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3 선배라고 불러 =========================================================================
이게 미친 건가 싶었다. 감히 하늘같은 선배의 얼굴을 허락도 없이 만지다니 돌았나. 자신이 비록 19살이라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대한민국 슈퍼스타라 경력이 자그마치 19년이었다. 그러니 군기 센 연예계에선 수혁이 자신 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도 자신은 하늘이고, 저 놈은 땅인 것이다.
“김수혁씨, 이게 무슨 짓입니까.”
“로이가 졸려보여서요.”
눈꼬리를 접고 웃는데 순간 주변에 CG처리를 했나 싶었다. 주변이 반짝반짝 빛이 나며 ‘나는 스타.’라고 이마에 써 붙여 천상 연예인이 자신도 살짝 그의 아우라에 쫄았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그걸 묻는 게 아니지 않는가. 금발의 미소녀는…, 그래 그냥 미소년이라 하자. 아무튼 로이는 어리다고 자신을 얕보는 후배님에게 ‘저 같은 스타가 잠을 못자는 거야 당연한 일이죠.’라 말하고, 그 이유가 사실은 팬픽 읽느라 그렇다는 것에 살짝 심장이 뜨끔하기는 했지만 도도하게 턱을 든 채 그를 오만하게 노려봤다. 원래 이 바닥이라는 게 선후배간의 기 싸움이 중요하니 말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음…. 그런데 이거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싶다. 진짜 내가 톱스타라는 걸 안다는 건지, 아님 잘난 척 좀 그만하라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포커페이스도 아니고 하회탈 수준으로 웃고 있으니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웬만해서는 자신이 올려다보는 경우가 없어서 몰랐는데 이 자세가 매우 목이 아팠다. 이 아저씨가 뭘 먹고 그렇게 키가 컸나 싶었다. 좀 알려주면 그것만 피해 먹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건강을 챙기세요. 너무 무리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컥. 역시 후자였다. 뭔 놈의 남자가 같은 남자에게 이렇게 사르르 눈웃음을 쳐대겠는가.
데뷔 경력 5년차 김수혁은 외모는 물론 성격 좋기로도 유명한 실력파 연기자인데, 거인족인 자신의 아빠와 키가 같은 한국인 돌연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화보나 패션쇼에도 자주 서는 모델 비주얼의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일품이라 자신의 커피 CF를 빼앗아간 전적이 있었고, 얼마 전에는 자신이 찍던 김치냉장고 광고까지 섭렵해버려 자신이 엄마의 잔소리에 시달려 죽을 것 같아졌는데 그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거다.
눈을 부릅뜨고 ‘이 나쁜 놈아!’하는데 점점 눈꼬리가 내려왔다. 자신이 봐도 수혁 아저씨는 잘 생겼다. 29살이면 완전 파삭 삭은 퇴물이어야 하는데 온화한 웃음이 입꼬리에 매달려 그것을 따라 바라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런데 눈만 멋진 게 아니라 코도 남자답게 번듯하고 턱 선은 날이 죽여줘, 혹시 양악한 거 아니야 싶을 정도였다.
너 조금 깎았지? 맞지?
그의 날렵한 얼굴을 노려보고 있자 목젖이 크게 움직이며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호기심 많은 로이는 고양이 눈으로 신기한 아담스 애플을 향해 얼굴을 드밀고 ‘이걸 만져봐, 말아?’ 고민해봤다. 그러자 사장이 ‘로이, 준비해.’란다. 꼴에 다른 사람 앞이라고 아주 폼 잔뜩 잡은 목소리였다. 누가 들으면 저 인간이 진짜 진지한 정상인인 줄 알겠다.
로이는 뒤로 물러가 아쉬움으로 매니저의 목젖을 만져봤다. 졸지에 목젖이 가격당한 사내는 컥컥거리며 ‘이게 왜 또 성질이야.’했는데 수혁과는 다르게 섹시미가 없는 목이라 별다른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멍하니 생각해보았다. 팬픽에서 자신과 저 섹시 아저씨가 마구 마구 뒹굴었는데, 자신은 그 밑에 깔려서 앙앙거리는 역할이었다. 물론 내사랑로이는 자신에게 없는 가슴까지 만들어줘 이 새가슴에게 무려 ‘풍만’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줬으니 소설 속 수혁이 슈퍼 사이즈 거시기라는 사실 또한 허구이겠지만, 목젖이 크면 그것도 크고 정력왕이라는 속설을 들었기에 사장 거는 개미만 하겠구나 싶어 갑자기 민호가 불쌍해졌다.
로이는 스타일리스트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네가 고생이 많다.’라며 귀여운 소년 같은 갈색머리 청년과 부비부비를 했다. 어쩌다 이렇게 귀여운 꽃청년이 괴팍한 변태 아저씨한테 걸려서 게이가 되어버렸나 싶었다. 분명 처음 자신에게 왔을 때에는 둘 사이가 엄청 안 좋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남자들의 연애사라는 게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로이,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왜 그래 무섭게.”
그런데 이 사람들이 툭하면 자신을 사고뭉치로 취급해댔다. 그래서 그냥 개미와 연애하는 스타일리스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민호야 사랑해.’라며 마구잡이로 뽀뽀를 하며 그를 골려줬다. 그러자 김수혁이 아직도 안가고 남아있었는지 자신에게 정색하며 그런 장난은 치지 말라는 것이다. 하긴 저 늙은 후배님이 보기에는 자신이 게이처럼 보였을 테니 좀 많이 역겨웠을 것 같았다.
“싫은데요. 김수혁씨도 저한테 뽀뽀 받고 싶으십니까.”
“………….”
헐. 대답을 못하고 있다 지금. 특종이었다. 톱스타 K군이 사실은 게이란다.
로이는 속으로 켈켈켈 웃으며 속눈썹을 내리깔고 회심을 미소를 숨겨냈다. 이 잘난 남자를 골로 보낼 재미난 작전이 생각난 것이다. 우선 제보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공중전화를 찾아 이 사실을 모두 밝히고 자신의 CF를 돌려받는 것이다. 왜 아이돌의 영역까지 넘봐서 아저씨 주제에 상큼한 오렌지 탄산음료까지 찍느냐 말이다. 이거 자신을 물 먹이려는 고의가 틀림없었다. 재계약 기간만 되면 족족 로이 테일러의 밥줄을 끊어놓으니 말이다.
“아님, 키스? 그런데 김수혁씨는 내 후배면서 언제까지 이름으로….”
니미럴, 이 게이가 미친 게 틀림없었다. 여기는 방송국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에게 겁도 없이 입술 박치기를 한 것이다. 다행히 사장이 미친 개 마냥 자신의 후배님을 뜯어 말리셨다. 그런데 방금 이 개새끼가 내 가슴을 만지지 않았나? 너무 놀라 멍하니 수혁을 보니, 만만해보이던 후배님이 하극상을 부리셨다.
연기자라 살인마 연기도 할 줄 아는지 그의 검은 눈동자가 미친 듯이 회오리치며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잔인한 눈빛이 되었다. 방금 꿀 발라놓은 것 같았던 달콤한 눈이랑 같은 자의 눈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그가 나지막하게 ‘다른 놈이랑 또 뽀뽀하면 진짜 화내겠습니다.’란다. 그렇다면 지금 이건 화낸 게 아니란 말인가.
로이는 살인마 잭을 연기하는 남자 배우 때문에 놀란 가슴을 매니저 등딱지에 달라붙어 가라앉혔는데 연예계에서 신사라 정평이 난 수혁이 팔을 뻗어 자신을 뜯어내려고 해, 스타일리스트까지 달려들어 그를 말려야 했다. 톱스타가 아니라 무슨 범죄자 같았다. 연예계에 몸담기 전 그 전적이 의심스러워지는 후배였다.
“제 몸에 손대지 마십시오.”
수혁은 몸싸움으로 흐트러진 정장 재킷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잔뜩 겁을 먹어 코알라가 된 자신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 위압적인 키를 낮췄다. 그리고 그 특유의 부드러운 입매로 다정히 ‘로이, 앞으로는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그건 나쁜 장난입니다. 알았죠?’라며 자신을 어린애 취급했다. 하지만 무서운 후배님께 상당히 쫄았음으로 고분이 고개를 끄덕이니 그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심장이 쫄깃해지는 순간이었다.
워낙 주변의 떠받침만 받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살았기에 혼나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어안이 벙벙해져 사장에게 ‘나 드라마 안 할래.’라고 속삭이자 나쁜 갑 김주안이 을 로이 테일러에게 그게 요즘 얼마나 인기가 짱인데, 라며 ‘김수혁은……미안하다. 너무 거물이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차 시킬 수 없다는 거다.
“나보다? 나보다 더 거물이야?”
“로이야.”
자신의 질문에 사장이 오랜만에 진지한 얼굴로 어깨를 붙들더니 ‘재가 지금 일본 아줌마들의 대통령이야. 너도 이제 어서 정신 차리고 주제 파악을 해야지. 언제까지 탑일 수는 없잖아.’란다.
……아아, 이것이 몰락이라는 건가?
아역 스타는 매니저의 말에 충격을 받고 휘청거리며 대기실로 갔다. 물론 너무 오만한 소속사 스타를 위한 사장의 겁주기였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로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