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이돌이다-2화 (2/104)

00002  선배라고 불러  =========================================================================

로이는 오랜만에 가요 무대를 서야 해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은 걸 억지로 참고 허우적거리며 화장실로 갔다. 누가 천상 연예인 아니랄까봐 눈밑의 다크서클조차 스모키 메이크업처럼 섹시해보였다. 대충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나니 긴 속눈썹에 매달린 물방울이 대롱대롱 거려 아주 귀찮았다. 좋을 거 하나 없는 속눈썹이었다.

어째서 이 미모, 이 미친 몸매의 자신을 모두 남자로 착각하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눈이 아주 삔 모양이다. 백옥같이 뽀얀 피부는 화장기 하나 없어도 아기 마냥 보송보송하지, 코쟁이 아빠를 닮아 코도 오뚝하지, 입술은 장미를 머금은 것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어딜 보나 섹시한 금발의 미녀인데 머리카락이 짧아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뭘 해도 자신이 미소년이란다.

발을 들어 간지러운 반대쪽 종아리를 벅벅 긁으며 양치질을 했다. 매니저가 밥 먹으라며 밖에서 소리를 질러 안 먹는다고 하니 ‘너 배고플 때 춤추면 쓰러지잖아.’라며 닥치고 먹으란다. 물론 자신은 연예인 생활 19년차 베테랑이라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톱스타이지만, 정체가 정체인지라 소속사 사장이 직접 관리 중이시라 이런 푸대접이었다.

대충 입안을 물로 헹구고 나가 힐끗 사장이 식탁에 차려놓은 걸 확인하고 그대로 방으로 도망쳐버렸다. 아침부터 샐러드라니, 그것도 양치하고 야채 섭취라니. 그건 그냥 먹어도 맛없는 건데 말이다.

“야, 이 망아지야. 문 열어!”

“즐~, 너나 처먹어 사장아.”

“야! 로이! 내가 그 딴 말투 쓰지 말라고 했지! 너 이번 콘셉트가 성숙한 섹시돌이거 몰라? 타락 천사라 했지! 반항을 해도 분위기 딱 잡고 눈 깔아, 하는 거만함이 멋있어 보이는 게 키  포인트라고.”

똘기 충만 매니저는 문이 부서져라 쾅쾅 쳐댔다. 그렇다고 문 열어줄 자신도 아니었다.

로이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둘둘 말아 품안에 끌어안고 매트리스 위를 대굴대굴 굴러다녔다.

“야아~, 어서 밥 먹자. 이제 리허설 시작이란 말이야. 너 음악챔프 PD가 얼마나 성깔 더러운지 알지? 김택준이, 그 개싸가지가 얘들 스케줄 때문에 늦어도 방송에서 빼버리는 걸로 유명하단 말이야.”

듣고 보니 자존심 상했다. 고작 자신이 PD 하나 눈치 볼 짬밥은 아니었다.

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문틀에 삐딱하게 기대서서 사장을 노려봤다. 그렇게 멋있게 건방 떠는 모습이 좋으면 실컷 보라고 말이다.

금발의 스타는 긴 자신의 손가락을 이용해 머리카락을 넘기며 너무 투명하기에 싸늘해 보이는 푸른 눈으로 남자의 모습을 담아냈다. 그리곤 살짝 입술을 벌리고 하아, 한숨을 내쉬니 사장놈이 발기를 해버렸다.

갓 뎀.

아침부터 못 볼 것을 봐 눈을 가리는데 문득 ‘이 놈 게이인데 왜 나한테 발정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게이한테도 남자로 보이다니 이건 정말 신의 농간이었다.

“내가 겨우 그 정도였나? 이 로이 테일러가?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돌 로이가?”

“물론 아니지. 네가 최고인 거는 우리나라 온 국민이 다 알고, 일본이 알고, 중국이 아는데. 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뒤로 물러나는 그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주며 야채는 너나 처먹으라 해줬다. 누구 때문에 소속사 사장이라고 떵떵거리며 사는 거냔 말이다. 바로 이 로이 테일러가 뼈 빠지게 CF찍고, 드라마 찍고, 영화 찍고, 노래하고 춤을 춰서 그런 거였다. 재주는 자신이 다 부리고 돈은 저 놈이 다 처먹으니 상당히 짜증나는 관계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자신이 여자인 걸 알면서도 스타로 키워낸 장본인이니 시한폭탄을 안고 뛰는 그에게 뭐라 할만은 없었다.

“그런데 로이야. 너 진짜 여자 맞지? 막 나 속이는 거 아니지?”

“뭐야? 눈깔이 호구야? 내 어디가 남자 같다는 거야? 딱 봐도 미소녀구만.”

“………180.”

“젠장.”

그 놈의 키가 문제였다. 상판도 납작하고 목소리도 허스키해 아무리 얼굴이 예뻐도 사람들이 절대 여자로 안 봐줬다. 신경질이나 ‘180 아니거든! 정확히 178이야!’라 했지만 어쨌든 한국 남자들의 평균키와 비교하고도 큰 키였다. 이게 다 서양인 피가 흘러서 그런 거였다. 그토록 편식하고, 우유 안 먹고, 운동을 안했는데도 왜 콩나물도 아니건만 키가 쑥쑥 자란단 말인가. 이게 바로 혼혈의 저주인가 싶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아빠의 키가 198라고 했으니 자신은 거의 2m에 육박하는 거인의 후손이 아닌가.

대충 매니저가 차려둔 샐러드를 입에 우겨넣고 방으로 돌아가 심플한 면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현관에 나서기 전 선글라스를 끼고 빨간 스니커즈를 신으니, 사장이 ‘옷빨 죽인다.’란다. 당연한 소리였다. 자신은 연예인이지 않는가. 그런데 왜 이 나이가 먹도록 가슴이 없는 걸까 싶었다. 이러다 웃통 벗고도 아무도 여자라는 걸 알아보지 못할까봐 두려워 ‘김사장, 나 오늘 섹시한가.’라고 물으니 그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줬다. 그런데 게이가 하는 말이라 안구에 눈물이 찼다.

빌라를 나와 카니발 리무진이 있는 데까지 걸으니, 계집애들이 아침부터 잠긴 목소리로 꺄꺄 거리며 ‘오빠 사랑해요.’라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 ‘닥쳐!’ 하니, 더 좋다고 비명이었다. 메저들이 따로 없었다.

로이는 차에 올라타 스마트 폰으로 자기 이름을 검색하고 댓글을 살폈다. 그런데 어째 악플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자신의 새 앨범에 대해 좋은 말만 해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이디 ‘로이뒈져.’로 『로이 앨범 완전 구림.ㅋㅋ 내가 그거 망한다는 데 전재산을 걸지. 그 놈 초 개싸가지인거 모두 모르나? 얼마 전 하수연 드라마 촬영 그만 두고 토낀 것도 걔가 막말해서라 함.』이라 올렸다. 그러자 바로 미친 듯이 댓글이 달리며 자신보고 나가 죽으란다, 이번 신곡 음원 차트 올킬 했으니 전재산 내놓으란다.

그런데 눈에 뜨는 댓글이 하나 보였다. 역시 아이디 ‘내사랑로이.’였다. 이 오랜 자신의 선플 생산자는 『하수연이 몸 디밀어서 로이가 좋게 싫다고 했는데 자꾸 그년이 스토커질을 해 그런 거였음.』이라 달아 그 정체가 갈수록 의심스러워졌다. 사장이 인터넷에 프락치라도 심어논건가 싶어 의심의 눈치로 운전하고 있는 김 기사를 보니, 그가 살짝 모자란 표정으로 제 남친이랑 대화를 나누고 있어 조심해서 운전해라 했다. 스타일리스트를 어서 바꿔야 앞으로 교통사고가 안 나지 싶었다.

아무튼 이 골 때리는 내사랑로이는 로이 테일러의 모든 기사에 선플을 달고 악플에 대응하는 로이 수호자였다. 팬클럽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기획된 알바생은 아닌 것 같은데 참으로 께름칙한 것이 절대 업계 종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사실들을 이 팬이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얼마 전부터 자신이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과 자신의 팬픽을 쓰고 있다는 걸 보면 여자일 텐데 도저히 주변에 짐작 가는 사람이 없었다.

로이는 스마트 폰을 들고 열심히 악플 놀이를 하다가 매니저가 다 왔다는 말에 얼른 로그아웃을 하고 ‘사장, 내가 요즘 악플이 많이 달려.’라고 운을 띄었는데 자기도 봤다며 사이버 수사대에 ‘로이뒈져’를 신고할 생각이라고 해 얼른 ‘안티도 팬이지.’라 말하고 입을 닫았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자신의 카니발이 방송국으로 들어서자 바닥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여자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 듯 괴력으로 차를 막아서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래서 어서 꺼지라고 손을 휘저어주니 그게 인사를 한 줄 알고 ‘우리 로이가 착해졌어.’란다.

“까아아~. 로이가 날 보고 웃었어.”

지금 자신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데 어떻게 눈이 보이는 걸까 싶었다. 모두 투시 능력이 있는 초능력자인 모양이었다.

다행히 방송국 경호원들이 로이 승냥이들을 처리해줘 차 문을 열고 나오자, 비명소리 때문에 고막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야! 시끄러워! 승냥이, 너희들. 아침부터 학교 안가고 아주 잘하는 짓이야.”

그런데 뭐가 그리 좋은지 ‘오빠가 날 걱정해줬어.’가 됐다. 너무 맹목적인 애정이라 로이는 피식 웃으며 선글라스를 벗어 티셔츠 목에 걸고 자신을 기다리던 소녀팬들에게 얼굴을 보여주며 ‘오빠 너무 걱정시키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부드러운 미소로 타이른 다음, 가까이 있던 소녀팬들의 머리를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가 달려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로이야 미쳤니?’라고 물어봐와 ‘안티가 생겨서 말이지.’라며 시치미 뚝 떼버렸다. 스타라면 자기 팬을 사랑하는 게 정상이라는 것도 모르다니, 참으로 한심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과 대기실로 향하는 길에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있던 김수혁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이거 뭐라 해야 할까. 전혀 신경 안 쓰던 놈이기는 한데 내사랑로이가 어제 그와 베드씬을 올려버려 뭔가 기분이 이상야릇했다. 처음 그 소설을 발견했을 때만해도 프롤로그만 읽자 싶었는데 어느새 매일 업로드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오늘이 데뷔 날임에도 연습도 안하고 새벽까지 팬픽을 기다리다 새로 업로드된 글을 읽고 말아 컨디션이 별로였다.

수혁이 멀뚱히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는지 웃으며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온 그가 자신 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커 올려다보니 피곤하냐며 눈 밑을 쓸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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