘씹새끼야, 내가 조용히 하라고 했지? 귀가 장식으로 있는 거면 뭐하러 붙여났어. 내가 떼어줄까?’라 말하고 귓불을 잡아당기자, 그녀의 매니저가 경적을 빵 울려 로이가 눈을 떴다.

“어라. 뭐야? 웬 못생긴 문어?”

“쉬이~, 괜찮아요. 로이, 아무 일도 아니니 계속 주무세요.”

수혁은 졸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의 품에 얼굴을 비비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줬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기겁을 한 똘마니들이 마치 못 볼 것 봤다는 듯 도망쳐버렸지만 그는 그러든가 말든가 자신의 아기 천사가 다시 깊은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로이의 목에 베개를 끼어주고 차에서 내렸다. 오늘 글 업로드 해야 하는데 빌어먹게도 바로 씻고 부산 영화제 참석하러 가야해 이동 중 써야 될 듯싶었다. 내사랑로이는 고급 빌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최상층 펜트하우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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