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9화 (9/104)

00009  선배라고 불러  =========================================================================

로이는 차를 타며 이동하던 중 계속해서 자신에 대한 기사가 ctrl c, ctrl v 되어 인터넷 세상에서 널리 널리 퍼지는 걸 보며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아무리 자신이 여자라는 걸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하지만 젖꼭지 유출 사건은 너무 창피했다. 스타는 검색어가 이제 로이 젖꼭지, 로이 유두, 로이 핑크색, 로이 복근, 로이 치골, 로이 섹시춤, 로이 루시퍼, 로이 게이, 로이 수혁, 로이 커피로 바뀐 것을 보며 이거 음란물로 취급해서 기사 내리게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매니저에게 따졌다. 그러자 주안이 캡처 사진을 보라하였다.

참 애매했다. 이건 가슴 노출도 아니고, 그냥 복근 공개였다. 그런데 옷이 너무 하늘거리는 재질이라 몸과의 거리가 너무 붕 떠 자신의 젖꼭지로 추정되는 게 보일 듯 말 듯해 ‘로이 유두 노출’이 된 거였다. 이러면 얼른 로이뒈져로 로그인해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놓는 게 최선일 듯싶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안티팬으로 돌변한 아이돌은 기사에 달린 댓글의 흐름을 파악해나갔다. 대세에 맞춰 떡밥을 던져야 호응도를 얻는 거였다. 그런데 내사랑로이가 모든 네티즌의 댓글에 ‘로이는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성희롱 발언을 하시면 고소하겠습니다. 당장 글 삭제하세요.’라는 걸 무한 복사하고 있어 승냥이들 사이에서 돌아이 소리를 듣고 있었다.

『로이 오빠, 캐 멋짐. 완전 유두 쩔게 섹시해. 핡. 핥아먹고 싶어.』

『로이는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성희롱 발언을 하시면 고소하겠습니다. 당장 글 삭제하세요.』

『같은 남잔데 얘는 진짜 쩔게 색기 흐름. 아 놔. 두근거려. 게이라 여자처럼 생긴 듯.』

『로이는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성희롱 발언을 하시면 고소하겠습니다. 당장 글 삭제하세요. 그리고 로이 게이 아닙니다.』

『허리 돌림이 아주 예술. 그게 다 침대에서 배운 거겠지. 어린 얘를 아주 잘 키웠어 소속사 사장ㅋㅋㅋ』

『로이는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당장 이 글 삭제하세요. 씨발놈아. 아이피 추적해 신고하겠습니다.』

『섹시하다 섹시하다 하니깐 로이의 섹시함은 끝이 없네…. 정말 섹시는 우리나라 최고인 듯. 로이의 예쁜 그곳 핥고 싶다.』

『이 변태새끼야. 로이는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당장 이 글 삭제하세요. 아이피 추적해 신고하겠습니다. 지금 신고 넣었다. 너 콩밥 먹고 싶냐.』

로이는 내사랑로이가 참 할 일이 없는 팬이구나 싶었다. 물론 자신을 보호해주는 거는 기쁘지만, 어차피 연예인이라는 게 항상 좋은 말만 들을 수 없어 대중의 먹잇감으로 헐뜯기는 게 다반사였다. 그리고 그것도 인기의 반증이었다.

다만 분위기가 이 이상 과열돼 자신이 팬을 고소해야하는 나쁜 경우로 흘러가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섹시 이미지이면서 한 번도 노출이 없었는지라 자신에 대한 반응들이 너무 거센 것 같았다. 그녀는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지 싶어 댓글로 자신의 게이설을 일축시키고 온 신경이 로이 테일러의 젖꼭지에 쏠려있는 네티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새로운 미끼를 던졌다.

『ㅋㅋㅋ로이 게이 아님. 그건 내가 봐서 알지. 걔 여자 진짜 밝히는 놈. 내가 같은 학교 다니는데 지 여친이랑 완전 물고 빨고 함. 스캔들 터지려고 하니깐, 개수작 부리는 듯. 여러분 속고 있는 거임.』

『로이뒈져님, 두고 보려했는데 더 이상 안 되겠습니다. 지금 아이피 추적해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하겠습니다.』

“헐~”

로이는 내사랑로이의 댓글에 이러다가 그 동안 자신이 안티로 활동했던 걸 들킬 것 같아 얼른 새로운 글을 올렸다.

『내사랑로이님 죄송합니다. 제가 내사랑로이님 팬이라 로이에게 너무 관심을 가지는 게 질투가 났어요.ㅜㅠ 작품 잘 보고 있습니다.』

팬픽을 어찌나 잘 쓰던지 마치 진짜 자신을 만나본 사람 같아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정말 그 정도 퀼리티면 웬만큼 잘 짜인 드라마 수준이어서, 그동안 연예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모를 내용들이 올라온 소설과 선플들을 고려해볼 때 분명 내사랑로이의 직업은 방송 작가였다. 물론 그냥 글 솜씨 좋은 백수일 수도 있으나, 그래도 글 쓰는 사람이면 자기 작품에 대한 애착이 높을 거라 생각해 팬픽을 보고 있다 말하면 어느 정도 선처를 베풀어주겠지 싶었던 건데, 그 생각이 맞아 들어간 모양이었다. 한참 뜸을 들이던 자신의 선플러가 한층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어떻게 절 알아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제 팬이라 하더라도 앞으로 로이의 안티 활동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봐드리지 않을 테니 그리 아십시오.』

로이는 그 댓글을 읽고 한숨 돌렸다. 그런데 마치 자신이 스타인 양 행동하는 내사랑로이 태도가 너무 재미있어 키득거리고 있자 매니저가 촬영장 다 왔다며 내리라 했다. 그녀는 로그아웃하고 다음번에는 다른 아이디로 바꿔 악플을 달아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자 촬영은 안하고 열심히 폰질을 해대는 수혁이 정면으로 보였다. 저 인간이 그렇게 안 봤는데 신성한 일터에서 농땡이라니…,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대로 감독한테 찍혀서 골로 가라~, 으하하하!

아이돌은 상큼 발랄한 웃음을 띠고 그런 후배의 뒤로 다가가 꼭 끌어안았다. 흠칫 놀라 스마트 폰을 끄는 행동이 야동이라도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형아~, 로이 왔쪄용.”

자신의 혀 짧은 소리에 적응을 못했는지 수혁이 꼼짝달싹 못하고 있어, 장난꾸러기는 그의 볼에 뺨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그녀는 키득키득 웃으며 그런 배우의 귓가에 후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감독이 ‘어이~ 꼬맹이. 왔으면 퍼뜩 삼촌 품에 뛰어올 것이지. 애정이 식었냐.’라며 껄껄거려 수혁을 풀어주고 삼촌에게 뛰어갔다.

드라마 템페스트를 이끌어가는 털보 캡틴은 9년 전 자신이 드라마 야망의 눈물에서 최문식의 아역을 맡았을 때, 촬영하기 싫다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어린 조카를 왕사탕으로 어르고 달래 시청률 58.2%를 이룩한 거장이었다. 그때 그 작품을 자신이 하차하지 않도록 도와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것 때문에 자신은 아역 배우자로서 연기력을 인정받고 국민 남동생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그전까지도 자신의 앞에는 ‘국민’이 붙어 국민 아기였으나 남동생은 한층 성숙했다는 의미이니, 정우 삼촌은 자신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준 은사임이 틀림없었다.

“삼촌! 보고 싶었어.”

그의 품에 안기자 털보가 아기피부인 자신의 볼에 마구잡이로 비벼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로이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아프다고 땡깡을 부렸는데, 그런 자신의 태도에 놀란 드라마 스텝들이 모두 벙쪄하는 걸 보고 그들에게 ‘평소 너희가 알던 로이 테일러의 이미지가 아니지?’라는 얼굴로 배시시 웃어보였다.

사실상 첫 촬영은 관에서 죽은 듯 자는 씬밖에 없어 교회에서 조감독이랑 후다닥 찍고 가버렸는지라 본격적인 촬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도대체 주인공이라 꼬셨으면서 왜 이렇게 출연이 없나 모르겠다. 이 털보 아저씨, 혼 좀 나야겠다. 게다가 드라마 2편은 자신 없이 방송 나갔다.

로이는 토실토실 살이 오른 정우의 뱃살을 꼬집어 비틀었다.

“나 진짜 메인 맞지?”

“…하하하. 맞지. 메인 맞아. 하하하. 로이야 사탕 먹으려?”

뚱땡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웃어댔다. 그래서 의심의 눈초리로 째려보다가 삼촌이 알사탕을 입에 넣어줘 눈에 힘을 풀었다.

“에구. 우리 꼬맹이. 완전 볼때기가 다람쥐야.”

그가 말한 대로 워낙 크기가 큰 사탕이라 한쪽 볼이 볼록 뛰어나왔지만,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은 초 귀여워 보일 테니 걱정 없었다. 로이는 사탕을 혀로 굴리며 총감독에게 ‘어떻게 내 촬영을 조감독이 찍을 수 있지?’라는 역정을 냈는데, 털보가 그날 수혁이 급하게 일본에 가야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을 해 자신의 복창을 뒤집어놓았다. 늙은 후배님이 감히 대선배를 엿 먹였던 것이다.

로이는 눈웃음을 치며 계속 폰질을 하는 수혁을 향해 ‘형아, 커피 사줘요.’라며 손을 흔들어보였다. 내 반드시 저 새끼를 꼬셔 게이라는 소문을 만들어 주리라.

“그런데 꼬맹이. 너 낯가리면서 수혁이랑은 무지 친한 모양이다. 삼촌 쫌 질투나.”

삼촌이 자신을 꼬시기 위해 무려 한 달 동안 사탕 셔틀을 했음으로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래서 그의 볼을 잡고 쪽 뽀뽀를 해주자, 헤벌쭉 웃어 조카도 따라 웃었다. 어째 성깔 더러운 엄마 동생이면서 전혀 다른지 모르겠다.

“하여간, 이거 요사부리는 것 좀 봐.”

뚱땡이가 기분 좋은 듯 자신에게 어깨동무하고 ‘너 이따가 촬영 끝나고 같이 밥 먹자. 왜 이렇게 말랐어.’라며 컴백을 위해 열심히 빼놓은 자신의 살을 다시 찌우려고 해 ‘치킨 사줘.’라고 하니 ‘콜’이라 했다. 먹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맛나게 먹는지라 그런 삼촌의 모습을 보고 배워 치킨 CF를 노리겠다는, 천상 스타인 로이 테일러의 뜻 깊은 속내였다. 결코 그냥 치킨이 먹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이건 일종의 과외였다.

그런데 저 늙은 후배가 또 미친 모양이었다. 감히 하늘같은 선배님과 신 같은 감독님을 상대로 눈알에 힘을 주고 ‘감독님, 미성년자 성추행범으로 잡혀가고 싶지 않으면 당장 떨어지시죠.’란다. 완전 돌아이였다. 그런데 어째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 같은데……음?

로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검은 머리의 잘생긴 배우를 한번 쳐봤다가 ‘에이~ 설마 아니겠지. 김수혁이 뭐 하러?’라는 생각이 들어 삼촌의 등에 폴짝 올라타 어서 나를 자판기로 모셔라, 하였다. 그러자 그는 충직한 말이 되어 쿵쿵 걸었는데 수혁이 그 뒤를 졸졸 따라오며 ‘감독님, 어린 배우에게 성희롱이라니 그러면 영창 갑니다.’라는 헛소리를 또 해, 듣기 싫어 지방이 많아 폭신폭신한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가 갑자기 뒤에서 뭔가 빠직 깨지는 소리가 나 뒤돌아보니 수혁의 스마트폰이 두 동강 나 있었다. 헉! 진짜 이 남자의 과거가 의심스러웠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꼬맹아. 잔돈 있냐?”

그런데 자신의 돼지 삼촌이 돈도 없이 온 모양이었다. 로이는 늙은 후배에게 ‘형, 잔돈 있어요?’라 그의 말을 전달해줬다. 그러자 수혁이 지갑을 꺼내 천 원짜리를 줬다.

“나 핫초코.”

“오냐.”

매니저랑 엄마가 알았으면 기겁을 할 메뉴 선택이었지만, 바로 오케이였다. 이래서 삼촌이 좋았다. 자신에게 그냥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라 하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물론 그러다가 자신도 뚱땡이가 되어 버릴까봐 걱정됐지만, 치킨은 오늘 먹어야겠다. 물론 이건 공부였다, 공부.

그래서 로이는 감독에게 귓속말로 ‘김 사장 눈치 채기 전에 촬영 끝나고 바로 토끼자.’라 했는데 미친 후배가 자신을 번쩍 들어 올려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그에게 매달렸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이 동아줄 마냥 붙잡은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부들부들 떨고 있자, 수혁이 저가 자신의 후배라는 것도 잊고 건방지게 자신을 안은 채 우쭈쭈 팔을 흔들어 달래줬다. 정말 발칙한 후배였다.

로이는 열 받아 뭐라 한 마디 할까 했다가 무슨 향수를 뿌리는지는 몰라도 그에게 기분 좋은 냄새가 나 코를 킁킁거리며 섹시 머스크 향을 맡았다. 자신도 향수를 바꿔야할 것 같았다. 이건 완전 성숙한 어른 남자의 냄새였다.

“형, 향수 뭐 써요?”

“향수 안 뿌립니다.”

치사하게 자신만 그 냄새를 독차지하려는 모양이었다. 로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수혁에게 내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정말 순순히 내려줘 이 남자가 무슨 의도인가 싶었다. 도통 일본 아줌마의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김수혁씨, 앞으로 저한테 꼬박꼬박 선배님이라 호칭 붙이십시오.”

삐진 거 아니다.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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