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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돌이다-13화 (13/104)

00013  어른이 될 테야  =========================================================================

로이는 술을 먹고 자신이 진상을 부렸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 어디 맥주 남은 거 없나 페트병을 확인해봤다가, 주안에게 머리통을 쥐어 박혔다.

“아니, 쪼그마한 게 어디서 술이야.”

“아 씨~. 나 이제 어른이거든. 3달만 있으면 20살이야. 그럼 맥주랑 소주 광고도 찍을 수 있으니, 미리 연습해둬야지. 안 그래 김 사장?”

그런 연예인의 설득에 Reve라는 대형 기획사의, 그러나 실상 속을 들여다보면 운 좋게 수퍼 스타 하나 잡아 나머지를 먹여 살리고 있는 가난한 회사의 사장인 주안은 술 광고가 단가가 쎄다는 사실에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수혁이 돈 앞에 한 없이 흔들리는 자신과 달리 단호하게 ‘로이, 그렇다면 맥주는 3달 뒤에 마시죠.’라는 개념 발언을 해줘 그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맞아. 너 그러다가 술 마셨다는 기사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

“…아무도 안 봤으니 안 마셨다고 하면 돼지.”

로이는 딱 한잔만 마시면 그 괴로운 기억이 사라질 텐데 싶어 아쉬움으로 빈 종이컵을 탈탈 떨어 먹었다. 그런 자신의 그런 모습에 술 마시지 말라 할 때는 언제고 삼촌이 ‘2차 갈까?’ 라 꼬셔 ‘오케이 콜!’이라 외쳤다가 매니저에게 이불에 돌돌 말려 보쌈을 당했다.

“한 감독님. 앞으로 우리 로이 개인적으로 불러내지 마십시오.”

이 인간이 미쳤나 싶었다. 왜 자신이 가족 만나는데 지 허락 맞고 만나야한단 말인가. 아무리 연예인 사생활까지 관리하는 게 소속사들의 암묵적인 룰이라 할지라도, 이제 자신은 어른이었다. 충분히 혼자서 가족을 만날 수 있는 나이였다. 그녀는 주안의 머리를 통통 때리며 내려달라 했다.

“야! 너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진짜 한 정우 감독이 좋아서 이러는 거 아니지? 네가 다른 사람한테 살갑게 구는 것도 본적 없고, 삼촌~하며 막 애교 부르며 앵기고 뽀뽀하고. 아 씨발. 눈깔이 돌았어? 너 변태야? 저 나이 많은 돼지 털보가 뭐가 좋다고 자꾸….”

“야. 이 나쁜 놈아! 우리 삼촌 돼지 털보 아니야.”

물론 맞긴 하지만, 그건 자신에게만 특별히 허락된 말이었다. 정우 삼촌이 그런 자신의 말에 감동을 먹었는지 이따가 과자 사준다고 해서 손바닥으로 쪽 뽀뽀를 날려줬다.

“……로이. 혹시 로이의 이상향이 뚱뚱하고 털이 많고, 머리가 떡지고, 코가 들창코에 땀 냄새나는 것입니까.”

헐. 누구를 변태로 아는 모양이었다. 당근 생긴 걸로만 보면 아저씨이기는 하지만 늘씬하게 잘빠진 연예인 포스 쩌는 수혁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것’이라 표현했다. 울 삼촌 너무 불쌍하다.

그래서 조카는 마흔이 넘도록 결혼 못하는 돼지 털보에게 ‘그러니깐 살 좀 빼라고 했잖아.’라 말했는데 어째서 그것이 자신의 연애 발표가 되어버렸는지는 몰라도 사장이 ‘이 연애 결사반대야.’라며 차라리 해그리드를 사귀라고 했다. 그 모습은 특수 분장 탈이라 그 안에 로비 콜트레인 들어있으니 이참에 영국 진출을 하자는 것이다. 지금 자신이 삼촌을 스폰서 개념으로 만난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로이는 피식 웃으며, 그런 매니저를 골려주기 위해 ‘아, 왜 나의 순수한 마음을 믿어주지 않는 거야. 삼촌 사랑해’라 말하고 털보를 향해 팔을 뻗자 주안이 엉덩이를 때리며 ‘에비! 에비!’ 아기 겁주듯 혼을 냈다.

“아니, 김 사장. 왜 멀쩡한 얘를 자꾸 때려. 그냥 보는 것만으로 아까운 우리 꼬마 돼지를.”

아 씨. 괜히 편들어줬다. 치킨 3조각 먹고 삼촌이랑 동족이 되어버리다니, 안습이었다. 로이는 콧대를 집게손을 잡고 쓰읍~ 콧물을 들이마셨다.

“이제부터 다이어트할 거야. 삼촌 꺼져.”

“어허~, 여기 이렇게 초코바가 있는데 다이어트라고?”

마법사 돼지가 바지 주머니에서 초코바 하나를 꺼내 포장지를 뜯어냈다. 그녀는 그걸 빤히 쳐다보며 침을 꼴딱 삼켰다. 방금 윗몸 일으키기를 열라게 해서 배고파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치킨 3조각이 뱃속에서 소화된 지는 오래여도 칼로리는 고스란히 남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로이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식욕을 꾹 참아냈다. 훌쩍. 서러워서 못살겠다.

“으앙앙. 삼촌 미워. 내 초코바 다 먹어버리고.”

정우는 안 먹겠다고 해놓고선 자신이 초코바를 먹어버리니 엉엉 우는 귀여운 조카에게 ‘짜잔. 한 개 더 있었지.’라 하자 로이가 눈물을 뚝 그쳤다. 나중에 눈물 연기할 때 이 방법을 다시 써먹어봐야겠다 싶었다. 그는 너무도 행복하게 초코바를 먹는 한국 최고의 아이돌을 보며 얘를 얼마나 굶겼으면 이러나 싶어 ‘너 해고야!’라며 매니저를 지목했다.

“그러는 당신이야 말로 해고입니다. 방송국에 건의 넣어 감독 바꿔 달라 할 겁니다. 우리 로이가 어떤 아이인줄 아세요? 일본, 중국, 미국, 프랑스, 기타 등등 아주 난리가 났어요. 난리가. 당신 같은 하찮은 감독 따위가 건드릴 존재가 아니라고요.”

갑자기 사장이 미친 모양이었다. 로이는 주안의 귀를 잡아당기며 그를 말렸지만, 마치 파리 내쫓아버리듯 자신의 손을 떨쳐낸 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라스트 일격을 가했다.

“이 오타쿠 변태야!”

그거 삼촌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지 싶다. 로이는 고개를 끄덕끄덕 ‘잘 가라. 매니저.’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눈치 없는 주안이 드라마 템페스트를 이대로 끝장내버리고 싶은지 수혁까지 걸고넘어지며 그에게 뭔가 말하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치킨을 뜯어먹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제 하다하다 자신의 치킨 광고까지 노리는지, 수혁이 털보 돼지를 뛰어넘는 먹방을 하고 있어 로이는 사장의 어깨에서 폴짝 뛰어내려 이불 안에서 애벌레 마냥 꿈틀거리며 다가가 먹을 것을 사수해냈다. 나쁜 수혁! 나쁜 후배!

“아니, 수혁씨. 지금 치킨이 목구멍에 넘어갑니까. 우리 로이가 글쎄 저런 로리콤 돼지랑 사귄다는데?”

“말시기지 마십시오. 저 살쪄야합니다. 대략 몇 킬로그램 대의 몸무게를 좋아하시나요. 로이?”

“남자 몸무게?”

“예.”

“68킬로에서 70킬로 정도?”

“이제 키까지 작아져야 하는 겁니까.”

뭔가 대단한 오해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로이는 대표적인 남자 미남스타 차승주의 이름을 언급했다. 뭐 김수혁에 비하면 쫌 많이 딸리는 편이라 자신이 애정하는 배우 중 하나였다. 역시 나보다 잘 안 나가는 동료는 바다와 같이 넓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보듬어줘야 하는 것이다. 자신은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한 의협 로이였다.

“차승주 같은 스타일이 좋지.”

“설마 비밀의 화원 차승주?”

“응.”

“그럼……진짜 스폰 관계인 겁니까.”

“어? 그렇게 되는 건가? 음, 하긴. 삼촌이 나보고 템페스트 찍으라고 한 거니깐. 도와준 거 맞지.”

치킨을 먹다 말은 수혁이 자신의 나이도 잊고 짐승돌인 양 으르렁거리며 자신의 손목을 꽉 잡고 노려봤다. 그런 수혁이 짱 무서워 손목을 비틀어 도망치려하자, 그가 자신을 잡아당겨 바닥에 눕히고 ‘네 뒤라면 내가 얼마든지 봐주지.’라는 허황된 말을 했다. 웃겼다. 자기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슈퍼스타 로이 테일러를 여기서 더 뛰어준다 말인가.

“대답하시죠. 제 제안을 받아드리겠습니까.”

매일 실실거려 몰랐는데 짙은 눈썹과 끝이 살짝 올라간 눈매가 아주 살기등등한 수혁은 범죄자 형 얼굴이었던 것이다. 물론 엄청난 미형이기는 하지만, 왜 이걸 여태 몰랐나 싶었다. 그저 살인자 잭을 연기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얼굴부터가 살벌한 거였다. 그 사기스러운 달콤한 목소리에 자신의 눈이 잠시 속아 넘어간 모양이었다.

자신에게 박치기를 하려는지 점점 얼굴이 다가왔다. 역시 자기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힘겹게 이 나이 처먹어서야 연예인이 되었는데, 어린 자신은 PD 삼촌의 도움을 받아 드라마 남주 역을 맡아 열 받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당근 방송국 PD나 되면 조카를 도와줘야하는 거 아니겠는가. 물론 초특급 아이돌인 자신이 그를 도와주는 거였지만, 일단은 공생관계라 정리해야할 듯싶다.

그런데 밑에서 올려다보는 건데도 김수혁은 외계인인 듯 굴욕 하나 없었다. 눈을 끔뻑이며 잘생기긴 잘생겼구나, 어디서 이딴 놈이 툭갑튀하여 비좁은 연예계 0.1%의 영역을 넘보나 싶어 경계심을 담아 노려보자, 김 사장이 그런 수혁의 등짝을 어서 비끼라며 열심히 때려댔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안했다. 하루 종일 달려도 힘들어 보이지 않더니만 매집도 좋은 모양이었다.

결국 정확한 몸무게는 알 수 없지만 100kg가 넘는 게 확신한 자신의 큰 돼지가 출동하셨다. 그는 임신 10개월이에요, 라는 만삭의 배로 수혁을 뻥~하니 밀어내 일본 아줌마들의 대통령께서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내 조카한테 손 데지 마. 이 씹창생아!”

“……조카?”

상당히 얼빠진 표정이라 할 수 있겠다. 어서 이 김수혁 굴욕사를 찍어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인터넷 세상에 널리널리 전파하겠다는 기사정신으로 로이는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찾아 비밀 패턴을 입력 후 사진을 찰칵 찍었다. 우후후. 그녀는 사악하게 웃으며 앨범을 확인했다. 그런데 언제 자신이 스스로를 도촬했는지 모르겠지만, 금발머리의 미소년이 화면을 넘기고 넘겨도 끊임없이 나왔다. 놀란 수혁이 얼른 핸드폰을 낚아채가더니, 완벽한 연기력으로 주제를 매끄럽게 전환시켰다. 그는 의심의 눈초리로 털보 뚱땡이에게 진짜 조카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건 주안도 마찬가지인지 삼촌 보고 사기 치지 말라는 것이다. 여태 자신이 한 감독을 삼촌이라 부른 걸 콧구멍으로 들은 모양이었다.

“그래! 내가 로이 테일러의 삼촌이다! 하나밖에 없는 외삼촌이지.”

삼촌의 발언에 수혁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허걱! 저 늙은 후배가 왜 저러나 싶었다. 그는 이마를 땅바닥에 꽝 찍고 마치 조폭 마냥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할복하겠습니다.’라는 것이다. 미쳤다.

“용서하십시오. 감독님!”

“아니, 수혁씨. 할복을 무슨. 뭔가 오해가 있어서 그런 거였지? 우리 꼬맹이가 돌연변이라 나랑 많이 다르게 생기긴 했지.”

한 감독은 자애롭게 보살 미소로 톱스타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하극상을 벌였던 배우에게 ‘내 딸은, 아니 조카는 안 된다.’ 못 박았다.

“스폰서 이야기 나오는 거 보면 둘이 대충 뭔 이야기가 나눠졌는지 알겠는데, 우리 꼬맹이가 아직 어려서 이 바닥 스폰서 개념을 모르는 아이걸랑? 근데 수혁씨는 전혀어어~ 다른 의미로 알고 있었지? 참 어른이야. 우리 순진한 로이랑 아~~~주 다른. 아주 노련한 어른.”

“할복하겠습니다. 오야붕. 아니. 감독님.”

“허허. 왜 그래 수혁씨. 내가 쪼잔하게 배대기에 칼빵을 쑤셔 넣어야 정신을 차리고, 거시기를 토막 내 시멘트 발라 바다에 던져 줘야 되는 놈이라 이러는 거 아니야. 아참, 매니저. 너 소속사 사장이라며? 로리콤에 털보 뚱땡이 오타쿠 변태가 소속사 연예인 삼촌이라 싫지? 그래서 우리 로이가 이번에 Heaven으로 가기로 했어. 내 친구가 거기 사장이라 너 보다는 계약 조건이 훨씬 좋을 거다.”

정우는 전화 통화로 엄청난 욕설을 퍼부었던 수혁 어록의 패키지를 모두 다 늘어놓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뭔가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걸 보지도 듣지도 못 하는 엄청난 집중력을 지닌 자신의 어린 조카께서 아까는 다행히 운동 중이라 못 들었지만 지금은 하는 일이 없으니 제대로 욕쟁이 아이돌이 될 것 같아, 수혁이 한 말 중 가장 순한 문장을 선택한 거였다. 그런데 막상 말하고 보니, 젠틀맨 김수혁이 사실 전직 양아치 아니었나 싶었다. 너무 충격적으로 못 느꼈는데 그 우아한 얼굴로 아주 입에 걸레를 물고 계셨다.

“어라? 나 소속사 옮기는 거야? 왜? 나 Reve 좋단 말이야. 여기 사장이 바보라 놀리는 재미가 있어.”

“꼬맹아. 헤븐에 가면 거기 사장님은 너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게 해줄 거야. 누구처럼 굶기고, 야채만 먹이고 안 해. 우리 계약서 싸인 하면서 랍스타 먹을까?”

“으아악! 감독님. 아니 삼촌님. 제발 우리 로이 빼내가지 마세요. 앞으로 로이한테 꼬박꼬박 9첩 반상 먹이겠습니다.”

김 사장일 울며불며 삼촌의 바짓단에 매달렸다. 그러자 수혁이 ‘おじさん. どうか、ロイと けっこんを ゆるして くださいませんか.’라며 일본말을 했는데 말한 당사자 빼고 알아들을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일본 아줌마 대통령이라고 하더니만, 완전 현지인처럼 남의 나라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로이는 한국 사람은 한국말을 하는 거야, 하며 늙은 후배에게 감독을 대신해 따끔히 혼냈다가 일본 혼혈이라는 말을 들어 삼촌에게 무릎 꿇고 사무라이 코스플레이 하는 수혁에게 ‘독도는 우리 땅이야.’라 외쳤다. 그러니 개념 일본인이 알고 있다 했다.

“헤헤. 형아 좋은 사람이었구나.”

로이는 비록 그가 자신을 위협하는 울트라 초특급 인기 많은 톱스타라 하지만, 앞으로 친하게 지내야겠지 싶었다. 그런 자신의 말에 수혁이 조용히 웃으며 앞으로 자신에게 계속 반말을 해달라고 했다. 그게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거 같단다. 자신이랑 같은 생각을 하고 살다니, 아저씨 주제에 제법이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 위로 뛰어 폴짝 올라 삼촌에게 그만 용서해달라고 했다.

이에 한 감독은 똘망똘망한 예쁜 푸른 눈동자 앞에 한 없이 약해져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알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주안이 기다렸다는 듯 꼽사리 끼어,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삼촌님!’하고 90도 인사를 했다.

그렇게 그들은 원만히 해결을 하고 모텔을 나섰다. 물론 수혁이 입 싹 닦고 모른 척 할 수 있었는데 모텔 주인에게 문 수리비를 주는 걸 보며 로이는 참 괜찮은 사람 같은데 왜 자신을 도촬했나 싶었다. 거기다 같은 핸드폰 기종에 잠금 패턴도 같아 영 그 정체가 수상했다. 호기심 많은 아이돌은 다음번에는 기필코 김수혁의 비밀을 밝혀내리라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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