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엘프를 만났습니다.
“이런 맛있는 걸 못 먹게 하시다니... 정말 악마 같은 발상 이예요...”
“불쌍한 척 말씀하시면서 은근슬쩍 더 뜯어먹지 마시죠!!”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며 은근슬쩍 다시 잔디를 뜯어먹는 엘프의 팔을 붙잡으며 용사는 태클을 걸었다.
그러자 자신의 행동을 들킨 엘프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잔디를 바라보았고 용사는 그런 엘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드시려면 이런 잔디 말고 다른 먹을 수 있는 걸 드시라구요...”
“풀이라면 다 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못 먹는 풀도 있나? 자신을 타이르려는 용사를 순진한 얼굴로 바라보며 엘프는 그런 질문을 하였다.
용사는 엘프의 그런 반응에 엘프란 풀이라면 뭐든 먹는구나. 새로운 걸 알았네... 라 이해하려 하면서도 소처럼 바닥에 풀을 뜯고 있는 엘프의 모습을 상상하니 이미 눈앞의 엘프가 잔디를 뜯어먹는 모습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조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하아... 그럼 잔디 말고 다른 풀을 드릴 테니 그 잔디는 그만 드셔주지 않겠습니까?”
“그건 이것만큼 맛있나요?”
“잔디보다 훨씬 맛있을 겁니다...”
‘아마도지만..’
용사는 자신의 말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기대하는 엘프의 모습에 조금 부담감을 느꼈으나 그래도 이런 잔디를 먹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며 엘프를 데리고 마왕성의 식당으로 향하였다.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전혀 생각 하지 않은 채...
“.......그래서?”
“아뇨... 그게 그러니까.. 잔디를 뜯어먹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그래서...”
엘프를 마왕성의 식당으로 데려와 샐러드를 만들어 주던 중 마왕에게 그 모습을 보인 용사는 지금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지금의 상황을 마왕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잔디를 뜯어먹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보여서 식당에 데려와 샐러드를 만들어 주었다?”
“네.. 네... 그렇습니다만...”
마왕의 질문에 용사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숙이며 말하였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마왕의 기분이 굉장히 언짢은 것 같으니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저자세로 나가는 게 올바른 방법이라고 판단한 용사의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엘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용사가 만들어준 샐러드를 야금야금 먹고 있었다.
“정말로 그것 말고 아무런 다른 이유도 없는 것이냐?”
“네? 다른 이유라니 어떤....?”
팔짱을 낀 채 무릎을 꿇은 용사를 내려다보던 마왕은 용사의 질문에 살짝 당황하며 고개를 살짝 돌린 채 팔짱을 풀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용사는 그런 마왕의 반응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마왕을 바라보았고 마왕은 살짝 얼굴을 붉힌 채 조심스럽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 던가.....”
“네?”
마왕이 말하였으나 용사는 마왕의 작은 목소리를 듣지 못해 다시 마왕의 말을 되물었다.
용사의 질문에 마왕은 붉어진 얼굴을 더욱 붉히며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 처리....... 던가.....”
“네? 마왕님, 조금 더 크게 말씀해 주십쇼.”
얼굴을 붉힌 채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마왕이 말하였으나 귀가 안 좋은 것인지 여전히 그 말을 듣지 못한 용사는 다시 한 번 마왕에게 되물었다.
용사의 그런 거듭되는 질문에 마왕은 거의 울상이 된 채 이판사판이라는 듯 눈을 꼭 감은 채 소리쳐 말하였다.
“서, 성욕처리를 위한 게 아니냐고 묻지 않느냐아아아아아!!!!”
“.....!!”
“쩝... 쩝....”
이번에야말로 마왕의 말을 들은 용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굳어버렸고 샐러드를 먹으며 둘을 바라보던 엘프는 아무런 생각 없이 쩝쩝거리며 샐러드를 먹고 있었다.
“하아....... 하아.......”
“.......................”
“아삭.... 아삭.....”
용사에게 소리친 후 얼굴이 완전히 홍당무처럼 붉어진 채 울상을 지으며 숨을 고르기 시작했고 그런 마왕의 외침에 굳어버린 용사는 그런 울상인 마왕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그런 둘의 모습을 지켜보며 샐러드를 먹던 엘프는 여전히 아무런 생각 없이 아삭거리는 샐러드의 당근을 하나씩 집어먹고 있었다.
“무... 무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마왕님!! 제... 제제제... 제가 그런 의도를 가질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 그그그그.... 그렇지? 요요.. 용사? 요..... 용사가 그... 그런.. 그런 의도를 가질 리 없겠지?”
“무무... 물론이죠!! 제... 제가 그... 그런... 불순한 의도를 가질 리가 없잖습니까!!”
마왕이 용사에게 소리친 후 마왕과 용사, 둘 모두 당황한 채 격하게 말을 더듬거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더듬거리며 어색한 대화가 끝난 후, 얼굴이 붉어진 마왕과 용사는 서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어색한 기운과 적막이 흐르는 부엌. 그러나 분위기 파악에 약한 엘프는 어색한 모습의 둘을 보다 안 되겠다는 듯 샐러드가 담긴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사님!! 마왕님!!”
샐러드가 담긴 그릇을 든 채 용사와 마왕을 부른 엘프는 둘에게 샐러드에 담긴 방울토마토를 둘의 입에 넣어주었다.
“뭔 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축 처진 분위기는 좋지 않다구요~”
마왕과 용사에게 방울토마토를 넣어준 엘프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처럼 웃어보라는 듯 둘에게 말하며 파이팅 포즈를 취하였다.
“그리고 용사님!”
“네... 네?”
“저! 이렇게 맛있는 풀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봐요!”
“그... 그러십니까...?”
“네! 그래서 말인데요......”
“네........”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에에?!??!“
“...............!”
활기차고 커다란 목소리로 말하는 엘프의 발언과 그 발언 뒤 놀라는 용사의 비명 뒤 마왕성의 부엌은 아까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정적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