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8화 (8/104)

00008  선배라고 불러  =========================================================================

로이는 사장의 태도에 황당해서 말을 잃었고, 그건 무대 뒤에서 분주하게 일하던 스텝과 자신의 백댄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걸로 소속사 불화설 루머가 또 돌겠구나 싶어 노련한 스타는 주안에게 배시시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동무를 했다.

“형, 내가 다른 여자랑 섹시 댄스 춰서 삐졌구나. 미안, 미안.”

그녀는 매니저가 뭐냐며 눈을 치켜떴지만 개무시하고, 귓속말로 ‘아무리 화가 나도 불화설 따위 만들지 마. 아마추어 같이.’라 속삭여줬다. 그런 다음 그의 귀에서 멀어지는 와중 머리카락을 귓가에 꽂아줬다. 감히 시상식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 연예인의 뺨을 때린 죄는 나중에 톡톡히 갚아주면 되는 거니 말이다.

로이는 주안의 어깨를 꾹 눌러주고 다시 무대로 올라갔다. MC들이 1위 후보들 앞에서 결과를 발표할 차례였다.

“1위 투표가 마감이 되었습니다. 결과를 확인해봐야겠죠? 보여주시죠.”

“오늘의 최종 결과. 음원 판매 점수입니다. 음반 판매 점수입니다. 글로벌 음악팬 점수입니다. 방송 점수입니다. 음악지식인 선호도 점수입니다. 실시간 차트 순위 점수입니다. 생방송 문자 투표 점수를 합산한 오늘의 1위는! 네, 로이 테일러, 축하합니다. 로이.”

“네, 컴백하자마자 1위를 차지하셨어요. 소감 좀 부탁드릴게요.”

너무 당연한 결과라 트로피를 받고 놀란 척하기가 힘들었지만, 자신이 누군가. 바로 아역 때부터 드라마 출연으로 연기력을 갈고 닦은 로이 테일러였다. 아이돌은 팬들을 위해 무지 기쁘다는 듯 상패에 쪽 뽀뽀를 하고 그걸 들어보였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컴백하는 거라 너무 떨렸는데 팬분들이 응원해주셔서 무사히 무대를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근 자신이 뼈 빠지게 연습해서 그런 거였다. 오히려 너무 시끄러워 정신 사납고, 노래를 불러도 뭘 불렀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늘 방송국 오는 길에 우리 승냥이들이 학교 안 가고 찬 바닥에 앉아서 기다리던데. 쓰읍! 그럼 오빠한테 혼납니다. 엄마아빠 걱정시키는 건 오빠 욕 먹이는 거니깐, 내일부터 우리 학교 등교하는 걸로 약속하는 겁니다.”

로이는 손을 들어 자신의 행동에 열광하는 팬들에게 마치 약속을 하는 듯 새끼손가락을 구부리고 흔들어보였다. 그리고 해맑게 웃으며 ‘우리 Reve 식구들, 우리 가족, 우리 팬분들, 주안 사장님, 수정 누나, 민호 형, 백댄서 time 정말 감사드리고요. 수혁 형 커피 고마워요.’라 말한 후 한번 허리 숙여 인사하고 ‘팬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로 수상 소감을 끝맺었다.

김수혁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별로 마음에 드는 놈은 아니지만, 한창 잘나가는 배우와 자신이 엄청 친하다는 걸 어필해 ‘나 인맥 좋다. 그리고 성격도 좋다. 드라마 촬영 현장 분위기 최고다.’라는 걸 드러내기 위한 고도의 전술이었다. 연예계 바닥이라는 게 정말 빼먹을 수 있는 거는 최대한 단물을 빼내야 살아남는 데였다. 게다가 아무리 김수혁이 일본 아줌마들의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자신이라고 꿀리는 거 하나 없었다.

오히려 로이 테일러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에 그의 인지도가 더 높아질 테니 자신이 조금 배 아픈 일이었지, 늙은 후배님은 손해 보는 거 없는 장사였다. 그러니 절대 남 좋으라고 하는 일 없는 자신이 이렇게 수혁에게 호감을 보이는 건, 라이벌에게는 친절하게 대해 상대가 방심할 때 허점을 찾아내 골로 보내버리는 공자 왈을 뛰어넘는 로이 왈이 옳기 때문이었다.

“네, 정말 축하드리고요. 데뷔하자마자 이런 말하기 좀 이르지만, 로이라면 다음 주도 1위 충분히 가능할 거 같은데. 앞으로 트리플 크라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욕심이라는 건 알지만 물론 받을 수 있으면 노력해서 받고 싶고요, 좋은 곡 선물해준 푸 형 고마워요.”

로이는 밝게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러자 메인 MC가 멘트를 이어나갔다.

“예. 트리플 크라운, 충분히 욕심내볼만한 거 같고요. 루시퍼, 지금 너무나 많은 사랑받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도 멋진 무대 기대하겠습니다. 자, Natural. 오늘 하루 함께했는데 MC 보는 거 어때요?”

“네. 너무 재미있었어요. 로이 선배님 정말 멋지셨습니다.”

“예, 존경하던 대선배님의 시상식을 저희가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고요.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로이 선배님의 트리플 크라운을 받는 순간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메인 MC는 오늘 하루 사회 본 게 어떠냐는 질문에 로이에 대한 말밖에 안 하는 Natural의 태도에도 노련하게 상황을 정리해냈다. 로이 테일러야 한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의 섹시 심볼이니 그들이 그의 팬이라 할지라도 전혀 이상할 것 없었고, 예상하던 바였다. 거기다 오늘 MC를 맞겠다고 그들이 나선 게 바로 로이의 출연 소식 덕분이니 두 말하면 입만 아플 뿐이었다.

“예. 저도 오늘 하루 영준씨, 호영씨랑 함께하느라 너무 즐거웠고요. 자, 다음 주에는 우리 Natural의 1위도 한번 기대해보면서 오늘 음악챔프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월드 넘버 원, 케이 팝 차트 음악챔프. 여러분, 다음 주에 만나요~”

MC들이 마지막 멘트를 끝내고 손을 흔들었다. 그 뒤에서 서있던 로이는 루시퍼의 MR이 흘러나오자, 다른 출연진들이 빠져나가는 무대 위에서 자신만을 위해 사랑한다 외쳐주는 팬들을 위해 폴더 인사를 했다. 그리고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며 나이트클럽에서나 출 법한 섹시 춤을 선보였다.

가수는 등을 돌린 채 뒤로 팔짱을 끼고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리고 뒤돌아 앞을 보며 털기 춤을 추고, 옆으로 팔을 뻗어 허리선의 곡선을 드러냈다.

“hey girl,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주마. get it boy.”

그 후 그녀는 머리에 손을 얹어 농염하게 허리를 돌리주고,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넣어 미끄러지며 앉아 한쪽 다리를 쭉 피는 자세를 취했다.

“헤어나올 수 없는 너의 매력적인 poison. 머릿속에 파고드는 너를 향한 나의 갈망.”

아이돌은 열광하는 팬들을 위해 무릎을 꿇고 그 위를 손가락으로 기어가는 모션을 취한 후 손을 뒤로 넘겨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어차피 앙코르 무대는 방송에 다 안 나가니 이건 완전 팬서비스 차원에서 하는 거였다.

“이제 넌 내꺼야. 오늘 밤 너는 나만의 연인. 오우~오우. 이제 신경 꺼볼까 너와 나의 feel guilty.”

그리고 로이는 롱스커트 사이로 다리가 보이도록 일명 개다리 춤을 했는데, 전혀 웃겨 보이지 않는 건 자신이 미치도록 섹시한 스타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트로피와 함께 큰 소리로 소리쳤다.

“승냥아 사랑한다! 너희 밥 굶지 말고 다녀.”

“꺄아아아~ 로이! 로이! 로이!”

이 순간이 되면 마치 자신이 사이비 교주가 된 기분이었다. 비록 사생활이 전혀 없어서 졸라 짜증나고, 화나고, 성질내고 싶을 때가 있어도 꾹 참아야한다는 게 참 엿 같았지만 부모도 못 주는 사랑을 자신에게 쏟아부어주는 팬들이 고마웠다. 물론 이 사랑은 자신이 한번 삐끗하면 비난으로 돌변할 야누스의 모습을 지녀 전혀 믿을 수 없는 허상 같은 거라지만, 너무 시끄럽게 꽥꽥거리는 것만 빼면 그런 그들이 자신은 좋았다.

로이는 무대에서 내려와 스텝들에게 오늘 하루 수고했노라 인사를 건네고, 화장실로 향했다. 다음 스케줄은 드라마 촬영이라 진한 화장을 지워야하기 때문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매니저가 클렌징 티슈와 화장품들을 건넸다. 이에 아이돌은 화장실 칸막이에 누가 들어가 있나 다 확인해보고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화장실 문을 잠갔다.

“김 사장, 오늘 아주 멋졌어.”

“……아니, 그게 아니라.”

땀을 뻘뻘 흘리며 주안이 쩔쩔 매는 모습에 차마 어른이라 이걸 확 때릴 수고 없고, 하는 마음으로 그녀는 가발을 벗어내고 속눈썹을 떼어냈다.

“너 그래도 여자잖아. 그런데 상반신 노출이 뭐야. 카메라에 가슴이 다 보였다고.”

“복근만 조금 보여준 거야.”

“아니거든. 젖꼭지 다 보였거든.”

“……그렇게나 많이 올라갔었어?”

나름 긴장을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손의 감각도 없이 뭔 짓을 해버린 건가 싶었다. 로이는 ‘내가 여자인 거 들키면 여자 아이돌 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 방금 전 보고 온 노란 풍선들이 생각나 어찔해져 세면대를 잡고 몸을 지탱했다. 그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을 수도 있었다. 그들이 좋아하는 거는 미소년 로이이지, 남자처럼 생긴 여자가 아니었다. 아이돌은 패닉에 빠져 엉엉 울었다.

“흑, 나 어떡해. 나 이대로 끝나는 거야? 진짜 우리 이대로 끝이야?”

“걱정 마. 넌 내가 지켜줄게. 우선 기사 나오는 거 상황 봐서 기자회견 열고, 잘못했다고 무조건 싹싹 빌자. 로이 테일러를 사람들이 그냥 예쁘다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모두 네가 커가는 걸 오랫동안 지켜봐와 아들 같고 동생 같다 생각해 좋아하는 거니 다들 널 용서해줄 거야. 넌 스타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족이잖아.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지금 장난해? 믿었던 발등에 도끼 찍히면 얼마나 열 받는지 알아? 난 이제 매장이야. 더 이상 한국에 살 수 없을 거라고.”

둘은 심각하게 19년간 남자로 알려졌던 로이 테일러가 여자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대한민국이 뒤집어질 것을 염려했다. 사장은 자신에게 우선 씻으라며,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을 확인했는데 잠시 침묵하더니 ‘너 포털 사이트 검색어 다 차지했다.’란다. 물론 엄청난 스캔들이 터졌으니 그러겠지, 라 자신이 답하자 그가 고개를 저으며 ‘아무도 너 여자인 거 몰라.’라는 헛소리를 했다. 너무 충격을 받아 미친 모양이었다.

“진짜야. 1위 로이 젖꼭지, 2위 로이 복근, 3위 로이 망사, 4위 로이 쩍벌 춤, 5위 루시퍼, 6위 로이 핫팬츠, 7위 음악챔프, 8위 김수혁 커피, 9위 로이 게이설, 10위 김주안. 어라? 왜 내 이름이 올라가있지?”

주안은 로이의 게이설 보다 자신이 유명해졌다는 사실에 놀라 당장 검색을 해봤는데, 로이랑 자신이 사귀고 있다는 기사 때문에 그랬다는 걸 보고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그런데 그녀가 가슴 노출을 했음에도 아무도 그 비밀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사장은 자신의 소속사 연예인에게 ‘너 진짜 여자 맞지?’라 되물었다가 한 대 맞았다.

아무리 봐도 이건 완벽한 평면이니, 로이가 사실 자신을 여자라고 믿는 트렌스젠더라 그렇지 사실 성별은 남자가 아닐까 자신마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로이는 법적으로 완벽히 남자라, 오직 믿을 거라고는 자신이 여자라 주장하는 그녀의 말밖에 없어 그 의혹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아무리 게이라지만 여자라 주장하는 얘를 데리고 같이 목욕하자고 덤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안은 그저 속는 셈 치고 믿기로 했다.

로이는 자신에게 의심을 눈초리를 보내는 남자에게 ‘네가 죽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해.’라 따끔히 경고하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게이설이라니 차라리 낫다 싶었다. 그녀는 오일로 1차 세안을 하고, 폼 클렌징으로 2차 세안을 해 화장을 말끔히 지어냈다. 그리고 물기가 마르기 전 수분 크림을 듬뿍 발라 얼굴에서 반짝반짝 광채가 흘렀다.

아무리 봐도 이렇게 예쁜 미소녀를 다들 왜 미소년이라 착각하는지 모르겠다.

금발의 스타는 거울 속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 사이로 섹시하게 눈웃음치는 푸른 눈동자의 자신을 향해 한번 윙크를 날리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앞에 Natural이 서 있어 기겁을 했다.

“어이구 깜짝이야. 야, 너희들 뭐하냐. 쌀 거면 어서 들어가고.”

“선배님, 선배님 진짜 게이입니까.”

자신을 언제 봤다고 ‘너 게이야?’라고 묻는지 모르겠지만 로이는 영준과 호영을 향해 ‘내가 게이이든 말든 너희가 무슨 상관인데.’라고 했다. 그러자 그들이 그럼 자신들이 앞으로 적극적으로 대쉬를 하겠다며 선배의 머리꼭대기까지 오르려 해 로이는 ‘나 여친 있다.’라 답했다. 왜 이렇게 자신의 주위에 게이들이 많나 싶었다.

로이는 자신의 말에 울상을 짓는 귀여운 후배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피식 웃었다. 그러자 호영이 하수연이냐 물어 일반인이라 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미리 만들어놓은 시나리오가 하나 있었다. 유일하게 자신이 여자를 걸 알고 있는 소울 메이트 리나는 흔쾌히 자신을 이용해먹이라고 허락해 준 고마운 친구였다.

“……거짓말.”

“헐. 거짓말 아니거든. 왜, 사진 보여주랴?”

“예. 보여주세요.”

참 끈질긴 아이들이었다. 로이는 그럼 이 사실을 절대 비밀로 붙이면 보여주겠다는 조건을 달고 그들과 함께 자신의 대기실로 갔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리나의 볼에 뽀뽀를 하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니, ‘왜 선배는 여자가 아닌 거죠!’라며 호영이 울면서 뛰쳐나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영준이 꾸벅 인사를 하고 자신의 멤버를 따라 나가버려, 뭐 저런 이상한 놈들이 요즘 대세라는 건가 싶어 참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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