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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복잡미묘한 감정으로 LVMH 본사 앞까지는 왔지만 아르노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회사 대 회사로 약속을 잡고 만난다면 더 쉬울 수 있지만 그와는 엮이고 싶지 않았고 사안이 급하게 흘러갔기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어쩌지….”
그때 비서관이 신지혜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정식적으로 약속을 잡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회장님이 가신다고 달라질 건 없을 거 같습니다. 저들이 순순히 범죄를 자백할 리도 없을 테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아르노는 아리raM과 켈링에 적대적인 인물이다.
자신과 차진혁을 생각한다면 분명 치를 떨 것이다.
“회장님!”
“네?”
그때 비서관의 목소리와 손짓에 신지혜는 손짓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세요?”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에 그토록 찾던 사람이 나타났다.
“저분이 한은샘 대표님이시죠. 사진이랑 똑같습니다.”
“네, 맞는 거 같네요.”
그녀는 차에서 내려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한은샘 대표님!”
신지혜의 목소리에 한은샘이 고개를 돌렸다.
“지혜야….”
한은샘은 잠시 주춤하더니 옷매무새를 잡고는 신지혜에게 말을 걸려는 순간.
낯선 이의 목소리에 다시 한번 고개가 돌아갔다.
“한 대표.”
“회장님.”
신지혜의 눈에 LVMH 본사 건물에서 걸어 나오는 아르노 회장의 모습에 한은샘의 표정과 행동이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회장님 왜 나오셨습니까. 제가 올라가면 되는데요.”
“귀한 사람인데 식사 같이하려고 내려왔지.”
“귀한 사람?!”
그녀는 아르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천하의 LVMH 회장 아르노 입에서 귀한 사람이라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 않은가.
모든 사람을 자신의 아래로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인 아르노 회장이 인자한 미소로 그를 대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둘 사이가 아주 각별해 보였고 애정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아르노가 신지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게 누구야. 차진혁이랑 한 쌍이신 켈링 회장이 어인 일로 우리 회사 앞에 있지?”
“당신! 한은샘 대표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이라니? 하하하. 무슨 오해가 있나 본데. 한 대표 자네가 설명하게.”
한은샘은 다시 한번 표정이 달라지며 날카로운 눈매로 신지혜에게 말을 이었다.
“신지혜! 회장님한테 무슨 무례한 말투야.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행패냐고.”
“대표님… 저는 대표님이 행방불명되었다고 해서….”
“행방불명이라니? 그런 유언비어를 듣고 이런 무례한 짓을 한단 말이야? 당장 사과드리고 사라져!”
“…….”
신지혜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몇 달 전만 해도 함께 세계 패션을 뒤집어 보자며 소주잔을 기울인 사람이 맞나 의심이 될 정도였다.
“아니. 왜 아르노 회장이랑?”
“뭐가 궁금한 거야. 왜 내가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아르노 회장님 밑에 있냐는 듯이 들리네.”
“그게 아니라.”
“내 능력을 알아봐 주시고 나를 스카우트해주신 분이야. 어디 알지도 못하면서 당장 꺼지라고.”
“못 믿겠어요!”
한은샘의 갑작스러운 설명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더욱이 머리가 아닌 마음이 걸려 발이 떨어지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오가는 길 위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아르노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차며 신지혜를 스쳐 지나가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한은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한 대표 얼른 차에 타게 얼빠진 년 상대할 시간 없으니까.”
“네, 회장님.”
그 순간 신지혜가 한은샘의 정장 깃을 낚아채듯 잡아끌었다.
지금 놓아버린다면 오랜 시간 함께한 추억이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딜 가려고! 내가 당신 없어졌다고 해서 얼마나 걱정하고 찾았는데.”
“누가 찾아 달랬어! 말을 똑바로 해야지 너희가 멋대로 나를 찾아온 거잖아.”
“말이라고….”
“내가 말했잖아. 유언비어였다고 언론에서도 잘못 알았나 보지! 이거 놔.”
한은샘의 호통에도 그녀는 옷깃을 놓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느낌, 오묘하면서도 이질적인 그의 모습에서 불안감마저 감돌았다.
“이대로는 안 돼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놓고 말하라고.”
한은샘은 다시 한번 차에 눈을 돌리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 씨 이게 무슨….”
“우리 사이에 이야기 정도 할 시간은 있잖아요.”
“지혜야. 하… 그래 좋아 지금은 안 되겠고 자 받아 내 번호니까.”
그는 작은 명함 한 장을 신지혜 손에 쥐여 주고는 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신지혜는 순간 이 상황이 억울했고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가 쥐여 준 종이 한 장을 내려다보았다.
“인피니티!”
인피니티는 분명 쟁쟁한 메이저 패션기업들을 이기고 에르맥스 세계대회 본선에 오른 회사였다.
“대표 한은샘?”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신성 기업.
신성 기업에서 세계대회 본사 티켓을 거머쥔 이력으로 현재 인기몰이 중인 기업이었다.
“아르노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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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슨 꿍꿍이인 거야… 하’
“그럼 인피니티의 디자이너가 누구예요?”
한은샘은 분명 2차 예선에서 브랜드Han을 진두지휘했다.
그럼 납치가 된 후에 인피니티의 대표가 되었다는 게 정확하다.
“한은샘 대표는 그냥 허수아비일지도.”
“허수아비라니요?!”
“제 가정이긴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소기업인 인피니티가 혼자만의 힘으로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말이 안 되잖아요.”
“뒷배경이 아르노라면요?”
“돈과 힘으로 올라올 수 있는 대회가 아니에요. LVMH 그룹사 디자이너들은 각자 브랜드를 본선에 진출시키려 노력했을 거예요. 다른 데 눈을 돌릴 틈도 없었을 테니까.”
“그렇긴 하죠. 패션위크, 시즌 의상, 오트꾸튀르에 대회 준비까지 바빴을 테니까요.”
“맞아요. 그리고 의문이 드는 게 아르노가 왜 인피니티를 소속 브랜드 외 브랜드를 만들었냐는 거예요. 한은샘 대표를 위해?”
“그건 절대 아닐 거예요. 그 욕심 많은 영감이 그럴 리가 없죠.”
“분명 뭐가 있기는 한데….”
아르노가 누군가를 위해 선심 쓰듯 일을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한은샘을 이용해 일을 꾸미는 게 확실했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가정을 내려보며 신지혜와 대화를 이어갔지만 뭐라 뚜렷한 게 나오지 않았다.
“먼저 인피니티의 디자이너가 누군지부터 알아봐야겠어요. 본선에 진출할 정도의 실력자라는 소리니까.”
“네, 저도 찾아볼게요.”
* * *
헐떡이는 숨을 몰아치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또 악몽인가.”
오랜 시간 한 꿈만을 꿔온 거 같았다.
죽음을 넘나드는 꿈 그리고 자신의 앞과 옆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
“지긋지긋하네.”
한 청년은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시원한 냉수 한 잔을 앞에 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너무 생생해.”
한결같이 같은 생각으로 오랜 세월을 지내왔다.
하지만 모두 허상일 뿐이었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띵동!
“누구시죠?”
“나다.”
“네, 잠시만요.”
그는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빠르게 문을 열어젖혔다.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다. 이번에 인피니티 대표로 취임하게 될 한은샘 대표다. 인사해라.”
청년은 아르노 뒤에 서 있는 한 중년의 사내에게 인사를 전했다.
“반갑습니다. 앙투완 에릭입니다.”
“앙투완?!”
한은샘은 아르노를 바라봤다.
“내가 입양한 아이일세. 현재 인피니티의 디자이너직을 맡고 있지. 대표이기도 했지만, 운영 능력은 부족하니 자네가 잘 도와주게.”
“네.”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 아르노의 숨겨진 입양아라니 새삼 놀라운 일이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한은샘은 에릭의 안내를 받아 거실로 향했다.
근데 뭔가 답답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에릭의 얼굴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비췄기 때문이다.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네.’
에릭은 아르노를 깍듯하게 대했다.
따뜻하거나 친근한 부자의 모습은 바라지 않았지만, 너무 형식적이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자녀분이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자네가 처음이야. 이 아이를 소개하는 거 입양한 지도 채 1년이 되지 않았네.”
“그것도 인피니티의 디자이너라니 앞길이 훤하네요.”
“훤하다라 그렇게 될까?”
“그럼요 누구 아드님이신데.”
곧 70세를 바라보는 아르노가 성인을 입양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르노는 다시 청년에게 말을 이었다.
“그래 본선 디자인은 모두 완성했다고 전해 들었다.”
“네. 끝냈습니다.”
“역시 대단한 능력이야.”
한은샘은 둘의 대화를 듣고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합격이 발표된 지 채 이틀이 지나지 않은 시점.
그런데 본선에서 선보일 의상을 모두 만들었다니 믿을 수 없었고 무슨 능력이 있길래 쉽게 받아들이는 것인가.
나는 아르노는 아랑곳하지 않고 청년에게 말을 이었다.
“도련님 죄송하지만 완성된 디자인 모두 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네, 이제 인피니티의 대표시니 당연히 확인해보셔야죠.”
잠시 뒤.
에릭이 내미는 스케치북을 받아 들었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의 천재야. 진혁과 비교한다면 이자가 한 수 위일 거 같은데.’
스케치북의 선 하나 디자인 하나하나가 기하학적이었으며 새로운 감성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작품성이 뛰어난 의상들이었다.
그리고 핸드백, 가방까지 모든 디자인에 능통했다.
가장 무서운 점은 하나하나 모두 브랜드 하나를 대표할 수 있을 만한 메인들이라는 점이다.
“디자인이 하나같이 대단하네요. 이 많은 걸 어떻게….”
“과찬이세요. 생각보다 빨리했습니다. 저한테는 특별한 능력이 있거든요.”
“그 능력이 뭔지 궁금하네요. 대표이자 디자이너로서 배우고 싶을 정도로요.”
“네? 하하하 그건 어렵겠는데요.”
여기서 아르노가 우리의 대화를 끊어버렸고 다시 형식적으로 에르맥스 본선에 대한 이야기를 이었다.
“너는 뒤에서 디자이너로서 서포트만 해. 다른 지원도 아끼지 않고 할 테니까.”
“…네?! 어째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디자인 대회에 내보내 주신다고 했잖아요.”
“이번에는 안 돼! 그러니 내 말 들어.”
한은샘이 본 그의 능력은 대단했다. 근데 아르노는 그런 그를 본선에 내보내려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청년이라면 하나의 브랜드가 아닌 여러 브랜드를 창조해 LVMH에 큰 보탬이 될 텐데도 말이다.
이번 대회만 해도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인피니티는 형식적인 브랜드일 뿐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1차 예선은 아르노의 재력으로 눈속임하듯 기업을 꾸며 통과시켰고 2차 예선은 오로지 에릭의 능력으로 본선까지 진출한 것이다.
인피니티 3.
* * *
우리는 인피니티에 관련된 한 가닥의 정보도 얻어내지 못했다.
상품 대부분 온라인거래만으로 이루어졌고 생산도 모두 OEM으로 위탁생산을 하고 있었기에 관계자를 찾기에도 역부족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1년 남짓 동안 엄청난 판매율과 영업이익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1년 만에 인지도라고는 하나 없는 브랜드가 순이익 40억이라니 말도 안 되네요. 비율과 성장성 때문에 대회 예선을 통과했겠다는 건데.”
신지혜는 페이퍼 한 장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혀를 찼다.
대회를 위해 만들어진 유령 회사 때문에 정말 디자인과 패션시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브랜드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르노는 오래전부터 준비한 거 같네요. 그 시기를 에르맥스가 앞당겼을 뿐이고 근데 정말 중요한 건 디자이너예요. 실력이 심상치 않아요. 지금 온라인에 올라온 상품들 모두 손색이 없어요. 디자이너에 대한 정보는 없었나요?”
“네, 아무리 알아봐도 알 수가 없어요. 대표도 한은샘이고 생산도 위탁인데 위탁생산하는 업체들도 모두 LVMH랑 연관된 곳이기는 한데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라 정보를 알아내기 쉽지 않을 거 같아요.”
“뭐 어쩔 수 없죠.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긴 한데 궁금하네요. 인피티니의 디자이너라 우리가 아는 사람일 확률이 더 높을 거 같긴 한데.”
“이 정도 실력자라면 분명 수면 위에 올라왔을 거예요. 새로운 인물은 아닐 거 같아요.”
“제 생각도 같아요.”
곧 있으면 본선 날이 시작된다.
나는 며칠 사이 파리지부를 오가며 여러 디자인 시안을 완성하고 점검했다.
본선이 시작됨과 동시에 주제가 주어질 것이고 거기에 변형만 준다면 빠른 시간에 최고의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완성도 높은 의상, 가방, 구두를 만들 수 있다.
“준비는 잘되고 있죠? 쉽지 않을 거예요. 본선 진출 브랜드 모두 메이저고 최고가 되기 위해 모든 걸 퍼부을 거예요. 우승이 곧 광고고 마케팅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