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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돌이다-12화 (12/104)

00012  어른이 될 테야  =========================================================================

치킨과 맥주를 포장해 삼촌과 향한 곳은 근처의 모텔이었다. 대한민국 천지에 자신이 사람들 눈치 안 보고 술을 먹을 수 있는 장소가 어디 있겠는가. 역시 방 안이 최고였다. 로이는 바닥에 앉아 닭다리를 한입 베어 물고 종이컵을 내밀었다.

“근데 맥주 칼로리가 어떻게 돼?”

“허허. 꼬맹이. 먹을 때는 그런 거 생각하는 거 아니다. 잔말 말고 쭉 들이켜.”

그러니 뚱땡이인 거였다.

조카는 스마트 폰으로 맥주 칼로리를 검색해봤다. 한 캔에 74칼로리라 했다. 대박이었다. 이거 음료수 보다 칼로리가 낮았다. 맛만 좋으면 앞으로도 자주 마셔야겠다 싶었다. 로이는 혀를 내밀어 살짝 노란 술에 담가봤다. 그런데 음. 복잡 미묘했다.

“이거 맛있어?”

삼촌을 힐끗 보니 벌써 2잔째였다. 엄청 맛있어서 그리 마셔대는 것 같긴 한데, 영 자신의 취향은 아니었다.

“어. 네가 처음이라 모르는데 먹다 보면 맛있어져. 로이 테일러 원 샷!”

감독의 지시에 맞춰 배우는 쭉 맥주를 들이켜 봤다.

“컥. 콜록.”

그러다 목에 사례가 걸려 기침을 해대자 정우 삼촌이 너 이래 가지고 연기를 하겠냐며, 술맛을 알아야 진정한 연기가 나오는 거라 해 로이는 코를 막고 맥주를 마셨다. 뭐 계속 마시다보니 맛이 괜찮은 거 같기도 했다. 입가심으로 튀김껍질을 떼어먹자 닭 가슴의 뽀얀 속살이 보여 그녀는 엉엉 울었다.

“으아앙. 로이 찌찌가 생방에 떴어. 이제 쪽팔려서 나 어떻게 살아.”

“헐~ 꼬맹이. 설마 방금 그거 먹고 취한 거야?”

로이는 자신의 눈앞에 손을 흔들며 제정신인지를 확인하는 못생긴 털보 뚱땡이를 노려봤다. 그리고 열심히 그의 등을 내리쳤다. 손바닥이 폭신폭신하고 말랑해 전혀 안 아팠다. 조카는 낮에 당한 서러움으로 그의 기름진 머리채를 잡고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뭐? 내가 머리에 똥만 들었다고? 이 돼지야! 너 미워. 미워.”

“로이야~ 삼촌이 너 연기에 집중하라고 그런 거였지. 설마 진심으로 했겠어. 뚝. 내일 스케줄 소화하려면 그만 울어야지. 얼굴 호빵 돼서 방송 나갈래?”

“훌쩍……호빵맨 싫어. 로이는 식빵맨이 좋아.”

정우는 한숨을 내쉬며 알코올 기운에 분홍빛으로 볼이 달아올라 아기 마냥 귀여워진 조카의 등을 토닥여주고, 내일 첫 스케줄 몇 시에 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로이가 대답 대신 바닥에 누워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누가 한국 최고의 섹시 아이콘 아니랄까봐 평범한 면 티셔츠가 몸 굴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게 아주 색기가 뚝뚝 떨어졌다. 누가 자신의 꼬맹이를 데려갈까 아까웠다. 자신이 똥 기저귀 갈아주며 키워냈는데 말이다.

“흐으응~. 시원해.”

딸 같은 조카가 찬 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자신에게 눈웃음을 쳐댔다. 그리고 키득 키득거리며 웃다가 엉금엉금 기어 앞으로 엎드린 채 치킨을 집어먹었다. 섹시 스타 로이 테일러가 사실 이런 모습도 있다는 걸 팬들이 알면 어떻게 될까 싶었다. 자신 눈에는 아직도 완전 얘기인데 왜들 그렇게 로이에게 섹시한 모습만 바라는지 모르겠다. 뭐 쫌 많이 우리 조카가 야시시하게 생기기는 했다.

“아 젠장. 짱 맛있다. 내가 연예인을 때려 쳐야지 원. 왜 맨날 풀만 먹여. 내가 토끼야? 죽어 김주안. 이 나쁜 놈. 너나 많이 처먹으세요.”

그런데 양반은 아닌 듯 주안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정뱅이는 발신자 이름에 피식 웃으며 통화 버튼을 밀어냈다.

“여보세요오~.”

‘야, 너 어디야. 나 커피 집 찾느라 개고생 했거든. 근데 그 사이에 토끼냐.’

“어라? 여기가 어디지?”

매니저는 자신을 버리고 간 스타가 지금 제정신이 아닌 거 같아 ‘너 혹시 술 마셨어?’라 물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쪼오끔, 쪼오끔 마셨어.’란다. 그는 한숨을 쉬며 데리러 가겠노라, 주변에 뭐가 보이냐 했다. 그러자 로이가 ‘거대한 돼지 털보가 있어.’라 해 주안은 설마 했다. 그는 설마 감독이 그녀에게 술 먹이고 이상한 짓을 벌일까 걱정돼 언성을 높여 지금 어디 있냐 다그쳤다. 그러자 모텔이라 했다.

‘당장 그곳에서 나와! 어서!’

“어? 왜 화내는 거야. 히잉~. 김 사장 미워. 로이는 지금 연기 과외 중이란 말이야.”

로이는 삼촌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침이 꼴딱 꼴딱 넘어가게 아주 복스러운 모습으로 치킨을 흡입하는 걸 보며 어서 저 먹방을 본 받아 치킨 광고를 찍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주안이 그런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고 ‘뚱돼지 새끼 죽여 버리겠어.’라 소리를 질러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수신 차단을 해버렸다. 울 돼지 삼촌을 욕하다니, 정말 나쁜 게이놈이었다.

“무슨 일이야?”

“으응. 못된 게이가 어디 있냐고 소리 질러서 로이가 모른다고 했어.”

“뭐야. 이상한 놈이 자꾸 찝쩍거려? 삼촌이 혼내줄까?”

“응. 혼내줘. 두두두두두. 중대장님. 사방에서 적군이 쳐들어옵니다. 어서 본부에 지원군을 요청해주십시오.”

로이가 낮게 포복 자세를 하며 얼마 전 끝낸 남북 전쟁 영화 ‘형제’에서 북한에 납치된 형이 적군으로 온 것도 모르고 대치하는 장면의 대사를 읊고 있었다. 이에 정우는 아빠 미소로 이렇게 제정신이 아닐 때조차 연기하는 걸 보면 우리 로이가 한국 역사에 길이 남는 훌륭한 연기자로 거듭나겠다 싶어 흐뭇해졌다. 그는 닭 뼈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연기자에게 템페스트에 나오는 대사 한 마디를 던졌다.

“행복이라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건 태풍 속의 눈일 뿐.”

자신이 카렌의 대사를 하자 로이가 반사적으로 이러나갔다. 컴백 때문에 바쁠 텐데도 열심히 연습한 모양이었다. 그러다 자신의 조카가 쌕쌕 숨을 몰아쉬며 가슴 위에 먹다만 치킨 조각을 올려놓고 잠이 들었다. 정우는 조심히 음식물을 치워주고 침대 위에 있던 이불을 로이에게 덮어줬다. 자신은 허리 디스크가 있어서 바닥에서 못 잤다. 그러니 파릇파릇한 로이가 바닥에서 자는 게 맞았다.

그렇게 그들은 각자 침대와 바닥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아마 2시간 지났을 터였다. 정우는 시끄러운 벨소리에 눈을 떴는데 로이의 핸드폰에서 모닝콜이 울리고 있었다. 젠장. 그는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알람을 끄려했다. 그런데 번쩍 눈을 뜬 로이가 빨갛게 출혈된 눈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한품 한번 하고 일어나자 했다. 역시 그냥 스타가 된 게 아니었다.

로이는 새벽에 치킨을 먹었음으로 무대 위에서 똥배 튀어나오는 거 캡처 당하는 개굴욕을 피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그녀는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변기에 오늘 먹은 것들을 시원하게 다 토해냈다. 물을 내리고 거울을 확인하니 눈 밑이 퀭한 병자가 하나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조건 사랑을 줄 것만 같이 구는 팬들은 조그만 살이 찌면 자기 관리가 소홀하다며 비난하고, 기자들은 밑에서 사진 찍어놓고 턱살 접힌다고 놀림거리로 만들어대는 게 연예계 바닥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먹잇감이 될 수 없었다. 자신은 동경의 대상인 아이돌이니 말이다.

입을 헹궈내고 나가자, 털보가 술이 안 맞는 것 같다며 다시는 마시지 말라고 자신을 걱정해줬다. 일부로 토했다는 걸 모르는 걸 보니, 종종 술 마시고 토하는 부류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속 괜찮아?”

“어, 괜찮아.”

로이는 삼촌에게 발목을 잡아달라고 하고 윗몸 일이키기를 했다. 닭 날개, 닭다리, 닭 가슴. 너무 많이 먹어버렸다.

아아, 이래서 어른들이 술을 마시는 거였구나.

그녀는 자신이 치킨을 먹었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 맥주가 고파졌다. 그거 마시고 나니 뭔가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이 완전 행복했는데, 그동안만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아주 좋았다.

“훅! 훅! 훅! 젠장. 나 완전 돼지 됐어. 삼촌, 내 얼굴 돼지머리 됐지?”

“꼬맹이. 그럼 이 삼촌은 뭐가 되는 거니?”

“뭐긴 큰 돼지지.”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정우는 ‘그럼 꼬마 돼지야, 운동해.’라 소심한 복수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 말에 자극 받은 연예인은 힘들어 죽겠다는 게 한눈에 다 보이는데 ‘물론이지.’라 답하고 윗몸 일으키기를 했다.

로이는 5세트가 넘어가자 배 근육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삼촌이 전화 왔다며 잠깐 쉬라는 것이다. 방금 자신을 작은 돼지라 놀렸으면서 말이다.

“그냥 전화하면서 나 발 잡아줘도 되잖아. 한 뼘 통화해.”

“알았어. 하여간 힘들어 보여서 좀 쉬라고 한 건데 그 마음도 몰라주냐. 이 박정한 조카야.”

정우는 어서 살을 빼야한다 난리부르스를 떠는 강박증 환자를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 핸드폰을 바닥에 놓았다.

“예. 여보세요.”

‘……감독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촬영지 근처 모텔에 있습니다만, 수혁씨 무슨 일이 있습니까.”

상대는 한창 잘나가는 한류스타였고, 프라이버시를 위해 자신에게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던 도도한 배우여서 새벽부터 전화라니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건가 싶었다. 그런데 수혁이 아무 말도 안하며 뜸을 들였다. 아무래도 촬영 날짜 밀어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끄응~”

로이는 부들부들 떨며 무릎을 잡고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바닥에 털썩 누워 거칠게 숨을 몰아셨다.

“아고, 아고, 나 죽네.”

자신의 조카가 아주 죽을라고 했다. 정우는 수혁에게 잠시 기다리라 하고 무리하게 윗몸 일이키기를 하는 로이를 말렸다.

“이제 그만 하자.”

“안 돼. 방금 시작했는데 끝을 봐야지. 끄응~.”

“꼬맹이. 너 그러다 허리 작살난다. 어른이 말하면 말 좀 들어.”

“싫은데. 으으윽~.”

아이돌이라는 게 참 사람이 할 짓이 못될 듯싶었다. 로이가 또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에 삼촌은 안쓰러워 발이라도 잘 잡아주자 싶어 꾹 발목을 눌렀는데, ‘아앗! 아프잖아. 이 바보야!’라며 욕이나 얻어먹었다.

‘씨발, 너 어디야.’

그런데 폰에서 환청인가 싶은 대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오해가 아니라는 듯 그것을 시작해 평소 고상한 분위기의 수혁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육두문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감독은 도저히 눈감아줄 수 없는 배우의 언행에 같이 욕을 하며, 앞으로 방송활동 못하게 해주겠노라 경고했다. 그런데 자신들이 싸우거나 말거나 몸매 관리에 한참인 아이돌께서는 끙끙거리며 운동에 전념 중이었다. 워낙 뭘 해도 섹시한 조카인지라, 야동 한편 찍는 거 같았다. 낑낑거리는 소리조차 예술이었다.

“하아~ 하아~ 삼촌, 나 예뻐? 봐봐. 이제 돼지 아니야?”

그것 좀 먹었다고 자신이 돼지가 되었다는 망언을 하더니만, 운동 좀 했다고 고새 물어왔다. 하여간 성질 급한 게 제 어미를 똑 닮았다. 역시 피는 못 속였다.

“어때? 나 무지 잘하지?”

잘하기는 잘했다. 오랜 시간 동안 빠른 속도로 윗몸 일으키기를 하는 걸 보니, 홈쇼핑에서 운동기구를 팔아도 될 짬밥은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새벽에 술 마시고 전화를 했는지 수혁이 ‘죽여버리겠어!’라 폭언을 날리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들리는 소문에는 성격 좋고 매너남이라 하더니만, 완전 호로 새끼였다. 감독은 차마 대대적인 홍보를 해 중간에 하차 시킬 수도 없는 이 거대 스타를 자신이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싶었다. 우선 방송이 되는 동안에는 트러블을 일이키지 않고 조용히 이 일을 덮어뒀다가, 방영 끝나면 족쳐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잠시 뒤 모텔 방문을 부수고 수혁이 ‘어디 있어, 이 돼지 새끼야!’라며 등장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로 눈물로 얼굴이 얼룩진 로이의 매니저가 보였다.

“어라, 다들 여긴 어쩐 일이야?”

로이는 뜬금없이 나타난 늙은 후배와 질질 짜고 있는 사장을 보며 물었다가, 방안으로 신발을 신고 들온 주안에게 등짝을 후려 맞았다.

“엉엉. 이 못된 망아지 같으니라고.”

“헐~ 김 사장 왜이래? 약 빨았어?”

“그래, 빨았다. 빨았어. 너 때문에 내가 진짜 미친다. 그딴 식으로 통화를 끊으면 어떻게. 그리고 왜 내 전화 안 받았어? 어디 다친 데는 없지?”

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며 주안이 콧물을 훌쩍거려 ‘추해.’라 말했다가, 또 얻어맞았다. 소속사 연예인을 폭행한 사장으로 기사 1면에 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로이, 지금 뭐하고 있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뭐긴 뭐겠습니까. 윗몸 일으키기 하고 있지. 김수혁씨는 해본 적이 없어 모르나 봅니다.”

어서 저 게이를 꼬셔 나락을 빠트려야 하건만, 자신이 이렇게 그 잘난 얼굴을 한 대 갈기고 싶어진 건 모두 다 김수혁의 탓이었다. 삼촌을 돼지새끼라고 불러도 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자신뿐이었다.

어라? 그런데 언제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 건 내 착각?

로이는 데자뷰에 고개를 갸웃, 언제 또 이랬지? 곰곰이 생각해봤다가 자신이 한 창피한 만행들을 다 기억해내고 말았다. 술이 원수였다. 그나마 그 추태를 삼촌밖에 본 사람이 없으니 천만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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