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는 호탕한 웃음이 아닌 살며시 입꼬리를 올려 보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게 아름답다고 하는 이 사람이 참 엉뚱하게 느껴졌고 반대로 신지혜 또한 그의 외모에 매료되는 거 같았다.
블레즈는 이탈리아 북부 사람으로 누구나 매력을 느낄 법한 큰 키에 핸섬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둘은 침묵을 조금 더 이어 가다.
블레즈가 먼저 긴 침묵을 깨며 말을 이었다.
“신발을 주문하려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그럼 여기 의자에 앉아 주세요.”
“네.”
블레즈는 뻘쭘한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형식적인 멘트를 이어갔다.
“구두부터 벗어 주세요.”
신지혜는 구두를 벗고 의자 옆에 살며시 놓아 두자.
블레즈가 자신의 발이 아닌 벗어놓은 구두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깔창부터 바닥까지 아주 상세하게 말이다.
“잠시만요.”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신지혜가 구두를 뺏으려 했다.
“괜찮습니다. 제 일입니다.”
“아니….”
그는 신지혜의 구두의 깔창을 유심히 바라보며 옆에 놓여있는 발 모양 그림에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호기심에 질문을 이었다.
“깔창은 왜?”
“아. 구두 바닥의 마모로 걸음걸이를 예측하고 깔창으로 힘의 분산을 확인합니다. 깔창 훼손을 보면 어디에 힘이 가해지는지 알 수 있거든요. 제작할 때 높낮이를 조절해서 발전체의 균형을 만들 겁니다.”
“아….”
신지혜는 그제서야 앙주가 왜 구두계의 에르맥스인지 알 수 있었다.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았고 지면과 사람의 발을 일체화시키는 기술로 편안함을 선사했다.
그녀는 블레즈를 보며 앙주의 일반 수제화보다 한층 아니 몇 단계 위를 바라보며 고객의 니즈를 모두 수용한다니 심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 발이 어떤가요?”
“오른쪽 발 우측 바닥이 자주 아프지 않았나요?”
“그걸 어떻게!”
“사람은 양쪽 다리의 길이가 조금씩은 차이가 있거든요. 그런 이유 때문에 분산되는 힘도 다르죠. 회장님은 자세 교정도 받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상당히 불균형하네요.”
“아 그래요.”
신발 확인이 끝났는지 바닥에 내려두고는 그가 무릎을 꿇고 그녀의 앞에 앉았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신지혜의 발을 자신의 한쪽 무릎에 올리고는 이리저리 만지기 시작했다.
“앗. 간지러….”
“금방 끝납니다.”
뒤이어 그는 골판지 하나를 가져와 정확하게 그녀의 발을 본 떠 그려 나갔고 다시 이리저리 만져보며 발의 모든 문제점을 찾아 나갔다.
꽤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했다.
“이제 끝났습니다. 신발 디자인은 로비에 직원이 따로 있으니 골라주시면 됩니다. 이제 저를 찾아온 이유를 듣고 싶은데요?”
“알고 계셨군요.”
“이례적이니까요. 기업의 오너가 직접 찾아오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저를 직접 지목하셨다니 무슨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지혜는 살짝 미소 띤 얼굴로 그의 질문에 답했다.
“들켰네요. 단도직입적으로 부탁 좀 드리고 싶어요. 블레즈 최고 장인은 VVIP만 전담한다고 들었어요.”
“네, 그렇죠.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죠?”
“혹시 전담하고 계시는 남자 고객 명단 좀 보여주실 수 없을까 해서요. 같이 확인해 주시면 더 고맙고요. 보상은 꼭하겠습니다.”
“네!?”
블레즈는 당황하며 답을 이었다.
“그건 곤란합니다. 개인정보를 유출시킬 수 없습니다. 알다시피 모두 VVIP 고객들이고 정보에 예민하시거든요.”
예측했던 답변이기는 했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다.
그녀는 블레즈에게 휴대폰을 내밀며 CCTV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럼 이거 한 번만 봐주세요. 부탁드릴게요.”
“뭐 보는 거야.”
블레즈가 신지혜가 내민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자.
그녀는 검은 정장의 사내를 지목했다.
“이 사람이 당신이 만든 구두를 신고 있었어요. 그리고 끌려가는 사람은 제 예전 보스고요. 정말 중요한 사건이에요. 부탁드립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개인정보는 안 됩니다. 다시 한번 볼게요.”
블레즈는 다시 한번 영상을 확인했다.
“얼굴 알아보시겠어요?”
“화면이 흐리네요.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흑인에 키는 186 정도이고 덩치가 커요. 자세히 한번 봐보세요.”
“자세히 봐도 제 기억에는 없는 사람인데요.”
“그래요.”
“죄송합니다. 도움이 못 돼서.”
“아니에요. 불쑥 찾아온 제가 실례가 많았죠.”
신지혜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겨우 잡은 힌트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린 것이다.
‘다시 원점인가. 한은샘 진짜 속 썩이네.’
그때 블레즈가 고개를 갸웃하며 신지혜의 손에서 폰을 빼앗듯 가져가 여러 번 화면을 돌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낯선 이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혹시 아르노 회장님이랑 연관된 건가요?”
그의 입에서 예측만 하고 있던 아르노 회장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순간 신지혜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네? 혹시 아르노 회장도 블레즈 고객인가요?”
“제가 먼저 질문했는데요.”
“아. 죄송해요. 어쩌면 그럴지도 정확하지는 않아요 예측일 뿐이에요.”
“예측이라… 이 사람이 맞는지 정확하지는 않아요. 제 기억으로 오래전 아르노 회장님을 보좌하는 경호원인 거 같습니다. 근데 왜 제 신발을 신고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만든 적이 없는데.”
“역시… 아르노 회장 짓이었어!”
“네?”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다른 것도 기억나면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
그녀는 핸드백을 챙겨 빠르게 공방을 빠져나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블레스가 입맛을 다시고 말을 이었다.
“애프터 신청할 걸 그랬나. 에이 아니다.”
* * *
파리 공항에 도착하자.
신지혜의 비서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이 모셔오시라고 그랬습니다.”
“아 그래요. 잠시만요.”
나는 같이 온 직원들에게 다가가 말을 이었다.
“일은 내일부터 진행하고 오늘을 푹 쉬어요. 시차 적응도 하고 관광도 하세요.”
“오 예!”
“넌 어디 가려고?”
다니엘이 나에게 꾸짓듯 말을 이었다.
“나는 한은샘 사장 일 때문에 잠시만 자리 비울 게 봐줘라.”
“아휴… 그놈의 한은샘. 비행기에서도 내내 그러더니. 내일 늦지 말고 출근해. 바로 회의 진행이야.”
“알겠어. 그리고 이거.”
나는 블랙카드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법인카드로 마음껏 즐겨. 영수증 처리해 줄 테니까.”
“알겠어. 그 말 후회하게 해주겠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류미리와 정희정도 말을 이었다.
“쇼핑도 콜?”
“류 디자이너 그건 좀….”
“아 왜요. 명품은 아니고 기념품은 가능하죠 뭐.”
“김상진 팀장한테 한 소리 듣고 싶어요?”
“아….”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김상진 팀장이 허용하는 한에서 모두 구입하세요. 뭐라고 하면 디자인에 쓰인다고 제가 말하면 되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아리raM은 본선 준비를 파리 지부에서 준비하기로 합의했다.
최종 회의를 걸쳐 생산 장인들을 파리에 모셔 생산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다들 내일 회사에서 봐요.”
“네.”
나는 모두를 뒤로하고 비서가 준비한 차량에 올라탔다.
“어?!”
내가 차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자 안쪽에서 신지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온다고 고생했어요. 시차 적응해야 하는데 제가 너무 급해서.”
“아니요. 저도 답답한 건 못 기다리는 편이라 쉬고 계시지 공항까지 왜 오셨어요?”
“바로 가볼 데가 있어요.”
“네?!”
신지혜는 무거운 얼굴로 내 눈을 피하며 창가를 바라봤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무슨 일 있어요?”
“가보면 알아요. 이거 하나만 알아둬요. 이때까지 우리가 알던 한은샘 대표가 아니라는 거.”
“네?!”
한은샘을 찾았다는 연락을 비행기를 타기 전에 받았다.
그리고 12시간의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이길래. 그래요? 납치된 것도 아니면 잘된 거 아니에요?”
“잘된 건지 모르겠어요. 판단이 안 서네요.”
대화를 거부하듯 정적이 길게 이어졌고 어느덧 파리 웨스턴 호텔 앞에 차가 멈추어 섰다.
“호텔?”
“네. 여기서 만나기로 했어요.”
“누구를?”
“한은샘 대표요. 만나서 이야기해요.”
그녀는 그를 다시는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 때문에 억지로 이곳에 나온 듯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호텔 라운지로 이어지는 복도를 걸어갔다.
그리고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고 자리로 이동했다.
“저기 있네요.”
그녀가 손을 가리키는 쪽에 내가 알고 있던 한은샘 대표가 있었다.
카피 사건 이후 첫 만남이라 어색함과 미운 마음은 가시지 않았지만 걱정한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나는 빠르게 그에게 다가가 말을 이었다.
“대표님! 무사하셨군요. 걱정했습니다.”
“차진혁 아니야. 오늘 신 회장만 오는지 알았는데 떨거지도 데리고 왔네.”
그의 말에 신지혜가 언성을 높이려 하는 순간.
“전 괜찮아요.”
나는 그녀를 보며 쓰윽 하고 웃어 보였다.
“무슨 일 있는지 알고 걱정했습니다. 대표님.”
“차 회장님께서 일개 작은 소기업인 걱정까지 해주고 감사하네.”
그는 시종일관 비꼬듯이 답변을 이어갔고 신지혜를 보며 말을 이었다.
“간절하게 부탁하길래 나왔더니 차진혁을 데리고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야.”
“그건….”
한은샘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온 김에 진혁이한테 한마디 하고 가야겠네. 차진혁 잘 들어! 내가 널 꼭 떨어트릴 이유가 생겨버렸거든 나 때문일까? 너 때문일까?”
한은샘은 그 말을 남기고 로비를 빠져나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예요. 떨어트리다니? 브랜드Han은 본선 진출 못 했잖아요.”
“하… 아르노 회장이.”
“아르노 회장이 왜?! 또 왜 그놈이!”
인피니티 2.
* * *
신지혜는 확신을 굳히고 앙주를 빠져나와 LVMH 그룹 본사로 향했다.
아르노 회장은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한은샘의 행방을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도대체 왜 한은샘 대표가 아르노랑 엮여 있는 건데!”
요 근래에 있었던 아리raM의 카피 사건 그 사건에 한은샘이 있었다.
“설마 아르노가 시켜서 한 짓이라는 거야?!”
생각만 해도 짜증이 몰려왔지만 한 사람의 생사가 달린 일이다.
생각에 잠겨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설마….”
그녀는 순간 얼마 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은 안드레스 디자이너가 생각났다.
한은샘과 함께 아리raM을 저격했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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