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6화 (186/200)

한은샘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갔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사건의 당사자이자 목격자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택시 운전사?! 차 번호 조회하고 저 사람 찾아주세요.”

“네, 회장님!”

그녀는 비서를 시켜 검은 정장의 사내에게 당한 택시 운전사를 찾아낼 수 있었다.

“뭘 알고 있어야 할 텐데.”

신지혜는 가장자리 소파에 앉아 여유 있게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택시 기사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상 속에 쓰러져 있던 택시 운전사가 신지혜의 직무실로 들어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심히 당황해하고 있었고 살짝 불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럴 것이 갑작스럽게 괴한에게 당하질 않나 갑자기 기업의 오너가 자신을 보고 싶다며 비서가 찾아오질 않나.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일들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여기로 앉으시죠.”

“네….”

“음료 준비해드릴게요.”

“아니 안 그러셔도.”

“아니요. 손님이신데요. 긴장하지 말고 계세요.”

신지혜는 살짝 미소 지은 얼굴로 그를 대했다.

“감사합니다.”

신지혜는 그에게 잠시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내어주었고 택시 기사는 처음보다 훨씬 긴장이 풀린 듯 보였다.

“제가 부른 건 그날 일에 대한 진술을 듣고 싶어서입니다.”

“아… 그날이요.”

“뭐 들은 거나 본 거 뭐든지 좋아요.”

“저는 바로 기절해서 별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근데 그거 하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손님이 그들을 피해 도망치려 했다는 거 그리고 누가 보냈는지 계속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저도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렇군요. 아… 영상을 보니까 그놈이 무언가 손에 쥐여주던데 뭐였죠?”

“아… 돈이었습니다. 2000유로쯤 된 거 같습니다. 꽤 큰 금액이라서 저도 똥 밟았다 생각하고 잊어버렸죠.”

“그랬군요.”

기대 이하의 답변이었다.

상대의 신상이나 누구의 사주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 택시 기사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 이걸 말씀드려야 하나.”

“뭐죠? 뭐든지 기억나는 거 말해주세요. 그만큼의 보상은 하겠습니다.”

“보상은 필요 없지만 제가 쓰러질 때 그 남자의 신발에 신기하게 이름이 각인되어 있었어요. 아무리 명품 신발이라도 각인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요?”

“그렇죠 기업의 브랜드가 아니면 각인은 드물어요.”

“분명히 각인이 되어 있었어요.”

“혹시 그 각인 기억나세요.”

“제 기억으로는 앙주 블레즈였던 거 같은데.”

“앙주?!”

앙주[ange] 프랑스어로 천사를 의미한다.

브랜드 ange, 구두 브랜드로 개인 고객의 니즈를 받아들여 발의 형태와 발의 구조를 분석해 수공예로 만들어주는 공방에 명품 브랜드로 초고가이기에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브랜드이기도 했다.

분명 블레즈는 신발을 제작한 장인의 이름이 분명하다.

“고마워요. 큰 도움 되었네요.”

“뭘요.”

신지혜는 명함 한 장을 그에게 내밀며 다시 말을 이었다.

“보상이 필요 없으시다니 명함 한 장 드릴게요.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 생기면 꼭 찾아오세요. 최대한 도와드릴 테니.”

“네, 감사합니다.”

택시 기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 신지혜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직무실을 빠져나갔다.

“앙주라.”

신지혜는 비서에게 차를 대기시키라 명령하고는 진혁에게 문자 하나를 넣어 두었다.

― 단서를 잡은 거 같아요.

짧은 글을 남기고 신지혜가 직무실을 빠져나갔다.

* * *

퀴즈 온 더 로드의 MC 유재순은 처음부터 매서운 질문을 이어갔다.

“김시현을 이을 한국 최고 패션디자이너의 탄생이라는 이야기가 많은데 대표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과찬이십니다. 저보다 더 뛰어나신 분들이 많은걸요. 저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겸손하시네요. 잘된 이유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바로 이어가겠습니다. 좀 어려운 질문이긴 하지만 온 국민들이 궁금해하시니까. 저희가 총대를 메 보겠습니다.”

“네?!”

“카피 사건으로 세계적으로 떠들썩했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프로그램 특성에 맞지 않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정희정이 진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일부러 이런 질문을 집어넣은 거야?’

나는 모두가 눈치 못 챌 정도의 한숨을 내쉬어 보이며 답을 이었다.

“디자인은 오해의 소지를 만들 수 있는 광범위한 창작의 세계입니다. 이번 에르맥스 2차 예선에서 우리 아리raM이 마르센느의 카프스킨을 모티브 삼아 만든 디자인이 본선에 진출한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디자이너로서 카피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군요. 역시 다지인은 힘든 분야라는 걸 알 수 있네요. 이제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패션 브랜드가 되었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더 앞으로 나아가라는 당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 발전해 한국이 아닌 세계 최고의 브랜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 대답이 끝이 나고 내 옆에 있던 작은 자기 MC가 말을 이었다.

“회장님 제가 명품을 좋아하는데 협찬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나는 씨익 웃어 보이며.

“유재순 님은 되는데 작은 자기 님은 안될지도….”

“네?! 여기서도 급이 있네요.”

“농담입니다. 제가 두 분께는 특별하게 모든 협찬에 동의하겠습니다.”

“정말요. 이거 완전 횡재한 기분인데요.”

그때 유재순이 작은 자기를 보며 혼을 내듯 말을 이었다.

“으그 부끄러워. 사서 입어요 작은 자기 님. 돈도 많으신 분이.”

“아니. 사고 싶어도 몇 달씩 기다려야 해서 그렇죠. 아리raM이 어떤 브랜드입니까. 한국 최고의 브랜드 아니겠어요. 그러니 이런 부탁드리죠.”

“아 그렇죠. 그럼 회장님께 인사 한번 드리죠.”

“좋습니다.”

둘은 장난스럽게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손 인사를 나누었다.

그 뒤로 한국 전통에 대한 견해와 공방부터 기업까지 성장 스토리, 미래에 대한 여러 질문이 이어갔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질문을 모두 마무리했다.

“이제 퀴즈를 풀어야 하는데.”

그때 피디가 깡통 안에 들어있는 질문지 꾸러미를 유재순에게 내밀었다.

“이야. 방식이 바뀌었네요. 하나 뽑으면 될 거 같습니다.”

나는 깡통 안에 들어있는 형형색색의 종이 중 가장 중앙에 있던 빨간 종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자 문제 읽어 드리겠습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참수형에 처할 죄수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 개발된 기구로 죄수의 목을 자르는 형벌을 가할 때 사용한 사형 도구의 이름을 맞춰주시면 되겠습니다.”

“사형 도구라….”

생전 접해 보지 못한 상식 문제였기에 멍때릴 수밖에 없었다.

“오! 사! 삼! 이! 일! 땡 정답은 기요틴이었습니다.”

“아… 처음 들어봤네요.”

“천재에게도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패션과 가장 관련이 깊은 프랑스의 역사에서 가져온 문제였습니다. 기요틴은 기요틴 박사님이 1789년 12월에 열린 삼부회에 제3신분의 대표로 출석해 “처형은 어느 누구에게나 같은 방법으로, 쓸데없이 고통을 주는 일 없이 행해져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아쉽지만 상금은 못 타셨네요.”

“괜찮습니다.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타지 못한 상금만큼 개인적으로 기부하도록 하죠.”

“역시 회장님의 배포가 남다르십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이렇게 녹화가 끝이 났고 아리raM 브랜드 이미지가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띠링!

순간 휴대폰 메시지가 떠 올랐다.

― 단서를 잡은 거 같아요.

“단서라. 정말 사건에 휘말렸다는 소리야.”

의구심에 신지혜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는 다르게 분명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는지 적극적으로 사건을 파헤치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고 그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정희정 디렉터님 회의 좀 열어주세요. 본선 준비에 대한 상황이라고.”

“네.”

본선 준비로 분주한 시기다.

내가 빠져서도 안 되는 상황.

“그리고 파리지부도 연락해 주세요.”

“네.”

* * *

신지혜는 앙주의 공방에 도착했다.

“회장님 여기 계시죠. 제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직접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구두 공방 안은 개별적으로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신지혜가 들어서자.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찾아와 말을 이었다.

“어떻게 찾아오셨죠?”

“블레즈라는 장인 있나요?”

“블레즈 장인님이요? 네, 있습니다. 약속은 되어 있으신가요?”

“아니요.”

“그럼 좀 만나시기 곤란한데.”

그때 신지혜는 전화기를 들어 앙주에 인맥을 찾기 시작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전화 한 통 하겠습니다.”

“네.”

그녀는 앙주의 홍보팀에 있는 지인에게 연락했다.

“오랜만이에요. 제가 앙주 장인 한 명을 만나고 싶은데…….”

그녀는 어렵지 않게 승낙을 받아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방의 최고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뛰어 오고 있었다.

“혹시?!”

“네. 제가 신지혜입니다.”

“회장님 미리 연락을 주시지 죄송합니다.”

“별말씀을요. 제가 갑자기 찾아온 건데요.”

그때 옆에서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직원이 최고 책임자를 바라봤다.

“제가 안내할 테니 볼일 봐요.”

“네?! 근데 회장님이라니?”

“이분 켈링그룹 신지혜 회장님이십니다. 인사하세요.”

“…….”

직원은 내 정체를 알고는 고개를 숙이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제가 실례가 많네요. 직원분한테도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별말씀을요. 만나고 싶은 분이 블레즈 장인이시죠.”

“네.”

최고 관리자의 말에 따르면 블레즈는 브랜드의 최고 장인으로 몇 안 되는 VVIP급 고객들의 신발을 만든다고 했다.

“블레드 장인님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셔서?”

“별일 아니에요. 저도 구두를 주문할까 해서요.”

“아….”

내 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나.

반박할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회장님이 전화 주셨으면 직접 찾아갔을 텐데요.”

“제가 부탁하는 입장인데 찾아와야죠.”

그때 관리자가 작은 공간에 멈춰 섰다.

“이곳이 블레즈 장인 개인 작업실입니다. 안에 있을 겁니다. 제가 연락해뒀으니 들어가 보시죠.”

“네 감사합니다.”

신지혜는 문을 열고 블레즈가 있는 작업실로 들어갔다.

인피니티 1.

* * *

신지혜는 문을 열고 블레즈가 있는 작업실로 들어갔다.

블레즈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마시고 있던 차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앙주의 구두는 지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예약 순으로 제작이 이루어지기로 유명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인 듯했다.

‘켈링의 회장이란 말이지… 왜 이렇게 젊어?! 이쁘기까지 하고… 하 마음 약해지네.’

블레즈는 사실 최고 장인으로 부당한 지시에 신지혜를 거절하려 했었다.

하지만 친한 본사 직원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오기만 해 봐라.

그는 그녀가 온다면 약간의 면박을 주며 신경을 건드리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에 홀리듯 불만과 부당함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아… 안녕하세요.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죄송해요.”

아무런 말 없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블레즈에게 그녀가 말을 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속마음을 입 밖으로 뱉어 내고 말았다.

“아… 름답다.”

“하하하 제가요? 빈말이라도 감사하네요.”

호탕하게 웃는 그녀를 보며 블레즈는 용기를 내어 다시 말을 이었다.

“빈말 아닙니다. 정말 아름다우세요.”

순간 공방의 공간에 짧은 침묵이 흘렀고 약간은 오묘한 공기마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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