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마지막
그것은 오래전 마왕과 용사가 아직 어렸을 적의 일.
“누나 여기서 뭐하고 있어?”
“그건 내가 묻고 싶은.... 아우으! 얼른 고개 돌리지 못해!”
산속 호수에 목욕을 하던 마왕이 자신의 가슴을 가리며 용사에게 소리쳤으나 용사는 자랑스럽게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마왕에게 말했다.
“괜찮아. 익숙해.”
“익숙....? 뭐가 익숙하다는 거야? 설마 여자의 알몸을 엿보는 게? 이 꼬맹이 보이는 거에 비해 엄청 야하....”
“엄마나 친구 공주랑 자주 목욕하는걸!”
용사의 발언에 마왕이 얼굴이 붉어지며 말하자 용사는 코를 쓱 하며 말하였다.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야!!”
“?”
용사의 말에 마왕이 붉어진 얼굴로 태클을 걸자 용사는 그런 마왕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 듯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며 마왕을 바라보았다.
“엄마나 친구랑 하는 건 친하니까 그럴 수 있다지만 나랑은 전혀 모르는 사이잖니!”
“에? 그럼 알몸을 본 김에 친해지자!‘
“순서가 이상하잖니?!”
“그럼 공평하게 나도 벗을게.”
“내가 하는 말 이해하고 있어?”
마왕의 태클에도 불구하고 용사가 벗으려하자 마왕은 다급히 옷을 벗으려는 용사를 붙잡았다.
“에? 어째서 막는 거야?”
마왕이 붙잡자 용사는 마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마왕의 힘이 한 수 위였다.
“너무해. 어째서 못 벗게 하는 거야?”
“반대로 어째서 그렇게 벗으려는 건데..?”
억울하다는 마왕의 투정에 마왕은 황당하다는 듯 용사에게 말하며 마법을 이용해 옷을 입었다.
“잘들어. 이 누나는 말이지. 애초에 너랑 친해질 생각이 없어요.”
“어째서....?”
“어째서라니..... 애초에 갑작스레 만난 전혀 모르는 애랑 친해진다는 것 자체가.....”
“친해지면 안 돼...?”
설교를 하려던 마왕은 용사의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얼굴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용사는 아무런 대꾸를 못한 채 가만히 있는 마왕에게 안기며
“나 친해지는게 좋아!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
해맑은 미소로 그렇게 말하였다.
“그... 그래....”
차마 어린아이의 순박한 미소를 깰 수 없었던 마왕은 용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고 다음날 이곳 오후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였다.
어차피 금세 질려하는 것이 어린애.
사이좋게 된다 한 들 별로 재미도 없고 인간도 아닌 자신과 조금 놀다보면 금세 떨어져 나갈 것이라 생각하였다.
✻✻✻
“누나! 오늘은 뭐하고 놀까?”
“글쎄... 적당히 주변에 놀만한 걸로 놀면 되지 않아?”
“그럼 수영하자 수영! 잠깐만. 나 옷 좀 벗을게.”
“그러니까 왜 자꾸 옷을 벗으려는 거야?!”
“그치만 옷 젖어서 가면 엄마한테 혼나.”
“마법으로 말리면 되잖니!”
“아직 마법 사용할 줄 몰라.”
“내가 사용할 줄 아니 그냥 하자..”
“우와~! 누나 마법도 사용할 줄 알아? 멋지다! 보여줘!”
어느새 화제가 수영에서 마법으로 변질되었으나 어린애가 그렇지 뭐 하는 마왕의 이해심과 알몸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감에 마왕은 용사에게 파이어 볼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우와~! 만져도 돼?”
“안 돼! 뜨거워.”
“........히잉.”
마왕의 제지에 용사는 실망한 듯 울상이 되어 파이어볼을 바라보았고 마왕은 그런 용사의 표정에 피식 미소를 지으며 다른 손에 아이스볼을 만들어주었다.
“파이어볼은 안되지만 이건 마력 출력도 낮췄으니 거의 보통 얼음이랑 비슷해서 만져도 괜찮을거야.”
“우와아~!”
마왕이 아이스볼을 건네자 반짝이는 눈으로 아이스볼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용사.
그런 용사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마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용사를 바라보았고
퍼억!
전쟁이 시작되었다.
“눈싸움이다! 눈싸움!!”
정확히는 눈이 아닌 얼음이었기에 평범한 인간이 맞았으면 고통스러워 할 수준이었다.
지금 맞은 마왕이 보통 인간이 아닌 마족의 튼튼한 몸을 가졌기에 다행이었으나
“했겠다....?”
아무래도 아픈 것과 기습적으로 공격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별개의 일이었던 것 같다.
“스노우볼!! 스노우볼!!”
“우와악!! 우와~! 치사해! 나한테도 만들어줘어~!!”
“트리플 스노우볼!!!”
계속해서 마법으로 눈뭉치를 만들어내며 용사에게 집어던지는 마왕.
그런 마왕의 공격에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용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도망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상대를 봐가면서 골랐어야지! 꼬맹아!!”
“우으...!! 너무해!! 비겁하다아!!!”
“승부에 세계에선 비겁이고 뭐고 없는 거야!! 세상이 그런 거란다!!!”
그런 이치를 깨닫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의 용사였다.
“으우우... 너무해..”
“먼저 공격한 꼬맹이 네 탓이야.”
결국 마왕의 계속되는 공격에 거대한 눈뭉치에 맞고 쓰러진 용사는 투덜거리며 마왕을 노려보았으나 마왕은 그런 용사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며 말하였다.
“으우... 다 젖었어....”
“이리와 말려줄게.”
마왕의 스노우볼에 완전히 축축하게 젖은 용사가 투덜거리자 마왕은 손에서 따뜻한 기운을 내뿜으며 용사의 젖은 옷과 머리를 천천히 말려주었다.
“마법 좋다~ 누나 나 마법 가르쳐주라!”
“으음... 이건 배우고 싶다고 해서 그리 간단히 배울 수 있는 게 아닌데..”
“에에~ 그러지 말고 알려줘어~!”
“그렇게 말해도.....”
“누나 제발 알려주시면 안 돼요?”
용사의 부탁에 마왕이 거절하자 용사는 양 손을 모으며 마왕을 올려다보며 간절히 빌었다.
“............”
그러자 그런 용사의 모습에 잠시 넋을 놓은 마왕을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용사의 눈빛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으나 이대로 가단 용사에게 휘둘리는 것 같아 마음을 굳게 다잡으며 용사에게 말했다.
“아, 안 되는 건 안 돼!”
마왕이 단호히 말하자 용사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시무룩해져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런 용사의 반응에 마왕은 조금 걱정돼 고개를 숙인 용사를 바라보자 마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그렇게도 서러워 우는지 용사의 몸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저, 저기...”
용사가 우는 것 같자 마왕은 그런 용사를 조심스럽게 불렀으나 용사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그러니까.....”
방금 전까지 밝던 용사가 서글픈 모습을 보이자 마음이 약해진 용사는 우물쭈물 거리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부들거리는 용사의 어깨를 붙잡고 말하였다.
“아, 알았어! 마법 가르쳐 줄 테니까... 이제 그만...”
“정말로~~~??”
마왕이 마지못해 큰 결심을 하고 말하자 어느새 눈물을 그쳤는지, 아니 전혀 울지 않았는지 눈에는 눈물자국 하나 없는 용사가 기쁜 표정으로 마왕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다, 당했...?!”
“정말이지~? 누나 가르쳐 준다고 했어! 한입으로 두말하기 없기야!”
“비, 비겁해....”
“아까 누나가 세상이 비겁한 거라고 했어!”
스노우 볼에 계속해서 당하기만 할 때에도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엔 너무 어린 나이인 줄 알았으나 의외로 습득력이 빠른 용사였다.
“스, 승부의 세계랑 이건 다른 차원의...”
“에에~ 같은 거지~! 가르침 받으려는 나랑 안 가르쳐주려는 누나 사이의 승부잖아! 가르쳐줘어~ 얼른 가르쳐 달란 말이야아~~!!”
“다, 달라붙지 마!! 꺄앗! 어딜 만지는 거니!!”
“가르쳐 줄때까지 안 떨어질 거야!!”
마왕에게 매달리며 마왕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어버리는 용사.
그런 용사의 행동에 마왕은 당황하며 얼른 용사를 가슴에서 떼어내려 하였으나 의외로 힘이 쎈 용사는 마왕에게 떨어지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마왕에게 달라붙은 채 마왕에게 마법을 가르쳐달라 떼를 썼다.
“아앗!! 알았어!! 가르쳐 줄 테니까! 마법 가르쳐줄 거니까! 어서 떨어져어~!”
“응!!!”
결국 끈기 싸움에서 진 마왕이 용사에게 소리치자 용사는 마왕의 말에 곧장 마왕에게서 떨어졌고 얼굴이 붉어진 마왕은 자신의 가슴을 감싸며 용사를 노려보았다.
“너... 나중에 절대로 폭군이 될 기질이야.”
“응? 그건 멋있는 거야? 엄마도 나중에 나는 멋진 남자가 될 거라 그랬어!”
“.............”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용사와의 대화에 마왕은 대화를 포기하기로 하였다.
✻✻✻
다음날
“스노우 볼!!”
결국 마법을 알려주기로 한 마왕은 용사에게 스노우 볼의 생성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왜 굳이 하고많은 마법 중 스노우 볼이냐면 어제의 복수를 하고 싶다나 뭐라나. 용사의 간곡한 부탁에 마왕은 우선 그걸 가르쳐 주려고 하였다.
“으으... 스노우 볼!!!”
물론, 가르친다고 금방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으웅... 왜 안 나가는 거야!”
“무작정 외친다고 나가면 마법을 배우는 의미가 없죠.”
“누나는 외치기만 하면 잘 나가잖아.”
“그건 내가 마력을 잘 다룰 줄 알아서 그런 거고.....”
“웅..... 마력은 어떻게 해서 다루는 거야?”
“글쎄... 일단 나도 이론보단 감각파라서.... 허공에 뭔가 느껴지거나 잡히는 게 없니?”
“으움.......”
마왕의 말에 용사는 잠시 허공을 보며 집중을 하기 시작했고 순간 무언가 보였는지 허공에 양 손을 쭉 뻗어 주먹을 쥐었다.
“뭔가 잡혔어?”
“모기 2마리!!”
“.............그런 걸 잡으라는 뜻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오히려 순간적으로 날아가는 모기를 캐치해 각각 한 손으로 잡은 것이 더 신기한 마왕이었다.
“음... 뭔가 설명하기 어렵지만 말이야.... 예를 들어보자면 저기 호수에 있을 때 팔을 휘두르면 물이 걸리적 거리고 잡히는 게 느껴지잖니?”
“응!”
“그걸 지금 했을 때 비슷한 느낌이 느껴진다고 생각하고 한번 팔을 휘둘렀다 손에 무언 갈 쥐어봐.”
“으움.......”
일단 최대한 알기 쉬운 예시를 들며 마왕이 말하자 알아들었는지 우선 씩씩하게 대답하는 것인지 모를 용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왕에게 대답하였고 금방 다시 자세를 잡아 집중하며 허공에 팔을 붕붕 휘둘렀다.
“후우.....”
휙휙
용사의 팔을 휘두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그와 동시에 용사의 집중도 역시 점점 상승하며 마침내 용사가 무엇을 느낀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잡았다!”
“뭔가 잡혔어?”
“바람!!”
용사의 외침에 마왕이 묻자 용사는 자신의 주먹을 펼치며 그 안에 모여 있던 바람을 마왕에게 흩날렸다.
“......달라! 아니, 확실히 마법 같긴 한데... 뭔가 다르다구!!”
마왕의 외침에 용사는 마왕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왕을 바라보았고 마왕은 그런 용사의 모습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그냥 지금 당장 기쁘게 방금 사용한 게 마법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혹여 방금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마법이라고 보여주었을 때 창피를 당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 녀석이 자신과는 1도 상관없는 그저 우연히 만난 꼬맹이기에 그런 창피함을 당한다 한들 자신과는 딱히 상관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게다가 그날도 그냥 목욕하는 중 우연히 만나 그날 끝날 인연인줄 알았으나 벌써 3일째 만나고 있지 않는가? 세상살이란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그리 생각한 마왕은 용사에게 제대로 된 마법을 가르치려 했으나 용사는 어려운 마법에 벌써 흥미가 떨어졌는지 방금 전 자신이 사용한 주먹에 바람을 모으는 기술을 남발하며 놀고 있었다.
“바람~!!”
용사가 주먹을 휘두르자 나무의 잎이 흔들린다.
“바람~~~!!”
용사가 호수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자 호수의 물결이 잔잔하지만 조금 요동친다.
“바라암~!!”
용사가 마왕의 얼굴을 향해 주먹에 모았던 바람을 날리자 마왕이 시원하다.
“헤헤~~!”
뭐,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으나 용사가 이걸로 만족한 듯 했으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마왕은 그렇게 생각하며 신나서 바람을 연발하는 용사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참고로 저렇게 무작정 남발하다간 금방 용사의 체력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버릴 것이다.
“헥헥......”
역시나였다.
✻✻✻
“그러고 보니 누나 머리에 난 뿔은 뭐야?”
어느덧 용사와 마왕이 습관적으로 이 호수에서 만나게 된 어느날 용사는 마왕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며 마왕의 뿔에 점프하였다.
“응? 아아. 이건 말이.... 꺄앗!! 뭐하는 거니!! 잡아당기지 마! 민감한 곳이라구!”
용사가 마왕에게 점프하여 뿔을 잡아당기자 마왕은 소리를 지르며 얼른 용사를 떼어내었다.
“정말... 아무리 궁금하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갑자기 막 잡아당기거나 하면 안 돼. 특히나 여자애 몸은 연약하고 예민하니까 조심히 다뤄야 한다고.”
“연약...........”
“.........그 뭐라 반응하기 곤란하다는 표정 곤란하니까 당장 그만둬.”
마왕의 말에 용사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마왕을 바라보았고 마왕은 그런 용사의 반응에 태클을 걸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 뿔이 뭔지 궁금한 거지?”
“응. 아빠도 엄마도, 공주도 옆집 아저씨도 그런 뿔은 없어.”
“네가 아는 사람 중에 이 뿔이 달린 사람 있다면 이상한 건데..”
용사의 질문에 마왕은 자신의 뿔을 쓰다듬으며 용사를 바라보았고 용사는 마왕의 대답에 집중하는 듯 했다.
“얘 너. 드래곤이라고 알아?”
“드래곤? 알아! 어~엄청~! 크고~~! 어엄~~청! 강한거!”
드래곤이라는 단어에 용사가 흥분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였다.
아무래도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어린아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 혹은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용사는 전자 쪽인 듯 드래곤이라는 것에 흥미가 많은 것 같았다.
그런 용사의 반응에 마왕은 피식 웃으며 용사를 바라보았고 용사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듯 마왕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면 지금 이 누나가 드래곤이면 어떨 것 같아?”
“등에 태워줬으면 좋겠어!!”
“예, 예상외의 답변이네.... 뭐, 태워줄 순 있지만.. 대신 다른 사람에겐 비밀이다?”
“응!!”
✻✻✻
“누나!! 아....?!”
마왕이 용사에게 드래곤의 정체를 알려준 며칠 뒤 용사가 마왕에게 찾아가자 마왕은 어째선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아.. 왔어?”
“누나...!! 왜 이런 거야?! 무슨 일 있었어?!”
“딱히 별거 아냐. 그저... 조금 방심 했달까. 기습에 조금 당했어.”
“누가 기습했는데?”
“여러가지 있어. 이 누나 보기보다... 아니, 보기에도 엄청 인기인이란다?”
“이런 식으로 인기 있는 건 싫어!”
분위기의 전환을 위해 마왕이 농담으로 툭 던져보았으나 용사에겐 먹히지 않는지 잔뜩 심각한 표정이 된 채 용사는 그렇게 말하였고 마왕은 그런 용사의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지으며 용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뭐, 아무튼 일이 좀 그렇게 되었으니 누나는 이제 여기엔 더 이상 못 있을 것 같아.”
“왜......? 같이 있자. 좀 더 같이 놀자. 내가 지켜줄게.”
“어이구~ 아직 그 실력으론 내가 널 지켜야 하네요.”
“그래도 가지마! 내가 실력 기를게. 우리 집 검사 집안이니까 검술도 열심히 배우고 누나한테 열심히 마법도 배울게. 그렇게 강해져서 내가 지켜줄 테니까. 가지마. 누나!”
“어라~? 언제 이렇게 날 좋아하게 되셨나~? 이 누나가 좋으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누나 좋아해! 그러니까 가지마. 같이 살자.”
“.............얘, 얘는 애가 못하는 말이 없어!”
능글맞게 웃으며 놀리려던 마왕은 용사의 단도직입적인 고백에 얼굴이 붉어져서 손을 절래 저으며 말했으나 용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마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애, 애초에 말이지. 드래곤은 정착해서 살지 않아. 그저 폐허나 그나마 살기 좋은 곳에 둥지를 틀고 다른 드래곤을 습격하는 녀석들을 피해 이리저리 방황할 뿐이야. 그런 정처 없이 떠도는 드래곤에게 같이 살자는 말이 얼마나 모순인지......”
“습격하는 녀석을 모두 물리칠 만큼 강해지면 되잖아. 다른 녀석들은 침범하지 못하게 커다란 성 같은걸 지어놓고. 마왕처럼!”
“....................”
마왕의 말에 용사가 대답하자 마왕은 그런 용사의 대답에 잠시 벙져 있다 이내 용사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러면 되지! 좋은 생각이야! 하하하!!”
“맞아! 그러니까 누나. 떠나지 말고 나랑 같이 살자! 내가 잘해줄게! 뭣하면 가정부일까지 해줄게!”
“어머~ 지금 그거 빙 돌린 프러포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누나 꽤 비싸서 그런 건 안 먹혀~”
“프러포즈?”
마왕의 말에 용사가 프러포즈란 단어를 모르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마왕은 용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아, 단어를 제대로 모르는구나~ 쉽게 말하자면 저랑 결혼해주세요~ 라는 말이야.”
“결혼하면 누나랑 같이 살 수 있는 거야?”
“뭐, 이 누나가 승낙을 한다면.....”
“누나! 나랑 결혼해주세요!!”
“에~?”
프러포즈에 대한 설명을 하자 용사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마왕의 머리를 양 손으로 붙잡은 채 마왕을 바라보며 말하였고 마왕은 그런 용사의 뜬금없는 행동에 당황하였다.
“무슨 소리야~ 결혼이 뭔지도 모르....”
“알아! 엄마랑 아빠가 되는 거지? 나 누나랑 있으면 즐겁고 누나면 엄마랑 아빠가 되도 괜찮다고 생각해!”
“너... 너는 처음 만날 때부터 항상 그렇게 뜬금없고 황당하게.....”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네. 네에.”
용사의 강압적인 태도에 밀어붙이는 것에 약한 마왕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승낙을 하고 말았다.
“그, 그럼..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응. 아무래도 그리 바로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용사 네가 말한 대로 좀 더 강해져서 아무런 녀석도 습격하지 못하는 성을 만들 테니까 그 때까지 조금 기다려 줘.”
“얼마나 걸리는데?”
“글쎄.. 그래도 얼마 걸리진 않을 거야. 그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지?”
“으웅...... 알았어. 대신 약속하는 거야?”
마왕의 말에 조금 못마땅하나 그래도 이해한다는 듯 복잡한 표정을 짓던 용사는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마왕에게 말하였다. 그런 용사의 행동에 마왕 역시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손가락 고리를 걸며 약속하였다.
“누나 꼭이야~!”
“그래. 너도 약속 잊으면 안 된다~?”
“절대 안 잊어!!!!”
날개를 펼치며 하늘을 날아가는 마왕을 보며 용사가 소리쳤고 마왕은 그런 용사의 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
“.....라는 약속을 한 적이 있는데 말이지. 어째선지 용사는 그 약속을 모두 잊은 것 같고.”
“.............”
“그래서 전부 잊은 용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결혼하자고 이야기하자니 조금 부끄럽고 괜히 심술이 나서 그 때 이야기처럼 가정부처럼 부리다보니 결국 이렇게 멀리 돌아와서....”
마왕의 이야기가 끝나고 마왕이 용사를 원망스러운 얼굴로 노려보며 말하자 용사는 온몸에 땀샘이 열린 듯 식은땀이 주르륵 새어 나왔다.
확실히 마왕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런 일이 있었던 듯 없었던 듯 그런 느낌이 든다.
너무 오래전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마 마왕이 말하던 그 시기는 그쪽 호수에 너무 자주 놀러가 마수인지 멧돼지인지와 만나 목숨을 잃은 뻔 한 기억이 있어 그 쪽 호수엔 트라우마가 되어 다시는 가지 않았다는 기억만 어렴풋이 날 뿐이다.
“그, 그게 말이죠.. 마왕님......?!”
마왕의 시선에 용사가 사정을 설명하려하자 마왕이 갑작스레 용사에게 안겼다.
“마, 마왕님....?”
“마왕님이라 하지 말고 예전처럼 누나라고 불러주지 않겠어요? 서방님?”
“마왕님?!!”
마왕이 안기며 용사의 귓가에 속삭이자 서방님이라는 단어에 깜짝 놀라며 용사는 마왕을 바라보았고 마왕은 그런 용사의 반응에 큰 결심을 한 듯 용사에게 말하였다.
“결국 이렇게 다 털어놓게 된 거 이제 망설이지 않겠어! 용사. 이미 우리의 집은 모두 마련되었어. 비록 지금은 무너져 있긴 하지만 3주 만 기다리면 다시 우리들의 신혼집이 복귀돼. 그렇게 되면 이제 다시 마왕성에 돌아가 우리 애틋한 부부 생활을....”
“잠까안!! 지금 뭔가 부부 생활이라는 이야기에 태클을 걸고 싶은데요!!”
“고, 공주?!”
마왕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느덧 치료를 다 했는지 모두를 끌고 온 공주가 마왕과 하는 이야기에 태클을 걸고 들어왔다.
“용사의 아내는 저거든요!”
“흥. 일개 계획으로 정략결혼이나 하려했던 비열한 공주가! 나는 너 같은 것과 달리 용사가 직접 나에게 프러포즈해서 결혼하는 것이다! 너 따위와는 격이 달라!”
“뭐라구요?! 용사?!!”
“아, 아니... 저.. 그게 말이죠....?!”
마왕의 말에 공주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용사를 쏘아보았고 용사는 여전히 마르지 않는 땀을 줄줄 흘리며 슬며시 뒷걸음질 쳤다.
“그래도 주인님이 가장 사랑하는 건 저 맞죠? 저번에 그러셨잖아요!”
“엘프?!”
이미 마왕과 공주만으로 복잡한 상황에 회복한 엘프가 끼어들며 그런 말을 하였고 이야기는 더더욱 복잡해지고 있었다.
“용사의 바람기는....”
“아, 아냐... 공주... 오해야...”
“나랑 했던 그 약속은....”
“지, 진정하세요. 마왕님..!”
“...................”
엘프의 발언에 살기가 실어진 마왕과 공주의 분위기에 용사는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며 도망가려 하였고 그 뒤를 막아서며 누군가 용사의 손을 잡아왔다.
“버, 법사?”
용사가 고개를 돌리자 용사의 손을 잡은 사람은 법사였고 평소의 무표정으로 지그시 용사를 응시하던 법사는 품에서 지팡이를 꺼내 바닥에 찍으며 말하였다.
“...............용사. ...................나도. ................사랑해?”
“이 이상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지 말아줘!!!”
약간 위협하듯 법사가 용사를 보며 말하자 용사는 빠르게 법사의 손을 놓으며 도망치기 위해 전력으로 달렸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성녀는 용사를 쫓아 달리며 말하였다.
“용사님~! 저는 용사님이 박애주의자라 믿고 있어요~!”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그러니까 저도 사랑하시는 거죠?”
“제발 그마아아안!!!!”
성녀의 말에 용사는 재빨리 다리에 힘을 주어 속력을 내기 시작했고 이제 일어나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 있던 흑룡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흑룡의 등에 탄 채 흑룡에게 외쳤다.
“뭐, 뭐냐 애송이!”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달려요!!!”
“에에?!!”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