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7 선배라고 불러 =========================================================================
1년 만에 서는 무대에 첫발을 디디자 팬들의 환호성이 어둠 속에서 거대한 파도 마냥 밀려들어와 ‘쉿!’ 조용히 하라하니, 엄마아빠 말은 안 들어도 자신 말은 잘 듣는 승냥이들이 모두 합중이가 되었다. 로이는 피식 웃으며 그레고리오 성가에 맞춰 천천히 무대를 걸어 나갔다. 그러자 성스러운 사제들의 목소리가 MR로 울려 퍼지고, 자신의 뒤를 한 줄로 따르는 검은 로브를 입은 백댄서들이 미약한 조명으로 형체만 간신히 드러난 채 모두 한입으로 ‘Kyrie eleison (기리에 엘레이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Christe eleison (크리스트 엘레이존, 그리스도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Kyrie eleison (기리에 엘레이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구절을 3번씩 외웠다.
그러다 돌연 푸른 조명이 머리에서부터 쏟아지며 신께 미사를 드리고 있던 사제들이 크게 숨을 들이켜고 뒤돌았는데, 무대 뒤에 알몸인 듯 보이는 여성의 실루엣들이 하얀 천 너머로 야한 춤을 추며 아름다운 곡선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사내들은 처음에 그것이 못 마땅한 듯 고개를 돌려버렸으나, 그중 한명이 뛰쳐나가 그 하얀 천 너머에서 그녀와 같이 춤을 추자 다들 로브자락을 휘날리며 여인의 품으로 달려갔다.
이제 관중 들은 남녀의 정사를 떠올리게 하는 카마수트라 춤에 넋을 놓고 있을 터였다. 로이는 하얀 천막이 떨어지는 순간, 의자에 앉은 자신의 위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팔을 휘두르니 여인의 허리를 격하게 꺾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러다 그녀의 손을 다른 남자가 잡아 놓아주었다. 마치 서커스의 한 장면처럼 자신의 옆구리를 한 바퀴 돌아 백댄서의 품에 안기게 된 여자는 자신을 향해 팔을 뻗는 또 다른 이에게 양 팔을 벌려 넘어갔다.
그렇게 한 미녀를 두고 형제들이 싸움이 시작 되었다. 그중 자신은 신계에 있을 때 신에게 가장 많은 사랑받았던 천사 루시펠, 그는 매혹적인 인간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쓰읍.’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손을 쓴다. 그리고 ‘하아~.’ 가슴에서 무릎까지 손을 내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붉은 장미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런데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모른 척 웨이브를 추며 남자들 사이로 사라져버리고, 버림받은 천사는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면 안 된다는 것도 잊고 가성으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른다.
“장난꾸러기 큐피트여, 내 가슴에 그대의 화살이 보이는 군. 이것은 너의 선물인가. 그런데 이 사실을 너의 어머니는 모르는 모양인데,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너의 실수를 비밀로 해주지. 내가 그녀를 갖게 해줘. 저길 봐. 날 황홀케 하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모란꽃처럼 풍성해. 숨겨진 오늘밤 일은 그대도 알겠지? 그녀의 장밋빛 신전은 나의 것이었어.”
그리고 아직 천사인 루시펠은 가슴을 움켜잡으며 상체를 숙이고, 로브에 숨겨 놓은 지팡이를 꺼내든다.
“제발 날 뒤흔들지 마. 그대는 너무 매혹적이라 무섭지.”
그런데 여자는 자신의 청혼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사내들 사이에서 뱅글 뱅글 돌며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어, 그 모습은 본 루시펠은 괴로운 듯 손으로 얼굴을 잡고 “으아악”소리를 지른다.
잠시 암전, 그리고 침묵…. 그러다 무대 앞에서 불꽃이 빵하고 큰 효과음과 함께 터져 나오면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던 천사는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벌떡 일어나 겉옷을 벗어던진다. 형제들은 그런 동생의 행동에 몰라 쳐다보고, 타락 천사는 아까와 달리 자신만만한 눈빛으로 여인의 뺨에 손을 뻗어 쓰다듬는다.
이것으로 인트로가 끝, 이제 유혹의 노래를 부르는 일만 남았다.
로이는 검은 쉬폰 사이로 모두가 망사 스타킹과 롱부츠를 볼 수 있도록 다리를 살짝 벌린 채 지팡이를 바닥에 세웠다가 발로 차 손안에서 휘돌리고, 어깨를 털며 점점 뒤로 걸어갔다. 그럼 백댄서들이 로브를 벗어던지고 똑같이 은색 지팡이를 든 채 단체군무가 들어간다.
가수는 허스키한 보이스로 유명 작곡가에게 갈취해온 노래 ‘루시퍼’를 불렀다.
“숨길 수 없는 너의 매력적인 poison. 혈관을 타고 들다 시작된 나의 변신. 이제 넌 끝이야. 오늘 밤 너는 나의 노예. 오우~오우. 이제 즐겨볼까 너와 나의 magic night.”
자신의 목을 향해 모두가 지팡이를 비켜나게 겹쳐 별 모양을 만들고 한 바퀴 돌았다. 하도 계집애들이 비명이 질러 어떤 식으로 노래가 불러지고 있는지 목소리를 확인할 수 없었으나 로이는 연습을 한 대로 침착하게 가사를 이어나갔다.
“넌 나에게 미칠 거야. red ocean~, 그 안에 무엇이 있을까. hey girl,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주마. get it boy.”
“헤어나올 수 없는 너의 매력적인 poison. 머릿속에 파고드는 너를 향한 나의 갈망. 이제 넌 내꺼야. 오늘 밤 너는 나만의 연인. 오우~오우. 이제 신경 꺼볼까 너와 나의 feel guilty.”
유혹의 노래를 부르던 중 루시퍼는 자신을 잡아당기는 힘에 흔들리며 자신에게 돌아오라 듯 하늘에서 내려온 밝은 빛을 받는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검은 악마들이 가득하여 그들이 검은 천을 뒤집어씌워주니, 그 안에서 자신은 뼈대만 남은 흉측한 날개를 달고 흑막이 걷어지면 나타나는 거였다. 로이는 대마왕으로 변신해 무대를 가로질러 가장자리에 놓여있던 검은 소파에 다리를 벌리고 앉았다. 그리고 손을 까닥 내밀어, 대기하고 있던 댄서가 투명한 잔에 붉은 피 같은 와인을 따라줬다.
걸어가면서도 노래를 하니 이 동작에 맞춰 해줘야하는 대사가 나올 타이밍을 맞추기 쉽지 않은 데 다행히 성공했다. 가수는 턱을 당긴 채 오만한 지배자의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악마들을 향해 웃어보였다.
“루비 색 포도주가 잔 가득 넘쳐나면, 강력한 끌림으로 뜨겁게 kiss하지.”
그리고 원초적 본능의 샤론스톤 마냥 다리를 꼬고 소파에 길게 누워 나른한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된다.
“사랑의 끝은 언제나 허무해. 숨길 수 없는 눈을 피해, 우리가 도달한 낙원은 Under The Skin.”
그 후, 꼰 다리를 공중으로 들어 소파의 머리 부분에 놓고 머리부터 바닥으로 자신이 미끄러져 내려오면 양쪽에서 손을 내밀어 잡고 일어나는 거였다. 로이는 십자가 모양으로 공중에 들려 무대의 중앙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백댄서들이 자신의 몸을 만지듯 팬터마임으로 손바닥을 턱 턱 놓아, 자신은 뿌리치는 것처럼 몸을 흔들었다. 그럼 모두가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려내 자신은 머리가 잘린 천사 조각상처럼 보이게 되는 거였다.
“내 머릿속을 파고드는 너의 매력적인 Voice. 비껴갈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
그러다 악마들이 서로의 손을 잡아 마치 자신이 감옥에 갇힌 듯 연출을 하면, 그것을 루시퍼는 깨부수며 앞으로 나온다.
“이제 넌 내꺼야. 오늘 밤 너는 나의 노예. 오우~오우. 이제 가져볼까 너와 나의 secret box.”
그런데 이때 로이는 예정에도 없던 상의 까기를 도전했다. 순식간에 올렸다가 내린 거라 자신의 승냥이들이 이 복근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알아볼까 싶었는데, MR이 들리지 않도록 비명소리가 공연장을 뒤흔들어 아이돌은 피식 웃으며 핫팬츠를 안으로 엄지손가락을 넣고 삐딱하게 고개를 든 채 노래를 했다.
“터져버릴 것 같은 내 심장을 느껴봐.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루시퍼의 spell. 오늘밤 너와 나 하나 돼~. 밤이 되었어. 귀기우려 네 안의 내 속삭임을 들어. 나는 부정할 수 없는 너의 thanatos. 이것에 사랑이 있다면 그건 바로 eros.”
로이는 대미의 장식으로 살랑살랑 엉덩이춤을 추며 검은 롱치마를 흔들어 검은 망사스타킹을 보이게 한 다음, 팬들에게 눈웃음을 쳤다. 그리고 자신의 유혹에 드디어 넘어온 여자를 향해 손을 뻗어 그녀를 잡아당겼고, 키스를 하는 척 자신들이 처음 인트로에서 했던 허리 꺾기를 하면 악마들이 검은 천을 펄럭여 흑막 안에서 미녀가 무대 밑으로 숨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다시 드러나면 주위에 아무것도 없어 루시퍼는 충격 받은 얼굴로 주춤 뒷걸음질하고 신을 찾지만, 뒤늦은 후회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채 ‘사랑의 끝은 언제나 허무해.’라 속삭이며 뒤돈다. 그럼 조명이 꺼지고 타락 천사의 노래는 끝나는 거였다.
로이는 무사히 데뷔 무대를 끝내고 백스테이지로 내려왔다. 그런데 사장이 열 받은 얼굴로 뺨을 때리는 거 아닌가. 얼이 빠져 주안을 바라보니, 그가 잔뜩 화가 나 입을 뻥끗했다가 주위를 살피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이따가 애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